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유코씨.
2011년 3·11 동일본 대지진 발생으로부터 정확히 2년11개월이 되는 지난 11일 오전 11시.
검은 잠수복에 15㎏에 달하는 산소통을 멘 50대 후반의 남성이 미야기(宮城)현 오나가와(女川) 바다에 뛰어들었다. 수심 6m의 차디찬 겨울바다. 일정한 수심에서 잠수하는 연습을 1시간30분 동안 반복한 이 ‘초보 잠수부’는 다카마쓰 야스오(高松康雄·57). 그의 머릿속에는 한 가지 생각밖에 없었다. “내 손으로 아내를 집에 데리고 돌아간다.”
그는 지난 7일 ‘잠수사’ 국가자격을 땄다. 3년이 다 되도록 행방불명인 아내(유코·당시 47세)를 바닷속에서 찾아내기 위해서다.
아내는 3·11 당시 해안가에서 100m 떨어진 미야기현 시치주시치(七十七)은행 오나가와 지점에서 시간제 직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오나가와를 덮친 쓰나미의 높이는 20m. 동료 12명과 높이 13m의 지점 옥상으로 피했지만 1명만 살아남았다. 하루 지나 확인한 다카마쓰의 휴대전화 메일에는 아내의 메시지가 남겨 있었다. “괜찮아요? (집에) 돌아가고 싶어. (쓰나미 도착 직전인 11일 오후 3시21분)”
사고 며칠 후 아내의 휴대전화가 쓰레기더미에서 발견됐다. 통신 상태가 좋지 않았던 탓인지 다카마쓰에게 도착하지 않은 마지막 메시지가 남아 있었다. “쓰나미가 엄청나요.”
“얼마나 무서웠을까.”
다카마쓰는 가슴이 찢어지는 듯했다. 항공자위대를 정년퇴직, 오나가와에서 ‘버스 운전기사’로 제2의 인생을 재출발하려 하는 남편을 누구보다 격려하고 기뻐하던 아내였다. 그는 아내의 마지막 은행 유니폼 모습이 떠오를까 봐 은행 창구도 멀리했다. 사망신고서도 “모든 게 끝난 것처럼 되는 것 같아” 제출을 보류했다. 대신 미야기현 해상보안청에 부탁해 동료의 시체가 발견된 곳을 중심으로 바닷속을 세 차례나 수색했다. 하지만 별다른 단서를 발견하지 못했다.
“이제는 내 스스로 찾아야겠다.”
다카마쓰는 지난해 11월 스쿠버다이빙 점포를 운영하는 지인의 지도를 받아 스쿠버다이빙 자격증을 취득했다. 그러나 쓰나미 잔해 제거나 수색 등을 하기 위해서는 별도로 잠수사 국가자격증이 필요한 것을 알고는 ‘열공’에 돌입했다. 매일 밤 저녁식사가 끝나면 책상에 앉아 350쪽에 달하는 문제집과 참고서를 달달 외우다시피 했다. 그리고 이달 7일 합격증을 따냈다.
“기술도 익히고 할 겸 여름을 기다리는 게 어떠냐”는 주변의 만류에 “하루라도 빨리 아내를 찾아야겠다”며 서둘렀다.
그는 마이니치(每日)신문 등 일본 언론과의 취재에 “차가운 바다 밑바닥에 가라앉은 채로 있는 건 너무 불쌍하다. 나에게 메일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으니 내 손으로 아내를 찾아 반드시 집으로 데려갈 것”이라고 말했다.
중앙일보 도쿄=김현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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