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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나는 서울 금천구 독산동으로 향했다. 글벗이자 한의원 원장이며, 무엇보다 인간적인 정이 깊은 김동휘 선생님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일산에서 전철을 타고 대림역에 내린 뒤, 택시를 타고 ‘연변보신탕’ 식당에 도착하니,선생님께서는 벌써 개장국 두 그릇을 주문해 놓고 나를 기다리고 계셨다.
일산과 독산동은 거리로 보면 불과 한 시간 남짓이다. 하지만 사람과 사람이 만난다는 건 단지 거리의 문제가 아니다.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살이 속에서, 마음 맞는 이와 마주 앉는 시간은 무엇보다도 귀한 법이다.
한국에 형제자매가 있어도, 이제는 생일이나 추석, 설 같은 명절이 아니면 얼굴 보기조차 쉽지 않다. 예전처럼 총각시절, 일하기 싫을 때 친척 집에 들러 열흘씩 머무르며 지내던 그런 시절은 이미 지나갔다. 요즘은 손자도 그렇다. 초등학교 6학년인 손자에게 “주말에 외할아버지 댁에 바람 쐬러 가자”고 해도, “집이 제일 좋아요”라며 가지 않으려 한다. 세상도, 사람 사는 방식도 달라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오늘, 김동휘 선생님을 만나기 위해 폭염을 무릅쓰고 기꺼이 길을 나섰다. 우리는 어릴 적부터 어울린 친구도 아니고,고향 사람도 아니다. 김선생님은 연변 출신이고, 나는 요녕 압록강변 출신이다. 흔히 연변 사람들은 요녕 사람보다 머리가 좋고 한수 높을것이라고 지적하는 말이 있지만, 나는 그런 경계를 짓고 싶지 않다. 실제로 우리는 4년 전 한민족작가 소통방에서 처음 인연이 닿았고, 재한동포문인협회에서 다시 만남이 이어지며 고향이나 출신을 넘어 마음으로 통했다.
솔직히 말해 예순을 지나고 칠순 언저리에 이른 지금, 나는 많은 것들을 내려놓으며 살아간다.
20대 청년 시절, 삼국지의 유비, 관우, 장비나 수호지의 무송,노지심 같은 영웅호걸들을 흠모하며, 강가의 버드나무 아래서 사발에 60도짜리 배갈을 따르고, 손가락을 베어 피를 떨어뜨려 다섯 형제를 맺기도 했다. 그 시절 나는 친구들과 함께 마을을 누비며 개선가를 부르고, 교학 연구를 놓고 밤새 열띤 토론을 벌였으며, 여름방학이면 요녕의 조선족 작가들과 모여 삶과 문학을 이야기하던 글벗들도 있었다.
그러나 세월은 흘렀고, 지금은 모두들 뿔뿔이 흩어져 소식마저 끊긴 이들이 많다. 아마 나를 이미 저세상 사람이라 여기는이도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유독, 김동휘 선생님과의 인연만은 놓을 수가 없었다.
식당 안에는 손님이 하나둘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따금씩 “원장님, 안녕하세요!” 하는 인사가 오갔고, 어떤 분은 웃으며 말했다.
“지난번엔 팔을 못 들었는데, 원장님 침 한 방에 휙휙 돌아가요!”
또 다른 손님은 “무릎이 아파 걷지도 못했는데, 사흘 침 맞고 정상으로 돌아왔어요.”라고 말했다.
그 말들 속에는 감사와 신뢰, 그리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따뜻한 정이 담겨 있었다.
그는 단순한 한의사가 아니었다. 이웃의 아픔을 어루만지고, 마음까지 돌보는 벗 같은 존재였다.
식사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설 무렵, 김동휘 선생님이 내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자주 뵙진 못해도, 형님 마음은 늘 느끼고 있습니다.”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돌아서는 발걸음엔 묘한 아쉬움이 실려 있었다.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아니, 또 만날 수는 있겠지 !
시간은 쉼 없이 흘러가고, 우리 나이는 기다려주지 않는다.
전철역으로 향하는 택시 안, 창밖으로 스치는 거리 풍경이 괜히 낯설게 느껴졌다.
하지만 오늘의 이 짧은 만남은, 내 마음속에서 오래도록 따뜻한 장면으로 남을 것이다.
만남은 우연처럼 오지만, 진짜 친구는 마음에 남는다.
몸은 멀어져도, 마음만은 늘 곁에 있는 사람.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이별 속에서 희망을 가진다.
그래도, 노후에 친구가 있기에...
신석운
2025년 7월 23일 (전철에서)
신석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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