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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언론 및 기자에게 진언한다
정인갑
한국의 언론 및 기자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그 답안을 제시하기에 앞서 아래의 한 가지 례를 들고자 한다.
1997년 2월 19일 새벽 3시경, 필자는 꿈나라에서 헤매다가 불시에 당시 한국 경향신문사 북경특파원인 신영수 씨의 전화를 받았다: 급한 일이 생겼으니 빨리 자기의 사무실로 오라는 ‘호령’이였다. 필자는 무슨 영문인지 모르고 허둥지둥 찾아갔다. 송대수(한국일보), 황의봉(동아일보) 등 한국 신문사 특파원 대여섯이 앉아있었다.
“등소평이 오늘 새벽에 사망되였는데 쿨쿨 잠자서 되겠느냐?” 라며 다짜고짜로 필자를 꾸짖는 것이었다. “등소평이 사망되였는데−죽을 때가 되여서 죽었는데−나와 무슨 상관이냐?” 라며 필자는 변명하였다.
“중앙일보가 이미 이 기사를 냈으니 우리는 물먹은 것이 뻔하지만 그래도 쓸만한 기사거리를 좀 들춰서 본사로 보내야겠다”며 필자를 내세우는 것이였다. 필자는 그들을 인솔하여 북경병원, 협화병원, 301병원 등을 훑었고 사무실에 돌아와 CCTV, CNN, NHK등을 몇 시간 추적했어도 아무런 거리를 건지지 못하였다.
아침 7시가 되여 출근길에 오른 북경시민 10명에게 ‘등소평의 건강 상태가 어떠냐?’라는 질문을 하였더니 9명이 ‘괜찮다’라고 답하였고, 한 명만이 ‘글쎄, 아마 사망되였을 걸’하는 것이였다. 9시경에 기자직에 있는 필자의 동창 둬 사람에게 전화로 물어봤더니 역시 등소평의 건강 상태가 괜찮다는 것이였다.
“이놈아, 오늘 새벽에 등소평이 사망됐다. 기자라는 놈이 뭐야? 나는 한국 기자들과 밤을 새웠는데”라며 핀잔을 주니 “나 아직 직장에 가고 있는 중이니 모를 수 밖에. 한국기자들 제길할, 皇帝不急太監急(황제도 가만 있는데 태감이 설친다/상주도 제상 차릴 궁리를 안 하는데 엉뚱한 놈이 설친다)”라며 언짢아하는 것이였다.
이만하면 정답이 나온 셈이다. 한국 기자들은 중국 기자들에 비해 자기의 본직에 충성하며 진실한 기사를 가장 빠른 속도로 국민에게 알리려 노력한다. 자질도 중국기자에 비해 높은 것 같다. 또한 한국의 매체도 중국의 매체에 비해 그 소식이 빠르고 정확하며 공정하고 투명하다.
문제는 국제 정치와 관련되는 문제에서 한국 언론은 너무나 편협적이고 우매하다. 그토록 ‘똑똑하고 능력 있는’ 한국 기자들도 바보로 밖에 안 보인다. 필자는 많은 한국 기자들과 접촉하며 항상 이런 느낌을 금할 수 없다. 역시 몇 가지 례를 들고자 한다.
1980년대 말 한국 기자들은 일제히 중국은 오라지 않아−빠르면 몇 년 내로, 늦어도 10년 안에−적어도 5~6개 나라로 분렬된다고 믿고 있는 것이였다. 필자가 아무리 그럴 수 없다고 해도 곧이 듣지 않는다. 그래서 필자는 ‘베이징저널’에 ‘중국인의 통일사상’이라는 칼럼을 쓴 적이 있다.
그때로부터 지금까지 20년이 지났다. 중국이 분렬되였는가? 분렬되지 않았다. 력사 사실은 한국 기자들의 견해가 오류임을 증명하였다.
1998년 나토가 코소보를 폭격할 때−인권이 주권보다 중요하다는 것이 폭격의 리유−한국 언론은 한결같이 잘한 것으로 보도하였다. 이에 필자는 어느 한국 기자와 변론을 한 적이 있다.
