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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이쯤이면 성행하는 <<대학입학잔치>>를 두고 후론이 많다.
지난 세기 90년대까지만도 대학문턱이 높아서 자식이 대학에 입학하면 부모들이 << 시집장가는 다 가도 대학엔 다 못 간다>>며 자녀대학입학잔치를 차렸다. 그리고 누구나 대학입학잔치에 초대되면 신나서 빠짐없이 참가했다. 그런데 <<고중만 졸업하면 거의 다 대학에 간다>>는 지금은 <<자비대학인데도 칭커(請客)를 한다>> 는 불만들이 뒤따른다.
이런 대학입학잔치현실에 비춰 도문교원연수학교 오해선(정년퇴직교원), 리문준부부가 딸애의 대학입학를 잔치대신 딸애를 관광을 보내여 돋보인다.
기실은 딸(리채유)이 리과생 중 길림성에서 단 1명을 모집하는 연변대학미술학원에 제 1 지망대로 입학했으니 축하잔치를 베풀만도 했다.
지금 보면 사회적으로 백일잔치, 생일잔치, 대학입학잔치, 집들이잔치, 출국잔치… 등등의 잔치가 많은데 많은 사람들이 잔치를 화제로 시야비야 한다.
잔치화제의 대개는 삐뚤어진 잔치에 따르는 부조때문이다.
지금 시세에 부르는 잔치에 가려면 최저로 <<앞잡이>>가 100원이 돼야 하니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은 <<청하는데 안 갈수도 없다>>며 난감해 한다.
살펴보면 적지 않는 잔치들의 목적은 돈벌이였다.
60대의 모모는 3번째나 되는 재혼에 번마다 많은 손님을 청해 말밥에 올랐고 누구는 이미 손녀애까지 본 아들의 결혼잔치 끝에 현수막까지 바꿔 걸고 손녀생일잔치를 차리다 보니 하객들이 <<돈벌이를 해도 너무 험하게 한다>>며 두덜대더란다.
이런 반면에 도문의 김영덕옹이 회혼례에 <<지금은 그전과는 달라서 손님들이 먹고 마시지 않으니 청하면 부담이 된다>>며 손님을 청하지 않았고 흑룡강성 정금화의 진갑잔치는 손님들의 축의금을 받지 않았단다. 어느 중학생동창회는 서로간의 군일에 부조를 20원을 초과하지 못한다는 규정을 제정했고 룡정시 개산툰진의 한화석네 자식 4 남매는 아버지의 7순 수연을 잔치대신 량친부모를 한국에 1개월간의 배낭려행을 보냈고 아버지(농민작가)의 저서(못 말리는 개산툰)를 출간하게 하였다.
상기의 이 실례는 삐뚤어진 잔치문화의 개혁으로 크게 제창할바다.
우리가 무엇을 개혁하려면 필경은 앞장서는 선각자가 있어야 한다. 누구보다 앞장서나가는 소수의 선각(선구)자들은 언제나 처음은 외롭다지만 선각하고 남먼저 행하는 그 일이 의미가 깊고 가치가 크다면 지속적으로 끌고 나가야만 사회가 변화되고 발전된다. 아니면 모두가 <<남들은 어쨌다>>며 자기가 따르려는 일의 의미나 가치를 가늠하지 않고 늘, 그저 그대로 남들의 뒤를 따르기만 하면 사회는 아무런 변화와 발전이 있을수 없다.
필자는 오늘의 삐뚤어가는 잔치현실과 그에 따르는 부조문화현실에 비춰 김영덕, 정금화,오해선, 한화석 자녀들 등 앞장선 사람들의 선동으로 살맛나는 훈훈한 잔치부조문화바람이 불어오기를 기대한다.
오기활
<<길림신문>> 201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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