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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의 '리시진' 김수철전"(련재 14)
2020년 05월 20일 09시 18분  조회:3741  추천:0  작성자: 오기활
14. 박사연구생 반욱(槃旭)이와 함께

첫 만남

아이산(阿耳山)은 대흥안령의 명승지이며 몽골족의 성지이다.
아이산에는 기화이초(奇花异草)도 많고 물고기가 떼를 지어 춤추는 대천(大川)도 많다.
내가 지금 펴내고 있는 ≪길림성식물지도감≫에 참고되는 희한한 식물들이 아이산에 수두룩하게 나있다고 생각하니 어깨춤이 절로 났다.
2016년 6월 9일 오전 9시 30분에 나는 길림성 서북의 신흥도시인 송원으로 향하는 뻐스에 몸을 실었다. 훈춘‒울란호트고속도로로 달리는 뻐스가 오후 3시경에 송원터미널에 도착하였다.
“저 로인이 70이래. 꼬부랑 할배가 꽃구경을 다니다니, 어쩌자구 저러노?”
내가 가는 곳마다에서 이구동성으로 이런 후론(后论)들이 뒤따랐다. 후론들이 여하하든 90대 로인을 70대로 보니 귀맛이 좋기만 하였다.
기실은 이번 원정도 92세 나이를 아랑곳않고 ≪길림성식물지도감≫에 배합할 사진을 찍으려고 혼자몸으로 떠났는데 말이다.
나는 송원에서 기차로 백성에 가서 하루를 묵고 울란호트로 가는 뻐스에 올랐다. 나는 뻐스의 차창 너머로 가고 가도 끝없이 이어지는 내몽골초원의 산천초목을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오매불망하고 찾아온 아이산거리는 오색이 령롱한 네온싸인으로 극락세계를 방불케 하였다. 번화한 거리중심의 값싼 려관은 이미 만원이였다. 겨우 찾은 려관방이 도시의 가장자리에 있는 일박에 20원씩하는 허줄한 지하방이였다.
비록 호주머니에는 돈이 두툼히 있었지만 앞으로의 려정을 생각하니 눅거리 려관도 안식처로 느껴졌다. 오히려 고급호텔에 들었으면 바늘방석에 앉은 느낌이였을 것이다.
이튿날은 비가 꽤나 내리는 변덕스러운 날씨였다.
도시 주변의 산에서 등산길을 찾느라고 종일 헤맸는데 등산길이 모두 인위시설(人为施设)로 막혀있었다.
맥없이 려관에 돌아오니 날이 벌써 어두워졌다.
이튿날엔 아침부터 묻고 또 물으면서 앞산에 설치된 케블카시설이 있는 스키장으로 올라갔다.
상대고도가 500m 정도의 산기슭에 이르니 기화이초들이 나를 아연실색하게 한다. 노랑양귀비, 서홍닥나무, 아시아톱풀 등이 나를 보고 빨리 오란다.
허기 찬 호기심을 겨우 누르면서 45도 정도의 경사진 벼랑도 맥 없는 줄 모르고 톺아올랐다. 식물삼매경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금년 봄 연길 중관촌전자상가에서 산 묵직한 디지털사진기로 첫여름의 여러가지 식물 100여장을 사진기에 담았다. 여기는 자연보호구역이여서 식물이 잘 보존되여있었다.
저녁에 려관에 돌아오니 딸과 사위한테서 전화가 왔는데 할빈에 있는 동북림업대학의 류삼규(柳参奎) 교수가 나한테 자기의 박사연구생 반욱을 보내니 현지 식물분류실습을 잘 지도해달라고 간곡히 부탁하더란다.
3일후 젊은 한족 청년이 만면에 웃음을 담고 나를 찾아왔다.
젊은 박사연구생이 식물을 배우려고 할빈에서 나를 찾아왔다니 려관집 할머니와 젊은 부부가 나를 대하는 태도가 180도로 달라졌다.
나는 젊은이의 체면을 고려해 지하방을 물리고 지상의 중급 방으로 옮겼다.
허허!… 젊은 박사연구생이 나의 몸값을 올린 셈이였다.
결국 자초지종을 캐여물으니 반욱이의 론문쩨마가 ‘미꾸리꿰미풀’인데 이 풀이 안달(安达)지역에 있기는 한데 도대체 몇가지가 있으며 그 이름이 무엇인지를 몰라서 나를 찾아왔다는 것이였다.
아무래도 도와주어야 시름이 놓일 것 같아 반욱이와 함께 류삼규 교수의 안달실험기지를 향해 떠났다.

