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신문]
독일에 가면 멀쩡한 냉장고가 시내 길모퉁이에 생뚱맞게 놓여 있는 모습을 볼지도 모른다. 냉장고를 열면 당근, 양배추, 감자, 빵, 버터 등이 가득 채워져 있을 것이다. 냉장고가 집 밖으로 나오게 된 사연은 무엇일까.
뉴욕타임스는 26일(현지시간) ‘길거리 냉장고’는 음식물을 개인끼리 나누기 위한 것으로, 최근 독일에서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기 위한 음식 공유(푸드셰어링) 운동이 확산되고 있다고 전했다. 기존의 먹거리 나눔은 끼니를 해결하지 못하는 빈곤층을 위한 것이었으나 독일의 푸드셰어링은 차원이 다르다.
신문에 따르면 독일 전역에 음식물 공유 장소는 약 100군데로, 이곳에는 냉장고나 선반이 놓여 있다. 사람들은 혼자 다 먹기 어려운 재료들, 손대지 않은 파티용 음식들을 가져와 냉장고를 채우거나 필요할 때 가져갈 수 있다.
이 운동은 영화제작자이자 저널리스트인 발렌틴 턴에 의해 2년 전 시작됐다. 2010년 그가 찍은 ‘쓰레기를 맛보자’(
Taste the Waste)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는 전국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다. 약간 시들었다고 통째 버려진 양상추, 여전히 신선해 보이는 토마토와 롤빵 등이 가득 담긴 쓰레기통과 못생겨서 슈퍼마켓 진열대에 오르지 못하고 밭에서 썩어가는 감자를 앞에 둔 농부의 애끓는 인터뷰는 음식물 쓰레기를 줄여야 한다는 공감대와 행동을 촉발하는 시금석이 됐다.
음식 공유 사이트인 ‘푸드셰어링’(
Foodsharing.
de)은 그렇게 해서 탄생했다. 현재 정규 회원만 5만 5000명에 달하며 이들이 지난 한 해 아낀 음식물 양만 1000t에 달한다고 신문은 전했다. 푸드셰어링은 연쇄반응을 일으켰다. 또 하나의 음식물 절약 사이트(
Lebensmittelretten.
de)가 출연했다. ‘푸드 세이버’로 명명된 사이트 회원들은 채소 가게나 빵집 등과 협력해 그날 팔지 못하고 남은 재료들을 거둬가 이웃과 나눈다. 독일뿐 아니라 이웃 오스트리아, 스위스 등지까지 확산해 ‘푸드 세이버’로 활약하는 사람만 9000명가량이며 독일에서만 상점 1000곳이 동참하고 있다.
‘디너 익스체인지 베를린’은 레스토랑과 농산물 매장에서 미처 사용하지 못한 재료들을 가져와 케이터링(음식배달) 서비스를 하는 곳이다. 몇 달 전 베를린에 문을 연 레스토랑 ‘큘리너리 미스피츠’는 단순히 모양 때문에 상품성을 상실해 쓰레기가 될 운명에 처한 채소를 농가에서 직접 공급받아 요리한다. 턴은 “먹거리 나눔이 끼치는 영향은 아직 제한적이며 음식물 쓰레기 방지를 위한 온전한 해결책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중요한 것은 이를 통해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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