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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왕 떠나자…흔들리는 영국 군주제
조글로미디어(ZOGLO) 2022년9월16일 20시48분    조회: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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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인들의 정신적 지주이자 영연방의 수장인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지난 9월 8일(현지시간) 96세로 서거했다. 최장수 군주이자 현대사의 산증인인 그의 서거에 세계 각국에선 애도의 메시지가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9월 12일(현지시간) 영국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의 홀리루드 궁전을 떠나 성 자일스 대성당으로 향하는 고(故)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관을 실은 운구차(맨 앞 차량) 뒤를 찰스 3세 국왕과 앤 공주, 앤드루 왕자 등 여왕의 자녀들이 도보로 따라가고 있다. / 에든버러 | 로이터연합뉴스

엘리자베스 2세의 서거는 향후 영국사회에 적잖은 변화를 몰고 올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 존경을 바탕으로 왕실을 떠받쳐온 존재가 사라지며 군주제 폐지 목소리가 영국 안팎에서 힘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호주·뉴질랜드 등 영연방 국가들의 군주제 철폐 논의가 현실화되면 그나마 상징으로 남아 있던 국왕의 존재감은 크게 위축될 것으로 예상된다. 서방 언론은 엘리자베스 2세의 죽음과 이에 따른 왕권 교체가 정치·경제적 격변기에 있는 영국에 적잖은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고 전망했다.

최장수 군주이자 현대사의 산증인 영국 버킹엄궁이 엘리자베스 2세의 부고 소식을 전한 시점은 지난 9월 8일 오후였다. 여왕은 서거 당시 예년처럼 스코틀랜드 밸모럴성에서 여름 휴가를 보내던 중이었다. 서거 이틀 전인 지난 6일에는 리즈 트러스 신임 총리의 임명식을 열기도 했다. 당시에도 여왕의 건강에 이상 조짐이 보였으며, 왕실은 7일 오후 “의료진의 휴식 권고로 여왕의 저녁 일정을 취소한다”고 발표했다. 8일 오후에는 건강이 염려스럽다는 의료진의 소견이 나왔고, 결국 여왕은 이날을 넘기지 못하고 서거했다.

영국 왕실은 엘리자베스 2세의 정확한 사망 원인을 공개하진 않았다. 다만 일각에선 여왕이 70년을 해로한 남편 필립공을 지난해 4월 떠나보낸 뒤 급격히 쇠약해진 점에 주목했다. 여왕은 올해 초 코로나19에 감염되기도 했다. 최근 들어서는 간헐적인 거동 불편으로 일정이 임박한 상태에서 취소하는 일도 잦았다.

사실 엘리자베스 2세는 이미 그간의 재위 기간만으로도 세계적인 최장수 군주 대열에 올라 있었다. 그는 1952년 25세의 나이로 왕위에 오른 뒤 70년간 재임해왔다. 그의 재위 기간은 고조모인 빅토리아 여왕(63년 216일)을 훌쩍 넘어 영국 역사상 가장 길다. 세계적으로 봐도 그보다 재위 기간이 긴 군주는 프랑스의 루이 14세(72년 110일) 정도만 손에 꼽는다.

최장수 군주였던 만큼 엘리자베스 2세는 현대사의 산증인이기도 했다. 그의 재위 아래 영국은 제2차 세계대전과 냉전의 풍파를 견뎌왔다. 유럽연합(EU)의 출범과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등의 격동도 거쳤다. 여왕은 이 기간 영국의 ‘정신적 지주’로서 국민의 단결을 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대영제국 해체 이후에도 영연방을 묶는 구심점 역할을 해낼 수 있었던 이유다.

덕망 높은 군주의 빈 자리 영국 국왕은 영국을 비롯해 캐나다와 호주, 뉴질랜드까지 15개국의 군주이자 56개국이 참여한 영연방의 수장이다. 비록 상징적인 역할에 그치지만, 엘리자베스 여왕은 ‘왕실 무용론’이 퍼지지 않고 21세기에도 군주제가 유지되도록 지켜냈다. 여기에는 여론조사에서 늘 압도적 지지율을 보이는 여왕 개인의 인기가 크게 작용했다.

