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제:한국문학 소개 40여년, 웨이쉬성 베이징대 교수]
평생을 한글과 한국문학 연구에 매진해온 중국인 노교수가 53년 만에 꿈을 이뤘다. 웨이수청(77) 베이징대 동방언어문학부 교수가 그 주인공. 웨이 교수는 559돌 한글날인 9일 ‘40여년간 중국인들에게 한국문학을 소개하는 등 한국어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우리 정부로부터 보관문화훈장을 받았다.
“한국어 연구 53년 만에 꿈을 이뤘어요. 큰 기대는 안했지만, 업적을 인정받았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기쁩니다.” 한글날 기념식 참석을 위해 8일 한국 땅을 밟은 그의 표정은 상기돼 있었다. 하얗게 센 머리카락, 움푹 들어간 눈과 도드라져 보이는 광대뼈는 평생을 한국어 연구와 보급에 바쳐온 그의 경력과 학문의 깊이를 말해주고 있다.
‘황진이’ 등 번역한 뒤 요즘엔 문법연구 심혈
우수한 한글 고전문학 젊은이 경시풍토 애석
한글발전 공로로 훈장 웨이 교수는 그동안 중국에서 <조선문학사> <임진록> <조선어실용문법> 등을 펴냈으며, <황진이> <사씨남정기> <홍루몽> 등을 번역했다.
2000년 그동안의 연구성과를 집대성한 <웨이수청 문집>(전 6권)을 펴내기도 했던 그는 국내외 학계에서 “한국문학을 연구하는 외국인 가운데 독보적”이라는 평을 받는다. 한류 열풍을 타고 한국에 대한 중국인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그는 요즈음 더 바빠졌다. “중국인들이 한국말을 쉽게 접하고, 정확한 한국말을 쓰도록 하는 게 제가 할 일인걸요”라며 웃었지만, 문학말고도 문법에 관한 사항이 그의 새로운 연구대상이 됐기 때문이다.
그가 한글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열다섯 살 때였다.
고향인 난징에서 우연히 만난 조선의 한 젊은이가 그의 인생 항로를 결정지었다고 한다. “중국과 조선이 힘을 모아 일제의 강점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청년이 남긴 말은 어린 그의 뇌리에 깊이 박혔고, 1947년 난징 국립동방언어전문학교에 입학한 그는 한국어를 전공으로 선택했다. 하지만 그는 2년 뒤 스물한 살이 되어서야 본격적으로 한국어를 배울 수 있었다. 당시 난징을 함락시킨 국민당 정부는 그가 다니던 학교를 강제 해산하고, 베이징대에 조선어과를 만들어 편입시켰다.
웨이 교수는 대학 3학년 때 조선족이 많이 살고 있는 연변에서 1년간 생활하며 한글을 익혔다고 한다. “연변에서 생활하지 못했다면 지금처럼 한국말을 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그의 한국어 실력은 한국인 못지 않게 뛰어나다. “한글은 과학적으로도 우수하지만 매우 특별해요. 사물의 상태를 표현하는 말이 매우 다양하면서도 명확하고, 계층(존칭어)과 인칭을 표현하는 말도 많아요. 중국어나 영어는 한글의 표현력을 따라갈 수 없어요.” 웨이 교수는 한국의 젊은이들이 한글과 고전문학을 경시하는 세태를 안타까워했다. “한국인들은 한국말을 쉽게 배워 쓰니까 그 우수성을 몰라요. 중국에 온 한국 유학생들 가운데 구운몽이나 사씨남정기 같은 고전을 읽었다는 학생을 보지 못했어요. 한국의 젊은이들은 한글과 한국문학에 대해 자부심과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한겨레]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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