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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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문) 진리를 평범하게 말해보다
2018년 10월 05일 11시 27분  조회:3971  추천:0  작성자: 최균선
                                           진리를 평범하게 말해보다
                                   
                                                         진 언
 
    금옥지언 한마디가 만마디를 당하고 마디마다 진리이던 그 시절에 진리는 하나 이고 보고 듣는것이 지구촌이 돌아가는 진실인줄 알고 자족하면서 진리란 그저 심오 하여 함부로 입에 담을 말이 아닌줄로 알던 초민백성들이였는데 국문이 열리고 서방 사상사조가 물밀듯 쓸어 들어오면서부터 진리와 진실이란 개념이 일상구두어로 되였다. 말하자면 진리도 평범하게 말하게 된것이다.
    현시대, 세상은 형언할길없이 복잡다단하게 변하였다. 우리들이 곤경에 처했을 때 절감한것은 지식의 부족이 아니라 이른바 정보의 과잉으로 인하여 오히려 얼떨떨 해진다는것이다. 인류는 오늘날 같이 막연한 감을 느낀때가 종래로 없었을것이다. 서점가에는 어떻게 생활하고 어떻게 사람을 대하고 이런저런 문제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하는 잡다한 지도서들이 련속부절히 진렬되는데 한평생 읽어도 다 읽을수 없을만큼 무진장하다. 그리고 그것이 모두 진리를 표방하고 있어 알쏭달쏭이다.
    그뿐만아니라 다양한 잡지들에서도 어떻게 말해야 하고 어떻게 주위분위기에 맞춰야 하고 어떻게 신통광대하게 처사할것인가를 알려주고있다. 그러나 이런 인생지남서들은 흔히 서로 모순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되고 허무함을 숨기지 못하게 된다. 그도 그럴것이, 허위에는 요란한 증명이 필요하지만 진리와 진실은 실재하는것으로서 따로 증명이 필요없기때문이다. 칼릴 지브란은 증거를 필요로 하는 진리는 반쯤만이 진리라고 하였다.
    하지만 현실생활에는 허위가 더 요란을 피우고있다. 그렇게 된 연유를 밝힌 우화 한편이 있다. 오랜오랜 옛날 어느해 여름날, 오유가 진리에게 함께 강에 가서 목욕 하자고 청들었다. 진리는 이것이 오유의 음모궤계일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날씨가 무덥고 강물은 시원한지라 진리는 마음껏 자맥질하며 즐기였다. 그러나 오유는 진리가 주의하지 않는 틈을 타서 진리가 벗어놓은 옷을 입고 줄행랑을 놓았다. 진리는 뒤늦게야 오유의 간계에 빠진것을 발견했지만 후회막급이였다.
    진리는 강물속에서 나오지 못하고 그저 전전긍긍했다. 옷이 없이 어찌 백주대낮에 벌거벗고 나선단말인가? 오유가 벗어놓은 옷이란게 보이긴했으나 오유를 뒤집어쓰고 세상에 나설수는 없었다. 진리의 외투를 걸친 오유는 온세상을 보란듯이 활개치며 돌아다녔다. 그리하여 진리가 신을 신고있는 동안 유론은 언녕 온 세계를 돌아다닌다고 말한다. 바로 이 우화처럼 생활속에 이른바 오유가 진리리처럼 가장하며 사람들을 미혹시키고 진리는 알몸으로 나타나서 사람들이 외면해버리기 일쑤이다. 이로부터 사람들이 오유에 잘 미혹되지만 진리를 믿으려하지 하지 않는것이다.
    실천은 진리를 검증하는 유일한 표준이라는 말도 있거니와 실천은 리론을 검증하는 기본도경이라는 말도 있다. 당시는 절대적진리였다. 진리가 성장하는 옥토는 민간에 있다고 했듯이 진리는 평범한 농민의 입에서 나온다고도 한다. 민간은 다원적이고 관용적이여서 상장할수 있는 토양과 공간이 있기때문이다.
    일체 진리는 사회규률에 좇아 자연적으로 생성되고 성숙된다. 황당무계와 권모술수, 죄악과 피비린 탄압이 횡행하는 궁정에서는 진리가 생성할수 없다. 바꾸어 말하면 진리는 권력의 부속물이 아니기에 봉건통치집단은 진리와 인연이 없었다. 그리고 좀 생각할줄 아는 머리는 아예 질색이였으니 진리를 운운할수 있었겠는가?
