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족구기예술가 김성일 국내외 무대서 명성 떨쳐
‘귀할수록 값이 간다.’는 말이 있듯이 예술분야에도 희귀한 재주를 갖춘 사람은 어데 가나 환영을 받는다.
입으로 다양한 동물의 소리를 내는 건 물론 입김으로 진동을 일으킬 수 있는 물건이면 모두 악기처럼 불 수 있는 구기(口技)예술인 김성일이 그런 사람이다.
고향이 료녕성 환인현인 김성일(67세)은 연변예술학교와 길림사범학원을 졸업했고 교육분야와 문화분야에서 장기간 사업하다가 중국동북전력예술단에서 정년퇴직했다.
“우연한 기회에 구기예술을 접하게 되였습니다.”
대학에서 장새납을 전공했던 김성일은 구기예술을 접하게 된 계기는 바로 관중들에게 보다 더 많은 웃음과 즐거움을 주기 위한 고민에서 시작됐다고 했다.
1995년, 료녕성의 많은 지역이 홍수재해를 입었을 때였다. 료녕성민족사무위원회의 주최로 위문공연에 나섰던 김성일은 당시에 큰 인기를 모으고 있던 구기예술인 염복흥(闫福兴)과 한무대에서 공연하게 되였다. 염복흥은 입에 손가락을 넣어 다양한 새소리를 내였는데 관중석에서는 련거퍼 폭소와 박수소리가 터졌다. 입 하나로 다양한 소리를 내는 염복흥의 재주에 매료된 김성일은 구기예술을 배워줄 수 없는가고 간곡히 청을 들었다. 그러나 염복흥은 쉽게 배울 수 있는 예술이 아니라면서 완곡하게 거절했다. 마침 염복흥과 같은 방에 들었던 김성일은 호텔 앞 마당에서 버드나무 잎 하나를 뜯어가지고 와 ‘조선족 전통구기예술’을 감상해주겠는가고 물었다.
‘조선족 전통구기예술’이라는 말에 염복흥은 흔쾌히 동의했다.
1968년부터 시작하여 마을 어른들에게서 버들잎피리를 배웠던 김성일은 버들잎을 입에 물고 <아리랑>으로부터 <피로 물든 모습>, <십오야 밝은 달> 등 다양한 선률을 뽑아냈다. 구기예술의 1인자를 지향할 정도로 자부심이 높았던 염복흥은 탄복하면서 김성일에게 구기예술을 전수하겠다고 하였고 대신 버들잎피리를 부는 방법을 배워달라고 했다.
새소리는 쉽게 낼 수 있었으나 염복흥의 특기인 ‘삣쭁, 뾰로롱, 까르릉’과 같은 새의 울림소리를 내기는 쉽지 않았다. 그는 염복흥이 살고 있던 호로도(葫芦岛)에까지 찾아가서 울림소리를 내는 방법을 배워냈다.
김성일은 요즘 무대에서 흔히 보는 많은 구기예술인들은 특제된 미형 기기를 입에 물고 다양한 새소리를 낸다고 하면서 입을 다셨다.
장새납, 퉁소, 단소, 색소폰, 플루트, 양금, 해금, 손풍금 등 ‘18반 무예’를 정통하고 무대를 휘저었던 김성일이 구기예술까지 접수하자 그의 인기는 날에 날마다 치솟았다. 그는 조본산, 반장강, 고수민, 송단단 등 유명 연예인들과 함께 전국 순회공연에 참가하였고 색다른 표현으로 주목을 받았다. 그는 중앙텔레비죤방송국‘한마음(心连心)’예술단과 함께 서북지원 공연에 참가하였고 조선, 일본, 한국, 로씨야 등 나라와 향항, 오문 등 지역에 족적을 남겼다.
2015년 김성일이 동북전력예술단에서 정년퇴직하자 심양시조선족문화관에서 러브콜을 보내면서 심양시조선족문화관 아리랑예술단의 단장을 맡아달라고 하였다.
“민족예술을 지키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는 그들을 거절할 수 없었습니다.”
김성일은 올해까지 8년째 심양시조선족문화관 아리랑예술단 단장을 맡고 있는데 민족 문화와 예술을 지키는 길에는 너와 나가 따로 없고 오직‘우리’가 되여야 한다고 했다.
현재 이 예술단에는 20명 단원이 있으며 성악, 기악, 특기, 무용 등 다양한 종목들로 많은 사람들의 찬사를 받고 있으며 중앙텔레비죤방송국의 무대에도 여러번 올랐다. 예술단에서는 해마다 문화관의 배치에 따라 문화하향을 견지하고 있고 거의 해마다 료녕성텔레비죤방송국 음력설야회에 등장하고 있는데 호랑이해인 올해 음력설야회에도 등장했다.
“구기예술도 우리 민족의 전통예술 가운데 하나인 것 만큼 저는 이것을 계승 발전시키기 위한 고민을 항상 하고 있습니다.”
김성일은 구기예술은 물론 민악을 배우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최선을 다해 배워주고 싶다며 민족전통과 문화예술을 계승 발전시키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 밝혔다.
허강일 기자/연변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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