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온다.
봄비가 주룩주룩 쉬지 않고 내린다. 메말랐던 도로변 록화지대도 흥건하게 젖어들었다. 가벼운 바람에도 몸을 가누지 못하고 쉽게 몸서리를 치던 먼지들은 떼를 지어 정처없이 하수도로 흘러들어간다.
제법 당찬 비방울들이 건물 주차장에 주차되여있는 승용차들을 두드린다. 차지붕 우에는 잔잔한 비방울들이 뛰여내렸다가 다시 튀여오르고 차창에는 비련의 소녀마냥 구슬픈 눈물이 흐른다.
어느새 위챗 모멘트에는 지지미와 막걸리가 곁들여진 따뜻한 온돌방이 사진에 고스란히 담겨져 올라와있다. 양고기 식당을 하는 사장님의 고기를 삶느라 하얀 김을 내뿜는 부뚜막도 버젓이 등장했다. 비소리가 투닥거리는 칙칙한 사무실에 앉아 위챗 모멘트를 보고 있노라니 뜨끈뜨끈한 무언가를 위 속에 집어넣고 싶어진다.
비가 온다.
몸은 사무실 책상에 기댔어도 일할 생각은 비방울을 따라 땅 밑으로 잦아든다. 무엇이라도 해야겠는데 정작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 무언의 심란한 기분이 슬슬 마음 한구석에 돗자리를 펴고 있다. 리성의 뇌는 잠시 쉬겠노라 파업에 들어갔고 착잡한 감성의 돌기들이 봄에 톡톡 터지는 꽃망울들이 되여 당장 바깥세상으로 터져나갈 태세를 취하고 있다.
나는 어느새 저도 모르게 주차장에서 쓸쓸히 비를 맞고 있는 승용차께로 잰걸음을 옮겼다. 바퀴가 굴러가는 대로 어딘가로 가서 누군가와 애잔하게 만나고 싶다. 마음속의 채워지지 않는 어떠한 것들을 털어내며 슬픈 사연들을 따뜻한 커피 한잔에 풀어 나눠 마시고 싶은 충동이 봄비에 머리를 쳐드는 새싹처럼 촐싹거린다.
바로 이 때, 세차게 떨어지는 비방울을 인 까만 작업복을 입은 배달원이 무거운 상자를 부여잡고 사무실에 성큼 들어섰다. 물건이 비에 젖을가 봐 옷섶을 젖히면서 감싸고 까치발로 뛰는 모습이 꼭 마치 아이를 안은 것 같았다.
움츠린 어깨와 달리 비를 피해 뛰는 그의 발걸음 소리는 경쾌하다. 무언가에 쫓기우는듯 흥분에 떠는 숨소리가 괴괴하던 사무실 전체에 퍼진다. 열심히 일을 하는 사람들만이 만긱할 수 있는, 즐거움이 묻어나는 약간은 들뜬 얼굴이다. 찬 공기에 파랗게 얼어든 코끝에 땀방울인지 비물인지 대롱대롱 매달려 이겼노라 뽐내고 있다.

그 배달원은 사무실에 들어서서는 미처 갈 곳이 파악 안되는지 잠시 멈추더니 머리 우에 머물러있던 비방울들을 툭툭 털어냈다. 그리고 걱정거리가 있는듯 어두운 얼굴을 하고 있는 업무원을 향해 다가가더니 행여나 비방울에 테블이 젖을가 봐 그와 한메터 간격을 두고 말을 걸었다.
갑자기 업무원이 환호성을 지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예상치 못한 비로 인해 지연 통보를 받은 물품이 제시간에 배달되였던 것이다. 시름이 서렸던 그녀의 얼굴은 삽시에 얼었던 매화가 피여나듯 하였다. 이번 달 업무를 순리롭게 완성하고 승진표까지 거머쥔 것이였다.
그녀는 평소보다 몇배는 더 즐거운지 연신 배달원에게 고맙다고 인사하고 문가까지 바래다주었다. 열성적인 배달원은 오늘 배달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좋아한다며 매우 뿌듯해하였다.
그렇게 배달원은 문을 나서며 씨익 웃고는 또 비 속으로 한치의 망설임 없이 씩씩하게 뛰여나갔다. 까치발을 한 채 두 손은 머리를 감싸고 말이다. 그래도 비방울은 사정없이 그의 넙적한 등짝에 내리꽂힌다. 행복을 배달한다고 확신하는 까치발이 잽싸게 떠나간 자리에는 하얀 물보라가 살짝 일었다.
‘우산 좀 쓰고 다니지.’ 관심해주고 싶은 마음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핀잔이 불현듯 머리 속을 파고들었다. 비 속을 가르며 뛰는 택배원의 앞에서 아련히 몰려오던 커피 비위는 선잠을 깬 아이가 눈을 비비듯 부시시 부끄럽게 흩어져버린다.
“딩동” 하고 문자가 떴다.
한국에서 일하고 있는 오빠다.
“오늘 여기는 큰비가 내리고 있다. 그래서 어쩌다가 쉬게 되였다. 쉬는 날에 가족들이랑 맛 있는 거 해먹으려 했는데 오늘 웬 일이냐. 시장이 장날이다. 모처럼 우산 쓰고 장을 푸짐히 봐서 지금 추어탕 보글보글 끓이고 있다. 참 타이밍이 잘 맞춰진 좋은 날이다.”
문자 밑에는 어김없이 사진 한장이 추가되였다.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도는 추어탕이 가스불 우에서 보글거리고 있다. 기분이 지화자 둥둥인가 보다.
그 때 내 눈앞에는 사시장철 세멘트와 철근 사이를 전전하는 거쿨진 오빠의 모습이 떠올랐다. 지독한 해빛에 그을려 구리빛을 띤 얼굴, 그리고 얼굴보다 더 검은 두터운 목, 항상 무거운 짐을 들어올릴 준비를 하고 있는 탄탄한 두 팔, 두 손은 알이 박혀 투박하기로 길가에 옹이 박힌 나무를 련상케 했다.

