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바이올린과 함께 해온 인생
조글로미디어(ZOGLO) 2014년1월15일 09시24분    조회:6522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인물이름 : 김숙자

원 길림성가무단, 길림성교향악단의 바이올린연주가로 있었던 김숙자(70세)는 퇴직후에도 장춘영화촬영소 교향악단의 초청을 받고 바이올린연주를 하는 한편 장춘시경제개발구조선족로인협회 부회장으로 활약하고있다.

1944년 4월 연길시에서 태여난 김숙자는 어렸을 때부터 학교의 문예대 골간으로 활약했다. 초중 2학년때에는 바이올린의 서정적이고 은은한 선률에 매료되여 꼭 바이올린을 배워내리라 속다짐했다. 김숙자는 《단식》하면서까지 부모들을 설득해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는 매일 학교에서 돌아오면 숙제를 끝내고는 바이올린련습에 달라붙었다. 거치르고 빽빽거리는 소리에 할머니가 잘 휴식하지 못할가봐 헛간에 가 련습하기도 했다. 시간이 가면서 왼쪽어깨우와 턱아래에는 썩살이 배겼고 신경통까지 걸렸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바이올린을 접촉한지 일년남짓해 김숙자는 연변예술학교와 중앙민족학원의 입학통지서를 동시에 받았다. 그때 12살밖에 안된 그는 중앙민족학원 예술학부에 가 3년 예과(预科), 5년 본과 도합 8년이란 긴시간 동안 음악공부를 했다. 당시 중앙민족학원에는 바이올린지도선생이 모자랐다. 대부분 과목의 수업은 민족학원에서 받고 바이올린연주만은 중앙음악학원의 덕망높은 교수의 지도를 받았는데 그 덕에 기반을 튼튼하게 닦았다. 8년동안 김숙자는 중앙민족학원에서 줄곧 악대 수석바이올린수로 있었고 1967년에 바이올린우수생 칭호를 받고 졸업했다.

졸업한 뒤 부대농장에서 근무, 반년도 안돼 길림성가무단에서 김숙자를 초빙했다. 그녀는 길림성가무단의 호름연주자 김철학씨를 만나 1968년에 결혼하고 1남1녀를 낳았다.

그런데 세상에 부럼없는 행복을 누리던 이들에게 불행이 닥쳐왔다. 남편이 페암에 걸려 3년간 힘든 치료를 했지만 효과를 보지 못하고 35세 나이에 저세상으로 갔다.

김숙자는 7살 나는 딸 김란이와 5살나는 아들 김천이를 데리고 억척스레 살아나갔다.

아이들을 친구집에 맡겨놓고 김숙자는 중국은 물론 로씨야, 조선 등 나라를 다니며 공연했다. 어느 한번은 상해에 공연하러 갔다가 집에 들어서니 두애가 생배추를 된장에 찍어먹고있더란다. 침대와 방바닥에는 그림책이며 옷과 신발들이 지저분하게 널려있어 발 디딜 곳이 없었다.

아이들을 계속 친구네 집에 맡길수 없고 돈도 벌어야 하고…김숙자는 돈을 벌기 위해 과외반주하러 다니기로 했다. 이렇게 혼자서 5년간 애들 둘을 키우다 억울한 루명을 쓰고 22년간 감옥살이를 한 김세주를 만나 새 가정을 이루게 되였다.

남편 장세주는 말없이 김숙자를 도와 두애를 보살폈고 김숙자는 근심걱정 없이 공연하러 다녔다. 김숙자는 길림성가무단 악대에서 4년간 수석바이올린수로 있었고 길림성교향악단에서는 퇴직할 때까지 12년간 부수석바이올린수로 있었다.

장세주와 김숙자 사이에서 태여난 장운총은 3살때부터 어머니한테서 바이올린을 배웠고 뉴욕 줄리아음악학원에서 연구생공부를 마치고 세계에서 이름난 보스턴심포니오케스트라(波士顿交响乐团)에서 바이올린연주가로 있다.

가난한 집 아이들이 헴이 빨리 든다고 부모들이 운총의 학비를 마련하느라 큰애의 학비를 마련하기 힘들어하자 큰딸 김란은 과외시간에 어린 학생들에게 바이올린을 가르쳐 학비를 모았고 아들 김천은 호텔 등의 공연을 도와주는 등으로 돈을 벌어 학비를 장만했다. 현재 김란은 길림성교향악단 바이올린연주가, 국가1급배우로 있으며 김천은 북경 《중국의 목소리》(中国好声音)의 기타연주를 맡고있다.

김숙자가 거둔 성공은 지난해 저세상으로 간 남편의 도움으로 이루어졌을뿐만아니라 바이올린에 대한 무한한 사랑과 바이올린과 함께 한 그의 의력, 열정과 분투정신과 갈라놓을수 없다.

지금 김숙자는 장춘영화촬영소의 공연에 참가는외에 장춘시조선족로인협회 악대, 경제개발구조선족로인협회 활동에 열심히 참가하고있다. 김숙자는 《바이올린연주가 로인들의 만년생활에 즐거움을 줄수만 있다면 더없는 영광으로 생각하겠다》고 말한다.


