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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택동,다시 인간에서 신으로?
정인갑
모택동이 중국혁명의 탁월한 수령이며 중국력사상의 위인임은 누구나 다 공인하리라 본다. 그러나 신(神)으로부터 인(人)으로 변한 모택동이 다시 신으로 변하고 있다는 화제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모택동은 1921년 창당 멤버로 중국공산당 보통 당원이 되였고, 1935년 준의회의를 거쳐 중국공산당과 중국공농홍군의 최고지도자 지위에 올랐으며 1949년에 중국의 일인자가 되였다. 1951년 진백달 저《모택동사상을 론함(论毛泽东思想)》 으로부터 이대올로기의 도사(導師)로 승급되였고 1959년부터 림표의 설교와 고취 (鼓吹) 및 인민들의 종교광적인 개인숭배와 미신으로 점점 신으로 되였다.
‘모택동사상은 당대 맑스-레닌주의의 최고봉이다(毛泽东思想是当代马列主义的顶 峰)’‘모 주석의 말은 한마디가 만마디에 해당된다(毛主席的话一句顶一万句)’‘모 주석은 세계 몇백년 , 중국 몇천년 동안에 나타난 유일한 위인이다(毛主席是世界几 百年、中国几千年只出现一个的伟人)’‘모주석의 말은 리해되도 집행하고 리해되지 않아도 집행해야 한다(毛主席的话理解的要执行,不理解的也要执行)’…. 모택동을 신으로 만든 림표의 언론들이다.
신격적인 모택동 때문에 중국력사상 전례없는, 10억 인민의 대동란 문화대혁명비극이 빚어졌다. 1976년 모택동이 서거된후 당시 중국의 일인자 화국봉은 모택동을 계속 신으로 모시려 하였으며 ‘두가지 무릇’을 내놨다: “무릇 모택동의 결책이면 단호히 수호해야 하며 무릇 모택동의 지시면 시종 어김없이 따라야 한다(凡是毛主席 作出的决策,我们都坚决维护,凡是毛主席的指示,我们都始终不渝地遵循).”
1978년 10월 행해진 중앙회의 및 이어 거행한 중공 11기 3차 전원회의에서 등소평을 수반으로 하는 중공 지도자들은 ‘진리를 검증하는 유일한 표준은 실천이다’ 라는 철학론단을 재확인하고 모택동과 중국공산당이 범한 과오를 청산하였으며 중국을 개혁개방으로 이끌었다. 회의기간 북경시민들은 서단민주벽(西單民主墻)에 ‘모택동은 인이지 신이 아니다(毛泽东是人,不是神)’라는 집채만큼 큰 대자보를 써붙혔다. 이렇게 모택동은 신으로부터 인으로 되돌아왔다.
모택동 서거 20주년인 1996년 북경시 모 기자가 소중고교학생들(모택동이 서거한 후 출생한 사람들)을 상대로 모택동의 사진을 보이며 ‘이 사람이 누군가?’라는 질문을 하니 약 절반이 잘 모르겠다고 답복하였다고 한다. 모택동이 오른손을 처들고 있는, 중국인민을 호소하는 상징의 사진을 보이며 ‘이 사람 지금 무엇 하나?’라는 질문을 하니 적지 않은 소학생들이 ‘택시를 부르고 있는것이 아닐까?’라고 답했다고 한다. 그렇듯 신화의 존재였던 모택동 신이 이젠 정말 사람들의 마음속에서도 보통 사람이 됐구나 하며 필자는 개탄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러나 최근 모택동이 다시 신으로 부활하고 있음을 발견하고 필자는 경악하지 않을수 없다. 지난 9월중순 필자는 모택동의 고향 소산(韶山)을 다녀왔다. 그런데 그곳 사람들이 모택동을 신으로 만드는데 박차를 가하고 있지 않겠는가!
신A. 모택동 동상을 관광할 때 가이드 왈: 1997년 동상건립 4주년을 기념해 心连心 예술단이 연출을 하러 왔는데 비가 그냥 오다가 연출 시작을 선포하자마자 이내 비가 멎고 날이 개였다. 모택동이 우리를 돕고 있다. 모택동은 정말 신격적인 존재다.
신B. 모택동 가족 사당을 관람할 때 가이드 왈: 모택동은 1927년 9월 9일에 남창기의군을 거느리고 정강산에 갔고 1949년 9월 9일에 중남해에 입주하였으며 1976년 9월 9일에 서거했다. 그래 모택동이 신이 아니란 말인가!
신 C. 소산 뒷산위에 ‘干石娘(돌수양어미)’이란 곳이 있다. 모택동이 청년시절에 암석 하나를 수양어미로 모시고 때때로 찾아가 행운을 빌었다는 곳이다. 지금 그 옆에 사당 같은것을 하나 지어놓고 관광객들이 들어가 빌게 한다. 가이드 왈: 모택동이 위인으로 되는데는 이 돌수양어미의 공로가 클것이다. 자! 여러분 자기의 운명을 빨리 이 돌수양어미에게 기탁하라!
신D. 식당에서 가이드 왈: 모택동이 즐겨먹고 출세한 음식 尖椒炒肉丝、红焖肉이다. 이 곳에서 이 음식을 먹고 출세해 보자(먹어보니 값은 비싸고 맛이 없다).