리즈 트러스 영국 집권 보수당의 신임 당대표 및 차기 총리 내정자가 지난 9월 6일(현지시간) 스코틀랜드 밸모럴성을 예방해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을 알현하고 있다. 이 사진은 여왕이 공식 행사에서 촬영한 마지막 사진이 됐다. / 밸모럴 | AP연합뉴스

다만 엘리자베스 2세의 역할이 컸던 만큼 그의 뒤를 잇는 찰스 3세(찰스 왕세자)의 어깨는 무겁게 됐다. 그는 왕세자로 낙점된 뒤 환경보호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쳐왔으나, 다이애나비와의 이혼이나 커밀라 파커 볼스(현 왕비)와의 불륜 논란 등으로 어머니와 비교해 인기가 크게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는 또 알카에다 수장이었던 오사마 빈 라덴의 가족과 사우디 기업인 등으로부터 거액의 기부금을 받아 자신이 후원하는 자선단체에 보낸 일로 도마 위에 오르기도 했다.

찰스 3세에 대한 국민의 지지가 미약하기에 영국에서는 이참에 군주제를 폐지하자는 공화주의자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영국에서 군주제 폐지 캠페인을 벌이는 단체인 ‘리퍼블릭’ 등은 현대 민주주의에서 왕실은 설 자리가 없고, 유지 비용만 막대하다며 군주제 폐지를 위한 선거를 벼르고 있다.

반면 일각에선 찰스 3세가 오히려 엘리자베스 2세보다 더 적극적인 역할 정립에 나설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찰스 3세는 이전부터 어머니와 달리 정치적 의견을 적극적으로 표명하는 성향을 보여왔기 때문이다. 그는 왕세자 시절부터 기후변화 대응, 환경오염 대처 등 자신의 가치를 주장하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 또 자신의 견해를 표명하는 편지와 메모를 정부 각료와 의원들에게 보낸 사실이 밝혀져 논란이 되기도 했다.

영국 군주제의 앞날은 찰스 3세가 당장 해결해야 할 과제는 엘리자베스 2세 서거에 따른 영연방 국가들의 동요다. 강력한 구심점이 사라지면서 연방 내 다른 국가들에서도 공화제 전환 논의가 빗발치고 있어서다. 호주에선 공화주의자들을 중심으로 공화제 전환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으며, 뉴질랜드에서도 비슷한 분위기가 감지된다.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는 지난 9월 12일 “결국 (뉴질랜드도) 공화국으로 전환될 것”이라며 “내 생애 중 반드시 일어나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영연방 내 카리브해 섬나라들 사이에서도 공화제 전환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앤티가바부다의 개스턴 브라운 총리는 지난 9월 10일 언론 인터뷰에서 3년 내 공화국 전환에 대한 국민 투표를 하겠다고 밝혔다. 자메이카와 바하마, 벨리즈 등 다른 국가도 마찬가지다. 앤드루 홀니스 자메이카 총리는 지난 3월 영국의 윌리엄 왕세자 부부가 자국을 방문했을 때 영국 왕실과 결별하고 공화정으로 독립하고 싶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일부 국가에선 영국의 과거 식민 지배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유럽 제국주의가 한창이던 15~19세기 아프리카인 1000만명 이상이 백인 노예상에 의해 카리브해로 강제 이주했고, 플랜테이션 농장 등지에서 노동착취를 당했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워싱턴포스트는 “영국의 옛 식민지였던 국가들에서는 여왕의 죽음에 조의를 표하면서도 식민 지배의 아픔을 떠올리며 복잡한 심경을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엘리자베스 2세의 서거와 이에 따른 왕권 교체가 영국의 현 상황과 맞물려 정치·경제적으로 적잖은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앞서 영국 정부는 코로나19 봉쇄 기간 보리스 존슨 전 총리 등이 연루된 것으로 드러난 ‘파티 게이트’로 지난 수개월간 극심한 정치적 혼란을 겪은 바 있다. 또 인플레이션(물가 인상)과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에너지 불안 등으로 경제적으로도 상당한 불안에 직면한 상황이다. 주간경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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