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불굴의 민족 빛나는 발자취
조글로미디어(ZOGLO) 2012년7월10일 08시41분    조회:4396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인물이름 : 서명훈
흑룡강신문

'할빈 조선민족 백년사화' 저자 서명훈 선생을 찾아서


   최근 기자는 77세에 '할빈시 조선민족 백년사화'란 저서를 펴낸 서명훈선생님 댁을 찾아갔다.올해 여든셋 고령임에도 기자가 집 근처에 도착했다는 전화에 8층에서 아래층까지 내려와 기자의 손을 잡아주셨다.
  50여년동안 민족사업의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민족의 사명감과 책임감으로 짬짬의 시간을 짜내여 우리 민족 력사의 진실을 발굴해 책으로 남겨주신 분이셨기에 선생님이 쓰시는 서재는 창문턱 아래 스팀 옆 공간까지 구석구석 여러 가지 력사자료들과 원시 사료들로 꼭꼭 들어차 있었다.
  "저에게는 얘들보다 더 소중한것이 없어요.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목숨보다 더 소중한 보배들이죠.”
  1931년 길림성 연길현에서 태어난 서명훈 선생님은 어려서부터 력사연구에 남다른 애호가 있은 것도, 력사학자도 아니었다.
  “그런데 어떤 계기로 할빈시 조선민족 백년사화를 쓸 생각을 하시게 되셨죠?”
  “우리 민족의 얼을 지키고 민족의 권익을 지키기 위해서였지요.”
  기자의 물음에 서선생은 대뜸 찍어 말했다.
  20세기 50년대 할빈 일대가 특대 가물로 논밭들이 쩍쩍 갈라터지고 농작물이 노랗게 타들어갔다.작은 강들과 호수들은 밑바닥이 드러났고 그나마 얼마 되지 않는 수자원을 서로 차지하고자 싸움이 벌어지기도 하였다.이 같은 상황을 완화하고자 정부는 륜번으로 논에 물을 대는 정책을 내놓았다. 매우 합리적인 정책 같았지만 만약 그렇게 하면 조선족은 그해 농사를 망치게 되여있었다. 바로 그때 선생은 수전관개보뚝이 구축된 력사사실과 당시 현상태를 분석하여 어느 논밭 할것 없이 륜번으로 물을 대야 한다던 정책은 조선족 논에 우선적으로 물을 대야 한다는 정책으로 바뀌게 되였고 조선족은 먼저 논에 물을 댈 수 있어서 그나마 혹심한 가물속에서도 식량을 건질수 있었을뿐더러 나라에 얼마만큼이나 징구량을 바칠수 있어서 자긍심을 느낄수 있었다.
  조선의용군 제3지대에 참군해 전장을 누비며 싸웠던 사람이 리직조건에 부합되는가 하는 문제에서도 서선생은 관련된 력사사료를 찾아내 조선의용군제3지대는 중국공산당이 령도하는 혁명대오,무장대오로 항일무장투쟁에서 일본침략군들에 심대한 타격을 주었을뿐더러 목란,통하,동흥,방정,연수 등지의 해방전쟁뿐아니라 할빈 해방, 보위전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그 진실을 밝힌 한편 조선의용군제3지대의 유래, 투쟁사,역할,발전과정 등을 5개 부분으로 나눠 '할빈문사자료'(제10집)의 첫 부분으로 발표함으로써 피흘려 싸웠던 조선족이 당당하게 리직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이 두가지 일에서 또한 이 문제의 해결과정을 통해 서선생은 력사를 알아야 우리 민족의 권익을 보호할수 있고 력사를 알아야 민족의 자긍심을 느낄수 있으며 력사를 알아야 후대들이 선배들의 배턴을 이어받아 당당하게 도전하고 우리 민족의 새로운 발전을 꾀할수 있다는것을 사무치게 느끼게 되였다.
  할빈 조선민족의 100년 력사는 우리 조상들이 남겨놓은 위대한 유산이며 세세대대로 물려줘야 할 귀중한 자산이다. 민족간부로서 우리 민족의 얼을 지키고 우리 민족의 지위를 찾고 후대들에게 민족의 문화와 전통을 전수하려면 우리 민족의 력사를 말로서가 아니라 기록으로 전해줘야겠다.