식물연구기지에서

아이산을 떠난 지 사흘 만에 우리는 대경을 거쳐 내가 10년전에 3년 동안이나 드나들며 정을 묻혔던 안달에 도착했다.
안달에는 류삼규 교수의 식물연구기지가 있다. 나는 3년간 안달실험기지에서 알칼리땅에서 자라는 식물을 조사, 연구하면서 류교수를 도와 2006년에 ≪동북염지채색식물도감(东北盐地彩色植物图鉴)≫을 출판하여 세상에 내놓았다.
나는 그동안에 류교수의 소개로 일본 동경대학의 저명한 교수들과 친분을 맺었고 동경대학의 초청으로 <장백산의 자원식물에 관하여>란 론문을 발표해 청중들의 박수갈채를 받는 영광까지 지니였다.
그러니 류교수의 식물연구기지는 나의 학습장으로 나를 일본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한 잊지 못할 실험지이다.
이곳은 평소에는 거의 비여있었다. 내가 있는 동안에 성실한 한족 로부부가 기지를 지키며 나에게 맛있는 음식도 해주면서 극진히 보살펴주었다.
나는 반욱이와 함께 3일간 미꾸리꿰미풀의 여러가지 모양의 견본을 찾아 표기하고 번호를 달아 금후의 검색에 차실이 없도록 면밀하게 꾸며놓고서야 시름을 놓았다.
이번 걸음에 종류에 따라 감정을 하려고 했으나 자료문헌이 부족하고 실체현미경도 없어서 별수없이 조건이 마련된 룡정시 조양천진 삼성촌으로 가기로 했다.
우리가 안달‒할빈고속렬차를 타고 할빈에 갔더니 동북림업대학의 요인 두명이 할빈역에까지 나와 우리를 마중하고는 화려한 동북림업대학호텔로 안내하였다.
‘미꾸리꿰미풀’의 수수께끼를 풀어줄 나의 연구와 생활의 근거지인 조양천의 삼성촌에서 춘향이 리도령을 기다리듯 나를 고대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하루가 삼추같이 느껴져 잠자리에서 애써 눈을 감아도 도저히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장백산천지행

반욱이는 사물감수능력이 뛰여났다. 그리고 려행, 참관, 견학 등 행사에서 기록을 확실하고도 상세히 할 뿐더러 또 여러 갈래의 경로를 통하여 지도, 사진, 려행안내 등 정보수집도 잘했다.
그 외의 몇번의 동행에서 그에게서 받은 제일 깊은 인상은 전화, 핸드폰, 컴퓨터, 팩스 등 현대적인 설비로 친필편지가 까맣게 잊혀져가는 시대에 그는 부지런히 손편지를 쓰는 것이였다.
그는 어디를 가나 우편엽서를 많이 샀고 쉴새없이 속필로 편지를 썼다. 한번에 적을 땐 10여장, 많을 땐 60여장에 이르는 친필편지를 려관에서도 쓰고 덜컥거리는 차에서도 쉼없이 쓰고 또 썼다.
나는 그렇게도 흥미롭게 편지를 쓰는 사람을 처음 봤다.
언젠가 최명림씨가 반욱이를 중, 조, 로 3국 접경지인 방천을 관광시킬 때도 반욱이는 조선과 로씨야의 토산물, 우표와 여러가지 기념품들을 빼놓지 않고 많이 수집하더란다.
이튿날에 장백산천지를 가기로 하였는데 이 소식을 접한 류삼규 교수의 친우들인 려춘성(연변대학)과 송씨(조양천농업은행) 부부가 반욱이를 동무해주기로 하였다. 장백산천지는 반욱이만 오르고 나머지 6명은 황송포습지에서 식물촬영을 하였다.
이번 걸음에 황송포습지 직원들의 친절한 협조와 려춘성과 송씨 부부의 도움으로 예기치 못했던 많은 종류의 식물들을 촬영할 수 있었다.

할빈역에서

2016년 6월 중순에 나는 반욱이와 함께 할빈‒연길고속렬차를 타려고 할빈역에 왔다.
할빈역에서 나는 민족의 독립투사인 안중근이 로씨야와 일본 군경들의 틈새로 몸을 빼면서 조선을 송두리채 수중에 넣은 주범인 이등박문을 보기 좋게 사살한 후 떳떳하게 “꼬레아 우라!”(로어로 ‘한국 만세!’)를 세번 웨친 광경을 머리 속에 떠올리며 안중근을 그리였다.
안중근은 진작부터 이등박문을 암살하기로 결심하고 3년내에 성사하지 못하면 자결하여 속죄하기로 맹세했다. 마침 이등박문이 할빈을 방문하게 되자 안중근은 우덕순, 조도선, 류동하와 함께 할빈으로 왔고 1909년 10월 26일 할빈역에서 로씨야측의 호위를 받으며 걸어나오는 이등박문을 쏘아눕혔다.
31세에 나는 안중근은 2월 14일에 사형선고를 받고 3월 16일 10시에 단정한 자세로 “대한독립 만세!”를 웨치면서 피끓는 심장을 멈추었다.
절세의 애국자 안중근의 붉은 피는 아직도 식지 않고 이 땅을 적시며 사람들의 붉은 심장을 불태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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