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항공 여객기 MH-17편은 약 1만m 고도 비행 중 미사일에 격추됐다. 그동안 민항기 피격 사례 중 역대 4번째 높은 상공에서 빚어진 참사라고 워싱턴포스트(WP)는 1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에베레스트 산 정상이 8848m인데, 이보다 약 200m 높은 하늘 위에서 여객기가 폭발했다고 보면 된다.
MH-17편이 피격되기 사흘 전인 지난 14일에는 우크라이나 정부군의 안트노프(AN)-26 수송기 1대가 6400m 상공에서 지대공 미사일에 맞았다. 이전까지는 수백 m의 낮은 고도를 날던 헬기 등이 지대공 미사일에 격추됐었다.
이처럼 위험천만한 지역인데도 민항기들은 우크라이나 상공을 계속 오갔다. 항로가 완전히 닫힌 곳은 우크라이나 남쪽의 크림반도와 주변 해역 상공뿐이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고도 1만m 이하만 민항기 운항을 금지했을 뿐 그 이상의 고도는 허용했다. 설마 이보다 높은 곳을 나는 비행기가 격추될 것으로는 우크라이나 정부나 해당 항공사들도 예상하지 못했던 셈이다.
이번 MH-17편이 날아갔던 L980 항로는 승인받은 노선이다. 리우 티옹 라이 말레이시아 교통장관은 기자회견에서 “MH-17편이 격추되기 전 이틀 동안 75대의 비행기가 사고 항로를 통과했다”며 “당시 항로는 ‘하늘 고속도로’처럼 많은 항공편이 붐비는 노선”이라고 밝혔다.
이안 더글러스 호주 뉴사우스웨일스대학 항공학과 교수는 “그동안 민항기들이 아프가니스탄 상공 등 전쟁지역 위로 비행하는 것이 특별한 일은 아니었다”며 “고도 1만m로 날아가는 여객기가 미사일에 피격 당할지 누가 상상이나 하겠느냐”고 호주 언론에 말했다.
실제 1만m 이상 고도를 비행 중이던 여객기가 피격당한 사례는 매우 드물다. 2001년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러시아 노보시비리스크로 가던 시베리아항공 1812편이 고도 1만m 대에서 폭발한 게 가장 높은 상공에서 격추된 사례다. 그러나 이때는 우크라이나군의 미사일 훈련 중 벌어진 오발 사고였다. 이 밖에 1978년과 83년 각각 대한항공 902편과 007편이 MH-17편보다 약간 높은 상공 위를 날다가 소련 전투기에 격추된 게 전부다. WP는 “민항기 피격도 경악스럽지만 여객기가 이제는 고도 2만m 상공을 날고 있더라도 미사일이 격추할 수 있다는 사실이 더 끔찍하다”고 지적했다.
항공컨설팅협회 브루스 로저 회장은 “고도 1만m 상공에서 순식간에 벌어진 미사일 피격으로 기압이 급속히 저하돼 탑승자들은 호흡을 제대로 하지 못해 추락까지 의식 불명상태에 빠졌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국민일보 백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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