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김석봉 변호사가 베이징잉커(광저우)율사사무소 상담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수봉 김호 기자
(흑룡강신문=하얼빈) 변호사는 법률로 사회의 병폐를 다스리고 질서를 지켜가며 정의를 신장한다. 어려서부터 많은 꿈을 가진 김석봉(43)씨는 중국 최고 명문대인 베이징대를 졸업하고 아시아 최대 로펌인 베이징잉커(盈科.광저우)율사사무소에 입사해 광둥 한겨레사회 법률 수호신 역할을 차분히 수행해 가고 있다.
낙숫물이 바위를 뚫는다
김석봉 씨는 독립투사 김좌진 장군이 과거 활동하던 헤이룽장성 해림에서 출생, 어릴 때 변호사, 의사, 작가, 과학자 등 꿈이 많았던 소년으로 밀산고중에서 베이징대 무역학부에 입학했다. 2000년 초 대학을 졸업하고 무역회사 사원으로 베이징에서 취직했다가 개혁개방의 남행열차를 타고 1번지 선전에 진출한다. 무역학과에서 배운 지식으로 비즈니스를 수행하는데는 전혀 문제가 없었지만 다니던 회사가 작은 회사다 보니 전문 법무팀이 없어 모든 계약, 수속까지 다해야 하는데 쉽지가 않았다. 이런 식으로 일을 하면서 애를 먹다보니 차라리 어렸을 적 꿈이었던 변호사 직업을 해보면 어떨가 하는 생각으로 새롭게 결심을 내리고 다시 베이징대에 가서 법률공부를 시작했다. 그 당시 상황에 대해 김 변호사는 “법학을 다시 전공하고 사법고시에 합격되고 그렇게 인생을 바꾸게 됐죠. 사실 대학까지 나와 회사에 다니면서 직업을 바꾼다는게 쉽지는 않습니다. 근데 일단은 인생에 기회라는게 그렇게 많지는 않거든요. 그리고 당시 혼자 몸이라 가정부담이 없어 홀가분한 마음으로 어릴적 꿈을 이루고싶은 욕심으로 도전하게 된거구요.”라고 말한다.
법으로 정의 지킨다
중국의 고대 법학가인 한비자는 “법을 잘 지키고 행하는 사람은 반드시 강하고 굳세며, 또한 굳고 바르다.”고 말했다. 김석봉 씨도 어린 시절부터 독서를 특히 즐기면서 정직한 삶과 정의로운 사회를 지향하는 성격을 키웠다. 베이징대 무역학과를 나와 직장생활을 하다 꿈이었던 변호사에 도전하여 자기 인생을 스스로 다시 써내려간 점이 잘 설명해주고 있다. 김석봉 변호사는 “무작정 결심하게 된 건 아니구요. 그때 당시에는 조선족 변호사가 중국 국내에 별로 없었습니다. 한국기업의 중국진출 붐이 거세차게 이뤄지던 시대라 현지 실정을 잘 알고 법률 전문지식을 갖춘 조선족 변호사에 대한 수요가 많았었죠. 그래서 전망이 밝을거라는 신심을 갖고 하고싶었던 일을 다시 찾았을 뿐입니다.”라고 말한다. 베이징대를 두번 졸업하고 찾은 직장은 상하이에 있는 규모가 작은 율사사무소, 이곳에서 1년 견습하고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2006년부터 광저우에 진출하여 재광둥 한국기업과 조선족업체들에 대한 각종 의뢰건을 담당하다가 2012년 아시아태평양지역 제1위 로펌인 잉커율사사무소에 가담해 한국부 부장을 맡았다. 잉커율사사무소는 전세계 53개 국의 113개 도시에 네트워크를 확보한 글로벌 초대형 로펌으로 한국 변호사 총수에 해당하는 4800명 변호사를 두고 있다. 김 변호사가 주로 다루는 업무는 기업 인수합병, 형사변호, 불량채권 처리, 중국증시 상장 , 회사 법률고문 및 이혼소송 업무이다. 김석봉 변호사는 “변호사는 특히 풍부한 노하우와 경험이 필요한 직업으로 흥취가 가장 훌륭한 선생님이지요. 직업에 대한 애착과 열정의 초심을 항상 명기해야 후회할 일이 없습니다. 변호사도 시대의 발전에 따라 법률을 무기로 사회의 공정과 정의를 수호하고 고객 만족의 법률 서비스를 해드리고 당사자의 합법적 권익을 지켜 드려야 하겠지요.” 라고 직업 신조를 말한다.
