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청도조선족작가협회 일행은 설레는 마음을 안고 청해성으로 문학탐방을 떠났다. 청해성 수부 서녕공항에 도착하니 그곳에서 생활하고 있는 이홍철작가가 이미 마중을 나와계셨다.
서녕은 청해성의 성도이며 면적이 7000여 평방키로메터에 달하는데 비해 인구는 겨우 220만에 불과했다. 산동의 중요한 항구도시인 청도는 면적이 11000평방키로메터에 인구가 900만을 웃돌고 있으니 서녕은 그야말로 한적한 동네라고 할 수가 있겠다.
서녕의 하늘은 맑고 푸르렀다. 물에 씻은 듯한 흰구름들이 따가운 해볕도 아랑곳하지 않고 유유히 흘러다녔다. 첫날인만큼 고산반응에 적응하고자 가볍게 이홍철작가댁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회포를 풀기로 했다. 우리 일행을 맞을 준비를 하느라 친히 연어회까지 두둑히 떠놓은 상황이였다. 해발이 3000메터를 웃도는 청정지역에서 자란 연어회는 그야말로 별맛이였다. 입에 들어가는 즉시 사르르 녹는 것 같았다. 뭐니뭐니해도 서녕에 왔으니 양고기를 빼놓을 수가 없다. 우리는 한가득 삶아놓은 양고기를 맛보며 찰칵찰칵 소리와 함께 즐거운 기념사진을 남기면서 서부문학탐방의 문을 두드렸다.
이틑날부터 청해성을 알기 위한 본격적인 여정이 시작되였다. 이틀동안 청해성을 종횡무진하면서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초원과 구릉지대 그리고 드넓은 사막이 인상적이였다. 소형 도시가 오아시스마냥 가끔 나타나서 인기척을 알려 마냥 신기하기도 했다.
처음으로 들린 곳이 타얼사(塔尔寺)였다. 라마승들의 빨간 누데기승려복이 인상적이였다. 머리는 까까머리였고 긴 도포처럼 온몸을 감싼 빨간색 승려복은 고온의 날씨에 아주 더워 보였지만 하나같이 단정하게 옷매무시를 해서 입고 다녔다.
타얼사안에는 장족의 민족복장을 입은 현지인들을 많이 볼수 있었는데 녀자들은 치렁치렁 쌍태머리를 길게 드리워서 끝부분에서 한줌으로 묶고 머리우에는 각종 짐승뿌리로 만든 장신구들을 알록달록 달고 다녔다.
까만 두건을 두르고 얼굴만 내놓고 다니는 녀자들도 많았다. 우리는 타얼사에서 여직 말로만 들어왔던 오체투지(五体投地)의 장면을 볼 수 있었다. 오체투지는 중생이 교만을 떨쳐버리고 어리석음을 참회하는 예법이다.
스스로 고통을 겪으면서 수행을 하는 방법으로써 두 무릎을 꿇고 온몸을 땅에 엎드려 이마까지 땅에 닿게 하는 절이다. 서장에서는 매년 신도가 오체투지를 하면서 몇십킬로를 수없는 날을 견디며 성지에 순례를 하러 다녀온다고 한다. 타얼사에서 본 오체투지는 많은 중생들이 얼굴에 참뜻을 내비치며 불상이 있는 곳을 향해 오체투지 절을 행하는데 매일 삼천배를 하는 사람도 있고 백팔배를 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더 놀라운 것은 그들은 한번을 와서 며칠씩 심지어 몇달씩 례를 드린다는 것이다.
그들은 참배를 통해 가족이 평안하고 초원이 평화로우며 양떼들이 씨엉씨엉 자라나기를 기원한다. 신앙의 힘이란 어마어마한 것이다.
타얼사의 묵직한 믿음을 가슴에 새기며 우리는 해발 3200메터우에 덩그러니 떠있는 면적이 싱가폴의 4배가 되는 거대한 청해호를 향해 떠났다. 멀리서부터 파아란 바다수평면처럼 흐늘흐늘 춤을 추는 보일락말락 청해호가 보였다. 그렇지만 다가가려면 쉽지 않았다. 장장 세시간남짓이 초원을 달려서야 청해호의 진풍경을 볼 수가 있었다. 새노란 유채화가 띠를 두른 듯 해빛의 세례를 잔뜩 받고서 아름다움을 출렁이였다. 청해호의 파란 수면은 거대한 초원우에 박아놓은 푸른 진주마냥 반짝이였다.