길림신문
남정자 윤수범



파일 [ 2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민선 지방자치 도입 11년만에 40대 서울시장이 탄생했다. 오세훈(吳世勳.45.한나라당) 서울시장 당선자는 법조인 출신으로 지난 2000년 16대 총선에서 여야 모두로부터 `러브콜'을 받아, 결국 한나라당 공천으로 강남을에 출마, 금배지를 달며 정계에 입문했다. 의정활동 과정에서 이른바 `오세훈 선거법'으로 불리는 정치관...
  • 2006-06-01
  • "지난 2002년에 한국인들이 보여줬던 열정과 하나 되는 모습을 아이들에게 꼭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1일(한국시간) 딕 아드보카트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대표팀이 노르웨이 축구대표팀과 평가전 준비를 위해 노르웨이 오슬로 울레볼 경기장에서 몸을 풀고 있는 동안 관중석에선 벽안의 중년부부와 동양인 꼬마 2명이 초롱...
  • 2006-06-01
  • 펀드매니저(资金管理者)가 미국에서는 이미 100여년의 력사를 가지고있는 업종이지만 중국에서는 아직도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한 령역이다. 청도에서 활동하고있는 조선족 펀드매니저 김성운씨(34세)의 포부는 당차다. 중국의 조지 소로스(20세기 세계 최고 펀드매니저였음)가 되는것이 꿈이다. 그는 증권사인 '신시대...
  • 2006-05-31
  • [원제:상지조중 서금매학생 "친구들이 있어 외롭지 않아요"] 초여름의 록음이 짙어가는 좋은 아침 상지시조선족중학교에 다니는 서금매(19세)는 친구들의 부축을 받으면서 활기차게 교정으로 들어섰다. 언제보나 정다운 교정, 친근한 동학들, 소아마비로 어쩌면 학창이 하나의 꿈의 루각으로 될번했던 곳이였지만 금매는 매...
  • 2006-05-30
  • 일본 리쓰메이칸(立命館)대학 시라카와 시즈카기념 동양문자문화연구소가 제정한 제1회 리쓰메이칸 시라카와 시즈카 기념 동양문자문화상 개인 부문 수상자로 심경호(51)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가 선정됐다. 심 교수는 시라카와 시즈카(白川 靜ㆍ96) 전 리쓰메이칸대 문학부 교수가 지은 '한자백화(漢字百話)'를 번역해 '한자...
  • 2006-05-29
  • 일제 강점기 소월의 시 '엄마야 누나야'와 해방 직후 '부용산'에 곡을 붙인 월북 음악가 안성현(1920-2006)씨가 지난달 25일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27일 입수된 북한의 문학신문 최근호(5.13)는 "민족음악 전문가인 공훈예술가 안성현 선생이 노환으로 4월25일 오후 3시 86살을 일기로 애석하게 서거했다"고 보도했다. 신...
  • 2006-05-29
  • [원제:사상 첫 美프로풋볼 한국계 형제 선수 탄생] 한인 이민 역사와 미식축구 사상 처음으로 한국계 美프로풋볼(NFL) 형제 선수가 탄생했다. 사진은 올 시즌부터 뉴욕 자이언츠에서 뛰는 친형 윌 뎀프스(왼쪽)와 디트로이트 라이언스와 1년간 계약한 동생 마커스 뎀프스. 형은 모델로도 활약..동생 데뷔 눈앞 한인 이민 역...
  • 2006-05-29
  • ——— 연변대학예술학원 무용학부 박설화안무를 찾아서 먼저 박설화의 춤을 한번도 본적이 없다는 사실을 고백한다. 안무가를 만나러 가는 사람이 그 사람의 무용을 한번도 본적이 없다는 사실은... 비로소 메신저와 사진을 통해 익히 보아온 박설화의 얼굴이 나타났다. 요즘은 잘 안 쓰지만 안무가 박설화...
  • 2006-05-29
  • 네살짜리 재미 동포소녀가 바이올린 연주에 천재성을 보여 화제에 올랐다. 화제의 주인공은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에 사는 최우희(42세, 미해군연구소 연구원)씨와 피아노연주가 정영은(40세)씨의 딸 유경양이다. 3살때인 지난해 7월 바이올린 연주를 배우기 시작했지만 유경양은 1년도 안돼 벌써 8차례의 연주회에 참가했...
  • 2006-05-29
  • 필자와 함께 기념사진을 남긴 러시아동포 5세 미하일 박(오른 쪽) 최근 필자는 프랑스 물랭호텔에서 그림작품전시회를 열고있는 러시아동포 5세 미하일 박을 만났다. 미하일 박은 환갑에 가까운 분이었다. 보통 키에 좀 마른 편이였는데 첫눈에 과묵하고 믿음성 있어 보였다. 그의 조상은 1860년에 러시아로 이주해 갔는데...
  • 2006-05-29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