수필
제비가 물고 온 박씨
김영분
장미꽃이 만발한 5월이 깊어가는 어느날, 출근을 했더니 회사 복도에 웬 제비 대여섯마리가 신바람나게 날아다닌다. 좁은 복도에서 쉬익쉬익 날면서 얼마나 떠드는지 대체 어찌된 영문인가 한번 내다봤다.
웬걸 사무실 대문을 들어서자마자 굽인돌이처럼 꺾이는 복도 웃쪽으로 제비집이 덩그러니 하나 걸려있었다. 이 공장으로 이사온지 3년이 되는데 이전에는 왜 보지 못했을가. 바깥도 아니고 사무실 안쪽 복도에 제비집이 있었다니 정말 생각지도 못한 일이였다.
우리가 이사들어올때 건물주가 새롭게 페인트칠을 했는데 제비집도 흰색으로 도배가 되여 있었던것이다. 이 제비들은 아마도 헌 제비집을 발견하고 살림을 차려볼가하고 집을 잡으러 온것 같았다.
오랜만에 보는 제비이다.
도시가 들어서고 공장건물을 구역을 나뉘여 순서대로 부수면서 점차적으로 아파트위주 건물을 짓는 이 동네에서 제비가 재잘거리는 모습을 못본지도 거의 3년이 된것 같았다. 제비집이 왜 복도안에 있는지도 이해가 갔다. 공장건물은 네모칸식이여서 처마로 의지할 지붕이 없었던것이다.
예전에는 너무도 우리에게 친숙하고 항상 우리 주변을 날아다니던 제비이다.
한적한 시골마을에 제비 한쌍이 나무가지를 부지런히 물어다 집을 짓고 새끼를 위해 부지런히 먹이를 물어 날으는 모습을 보며 혹시 강남에서 박씨는 물고 왔는지 하면서 흥부전에 나오는 제비를 상상하곤 했다.
항상 우리 주변을 낮게 감아 날던 제비의 갑작스런 방문에 나는 물론 회사 전체 직원 스무몇명이 모두 삭막하고 딱딱한 경쟁분위기로부터 푸근하고 다정다감한 시골인심모드로 바뀌였다.
솔직히 제비가 오기전에는 회사가 불경기여서 저마다 얼굴이 찌뿌뚱했었다.업무를 진행하는 도중에도 높은 목소리가 오갔고 거래처전화는 자재를 제때에 가져다주지 않는다고 쿵쾅거리면서 끊을 때도 있었다.
헌데 제비가 왔을뿐인데 우리의 까칠하던 마음은 난로를 피운듯 따뜻해졌다.
설레이는 마음을 잠시 뒤로한채 일하는 공간에서 제비랑 같이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선뜻 받아들이지는 못하는 상황이였다. 바이어 상담도 때로는 해야 하고 거래처 사람들과 회의도 해야 하고 더우기 하루종일 사무실에 앉아있어야 하는 사무실 직원들은 제비의 재잘소리가 무더운 여름날에 날카로워지는 신경질에 부채질을 하지 않을가하는 걱정이 많았다.
우리는 제비를 들여야 할지 아니면 매정하게 쫓아내야 할지를 놓고 열렬한 토론을 벌렸다. 모두 진한 커피를 잔뜩 먹은듯 흥분이 되여서 거창하게 열변을 토했다.
인사과장은 복도에서 제비가 재잘거려서 업무에 지장을 주게 된다면서 이제 제비가 금방 왔으니 우리가 훼방을 놓으면 아마 자각적으로 다른데로 가지 않겠냐하는 주장이다. 제비는 예로부터 길조라고 알려져 왔던터라 쫓아내기보다는 스스로 물러나기를 주장했다.
샘플실주임은 도리도리 머리를 저으며 꼼꼼히 패턴을 확인하던 두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절대로 그럴수 없다는것이다. 제비는 흉가는 절대 찾아오지 않으며 제비집도 허무는 법이 없는데 가정을 꾸려보겠다고 찾아온 제비를 자의든 타의든 쫓아내는것은 아주 양심에 어긋나는 일이며 찾아온 복을 밀어내는 일이라는것이였다.
생산을 관리하는 과장아저씨는 이제 제비가 배설물도 떨어뜨릴텐데 어찌 무더운 여름에 그 냄새를 맡으면서 견디겠냐고 반박을 했다. 그리고 복도에 제비집이 있어 퇴근을 한뒤 대문과 창문을 다 닫아야 하는데 제비때문에 창문을 열어둘수는 없지 않느냐 하면서 자신도 제비가 찾아와서 아주 정겹지만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했다.