오빠는 비 오는 날이 쉬는 날이라 할 수 있게 집을 짓는 일을 하고 있다. 생면부지인 사람들의 집을 짓느라 정작 자신의 집은 비 올 때에만 느긋하게 오래 머문다. 일년 사시절 건설현장에서 땡볕 세례를 받는 오빠에게는 비 오는 날이 꽤 기대되고 고마운 날일 수도 있다. 비가 오는 날은 동업자들이 다 일을 나갈 수 없기에 혼자만 뒤떨어진다는 조바심이 없이 편안히 집에서 쉴 수 있어서 좋은 모양이다.
부평초처럼 떠도는 보잘것없는 인생이여도 비 오는 날이 쉬는 날이고 또 쉬는 날이 면바로 장날이여서 기분이 째지게 좋은 오빠가 가슴 한가득 존경스러웠다. 그리고 내심에서 우러나오는 그 즐거움이 비소리를 따라 스멀스멀 나에게로 전달되였다.
비가 온다.
게다가 비가 오는 날이 장날이다. 급한 물건을 배달하여 사람들의 존경을 배로 받은 배달원도, 지연되였다고 생각한 물품을 제때에 배달 받아 승진표를 거머쥐게 된 업무원도 덤으로 행복을 선물 받아 행복해한다. 비 오는 날을 빌어 가족들과 같이 맛 있는 음식을 나눠 먹는 오빠는 또 얼마나 행복할가.
사람들은 어렵고 힘든 상황이 닥치면 앞으로도 줄곧 불행할 것이라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태풍이 휩쓸고 지난 과일농장에서 얼마 남지 않은 사과에 ‘떨어지지 않는 사과’라는 이름표를 붙여 판매하여 큰 수익을 얻은 사례도 있다. 이 사례는 넘어진 자리에서 어디까지나 다시 일어설 긍정적인 기량과 기회가 숨어있다는 도리를 알려주고 있다.

비가 온다.
주룩주룩 내리는 비소리가 또다시 고막을 자극한다. 그 소리에 이젠 몽롱하게 현실을 회피하고저 커피 타령이나 하던 정신줄은 다림질을 한 바지처럼 곧바르게 펴졌다. 부글거리던 커피 감성은 김 빠진 맥주처럼 차분히 가라앉았다.
글이 나오지 않아서 괴롭다고 호소하던 나, 애 문제로 선생님 호출이 있어 속상해하던 나, 운영하는 회사에 여러 분야의 간섭이 지나치게 많이 쏠린다고 불평하던 나, 왜 나는 다른 사람보다 못하냐고 실의감에 모대기던 나, 심지어 세상을 다 깨달은듯 무관심으로 주위에 무뚝뚝했던 나… 참으로 부끄럽게 다가왔다. 다리 잃은 사람 앞에서 신발이 없다고 투정하는 엄살쟁이처럼 보였다.
나에게 어두웠었다고 생각했던 순간들은 그저 단순한 그늘이 아니였다. 그늘 안에서 자신을 다독이며 쉬면서 성장했던 것이다. 그 덕에 글 잘 쓰려고 항상 좋은 글귀들을 부지런히 모아두는 습관이 생겼고 아이와의 갈등을 해결하고저 청소년 상담사가 되였다. 회사 관계부문과 많이 접촉한 덕에 의외로 혜택정책을 많이 알게 되였고 주위에 무관심한 듯한 생활은 내가 좋아하는 일에 골몰할 수 있게 해주었다.
눈부시게 아름다웠던 순간들도 보따리에 싼 이야기처럼 풀어놓고 보면 많고도 많은데 족집게처럼 서글픈 기억만 고집하려 한 자신이 한심해난다. 그리고 그게 다 부지런히 제갈길 가는 비의 탓인 양 책임을 떠넘기려고 하지 않았던가. 비와 커피가 무슨 죄가 있다고.
이제는 어려운 일이 닥쳐도 기 죽지 말아야겠다. 비 오는 날이 장날일 수도 있으니까.
이제 비가 그치면 불평, 불만에 젖었던 내 마음을 해살에 보송보송하게 말리고 기쁜 마음으로 커피 한잔 들어야겠다.
(연변녀성 2020년 3월호에 실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