  서선생은 50여년간 민족사업을 하면서 친히 겪고 처리했던 사료들을 정리하고 수십년간 수집, 발굴, 보관하였던 력사적 자료들을 글로 정리했다.  77세의 고령에 서선생님의 말처럼 정말 생명의 꼬리를 잡아쥐고 금싸래기를 파는 심정으로 사료수집에 시간과 금전을 아끼지 않았다.사료정리는 문헌이나 자료에만 의거한것이 아니라 산 사람의 생활현실을 통해 구체적인 력사사건과 인물의 활동을 발굴하였고 금후의 력사에서 살아있을수 있는 실제적인 체험을 수집하는데 힘을 아끼지 않고 부지런히 뛰여다녔다.
  력사의 증인으로 력사의 현장에서 직접 보고 듣고 체험한 이들의 년세가 많아 저세상으로 떠나가는 안타까운 현실에 우리 민족의 력사를 하나라도 더 발굴하고 건져내려고 할빈시는 물론이고 동북3성, 북경 등지를 발이 닳도록 찾아다니며 증인을 찾고 자료를 수집하는데 모든 정력을 쏟았다.심지어 어떤 땐 한가지 력사사실을 고증하기 위해 중국 도서관뿐아니라 한국,일본 도서관을 다녀오기도 했다.그래서였던지 중국,한국,일본,미국의 학자들은 할빈의 조선민족 력사를 알려거든 서선생을 찾으라고 했으며 할빈 조선족력사는 서선생님이 산 사전이라고 했다.
  100여년 력사과정에서 중국은 정권이 여러번 바뀌면서 우리 민족에 대한 정책도 각기 달랐다.각 시기마다 우리 민족 자체의 이주원인과 이주과정도 달랐으며 사회지위와 발전상도 달랐다.따라서 서선생은 력사 흐름 그대로 쓰는것으로 진실성을 기했고 수자표기에서도 각 방면으로 증명이 가능하도록 과학성을 기했으며 각국의 년호(年号) 기술에서도 모두 서력을 사용하는것으로 복잡성과 혼란을 피했다. 민족력사는 공산주의 력사관으로나 유물주의 력사관으로 보나 민족이 걸어온 발자취를 사실 그대로 써야 한다는것이 서선생의 주장이다.
  흑룡강성의 많은 력사고서들은 흑룡강의 조선족을 세습민족으로 기록해놓았다. '할빈보위전'이란 책에는 조선독립군에 대한 취급이 한마디도 없다.
  서선생은 최초에 할빈에 발을 디딘 우리 민족은 다름아닌 러시아서 온 중러 통역이였고 할빈시 조선민족은 1898년 중동철도 부설과 함께 할빈시 근대도시건설과 더불어 100여년의 력사를 가지고 있으며 중동철도를 부설하기 시작해서부터 끝날 때까지의 6년동안 조선 북방에서,러시아 동부지역에서,중국의 길림성에서 많은 조선인들이 모여와 철도부설공사에 참가하면서 할빈에 뿌리를 내리고 정착하기 시작했고 따라서 할빈의 조선인이주민은 농민이 아닌 로동자란 점, 러시아에서 온 이주민이 두만강과 압록강을 건너온 이주민보다 더 많았다는 점,상업에 종사하는 사람도 모이기 시작했다는 점,잘사는 사람보다 도시빈민이 더 많았다는 특징을 사료,사건들과 인물들을 통해 그 진실을 밝혀냈다.
  중국어로 된 백년사화에는 일부러 독립운동가 리청청 인물에 대한 기술을 첨부해넣었다. 빈현전투, 아성전투, 쌍성전투의 진두에서 지휘한 장군이 바로 리청청장군이였다는것을 특별히 밝혔다.
  “할빈은 조선독립운동가들의 망명지인 동시에 반일투쟁의 전투마당이였지요. 할빈에 망명온 독립운동계렬의 망명가들은 김동삼,남자현,김만수 등이 있었고 공산주의계렬의 반일혁명가들에는 한락연,리추악,양림,허형식,홍남표,장시우 등이 있었어요.20세기 20년대 수많은 반일투사들이 할빈을 항일투쟁의 전투마당으로 삼고 목숨을 바쳐 일제와 용감히 싸웠습니다”.