초원을 가로지르는 내내 비가 오지 않아 안스럽게 낮게 자라난 풀들이며 가파로운 돌산우에서 풀을 뜯어먹으면서 전전긍긍하는 양떼와 야크무리들 그리고 생계를 위해 장막을 띄염띄염 지어놓은 숙박촌들을 많이 보였다. 유목생활을 하고 있는 장족처녀가 시집을 가려면 가족의 장막외에 작은 장막을 옆에다가 지어놓는다고 한다. 그러면 길가던 남자가 들어와서 하루밤을 같이 보내고 마음에 들면 데려가서 결혼을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여러번을 거쳐서 시집을 가는 경우가 많아서 그사이 애들도 태여날수도 있다. 당연히 결혼할때는 애도 같이 데려가는데 친자식처럼 잘 키운다고 한다. 아마도 드넓은 초원에서 살아가려고 원초적인 삶을 택해야 했을 것이다.
사전에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미리 듣고 아주 마음이 아프고 고민스러웠다.
인간의 품격은 어디 갔냐고.
당나라때 라싸지역의 토번이 번성해지자 당태종이 부득이 문성공주를 토번으로 시집보내야 했을 때 지나갔다던 서녘땅의 초원이다. 문성공주는 장안에서 여러달을 거쳐 서녕 일월산에 도착한 후 장안을 뒤돌아보며 울었다고 한다. 그곳은 청장고원과 내륙을 잇는 중요한 전략위치에 처해있다. 번화하고 문명한 장안에서 온 문성공주도 나처럼 이런 생각때문에 가슴이 아파서 울었을가.
하지만 청해호를 본후 내 생각은 달라졌다. 핸드폰 신호마저 없는 척박한 초원의 품에서 청해호는 청해의 품격이였다. 세상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아름다움의 극치를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우리가 갔을 즈음 세계자전거대회가 한창 열리고 있었다. 세계 방방곳곳에서 알록달록한 선수복을 입은 사람들이 360킬로메터나 되는 청해호 해안선을 둘러싸고 시합을 벌이고 있었다. 흥분하거나 뜀박질을 해도 숨이 차서 고산반응이 심한 그곳에서 선수들은 열흘남짓한 시간을 들여 완주를 해야 한다. 끝없이 펼쳐지는 푸르른 하늘과 청해호 그리고 띠를 두른 유채꽃만이 보이는 그곳에서 구름떼와 양떼들의 주목하에 환상의 시합을 하고 있는 것이다.
세번째날 찾아간 곳은 차카염전이였다. 조물주는 여러가지 색갈을 가지고 부동한 작품을 내놓았다. 눈부시게 반짝반짝거리는 소금천지 차카염전은 그야말로 일망무제하다. 그 일망무제한것이 다 소금이라는 것이 우리의 상상의 한계를 찢어버렸다. 마치 할빈의 눈조각공원에 들어온 느낌이였다. 흰 소금으로 녀신을 만들어놓았는가 하면 작은 산봉우리 심지어 궁전도 지어놓았다. 면적이 얼마나 넓은지 산에 가면 케블카를 타듯 염전안에서는 기차로 손님들을 부지런히 실어날라야 했다. 사람들은 새하얀 소금을 배경으로 새빨간 스카프를 두르고 찐한 사진을 찍기에 여념이 없었다. 해볕도 쨍쨍 내리 비추고 거기에서 염전이 반사되여 눈이 부셨다. 선글라스를 끼지 않으면 눈을 못뜰 정도였다.
우리에게 너무 멀고 생소했던 청해성이고 서녕시였다.
이번 탐방을 통해 대자연의 아름다움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강우량이 적고 해발이 높은 관계로 알칼리산이 많은 이곳에 의외로 그 품격을 지키고 있는 지존의 경치가 있었다.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나름 만족해하면서 살아가고 있었다. 세상은 여러가지 색갈이 있다. 사람들은 자신의 생활을 제일 알맞게 색칠하고 살아갈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내는 것은 존경받을 일이다.
그러기에 열심히 우주에 자기의 발자취를 남기려 노력하는 모든 사물은 자신의 품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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