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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 력사에 봉건사회가 없었다?
정인갑
근래 동북아신문(www.dbanews.com)과 조글로(www.zglo.com)에서 《우리 민족 력사에 봉건사회가 없었다》(이하《없었다》로 략칭함)라는 글을 보고 경악을 금할 수 없다. 이는 상식 이하의 견해다.
단어 ‘봉건’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① 일종 정치제도. 군주가 토지를 종실이나 공신에게 나누어 주어 그곳에 나라를 세우게 하는 제도—원시 의미. ② 일종 사회형태. 봉건사회의 략칭, 지주가 토지로 소작농을 지배하는 것이 생산관계의 주축인 사회—지금 쓰이는 보편적 의미.
의미①의 ‘봉건’제도가 중세기의 유럽과 일본에 존재했다. 중국 주나라가 이런 제도였으며 ‘분봉제(分封制)’라고 통칭하였다. 그러나 진시황이 중앙집권의 군현제 (郡縣制)를 실시한 후부터 분봉제는 점점 쇠퇴되었다.
의미②의 ‘봉건’사회는 인류 력사에 보편적으로 존재했다. 중국어나 한국어에서 말하는 ‘봉건’은 단서를 달지 않은 이상 보통 의미 ②를 일컫는다. ‘봉건사회’는 상기 두 가지 의미중 의미 ②를 일컫는다.
이렇게 볼 때 조선의 고대사에 물론 ‘봉건사회’가 있었다. 조선왕조 500년의 력사가 지주가 토지로 소작농을 지배한 력사가 아니고 노예주가 노예, 또는 자본가가 근로자를 지배한 력사란 말인가? 단 필자는 력사학 전공이 아니므로 조선력사는 어느 때부터 봉건사회였는지 잘 모를 뿐이다. 허나 늦어도 통일신라부터는 봉건사회였을 것이다.
중국은 어느시대부터 봉건사회였는가? 春秋봉건설, 戰國봉건설, 魏晉봉건설 여러가지 설로 반세기간 쟁론하였지만 결론을 짓지 못하였다. 할 수 없어 곽말약의 전국봉건설을 잠시 따르고 새로운 재료가 더 나타나지 않는 이상 쟁론을 하지 말기로 약속하였다.
기원전 594년(魯宣公15년)부터 로나라에서 초세무(初稅畝: 토지 면적에 따라 세금을 납부하는 제도)를 실시하였다. 기원전 453년부터 기원전376년 사이에 삼가분진(三家分晉) 사건이 발생하였다. 주왕조는 유명무실되였다. 이때가 전국시대의 시작이며(기원전 476년) 또한 이때를 중국봉건사회의 시작으로 보는 것이 비교적 합리적이다.
《없었다》의 견해대로면 중국의 봉건사회는 전국시대 시작 때 이미 끝났다. 그렇다면 그때부터 청조까지의 중국사회는 봉건사회가 아니고 무슨 사회인가? ‘신해혁명이2,000여년의 중국 봉건사회에 종지부를 찍었다’ 하거나 아편전쟁부터 1949년 중공정부가 성립되기까지를 ‘반봉건사화’라 하는 1만 명을 헤아리는 중국 사학자들이 다 추호의 상식도 모르는 바보란 말인가?
《없었다》에 이런 황당한 견해가 생긴 근본 원인은 ‘봉건’ 및 ‘봉건사회’란 무엇인가 하는 기본 개념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 이와 류사한 다른 한 가지 례를 들어보자. ‘혁명’이란 단어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① 천명을 탄 임금의 목을 베다—원시 의미(벨 혁, 목숨 명). ② 피압박계급, 선진계급이 폭력수단으로 낡은 사회제도를 뒤엎고 새 제도를 세우다—지금 쓰이는 보편적 의미.
《없었다》처럼 ‘혁명’의 보편적 의미를 배제해 버리면 어떤 결론이 생기는가? 조선조 고종을 죽인 일본인 또는 친일파나는 혁명을 한 셈이다. 신해혁명으로 중국의 혁명은 끝났다. 중국공산당이 근 90년 동안 한 행위는 혁명이 아니다. 물론 황당하기 그지 없다.
이중천(易中天) 교수가 전통문화에 대한 강좌를 하고 있지만 봉건사회를 부정한 적이 없다. 오히려 중국의 봉건사회를 ‘士族지주의 봉건사회’와 ‘庶族지주의 봉건사회’로 나누어 전통문화의 봉건적 이데올로기를 더욱 정채롭게 서술하였을 따름이다.
맑스주의가 주장하는 인류사회 형태의 단계론—노예사회, 봉건사회, 자본주의사회…, 이는 인류사회에 대한 과학적인 론단이다. 사회제도, 사회문화, 의식형태는 생산관계를 핵심으로 하는 경제기초 위에 건립된 상층건축에 속한다. 어떤 사회던 ‘필터의 려과장치로 걸’면 걸수록 남는 것은 ‘지주가 토지로 농민을 지배하는가’, 아니면 ‘자본가가 자본으로 근로자를 지배하는가’ 등밖에 남을 것 없다.
《없었다》는 ‘봉건이란 단어를 무분별하게 사용’한 조선족 학자들을 여지없이 야유하였지만 우리민족의 문화사, 민속사, 문학사…를 운운할 때 ‘봉건’이란 단어를 배제할 수 있단 말인가?
력사학을 전공한 많은 조선족 학자들의 견해가 필자와 일치하리라 믿는다. 단 그들은 자존심 때문에(너무 상식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이런 문장을 쓰지 않을 따름이다. 필자는 력사학을 전공하는 사람이 아니므로, 즉 력사학의 문외한이므로 자존심문제가 없다고 생각돼 간단히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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