  서선생은 여러 우수한 인물들 중에서도 제일 잊을수 없는 사람이 조선민족의 우수한 군사가인 양림(杨林)이라고 했다.그는 1931년말 할빈에서 중국공산당 만주성위원회 군사위원회 서기로,동북항일유격전쟁을 선두에서 지휘한 지도자의 한 사람으로, 항일무장투쟁의 선봉에 서서 용감히 싸운 혁명렬사이다.1934년 10월, 중앙홍군이 2만5천리장정의 길에 올랐을 때 조선인으로서 장정에 참가한 사람은 양림과 무정 두 사람뿐.중앙군위 간부퇀 참모장으로 당중앙과 함께 설산초지를 넘어 섬북에 도착했다.후에 하가요 점령 전투에서 불행히 희생되였다.
  할빈주재 일본총령사관의 피로 얼룩진 지하실 감방에서 모진 문초를 받으면서도 끝까지 굴복하지 않고 생명을 바친 우리 민족 용사들,731부대의 '마루타'(原木)로 희생된 조선인들, 독가스실험때 제일 많이 몸부림치고 아우성 치며 반항한 사람이 조선인 '마루타'였단다.어려운 가운데서도 교육의 중요성을 남먼저 깨친 우리 민족,료식업,정미업 등 상공업과 경제생활에서 남다른 활약상을 보였던 우리 민족,항일전쟁,해방전쟁, 할빈보위전에서 용맹을 떨쳤던 조선의용군 제3지대(후에 동북민주련군 송강군구 독립8퇀)영웅들, 우리말,우리글로 지식을 전수하고 정책을 선전하고 우리말, 우리글을 살리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경주한 우리 민족 지식인들, 중화인민공화국의 주인으로서 사회 각계에서 활약하고 있는 우리 민족의 우수한 지도간부들,엘리트들과 로력모범들……
  '할빈시 조선민족 백년사화'는 정녕 할빈 조선민족이 이 땅에 뿌리 내려 갖은 험난과 역경을 슬기롭게 이겨내고 언제나 최전방에서 피와 땀을 휘뿌리며 생명으로 지켜온 투쟁사이며 분투사이다. 조선민족은 불굴의 민족,위대한 민족으로서 손색이 없으며 우리 민족 후대들이 민족의 자긍심을 갖고 당당하게 이 땅우에서 도전하고 발전을 할수 있는 소중한 유산이고 빛나는 력사이다.
  서명훈로옹은 말한다.
  “자기 민족의 위대한 력사를 모르는 민족은 희망이 없는 민족이다. 또한 이러한 민족의 력사를 갈고 닦아 빛내지 못한다면 그 민족의 번영은 기대할수 없다.민족의 력사를 제대로 알고 그것을 후대들에게 옳바르게 전해주는 일은 력사학자나 전문가의 일만이 아니라 우리 민족 모두의 성스러운 일이다.”
  서명훈 선생 프로필:
  1931년 12월 7일 길림성 연길현 출생
  1946년 6월 혁명사업에 참가
  1954년 중앙민족학원 정치학부 졸업
  1948-93년 목단강시 조선족소학교 교원,대리교장, 목단강시정부 교육과 시학, 민정과민족고 고장, 송강성정부 민정청 민족사무과 과원, 흑룡강성민족사무위원회, 할빈시민족사무위원회 과원,할빈시당위 통전부 민족처 부처장,할빈시민족사무위원회 처장, 할빈시민족사무위원회 부주임, 할빈시민족종교사무국 부국장 직무 력임.
  민족사무종사 40년 영예상, 전국민족단결진보 개인상 수상.
  제7기 할빈시 정치협상회의 위원, 할빈시지방사학회 리사, 중국조선족력사학회 리사,할빈시 조선민족사업촉진회 회장 등 10여개 사회직무 담임
  '안중근 의사 할빈에서의 열하루', '중국인 마음속의 안중근', '안중근 의사 지식 문답' 등 여러부의 저작과 '조선독립동맹 북만지구위원회'등 수십편의 론문을 국내외 잡지와 론문집에 발표.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청도조선족기업가협회 배철화 회장이 지난 11월 2일에 개최된 중국소방협회(中国消防协会) 제7차 전국대표대회에서 앞으로 5년간 협회를 이끌어갈 신임 리사회의 리사로 당선되였다. 중국소방협회 전국대회 개최장면       2일 북경에서 개최된 전국소방협회 대회...