    똘쓰또이는 말한다. “가장 위대한 심오한 진리는 가장 단순하고 소박하다.” 진리는 다분히 평범한 생활속에 있다고 할진대 평범한것이 곧 진리이다. 진리는 어디까지나 민중의 생활속에 있기에 그처럼 평범하다.
    진리는 문제를 가장 단순하게 만들어준다. 례하면 달걀로 바위치기나 맨발로 바위차기는 대항해서 도저히 이길수 없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속담으로서 유식하지 못하였던 우리 선조들이 만든 절대진리이다. 그러나 바위와 달걀의 부딪침에서 왜 어디까지나 달걀만 어리석은자로 되는가? 하는 의문은 또 다른 심각한 문제를 불러올수 있다. 하나의 달걀이 차집에서 차를 “마시고”나면 결국 차물에 절어든 차닭알(茶蛋)이 된다 사회역시 바로 이런것이다. 이는 조금 심오한 진리이다.
    싸리긁에서 싸리가 난다는 농촌말도 생물의 유전법칙에 대한 평범한 진리이다. 그러나 광란의 시기,“애비가 영웅이면 아들은 호한이고 애비가 반통파이면 그 아들도 망나니이다”라는 말이 당시에는 진리인듯 거국적으로 진동작용을 하였지만 미친놈의 잠꼬대가 아닐수 없다. 이 말은 실제상 봉건사회에서 “룡이 룡을 낳고 봉황이 봉황을 낳고 쥐가 새끼를 낳으면 굴을 뚫는다”는 유론의 재판본이다.
    재난은 진리의 첫걸음이던가,선각자 우라극이 혈통론의 반동성을 까밝혔는데 오히려 반동언론이 되여 억울한 죽임을 당하였다. 진리의 수호자는 처절한 대가를 치러야했던것이다. 맑스의 명언을 옮긴다면 진리의 입구는 지옥의 입구와 같아서 력사적으로 수많은 인의지사들이 진리를 견지하고 지키기 위해 나중에 생명마저 바쳤다. “나는 진리를 위해 태여났고 진리를 위해 죽을것이다. 진리를 내놓고 나자신의것은 없다”는 왕약비의 호연지기는 비장하지만 지금 사람들은 달리 해석할지 모른다.
    진리의 모체는 언론자유이다. 이역시 통속적인 진리다. 공포와 노역은 오직 우매를 낳을뿐이며 윤토나 아Q 같은 우민들과 조고따위의 인간패류들을 낳을뿐이다. 우민은 담장에 머리를 부딪칠저언정 머리를 쳐들줄 모른다. 한사람의 머리를 따른 억천만 사람들은 만세를 부를줄만 알았지 참말을 할줄 몰랐다. 노복으로 자족할뿐 자신이 공민인줄 모른다는 서술이 있다. 진리의 전제는 사람마다 참말을 하는것이다. 굳어진 두뇌로 내뱉는 말이란 잠꼬대같은 뇌까림에 불과하다.
    진리는 실천의 아들이지 권위의 사생아가 아니다. 그럼에도 권세는 흔히 진리를 대체하고 진리의 “태상황”이 되려고 한다. 맑스는“인간의 사유가 객관적규률성을 가지고 있는가 없는가 하는것은 리론문제가 아니라 실천문제이다.”라고 하였다. 맑스의 말처럼 력사적으로 진리는 “이단사설”로 취급당하였지만 진리였다는것을 시간이 증명하였다. 진리는 백학처럼 자기 갈길을 가는 성정을 가지고있는것이다.
    로자의《도덕경》에“(執大象, 天下往, 往而不害, 安平太. 樂與餌, 過客止, 道之 出口, 淡乎其無味,視之不足見, 聽之不足聞, 用之不足旣.)도를 지켜 살아가면 세상 어디를 가도 방해하는것이 없어 항상 마음이 편안하고 화평하고 태평하다. 즐거운 음악과 좋은 음식이 있는 곳에서는 지나가던 나그네도 걸음을 멈추지만 무위의 도는 그것을 입밖에 내더라도 담담하여 세속적인 맛이 없다. 눈여겨 바라보아도 볼수가 없고 귀기울여 들어보아도 들을수가 없고 그것은 써도 끝이없는 무한한 기능이 있다.”고 했다.
    진리문제는 단순히 시비문제가 아니다. “진리” 가 행위와 결과사이의 관계라면 “시비”는 행위의 동기와 결과사이의 관계이다. 이러할진대 우리는 지난날 얼마나 진리에서 소외되였던가를 개탄하게 된다. 로버트 버튼은 바보와 미친사람에게는 진리를 평범하게 말하라고 하였는데 정상인들게도 진리를 평범하게 말하라고 하면 어페인가?
    진리도 정의처럼 늘 지각할수는 있으나 결석하는 법은 없다. 그렇지 않으면 인간세상은 그냥 무지와 몽매로 도배될것이다. 지각한 성찰도 성찰이다. 비물이 땅에 떨어지는것은 하늘이 비의 무게를 받아당할수 없기때문이고 눈물이 흘러내리는것은 마음이 그런 아픔을 담아줄수 없기때문이다. 진리의 납함도 마찬가지가 아니겠는가!


                                            2012년 12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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