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제: 장강을 감동시킨 아리랑의 아들]
—장강에 빠진 어린이를 구하다 희생된 조선족 영웅대학생 리흥태 사적
지난 10월 1일, 도도한 장강은 순식간에 한 생명을 삼켜버린 동시에 한 영웅을 탄생시켰다.
리흥태는 2000년 무순시조선족제1중학교를 졸업하고 중경과 학기술학원전자정보공정학원 자동화전업에 진학하여 재학중이던 대학생이다. 지난 10월 1일, 스물 한살의 리흥태는 장강에 빠진 여덟살의 어린이를 구하다 불행하게도 소용돌이에 휘감겨 희생되고 말았다.
리흥태의 영웅적행동은 산성-중경의 사라마들을 감동시켰고 그의 숭고한 정신은 사람들의 심금을 세차게 두드렸다. 사건발생후 중경시위에서는 리흥태학생의 영웅사적을 광범히 선전할것을 지시하였고 중경시의《중경저널》,《중경시보》,《중경조간》,《중경상보》,《중경TV》등 매체들에서는 련속 반달동안이나 영웅사적을 집중보도하였다. 따라서 중경시 각지에서는 영웅대학생 리흥태를 따라 배우는 열조를 일으키고 있다.
중경시공청단위원회, 중경시위교육사업위원회, 중경시 구룡파구정부에서는 각각 리흥태학생에게 《정의를 위해 용감히 싸운 중경시우수공청단원》,《정의를 위해 용감히 싸운 중경시우수대학생》,《정의를 위해 용감히 싸운 중경시 구룡파구우수영예공민》의 영예를 수여하였으며 중경과학기술학원에서는 리흥태학생에게 《우수대학생》의 영예를 수여하고 리흥태가 소속되 있던 학급을 《리흥태학급》으로 명명하였다. 그리고 유관부문에서는 리흥태를 중국공산당 당원과 혁명렬사로 추인할것을 중앙에 보고하였다.
영웅의 장렬한 의거
10월 1일, 오후 4시경, 국경절련휴를 맞아 장강변을 거니는 사람들은 저저마다 마냥 즐거운 모습들이였다. 이날 리흥태와 학우들도 중경시 양가평 직항거리 장강룡풍계구간의 강변에서 유유히 산보를 하고 있었다. 그들주변에는 두 어른이 일여덟명의 어린이를 데리고 놀고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지나가던 큰 화물선이 일으킨 거센파도에 강변에서 손을 씻고있던 여덟살나는 락빙죽 어린이가 강물에 휘말려들고 말았다. 헤염을 칠줄 모르는 락빙죽 어린이의 고모부인 한학위는 급히 강변의 나무가지를 주어 들고 물에 빠진 락빙죽을 건지려하였으나 허사였다. 아이는 강심으로 십여메터나 말려들어갔다. 그제야 급해난 그들은 사람을 살리라고 웨쳐대였다.
사고현장과 멀지 않은 곳에 있던 리흥태와 학우들이 구명소리를 듣고 바라보니 사품치는 장강에서 한 어린이가 허우적거리며 떠내려가고 있었다. 경각을 다투어야 했다. 리흥태는 추호의 주저도 없이 핸드폰과 돈지갑을 학우들에게 던져주고는 풍덩 장강에 뛰여들었다. 9월말 련며칠 내린 폭우로 중경구간의 장강은 홍수가 나있었고 강면에는 집체같은 파도와 범아가리같은 소용돌이가 일고있었다. 10메터, 20메터, 30메터… 리흥태는 온힘을 다하여 어린이를 향하여 헤염쳐 겨우 떠내려가는 어린이를 따라잡은 리흥태는 단숨에 어린이의 옷깃을 거머쥐였다. 그런데 이때 정신없이 허우적이던 어린이가 두손을 뻗어 리흥태의 목을 끌어안고 놓지 않았다. 리흥태와 어린이는 함께 물에 떴다 갈아 앉았다를 반복하면서 십여메터를 표류해서야 리흥태는 겨우 어린이를 떼내여 물우에 추겨들수 있었다. 리흥태는 있는 힘을 다해 강변을 향해 헤염쳐 갔다. 몇번인가 그들은 거의 강변에 닿을번하였으나 결국은 다시 파도에 밀려 강심으로 쫓기였다. 집체같은 파도는 리흥태에게 숨돌릴틈을 주지 않았고 거세찬 물살은 피끓는 이 20대젊은이의 마지막 힘마저 앗아갔다. 이때 그가 물에 빠진 어린이를 포기만 하였어도 살아날수가 있었다. 하지만 리흥태는 마지막까지도 물에 빠진 어린이를 꼭 끌어안고 강변을 향하여 헤염을 쳤다. 50메터, 20메터, 10메터… 최후로 강변과 5메터밖에 남지 않았을 때 급한 소용돌이가 다시 그들을 삼켰다.
그후 리흥태와 어린이는 다시는 물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동행했던 학우들이 즉시 수상경찰서와 학교에 보고를 하였다. 중경장강구도구수상순라대에서는 즉시로 구원쾌속정을 파견하여 사고현장주위에서 수색, 구주작업을 펼쳤으나 리흥태와 락빙죽을 찾지 못하였다. 중경과학기술학원에서도 소식을 접한후 현장군중들과 학교의 학생들을 조직하여 장강 강변을 따라 수색하는한편 사람찾는 게시문을 수천장이나 찍어 강변구역에 배포하고 중경장강수상경찰총서와 소속 수상파출소들에 팩스를 보내 수색협조를 요구하며 밤늦도록 전면적인 수색구호작업을 하였으나 역시 허사였다.
리흥태는 21살의 젊은 나이로 짧은 인생을 마쳤지만 그 짧은 인생궤적우에 민족정신, 시대정신의 장쾌한 화폭을 수놓았다. 리흥태는 장강에 실려 먼곳으로 갔다. 그러나 그는 그가 남겨놓은 숭고한 정신과 함께 영원히 21세 청춘으로 우리와 함께 있을것이다.
신석윤, 기자 윤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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