이런 선전만 하는것이 아니다. 사당과 돌수양어미의 경우 관광객들로 하여금 먼저 모택동초상화에게 절을 세번 하게 한후 꿇어앉히고 갖은 푸념을 한다. 이런 와중에 농민, 학생이나 돈이 없어보이는 자들을 하나하나 밖으로 데려나간다. 나머지 사람에게 누런 부적을 나누어 주며 모택동에게 성의것 돈을 내고 행운을 빌라고 유인한다. 그러면서 장내를 신격적인 분위기에 휩사이도록 바람잡으며 마치 한국 교회의 부흥설교에 빠진 기분을 자아낸다.
사람들은 갑짜기 정신이 몽롱해지며 지갑에 있는 돈을 털어내 부적을 가진다. 적어서 200~300원, 많으면 1,000원이상이다. 개중에는 맑은 정신으로 ‘이렇게 돈을 갉아먹는 수작을 피우다니’하며 피할 생각을 하는자도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는 거의 불가능하다. 문어귀에는 몇 사람이 버티고 서서 나갈 틈을 주지 않고 가이드와 사당 운영자가 짜증을 낸다. ‘아따! 이사람, 모택동에게 복을 비는데 그렇게 아깝나?’
모택동은 확실히 신으로 변해가고 있다. 이 신이 1960~70년대의 신과 다르다면 전자는 산 신이고 후자는 죽은 신이다. 전자는 정치신이고 후자는 재물신(财神)이다. 전자는 중공 령혼의 신이고 후자는 소산 인민의 신이다….
소산은 농업지역의 조그마한 읍이며 찌들게 가난하다. 모택동이 생전일 때는 중국이 아주 어려웠으므로 돈을 들여 어쩔 여지가 없었다. 모택동이 사망된 후 국가에서 죽은 사람을 위해 거금을 들일리도 만무하다. 장사에서 불과 100여킬로밖에 안 되지만 기차를 타면 株州를 거쳐 돌아가기 때문에 2시간반정도 걸린다. 자금 부족으로 10년가량 건설했다는 고속도로를 아직 20킬로 완성하지 못하고 있으므로 고속버스를 타도 2시간 걸린다.
필자가 소산에 간것은 이번이 두번째이다. 1992년 10월경 필자는 한국 기자와 같이 소산을 취재한적이 있다. 우리가 탄 택시가 소산에 거의 도달할 무렵 경찰 한사람이 불쑥 나타나 택시를 세웠다. 다짜고짜로 택시를 낱낱히 수색하더니 한달에 한번씩 검사를 받은 서류 한장이 모자람을 발견하고 택시를 못가게 하였다. 택시 기사가 중화(中华)표 담배를 련속 권하며 놓아달라고 애걸한다. 그는 담배를 받아 피우면서도 놓아주지 않는다. 약 40분이 지나자 조급해진 한국기자가 돈 100원을 기사에게 주며 눈짓하였다. 그 돈을 경찰에게 주자 서슴없이 지갑에 넣더니 ‘앞으로 주의해’라는 말 한마디 던지며 놓아주었다.
모택동이 人인 시절, 돈을 챙기는 방법이 아마 이런식인가 보다. 40분에 겨우 100원밖에 못 챙기는, 꾀나 힘겨운 방법이겠다. 그러나 지금은 그것이 아니다. 모택동을 신으로 만들어 돈을 챙기는 방법, 잘하면 한시간에 1만원이상도 챙길수 있다. 그래서인지 지금의 소산이 많이 세련되여가고 있다. 모택동 동상앞의 광장도 지금의 몇배 크기로 증축하고있다. 몇천명이 꿇어업딜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고있다.
신을 빙자해야 돈을 가장 쉽게 모으는듯 하다. 몇년전 필자는 해남도 동산(东山)의 동묘(东庙)를 관광한적이 있다. 가이드는 우리를 안내하며 부지런히 푸념을 하였다: ‘애국명장 악비의 스승 리강(李纲)이 해남도에 류배돼 왔을 때 중이 되려고 동묘에 찾아갔다. 그런데 절의 주지가 점을 쳐주며 당신은 아직 운이 귀한데 왜 중이 되려고 하느냐 하며 말렸다. 아니나 다를까 며칠후 그는 조정에 불리워가 재상이 되였다. 한어 “동산재기(东山再起)” 성구의 출처가 바로 이 장고 (掌故)이다.’
동묘에 들어가니 스님 8명이 점을 쳐주는데 가이드의 말에 홀깃한 관광객들이 줄을 서서 점을 친다. 스님은 상대방의 경제력에 따라 160원짜리 향을 두개 피우라(최하 표준), 천원짜리 부적을 받아라, 4천원짜리 부적함을 받아다 집에 놓아 보라라는 건의를 한다. 우리 일행 12명은 최소 천원, 최고 4천원정도의 돈을 탕진하였다(유독 필자만이 응하지 않았다).
돌아와 력사재료를 낱낱히 훑어보았으나 리강은 악비의 스승도 아니고 해남도에 류배간적도 없다. 또한‘东山再起’의 출처도 해남도 동산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지금 중국 대륙의 방방곡곡에서 이런식으로 금전을 긁어모으는 바람이 불고 있다. 상기는 그중 한가지 례에 불과하다. 관광지와 가이드의 비렬한 작태에 격분하며 이런 병폐를 방임하는 당국을 리해할수 없다.
빙자한 신은 대개 석가보니(불교), 로자(도교), 모함모데(이슬람교)나 예수(기독교) 등이고 이 외에 일부 토착종교나 미신이 섬기는 신들이다. 바야흐로 이에 모택동도 끼워들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 소산에서 섬기고있는 모택동 신이 불원간 모택동이 생전에 활동한적이 있는 기타 지역으로 확산될것이다. 또한 모택동을 신으로 만드는 스토리가 점점 많아질것도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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