  • 2021-11-08
  • 의료사업 종사 62주년 기념일에 즈음하여. 62년을 하루와 같이 의료사업에 종사 지난 10월 24일, 연길시의 한 음식점에서 특별한 행사가 펼쳐졌다. 친척,친우 그리고 지인들의 박수갈채와 축복 속에서 올해 89세 고령인 김홍걸교수가 의료사업 종사 62년을 마무리하면서 특별한 기념행사를 가지게 된 것이였다. 행사 ...
  • 2021-11-05
  • 중국공산당 창건 100돐 헌례 영화작품 《1921》은 7.1을 계기로 전국적으로 상영된 우리 나라 대형영화작품이다. 이 영화의 음악총괄(统筹)과 음악후기제작을 담당한 이가 바로 90년대생 조선족영화음악인 양경일 (31세)이라는 사실은 저으기 주위의 경탄을 자아내고 있다. 영화음악 작곡 양경일 “음악총감독을 협조...
  • 2021-11-03
  • 2012년 철령시조선족고급중학교는 성교육청이 인정한 첫패의 '료녕성특색보통고중실험학교(辽宁省特色普通高中实验学校)'로, 성내 민족학교중 유일하다. 시종 ‘정품화, 국제화, 다원화’ 발전모식을 탐색하여 다방면 인재 양성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취득하였다. 그 배후에는 민족학교 발전을 위해 강...
  • 2021-11-02
  • 지난 세기 90년대에 중국에서 맹활약을 했던 구련옥 가수의 ‘새로운 여정’ 음반 발매 기자간담회가 지난 22일에 해내외에서 동시에 펼쳐졌다. 앨범 《새로운 여정》 출시한 가수 구련옥 그녀는 한국에서 개최한 기자간담회에서 “오랜 시간 팬들 곁을 떠나있다가 다시 돌아오니 가슴이 너무 설레인다&rdq...
  • 2021-10-25
  • 추이젠이 새 앨범 '페이꺼우'를 발표하자 예전의 비판적이던 추이젠이 돌아왔다는 평가가 나왔다. 하지만 한물 갔다는 말도 있다. 그는 “유행이 조작됐다면 나는 한물간 게 낫다”고 했다. 기자/퀘이얜장 (隗延章) 추이젠은 올해 이미 예순 살이 되었는데 귀밑머리와 수염에 서리가 한 겹 끼었다....
  • 2021-10-18
  • 연변춘화전자풍금양성쎈터 원장 허춘화. 1980년대초, 전국적으로 방송예술단 이름을 가진 단체가 북경, 상해, 연변 세곳 밖에 없었는데 그시절 연변방송예술단에서는 1978년까지 전국에 한대밖에 없었다는 립체식 전자풍금 한대를 어렵사리 장만했다. 그런데 그때까지 국내 한다하는 예술학교들에 전자풍금 전업이 없다보니...
  • 2021-10-14
  • 장현환(1943.5-2021.4)은 료녕성민족사무위원회 주임, 료녕성인민대표대회 민족교무외사위원회 부주임 위원, 료녕성경제문화교류협회 초대리사장을 맡고 당의 민족사업을 위해, 성내 민족지역 경제사회 발전을 위해 로심초사하...
  • 2021-10-08
  • 우리 말 표준화의 전도사 □ 김천   요즘 우리 말 방송계 레전드격인 서방흥 선생이 ‘연변조선족자치주화술학회’를 설립해 세간의 화제에 올랐다. 칠순이 넘은 년세에 이뤄낸 집념의 쾌거다.   서방흥 선생은 연변인민방송국에서 수십년간 잔뼈를 굵히며 몸담아온 방송가의 ‘거두’이고 ...
  • 2021-09-26
  • 김문성(1989년생)은 지난 2019년, 무순시 신무구 민정국 부국장으로 임명된 나젊은 조선족 간부이다. 일전 그는 무순시 신무구 유일 조선족으로 무순시소수민족간부학습반에 참가해 '우수학원' 영예를 ...
  • 2021-09-16
‹처음  이전 1 2 3 4 5 6 7 8 9 10 11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