열띈 토론은 마치 납기를 앞두고 곧 출하할 마지막 점검회의처럼 진지했다.
나는 며칠 지켜보자고 했다. 일주일뒤 다시 토론해서 제비를 들일것인지 말것인지를 결정하자고 하였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하루에도 몇번씩 목소리를 높이며 내탓이니 너탓이니 태각거리면서 일을 하던 분위기가 서로 배려하고 협력하는 모습으로 변해갔다. 회사는 뜻밖에 찾아온 제비가족들때문에 화기애애해졌고 새로운 생기가 흘러넘쳤다. 사장님을 비롯한 회사원 모두 시키지도 않았지만 복도를 지날 때마다 머리를 들어 제비랑 주거니 받거니 인사를 나누며 정을 쌓아갔다. 드문드문 바쁘다는 리유로 서로 건너뛰던 아침인사도 호상간에 꼬박꼬박 함박꽃처럼 웃으면서 하기 시작했고 목소리도 한결 청아해졌다.제비에게 인사하면서 바늘구멍만했던 마음의 문을 활짝 열었던것이다.
제비에 관한 지식도 더 많이 캐고 묻고 알아가게 되였다. 제비는 쌍쌍히 사는 조류인데 왜 대여섯마리가 같이 재잘거리면서 들락날락거리냐는것이였다. 정답을 알수 없는 우리는 아마도 친척들이 아닐가 또 아니면 지금 한참 집 한채를 놓고 여러쌍이 경쟁을 하는데 차지하는 놈이 임자라고 지금 힘겨루기를 하고 있을거라고 어느 제비가 이기고 장가를 가느냐 보자고 하였다. 우리는 색다른 토론에 너무 재미있어서 꺄르륵거리며 웃어댔다.삽시에 회사원들끼리 공감대가 생기더니 협력관계가 더 좋아졌다.
제비들이 돌아온지 사흘이 지나자 정말로 한쌍만 집으로 들락거렸다. 아마도 집을 차지하기에 성공한 것 같았다. 우리는 일제히 용감한 제비부부에게 축하를 보내주었다. 갑자기 제비연구원이 된듯한 느낌이였다.
자각적으로 제비가 떠나가기를 바랐던 인사과장은 슬쩍 제비집 밑에 헌 박스도 가져다놓았다. 배설물 관리까지 들어갔던것이다. 제비가 외출을 한 사이 사다리를 놓고 올라가보니 아직 제비알은 없다면서 빨리 어린 제비가 생겨났으면 좋겠다고 하였다.
복도벽이 반반한지라 제비 한마리가 집안에 들어앉아있으면 다른 한쪽은 앉을 자리가 없어서 좁은 복도에서 째악째악하면서 황급히 날아다니는 모습이 안타까웠던지 생산과장은 자재과 남자직원 한명을 데리고 뚝딱거리더니 제비집 밑에다가 칼도마만한 철판을 매달아놓았다. 제비 배설물도 받고 제비들이 집안에서 내려와 거실마루에서 편히 다닐 수 있게 넓은 운동장이 생긴 것이였다. 그랬더니 한마리는 집안에 앉아서 다른 한마리는 철판테두리에 살포시 앉아서 서로 바라보고 재잘거리는 것이였다. 그야말로 별장이 따로 없었다.
이제 제비가 알을 품는 모습을 제비남편이 편히 지켜줄 수 있겠다면서 일제히 좋아했다.
경비아저씨도 저녁만 되면 창문을 빠꼼히 열어놓는다. 제비가 집으로 드나들기에 불편함이 없도록 기꺼이 지켜주었다.
회사원들은 제비에 대해 풀어줄수 있는 배려는 모두 신경을 써서 해결해주었다. 그사이에 서로의 착한 마음을 바라보면서 상대방에 대한 한층 더 깊은 호감을 가질수 있었다.덕분에 회사원들은 더 탄탄히 뭉칠수 있었고 불황기이지만 누구도 앞날에 대해서 걱정하지 않고 열정을 내여서 따뜻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일을 할수 있게 되였다.
결정을 해야 하는 날이 왔지만 아무런 회의도 소집하지 않았다. 이미 제비는 회사원들 마음속에 깊숙히 똬리를 틀고 앉아 우리는 제비를 떠날 수 없게 되였다.
우리 기억속에 친숙한 길조이자 강남 가서 박씨를 물어다 주던 그 제비가 다시 돌아와서 고맙기만 하다.
아마도 우리에게 불황을 이겨내고 희망을 가지라고 박씨를 물고 찾아온 것 같다.
그 박씨는 다름아닌 배려와 협력만이 두려움을 떨치고 성공을 향해 가는 길이다는것을 알려준것이 아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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