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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남상숙 선생은 종묘제례악이
일제강점기 위조된 가짜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그 논문의 단초가 된 악보가 있었으니 <속악원보>다.
<속악원보>는 종묘제례악의 변질을 기록한 최초이자 유일무이한 악보다.
조선시대 악보 중에서 <속악원보> 이외의 어떤 악보에서도
이와 같은 종묘제례악 장단은 나타나지 않았다.
남선생이 연구한 바에 따르면
<속악원보>는 조선왕조의 관찬악보가 아니라
일제강점기에 조작된 악보라는 것이다.
<속악원보>는 19세기 말에 쓰여진 것으로 되어 있는데
<속악원보>를 위조하려다보니 그보다 100년 전에 쓰여진
<대악후보>의 영산회상부분도 위조했음을 밝혀내었다.
남선생은 서예학자를 대동해 서체 감정을 받고
종이 연대측정법까지 동원해 이를 밝혀내었다.
그 결과 <대악후보>역시 일제 강점기에
일부 악보를 위조하여 합본한 것임을 밝혔다.
요약해보면
18세기 정조 때의 악보인 <대악후보>의 일부(영산회상)를 위조하여
18세기에 이미 음악의 장단 변화가 시작된 것처럼 꾸몄고
19세기 말에 만들어진(거짓말이었다) <속악원보>에서
종묘제례악을 1자1음식으로 바꾸고
전통적으로 내려오던 6대강구조(세조때 정간보 기입시 3·2·3·3·2·3 정간으로
갈라 6대강(六大綱)으로 구분하였는데 이 16정간 6대강법은 조선 말기까지 계속
되었다)를 해체하여 4구로 된 음악으로 만들었다.
선율은 세종 때 그대로인데 장단만 변했다.
이렇게 되면 그 음악은 불구가 되는 것이다.
<속악원보>의 이러한 장단변질은
일제강점기 <이왕직 아악부 악보>에 고스란히 옮겨졌다.
진실을 말하자면
일제는 종묘제례악 같은 수준 높고 장엄한 음악이
그대로 전승되는 걸 두고 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왕직 아악부를 통해 박과 절주가 무너진
절름발이 종묘제례악을 만들었고
그 사실을 숨기기 위해 <속악원보>라는 악보를 만들어
마치 조선왕조의 장악원에서 편찬한 관찬악보인 양 꾸몄다.
조선시대 관찬악보에 편찬시기가 기록된 악보는 하나도 없다.
그런데 <속악원보>에는 편찬시기가 다섯 번이나 기록되었다.
제발 19세기 악보라는 걸 믿어 달라고 부탁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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