▲사진= 광주한인상공회 회장과 상담후 법률고문 위촉장을 전달받고 있다.
법에 대한 경외감 갖자
주광저우총영사관 법률고문, 광저우한국상회 법률고문, 월드옥타 광저우지회 법률고문 등 협회의 법률 고문직도 담임하며 조선족, 한국인이 주 고객인 김석봉 변호사는 이렇게 말한다. “조선족, 한국인들이 가장 많이 의뢰를 하시는게 계약분쟁입니다. 계약분쟁이 많은 이유가 사실 우리 민족이 정이 많아 정을 나누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 술 마시고 노래부르고 마사지 받고 말로 대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가 어떤 사이인데…그냥 믿고 하자! 그런게 많거든요. 그러니까 분쟁이 생기게 되면 그걸 해결해야 되는데 계약서들이 많이 미비한거죠. 일단 저질러 놓고 그 다음에 문제가 생기면 해결하려는 스타일이죠. 법적 소송에 걸리면 다 증거 다툼인데 증거가 미비하다 보니 손해를 많이 보죠.”
또 조선족은 형사사건, 한국인은 성문제로 연류된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일반인들이 범죄와의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상당히 가깝습니다. 우리가 단순히 강탈, 절도, 살인을 범죄로 보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그 이상으로 범죄에 노출 되어 있는게 많습니다. 특히 조선족 분들은 술을 좋아하기에 술 마신뒤 행위를 자제하지 못해 쌍욕을 하다 주먹을 날리고. 한국분들은 기러기 가족이 많다 보니 성매매, 성추행으로 걸리구요. 일단 걸려 합의가 안되면 치안관리 처벌조례에 따라 15일 이하의 행정구류 처분을 받게 되죠. 보석이 불가능해 구치소에 감금되는데 시설이 매우 열악합니다. 가장 힘든 점이 바로 인신 자유를 완전히 박탈당하는거죠. 그러니까 사소한 거라도 조심하셔서 중국법을 준수하고 모범적인 중국조선족, 재중 한국인으로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김변호사는 “중국법조인들 사이에 이런 말이 있죠. ‘싸우면 이긴 사람은 감옥가고, 진 사람은 병원가고요’. 제 보기에는 차라리 병원가는 게 나을 수 있습니다.”라고 농담으로 법에 대한 경외감을 꼭 가지길 부탁했다.
뭉쳐야 힘이다
광둥 한겨레사회 각 협회, 단체의 조선족, 한국인들과의 교류가 활발한 김석봉 변호사는 겨레사회에 대한 견해를 이렇게 말한다. “중국의 새 시대를 연 개혁개방 정책으로 한국기업들이 개혁개방 모델인 광둥지역에 대거 진출하며 조선족들의 남하붐이 이루어졌죠. 과거 수십년간 새 삶터에 대한 개척으로 겨레사회가 이젠 더욱 성숙되고 냉정해지며 자숙된 모습을 갖춰 가고 있습니다. 급변하는 시대에 경쟁이 치열한 환경에서 잘 살아갈 수 있는 법이 바로 뭉치는 것입니다. 능력이 뛰어나고 머리가 똑똑한 사람들이 모여 좋은 아이템을 갖고 필요한 전문 경영인을 청해 투자기금 만들어 창업하고 창업 방향도 전자, 생물, 화학 등 첨단산업으로 가야 미래가 밝아요. 글로벌 시대에 맞춰 국제감각을 갖고 전 세계로 눈을 돌려야 하는 장원한 안목이 필요하죠.” 김 변호사는 또 “가장 가슴이 아프고 유감스러운 점이 민족교육이 잘 이어지지 못하는 부분이죠. 제 자신도 와이프가 타민족이다보니 어린 딸애의 앞으로 우리말 교육이 엄청 우려스럽습니다. 광저우에 있는 국제학교나 주말학교를 통해서 필요한 교육을 시키려고 하지만 그때 상황을 또 봐야겠죠.”라고 말했다. 중국 대륙 먼 남쪽 땅에서 법조계 전문인으로 자리잡은 김석봉 변호사, 맡은바 의뢰건에 최선을 다하며 의뢰인들에게 사법의 공정과 정의를 여실히 보여주는게 자신의 꿈이라고 소박하게 말하며 광둥 한겨레사회에 법적인 보호와 서비스 망을 착실히 가꿔가고 있다.
/흑룡강신문 특별취재팀 이수봉 김호 진종호 김련옥 이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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