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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년 11 월 18 일, 와세다대학지역・지역간연구기구 일미연구소와 재일본조선족작가협회의 공동주체로 열린 국제포럼에서 발언할 기회를 가졌다.
정치학이 전공인 필자는 와세다대학에서 일본어와 중국어로 국가를 주제로 여러차례 발표,발언을 했었다. 하지만 필자한테 가장 가까운 언어로 자기 민족을 담론할 수 있는 기회를 준 주최측 관계자들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용기를 내어 <조선족과 진리의 사이>라는 추상적이고 큰 주제로 발언을 준비했다.
<조선족 문학과 예술의 현황과 미래>를 논의하는 국제포럼의 주제에 맞추어, 필자는 재일본중국조선족의 일원으로 조선족의 현재를 사색하며 미래도 지향하면서 자신을 포함한 우리한테 비판적이며 건설적인 문제 제기를 하는 것이 제일 마지막 발언자의 책임이라고 정리하였다.
제목에 담긴 “진리”란 단어가 당돌하게 느껴질 수 도 있지만, 문학, 예술을 포함한 문화의 토론에 있어 진리는 회면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꼭 의식해야 할 가치이고, 논의해야 할 주제이다.
진리에 대한 탐구는 인류의 보편적인 진취의 자세라고 필자는 이해한다.
진리란 영어로 TRUTH 이고, 라틴어의 VERITAS 에서 왔다. 하버드대학의 로고에 베리타스(VERITAS)를 담았고, 서울대학교 로고에도 베리타스(VERITAS)에 광명(LUXMEA)을 적었다.
이렇게 세계 일류의 대학, 우리 민족의 최고의 대학교에서 진리를 로고에 찍었다는 자체가 지식과 지혜의 창조에 있어서 진리에 대한 추구가 얼마나 필수적이고 궁극적인지를 가늠할 수 있다. 필자는 이번 기회에 하버드 대학의 로고라는 하나의 거울/참조치에 조선족을 비추어 보면서, 우리와 진리의 사이, 더 나가서 아리랑과 진리의 사이에 관해서 사색하고자 한다.
하버드대학의 로고와 그 거울에 비춰보는 우리의 모습
하버드대학교 로고
서울대학교 로고
위 사진에서 보다시피 현재 하버드대학 공식적인 로고는 “VERITAS”를 VE, RI, TAS 로 나누어 펼쳐진 세권의 책에 담았다. 이 세권의 책에 찍힌 문자를 합해야만, 진리라는 단어가 성립되며, 진리란 한권의 책에는 담을 수 없다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필자는 하버드대학교 방문학자로 소속된 시절, 하버드 야드를 산책하면서 로고에 담긴 하나의 비밀을 발견 했다.
하버드 야드에 있는 대학 창시자 죤 하버드(John Harvard)의 동상 오른쪽에 박혀 있는 원초의 로고를 보면 우에는 펼쳐진 두권의 책이 놓여져 있고 아래에는 펼쳐진 책을 덮어놓은 위에 TAS가 적혀 있다. 대학내의 몇개 건물과 입구엔 지금도 원초의 로고가 남아 있다. 필자가 궁금했던 점은 왜 아래의 세번째 책은 펼쳐서 엎어 놓았을 가였다.
호기심 때문에 여러 교수님들과 직원들한테 세번째 책을 엎어 놓은 이유와 상징적인 의미를 문의했는데, 원초와 현재의 로고의 다른 점에 대해 알고 있는 이들이 거의 없었다. 두 로고의 차이에 대한 호기심과 문헌조사의 흥취의 차원에서 필자가 찾아보니 여러가지 해석이 있었다.
