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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엔 신화가 없다
필자는 우리민족의 민족성 형성, 즉 우리민족의 인간타입형성과정을 바람문화라는 포인트로 역사소설로 만들어 보려고 10년 전부터 자료를 수집해왔다. 그런데 고조선시기 민속기록은 전무하고 부여, 예, 맥, 옥저, 삼한(변한, 진한, 마한)및 삼국시기 민속기록 다수를 중국고문헌에 의존해야만 했던 현실이 너무 안타까웠다. 그리고 먼 옛날 우리선조들이 기록을 남기지 않아 많은 민속이 전해지지 못하고 역사 속으로 묻혀버렸다. 광복 후 여러 학자들의 노력에 의해 비록 체계적이지 못 되지만 그나마 참고가치가 있는 자료들이 꽤 많았다.
자료수집에 있어서 문제는 신화였다. 신화는 황당한 허구로 보이나 당시 역사문화를 가장 잘 반영한 ‘전설적인 기록’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한반도엔 신화가 없다.” 왜냐? 原形이 없는 신화는 신화가 아니다. 이것이 필자가 내린 결론이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자.
아래 두 단락은 한반도창세기신화이다.
생쥐를 잡아다가/석문 삼치 때려내어
물의 근본 불의 근본 아느냐?
쥐 말이, “나를 무슨 공을 씌워 주겠습니까?
미륵님 말이, “너는 천하의 뒤주를 차지하라.”
한즉 쥐 말이, “금덩산 들어가서/한쪽은 차돌이요.
한쪽은 사우쇠(쇳덩어리)요/툭툭 치니 불이 났소.
소하산 들어가니 삼취(샘물) 솔솔 나와 물의 근본.“
옛날 옛 시절에/미륵님이 한짝 손에 은쟁반 들고
한짝 손에 금쟁반 들고/하늘에 축사하니
하늘에서 벌레가 떨어져/금쟁반에도 다섯이오
은쟁반에도 다섯이라
그 벌레 자라나서/금벌레는 사나이가 되고
은벌레는 계집으로 마련되고
은벌레 금벌레 자라와서/부부로 마련하여
세상사람이 낳았어라
위 두 한반도창세기신화에 미륵이 등장하고 금덩어리 나타나고 쇳덩어리, 금쟁반, 은쟁반이 출현한다. 정말 황당하기 그지없는 창세신화이다.
미륵이란 석가의 다음으로 부처가 된다고 약속받은 보살이다. 도솔천에 살며, 장래 인간의 수명이 8만세가 되고 이 세계가 정토화 되면, 사바 세상에 내려와 용화수 밑에서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되어 3회의 설법을 한다고 믿어져 그 출현이 기대되는 미래의 부처님이다. 고로 미륵불이라고도 한다.
한반도역사를 살펴보면 백제에 384년 침류왕 때, 신라에 527년 법흥왕 때 본격적으로 불교문화가 유입되었고 그 후 고려말기까지 미륵신앙이 주류를 이어왔다. 서양의 역사분단(分段)으로 말하자면 중세기에 해당된다. 중세기에 유입되었고 흥성하기 시작한 미륵이 한반도창세기신화에 주인공으로 등장하니 한심하지 않을 수가 없다.
금과 은은 긴긴 원시공동체생활에서 한 걸음 진화하여 사유재산이 출현되고 물물교환이 이뤄지고 나서 한참 지나 화폐로 등장한다. 철의 발견은 청동기 이후이며 중국에선 전국시대에 이르러 철농기구와 철병기가 발달되었다. 한반도는 漢四郡시대부터 철의 사용이 보편화되기 시작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러므로 위 두 한반도창세기신화는 어처구니없는 이야기이며 아예 창세기신화로 볼 수 없다는 것이 필자의 소견이다.
물론 현재까지 전해온 지구상의 창세기신화들은 절대다수가 인류흐름에 어긋나는 작품들이다. 무슨 말이냐? 인류역사를 시간적으로 따지면 부계사회가 모계사회에 비해 밤 11시 59분에 해당되는 극히 짧은 시간밖에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자들이 권력을 잡고 나서 모계사회신화를 포함한 문화를 많이 말살해왔다. 그 일례로 로마 창세기신화의 주인공은 본래 비너스였지만 부계사회에 들어 하나의 아름다운 여인으로만 각색되어왔다. 그리스신화의 지고신은 제우스인데 그는 남자이며, 성경에 등장하는 창세기 주인공 여호와가 남성성 신이며 그는 남자를 먼저 만들고 여자를 남자의 부속물로 지어버렸다. 중국에서도 본래 창세기신화의 주인공은 여와였으나 한나라 때 남자인 반고로 바꿔치기를 하였다.
이런 폐단들이 많으나 어찌되었든 후세 인간들이 당시 우주를 바라보고 자연을 바라보고 인간사회 패턴을 바라보는 原形을 바탕으로 신화를 지어냈다면 우리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이와 대조적으로 한반도창세기신화는 그러한 원형이 결여된 후대문명의 시각으로 지어낸 것이므로 가치가 없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리고 현재까지 전해온 천지왕, 대별왕, 소별왕, 당금애기, 강림도령, 바리, 원강아미, 한락궁이, 황우양씨, 막막부인, 백주또, 소천국, 귀네깃또, 백조애기, 각시손님, 자정비, 문도령, 감은장애기, 안삼국, 사마동이, 오늘이, 매일이, 양이목사, 궁상이, 광청아기 등 한반도신화들은 어느 하나 불교와 관련되지 않는 것이 없다. 세상에 외래문화로 자기네 신화를 포장한 민족은 한반도밖에 없는 줄로 필자는 판단한다.