“인권이 주권보다 중요하다. 만약 그렇다면 1980년 한국이 광주사태를 진압할 때 미국이 대한민국을 무차별, 무자비하게 폭격해도 당연하다는 말이 아닌가?” 필자의 이 한마디 말에 그 한국 기자는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코소보 폭격 전쟁은 어디까지나 국제 사회의 기본 룰을 유린하고 유엔의 헌장을 무시한 비정의의 죄행이다.
한국 언론이 지지하고 있는 미국의 대 이라크 전쟁도 마찬가지지만 편폭 관계로 할애하련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중국 서장(티베트) 사태도 한국 언론에서는 일제히 중국이 장족의 정당한 요구를 무력진압한 것처럼 보도하고 있다. ‘중국 팽창주의 야망의 표현’이요, 앞으로 치러질 북경 올림픽은 ‘1936년 나치스 치하의 올림픽 분위기’요 하는 말도 꺼리낌 없이 람용하고 있다.
중국의 5천년 력사는 수십가지 민족(먼 옛날에는 100가지도 넘었을 것임)이 공동히 창조한 력사이며 장족도 그중의 한 성원이였다. 서장이 행정적으로 확고히 중국에 귀속된지도 700년에 가깝다.
1949년 중공정부가 수립될 때 서장은 가장 야만적이고 암혹한 政敎 一體의 농노제사회였다. 농노주는 농노의 눈알을 파내고 생매장하는 형벌도 마다했고 어린 노예의 살가죽을 벳겨 사치품을 만들었으며 농노를 살해한 후 그 해골을 그릇으로 쓰는 등 말이 아니다. 세계 웬만한 나라의 력사를 500~1000년 뒤걸음시켜도 서장처럼 야만은 아니였을 것이다.
그렇지만 중공정부는 서장에 군대만 주둔하였을 뿐 내부제도를 건드리지 않았다. 그 지역의 민족문제, 종교문제 등의 특수성을 감안하여 내부로부터 서서히 변화하기를 기다리려 하였다. 극도의 인내와 자비를 베푼 셈이다. 그런데 1959년 달라이라마는 외세와 결탁하여 중앙정부를 반대하고 독립하려는 무장반란을 책동하였다.
하여 중앙 정부는 그 반란을 진압하고 민주주의 개혁을 실시하였으며 절대다수의 장족 인민들의 옹호를 받았다. 지난 50년간 서장은 정치, 경제, 문화, 인민의 생활 등 면에서 천지개벽의 발전을 이룩하였다. 그런데 어떻게 서장의 분렬주의 자들을 두둔할수 있단 말인가?
한국기자들의 두뇌와 수준으로 중국의 분렬여부 문제, 코소보 문제, 이라크 문제 등의 시비를 모를리 없다. 세계에서 중국력사를 가장 잘 아는 나라는 한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장문제의 내막을 모를리 없다. 한국 언론이 그토록 황당한 오류를 범하는 원인은 몰라서가 아니라 미국을 수반으로 하는 서방 언론을 망종하기 때문이다. 종주국을 추종하는 식민지 문화가 아니고 무엇인가?
지금 한국은 친일파 명단 때문에 떠들썩하고 있다. 옛날 일본 식민주의자들에게 아부한 친일파, 적어도 영광스럽지못하다. 지금 국제 사회의 정의를 짓밟고 약소국을 침략, 도살하는 미국의 행위에 아부하거나 추종하는 것 역시 영광스럽지 못하다. 인류사회에 정의가 확고히 정착될 때 친미파로 수치를 느껴야 할 앞날을 생각해 봤나?
한국과 중국은 같은 수난국이다. 근대사의 근 백년간 렬강의 침략으로 같이 신음하였었다. 그런데 어떻게 가해국을 추종하며 같은 難兄難弟를 궁지에로 몰 수 있단 말인가! 개구리 올챙이 때를 잊어서 되겠는가! 중국이 팽창주의를 꿈꾼다고 비난하면서(팽창주의냐 아니냐도 앞으로 두고보아야 할 문제) 어떻게 팽창주의 이상의 패권주의 미국을 망종할 수 있단 말인가!
한국 정부나 한국 언론 및 기자들은 부자 나라인 미국에 아부하고 난형난제를 궁지에로 몰면 자기에게 이득이 차려지겠거니 한다. 사실은 착각이다. 그럴수록 양쪽에서 다 자기의 무게를 잃고 외교적으로 무능국으로밖에 될 것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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