하버드대학은 교회 배경이 있는 대학인지라, 진리는 교회와 그리스도에 있다는 점을 강조한 부분은 전제였다. 허나 역사가 있는 교육 연구의 권위적인 대학교로서 진리의 탐구에 있어서의 필요한 자세를 강조했던 원 제안자의 발상이 담겨져 있었다. 여러가지 설법에 대해서 필자 나름대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즉 세번째 책을 펼쳐서 엎어 놓은 이유는 진리의 탐구에 있어서,
1) 신의 절대성(THE ALMIGHTY)과 이성(REASON)에 대한 회의와 응시 자세의 필요성
2) 모든 질문에 대해서 두가지 측면에서 고려해야 함에 대한 지지
3) 책에 담긴 이미 발견된 이성의 한계와 아직 발견되지 못한 진리의 잠재성에 대한 열린 자세
4) 책에서만 습득할 것이 아니라 실천 속에서 체득하며, 책에 담긴 지식과 실천의 지혜를 융합해야 한다는 점. 반대로 일부 지혜는 책 속에서는 습득할 수 없다는 뜻을 담고 있었다.
필자가 하버드대학의 로고에 깃든 의미를 찾고, 정리하는 과정은 진리의 다면성과 다양한 접근방법을 후세 사람들에게 제시하는 로고의 상징적인 힘을 재확인하는 과정이기도 하였다.
하버드 대학의 로고에 비춰지는 우리의 모습은
이제 본론으로 돌아와 보자.
진리의 탐구에 있어서의 상징적 의미를 부여한 하버드대학 로고라는 거울에 필자를 포함한 조선족을 비추면 어떤 모습일가? 진리의 추구에서 강조한 실천성에 조회하면 적응력이 강한 조선족의 하나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가 싶다. 우리 선조들은 조선족이란 명칭을 갖기 전부터 반도에서 대륙에 넘어와, 대륙에 퍼져, 그리고 현재는 섬나라에까지 와서, 이향의 설음을 이기고 미지의 환경에 적응, 생존, 정착, 창조를 하면서 강한 적응력과 실천성을 과시해왔다.
다만 본문에서는 선조들을 포함한 우리의 적응성과 실천성에 대한 우월감이 아닌 미래 지향에 있어서 우리가 꼭 직면해야 할 다음의 두개의 과제에 대해 지적하고 싶다.
1) 조선인/족들이 실천 속의 갈등, 체득한 경험과 교훈 등을 문학 지식의 가치차원으로 승화시켜 인류의 공공자원으로 책에 담는 일.
2) 인류가 남겨 놓은 책에 담긴 지식과 지혜를 습득하고 비판적으로 대화하면서, 조선인/족들이 남겨놓은 지식과 지혜를 융합시켜 새로운 진리를 탐구하는 일.
이번 국제포럼이 조선인/족들의 실천경험, 교훈과 감정을 문학으로, 예술로, 문화로 다루려 하는 첫 시도라는 점에서 필자는 하나의 질적인 변화와 진보라고 평가하고 응원한다.
허나 현단계에서는 책 속의 이론에만 집착하는 소위 연구자들과, 실천을 선호하는 실업가들, 활동가들이 상호간의 대화와 학습이 아닌, 상호 경시의 현상이 우리 주변에 너무 보편적으로 존재한다는 면을 꼭 직시하고 넘어 가야 한다. 이 부분에 대한 주동적인 인식과 따르는 개선이 없다면 조선인/족 문화와 진리 사이의 거리도 줄어들지 않는다는 것이 필자의 우려 사항 중의 하나이다.
아리랑의 고개를 넘어서 어디로 가냐?
여기에서 필자는 우리가 체득한 경험과 교훈, 그 속에서 키워온 감정을 지식과 지혜의 차원으로 순화, 부화시켜, 우리들이 집요해온 공감대, 공동체 의식만이 아닌, 다양하고 다원화하며 타자와 대화할 수 있는 보편성을 모색할 시기가 됐다는 하나의 소견을 공유하고 싶다.
마음으로 불러온 <아리랑> 은 우리 민족의 숙명의 노래이고, 아리랑 고개를 넘어가면서 고향을 떠나는 이별의 아픔과 향수가 근저에 깔린 주제의 노래였다. 하지만 우리는 이젠 아리랑 고개를 넘어서 어디로 가나를 생각하는 출발점에 서야 한다. 필자는 공동성에서 공공성으로, 감정에서 이성으로의 전환이 바로 우리가 넘어가야 할 고개라고 판단한다.