한반도엔 원형이 잘 보존된 신화들이 없는 것이 아니다. 이를테면 단군신화는 원형이 잘 드러나 있을 뿐만 아니라 짜임새도 멋들어진 신화이다. 그러나 현재 한국 사회 분위기(관련된 전문 학계를 제외하고)는 단군을 신화로 보는 것이 아니라 역사사실로 취급하기 때문에 신화에서 제외시키고 있다. 원형이 잘 보존된 그 멋진 제주도선문대할망, 삼신할매 등을 신화로 보지 않고 민속으로 취급하고 있어 한반도신화는 콩물이 빠진 찌꺼기만 남아 있어 신화가치를 떨어 뜰이고 있다.
문제는 한국엔 신화를 들먹이는 학자는 많아도 신화전문가가 없다는 것이다.《생식숭배문화사상》을 지은 조국화 선생, 《중국신화연구》를 써낸 오천명 학자, 방대한《중국신화사》를 비롯해 많은 신화저작을 펴낸 중국신화연구전문가인 원가 등의 저작을 읽으면 거침없이 내려간다. 서양 쪽의 신화서적들을 읽어도 마찬가지이며 배울 것이 많다. 그러나 한국의 신화 책들을 읽으면 신화전문가가 아닌 필자조차 “이것 아닌데!” 하고 머리를 갸우뚱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한국 학자들은 우리민족문화 뿌리, 특히 우리민족 혹은 동양문화의 고유성, 다시 말해서 고대사회문화 본질에 대한 이해가 결핍하여 엉뚱하게 말도 안 되는 풀이를 펴내고 있다.
신라문화의 정수인 화랑은 연나라 원화 외피에 신라고유바람문화를 결합한 결과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내로라하는 도올·김용옥 교수마저 원화와 화랑, 그 뿌리를 불교의 연꽃에서 찾으려고 애썼다(도올·김용옥, 나는 불교를 이렇게 본다 참조).
《바람 난 삼신할매》저자 박홍주 교수는 “삼족오는 분명 기형이다. 다리가 세 개인 새는 없다. 기형의 새를 굳이 그려 숭배한 것은 3이라는 수를 강조하고자일 것이다. 태양 속에 들어 있는 삼족오 형상에서 중요하게 드러나는 수는 1(머리)과 3(세 다리)이다.”는 어처구니없는 두들겨 맞춤식의 억지춘향의 논리를 펴내고 있다. 까마귀는 다리가 분명 두 개다. 다리가 세 개인 삼족오는 웬 일이냐? 중국 앙소문화 채도에 그려진 까마귀는 다리가 두 개인 이족오다. 용산문화 후기 흑도에 다리가 세 개인 까마귀가 태양을 등에 지고 나는 그림이 있다. 중국신화학자들은 이족오는 모계문화의 상징이고 삼족오는 부계사회에 진입한 징표라 주장한다. 무슨 말이냐? 중국인은 남자의 성기를 발로 표현한다. 이런 맥락에서 삼족오의 세 개 다리 가운데의 것은 남자의 성기를 상징한다는 것이다. 중국어 “第三者 揷足”란 말을 연상하면 삼족오의 의미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한마디로 삼족오의 출현은 모계사회로부터 부계사회에로의 전환을 상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선 삼족오를 천부경부터 시작해 삼국에까지 연관지어 3이란 숫자에 매달려 자국역사를 풀이하는 병에 걸려 있다.
한국엔 신화가 없다는 주장을 아래와 같이 요약할 수 있다.
가. 한반도신화는 원형이 결핍되어 있어 진정한 신화로서의 가치가 없다는 것이다.
나. 한반도신화 절대다수는 불교라는 외래문화로 포장되어 있어 순수 민족 신화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다. 신화는 광의적 의미로 보는 신화가 있고 협애적인 의미로 보는 신화가 있지만 한국 학자들은 이 면에 대한 연구가 결여되고 있다는 것이다.
라. 진정한 신화가 없는 것이 아니라 신화연구전문가가 없어 신화다운 신화를 발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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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유교문화의 두 가지 핵심 중의 하나는 혈연(血缘)문화이다(기독교문화의 핵심은 천연[天缘]문화).혈연문화는 자기의 조상을 섬기는 것을 기본으로 하는데 자기 조상을 초인간으로 하는, 신격화화 하는 것을 꺼린다.
2, 유교문화의 기본 문헌의 틀은 공자에 의해 제작되었다. 즉 중국의 많은 문헌은 공자및 그의 추종자들에 의해 개조되어 지금까지 전해졌다고 보아야 한다. 공자는 鬼、神、乱을 거부하므로 그나마 좀 있던 문헌 중의 신격적인 내용(즉 신화나 신화 비슷한 문헌)을 거의 삭제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