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현은 갔지만 의인(義人) 정신은 살아 있다.’

한국인 유학생이 21일 일본 도쿄(東京) 야마노테(山手)선 신오쿠보(新大久保)역에서 술에 취해 선로에 떨어진 일본 여학생을 구했다. 2001년 이수현 씨가 일본인 취객을 구하려다가 숨진 바로 그 역이다. 주인공은 당시 이 씨가 다니던 아카몬카이(赤門會)일본어학교에 재학 중인 신현구(29·사진) 씨.

21일 오전 5시 반경 신오쿠보역에 내린 신 씨는 열차가 떠난 직후 반대편 선로에서 무거운 물체가 떨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달려가 보니 18세가량의 여학생이 선로에 떨어져 신음하고 있었다. 여학생은 선로 틈새에 발이 끼여 혼자 힘으로는 빠져나올 수 없는 상태였다. 당시 주위에는 여학생의 친구들을 비롯해 20여 명의 일본인이 있었지만 어쩔 줄 모른 채 모두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잠깐 망설이던 신 씨는 선로에 뛰어내려 여학생을 구해낸 뒤 자신도 플랫폼으로 안전하게 올라왔다. 신 씨는 “병상에서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을 여학생을 생각하면 가슴이 뿌듯하다”며 “이수현 씨의 영혼이 도와줘 여학생을 구출할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일본 여학생은 다리를 다쳐 병원에 실려 갔으나 연락이 닿지 않고 있다.

한편 신 씨의 어머니 전명자(50·경기 시흥시) 씨는 “우리 현구가 예전에는 전철역에서 소매치기를 잡았는데 이번에는 사람을 구했네요”라며 담담하게 말했다.

신 씨는 수년 전 서울 롯데월드에서 유람선 선장으로 근무할 당시 퇴근하던 중 잠실역에서 젊은 여성의 지갑을 빼앗아 달아나는 소매치기를 잡아 TV 뉴스에 소개된 적이 있다.

동아일보 2006-05-25 천광암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