☑共同性에서 公共性으로
본문에서 제일 강조하고 싶은 것이 바로 특수성에서 이탈하여 보편성을 모색하고, 공동성에서 해탈하여 공공성의 씨앗을 찾아 심자는 제안이다. 우리는 조선인/족이라는 공동체 의식을 강조하는 사고의 관성을 타파하고 이젠 인류 보편적인 가치 차원에서의 공공성을 봐야 한다.
우리들 만의 공감대를 근저로 하는 공동성에만 집착하면, 이동과 거주의 개인/집단적인 추억, 고통, 향수의 반면에 실천 속에서 이루어진 당분간의 성공에 대한 여운과 그 반추에만 멈추어 있을 수 있다. 그러는 과정에서 중복되는 우리만의 특수성과 고유성에 대한 집요의 연장선에는 절대적인 자아긍정과 편의적인 선민의식에 빠질 위험성이 따른다.
타자와의 대비 속에서 나오는 탁월감(Distinction)에 대해 상대화할 수 있는 자아 검증의 자세는, 타자의 비판과 지적이 아닌, 우리 스스로가 갖추어야 하지 않나 싶다.
조선인/족의 문화가 우리만의 것이 아니고 타자의 문명과 대화할 수 있도록, 나중에 인류문명의 영양분이 될 수 있는 공공성의 씨앗을 품고 문화를 키울 수 있는 새로운 차원이 지극히 필요하다. 언제까지 우리끼리 놀고 그 흥과 향수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겠는가!
이젠 도취에서 눈뜨고 싶다.
☑감성에서 이성으로
우리들의 몸에 배인 세련되고 정서적인 감성은 조선인/족 문학과 예술을 풍부하게 지켜 온 소중한 자원이였다. 다만 지금부터는 이성 (REASON)도 의식할 시기가 되였다고 필자는 판단한다. 감성 뿐이 아닌 이성을 무기로 비판적인 검증과 이성적인 분석이 있어야, 우리들이 체득한 경험과 교훈을 흔들리지 않는 지식, 지혜로 남겨둘 수 있다. 이는 진리의 탐구에서 회피할 수 없이 꼭 넘어야 할 고개라고 필자는 본다. 합리적인 태도를 표현한 중국어의 通情達理(통정달리) 에 조회하면 우리는 통하는 정을 우선하고 그 정에 집착한다. 허나 정을 떠난 합리적인 도리를 외면하려는 경향이 보일 때가 많다.
진리란 좋고 싫다가 아닌, 합리성과 도덕성의 논의의 대상이다. 감정적인 갈등이 있더라도 도리와 도덕의 차원에서 함께 사고하고 행동하는 모습이 바람직하다고 필자는 늘 자신한테 경고한다.
때로는 도리가 통해야 정도 통한다는 관계상도 그려보고 싶다. 합리적으로 우리의 감성을 이성으로 순화시켜, 즉 自己愛를 自己知로 순화시켜, 우리들의 근/현대성(Mordenity)을 스스로 찾아 정리하는 것이 바로 우리가 꼭 넘어야 할 아리랑의 고개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후세에 우리의 기억과 문화자원의 하나인 아리랑을 꼭 이어 줘야 하지만, 아리랑의 아픔과 망설임이 아닌, 아리랑 고개를 이성으로 넘어가 새로운 세계를 보고 느끼고 개척하면서 체득하여 남겨 놓은 우리의 지혜도 함께 남겨주어야 하지 않을까. 우리가 이 작업을 게을리하면 후대들의 방황도 지속되고 반복될 것 같아서 필자는 안타까울 때가 있다.
비록 크고 추상적인 제안처럼 들릴 수도 있으나, 기업가들이 만들어낸 상품을 작품으로 재인식하고, 우리의 흥을 예술로 이해하면서, 우리의 주위에 있는 예술, 문학을 지향하는 분들을 소중한 씨앗처럼 존중하는 것이 바로 소중한 첫 걸음이 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스스로 문학을 키우고, 예술을 키우는, 성숙된 자세이다. 이런 씨앗을 키우는 자세를 갖추고 계승해야 만이 우리의 미래가 문학으로 예술로, 문화로 다채로워 질 수 있다.
