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도문시 홍광향당위에서 사업할때인 1983년에 “당지부서기는 군중의 마음속 기둥이 되여야 한다.”는 글을 에 투고하여 처음 발표하였다.
그러니까 이를 시작으로 올해까지 내가 과 맺은 인연이 꼭 40년이다.
40년간 나는 많은 원고를 투고하면서 편집부와 기자들의 지도와 배양하에 “우수통신원”이란 영예까지 지니였다.
40년의 체험으로 나는 을 “시대의 길잡이다”고 부른다.
호도거리농업생산책임제“길잡이”
내가 1983년에 중공도문시당위 정책연구원에서 사업할 때는 농촌서 호도거리생산책임제를 전면적으로시달할 때였는데 농촌의 많은 로당원, 특히는 토지개혁에 참가했던 로간부들이“문화혁명이 끝나더니 다시 토지혁명을 한다”며 자기들이 혁명이 대상으로 된듯이 불안해하였다. 특히 집체때 수입이 쾐찮던 벌방지구의 농촌간부들이 아쉬운 마음으로“헤쳐놓으먼 못 산다”고 걱정하였다..
1983년 말, 나는 농촌에 다니며 조사연구를 했는데 도문시 월청진 마패촌의 로당원 최형송이 호도거리책임제후 첫해에 6남 1녀 자녀들의 특장에 따라 농업, 철목가공, 기와가공, 운수업으로 “다각경영련합조”를 조직하여 사상 처음 인구당 수입을 1300원으로 올올렸다.
나는 이들의 사적을 전형적인 경험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