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최초의 유엔 산하 국제기구 수장인 이종욱(61)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이 22일 오전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22일 주제네바 대표부와 WHO 총회에 참석중인 한국대표단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총장은 지난 21일 오후 받은 뇌혈전 제거 수술 이후 의식을 찾지 못한 채 22일 오전 8시(한국시간 오후 3시) 운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관계자는 제네바 칸톤 병원에서 부인 가라부키 레이코 여사와 동생 이종구 교수가 고인의 임종을 지켜봤으며, 세계보건기구(WHO)가 곧 이 총장의 사망을 공식 발표할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이 총장은 2003년 7월21일 연간 예산 22억달러(약 2조6천400억원), 전문 직원 5천여명에 이르는 유엔 산하 최대 국제기구인 WHO의 총지휘자로 공식 취임했다.
한편, 미국에서 전자공학을 공부하던 아들은 뒤늦게 도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족들은 서울의 친지에게 임종이 임박했음을 통보했고 이를 전해들은 모교인 서울대 의대 동문회가 조문단을 파견할 것으로 알려졌다.
2006/05/22 연합뉴스 문정식 특파원.황정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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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세한 이종욱 WHO 사무총장
22일 갑작스럽게 타계한 이종욱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은 한국인으로서 유엔 시스템의 최고 정점에 서있던 인물.
이종욱 총장은 지난 2003년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선출직 유엔 전문기구 수장이 됐고 오는 7월 21일 취임 3년을 맞이할 예정이었다.
고인의 역량과 친화력을 볼 때 5년 임기를 무난히 마치는 것은 물론 2기 연임도 충분히 바라볼 수 있었다는 것이 제네바 외교계의 평이었다.
제네바 외교가에서는 이 총장이 코피 아난을 뒤이를 차기 유엔 사무총장의 유력한 후보 가운데 한 사람이라는 소문이 끊임없이 나돌고 있었으며 고인도 연합 뉴스 기자와 종종 대화하는 과정에서 이를 부인치 않았다.
이종욱 총장이 오는 7월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리는 G8(서방선진 7개국과 러시아) 정상회담에 초청받은 것도 그의 비중을 말해준다.
자크 시라크 대통령이 고인을 생전에 각별히 배려해준 것은 잘 알려진 사실.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WHO의 사업에 아끼지 않았고 2차례 미국으로 불러 그를 면담하면서 '굿맨'으로 칭찬하기도 했다.
이 총장은 23년 동안 WHO에서 근무한 국제적 의료 테크노크라트. 하지만 직원 1만명이 넘는 유엔 기구를 이끌면서 조직과 사업을 활성화시키고 보건 문제를 글로벌 이슈로 만드는, 탁월한 정치력도 보여주었다.
빌 게이츠를 포함한 유명인사들로부터 에이즈를 포함한 각종 질병 퇴치 기금을 받아내는 등 '펀딩' 능력에도 탁월한 면모를 보여준 바 있다.
이 총장의 이런 노력은 미국을 포함한 회원국들의 호응을 받아 WHO는 여느 다른 유엔 산하 기구와는 달리 여유있는 예산을 운영할 수 있었다.
그가 WHO와 인연을 맺은 것은 지난 1983년 WHO 남태평양지역의 도서국가 피지에 서 한센병(나병) 관리책임자로 근무를 시작하면서부터.
이 박사는 그후 WHO 서태평양지역 사무처 질병관리국장(1993∼94)을 거쳐 94년 부터 WHO 본부 예방백신사업국장 및 세계아동백신운동 사무국장을 역임했다.
이 박사는 지난 1995년 백신국장으로 일하며 소아마비 유병률을 극적으로 떨어뜨려 미국의 과학지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으로부터 '백신의 황제'라는 별호(別號)를 얻었다. 영국 의학전문지 랜싯은 그를 '조용한 뇌성'으로 칭했다.
이 박사는 1998년 할렘 브룬트란트 사무총장이 취임한 이후 총장의 특별대표직 을 시작으로 WHO의 정책부서를 두루 거쳤다. 총장 경선에서 정치인 출신 후보를 물리친 것도 WHO 내부 문제점과 개혁방안을 잘 알고 있다는 점이 평가된 덕분.
2000년에는 결핵국장으로 자리를 옮겨 북한에 결핵치료제를 공급하는 등 19개 국가를 대상으로 결핵퇴치사업을 추진해 북한 지도부는 물론 주제네바 북한 대표부측과도 터놓고 말할 수 있는 관계를 유지해왔다.
45년 서울생. 경복고. 서울대 의대 출신. 형제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국민참여센터 본부장직을 맡은 바 있는 이종오씨와 이종구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등이있다.
이종욱 총장이 대학 재학시절, 경기도 안양 나자로 마을에서 나병 환자를 위해 봉사 진료를 하다 일본 출신의 동갑내기 부인 가라부키 레이코 여사와 인연을 맺은 것은 유명한 일화.
당시 가톨릭 신자로 봉사차 한국에 온 레이코 여사와는 졸업후 3년 뒤인 79년 결혼했다. 이종욱 총장은 81년 하와이주립대에서 공중보건학 석사 과정을 마치고 83년 남태평양에서 나병과의 투쟁을 계속했다.
미망인 레이코 여사는 지금도 페루에서 봉사 활동을 벌이고 있어 이종욱 총장과는 일년에 몇차례 정도 얼굴을 볼 수 있을 뿐이고 아들 충호(28)씨는 미국의 명문 코넬대에서 전기공학과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이종욱 총장은 가족과 떨어져 제네바 외곽 도시인 니용의 작은 아파트에서 검소하게 생활해왔다. 고인은 생전에 돈에는 아무런 욕심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했다. 다만 일 욕심 만큼은 추종을 불허할 정도였다.
이 총장을 잘 아는 주변인들은 고인이 생전에 테니스와 스쿠버 다이빙, 스키, 크로스 컨트리 등과 같은 스포츠를 즐겼지만 고혈압 증후가 있었으며 과로가 화를 부른 것 같다며 그의 타계를 안타까와하고 있다.
2006/05/22 연합뉴스 문정식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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