우리는 언제까지의 미래를 그려보았나?
필자는 상상력이 풍부한 민족이 우수한 민족이며, 강한 민족이라고 본다. 그럼 우리는 스스로의 미래를 언제까지 내다 보았을가? 다시 말하면 우리의 미래에 대한 상상력의 射程은 얼마나 길 가를 가끔씩 연상해본다.
재일본 중국 조선족들의 발자취를 찾아 보다가 미래에 대한 상상력의 필적인 담긴 자료를 발견했다. 1990 년대 후반에 조선족 출신들의 유학생들이, 일본사회 정착과정에 따르는 고민과 사고를 기록하여 제 31 기 까지 발행한 <천지인문>이라 하는 뉴스레터이다. 제일 마지막호 1999년12월호의 序文-- <천지 인문의 밀레니엄>을 여기에서 소개한다.
<천지인문>이 탄생하여 3 년이 좀 더 되였다. 재일 중국 조선족들의 모임인 천지구락부를 중심으로 운영되는 이 잡지는, 잡지라는 이름에 부끄러울 정도로 아직 너무나 미숙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일 중국 조선족 여러분, 조선족에 관심과 애정을 주시는 일본사회의 여러분들의 지지를 받으며 앞으로 나가고 있고, 행운스럽게 20세기부터 21세기를 넘어 새로운 천년을 맞이한다.
작지만, 이상이 있고, 기개가 있고, 특색이 있는 잡지로 만들고 싶다. 민족에서 민족을 넘어, 국가를 의식하면서 국가를 초월하여, 글로벌한 지구촌의 자유로운 매체로 되고 싶다.
21 세기말에도 <천지인문>은 발행 될가? 3000 년이라는 밀레니엄에도 <천지인문>은 사람들의 기억속에 남게 될지?
우리들의 노력에 달려있다.
『天池人文』のミレニアム
『天池人文』が誕生して3 年あまりになる。在日中国朝鮮族の集まりである天池倶楽部を中心に運営しているこの雑誌は、雑誌という名に恥ずかしいくらい未だに極めて未熟なものである。それでも在日中国朝鮮族の皆様、朝鮮族に関心と愛情を示している日本社会の皆様に支えられながら、前に向かって進んでいるし、幸運にも20世紀から21世紀を跨り、新しい千年を迎えようとしている。
小さくても、理想があり、気概があり、特色のある雑誌に創り上げたいものである。民族から民族を乗り越え、国家を意識しながら国家を超越する、グローバルな地球村の自由なメディアになりたいものである。21世紀末にも『天池人文』は発行されるだろうか。3000年のミレニアムにも『天池人文』は人々の記憶に残るだろうか。
我々の努力次第である。
필자는 여태껏 100 년 단위인 세기(Century)로 사물, 역사와 미래에 대해 사고해 왔다. 하지만 조선족 출신 선배들이 1000 년을 단위인 밀레니엄(Millennium)을 단위로 3000 년 후까지 상상해보았다는 필적에 놀라웠다. 그 기를 받아 3000 년 후를 상상해 본다면 우리는 인류문명에 어떤 史跡이 되어 있을까?
이번 국제포럼의 공동주최자인 재일본조선족작가협회의 동인지로 출간되는 <새벽>(暁)은 어떤 고민과 사색들을 기록할지?응원하는 마음으로 기대해 본다.
포럼을 마치고 와세다대학에서 개최된 화합의 장(연회)에서 조선족 출신인 조병철 가수가 부른 윤동주의 <서시(序詞)>(노래버젼)가 이 시각도 필자의 마음에 여운을 남긴다.
……그리고 나에 주어진 길을 나는 걸어가야 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일본땅에서 죽은 윤동주의 시를 우리말로 와세다대학에서 노래 부른다. 이는 80 여 년 전이면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이다. 시대는 변했고 또 변하려 한다. 다음엔 어떤 시대가 올련지?
이 시각, 평화를 아끼고 지켜야 한다는 소망과 더불어 <서시>의 운율이 필자의 마음에서 긴장감과 함께 여운으로 울려 퍼진다.
健 達
2023년 년 11월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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