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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의 '리시진' 김수철 전(련재9)
2020년 03월 17일 21시 03분  조회:3817  추천:0  작성자: 오기활
                                    9. 버섯으로 이어지는 이야기
토배기 화실(画室)

버섯이 제일 많이 돋는 시기는 여름방학 때이다. 이에 비춰 나는 여름방학을 리용하여 버섯그림을 그리기에 전념해야 했다. 그런데 문제는 화실이 없었다. 생각 끝에 룡정 시교에 자리한 광신 5대의 초가 헛간을 화실로 꾸미기로 하였다. 이 헛간은 몇년전에 자식들을 동원하여 흙벽돌로 지은 창고로서 부자간의 합작품이다.
나는 비를 맞으면 안될 짐들을 한구석에 쌓아놓고 공간에 탁자를 놓았더니 화실로는 꽤 훌륭했다.
나는 도화지에 버섯을 스케치한 후 수채화염료로 색칠을 하였더니 마음에 들지 않았다. 몇번이나 그리고는 버리고 또 다시 그리고는 버렸지만 그냥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그렇게 좋아했던 그림그리기지만 난 천부적인 재능이 없는가 봐.’
때로는 이런 원망들이 불쑥 튀여나왔지만 절대 포기할 줄을 모르는 나는 버렸던 그림들을 다시 주어서는 수정하고 색칠을 더했더니 좀 나아지는 것 같았다. 이렇게 수정을 거듭한 결과 그림은 많은 진보를 가져왔다.
적색법(积色法)—이것이 바로 비결이였다. 나는 시작은 연하고 희미하게, 색도(色度)는 묽고 안개처럼 보일락말락하게 한 다음 점점 더 진하게 덧그리는 것이 바로 버섯 회화기법의 핵심이고 기본이며 비법임을 끝내 밝혀냈다.

이는 모두 락심하고 자포자기하던 데로부터 공자가 말했던 중용의 마음가짐, 심평기화(心平气和)의 마음가짐으로 한보, 한보 발전하면서 이뤄낸 성과였다. 따라서 나는 그림에 신심을 가질 수 있었고 제법 그럴듯한 명작품들을 그려낼 수 있었다.
지루한 시간에 끝없이 이어진 노력으로 한장, 한장의 버섯그림작품들이 나오기 시작하더니 그에 따른 명성까지 얻게 되여 나중에는 지방 신문, 잡지는 물론이고 국가급인 ≪민족화보(民族画报)≫에까지 나의 버섯그림 명작품들이 발표되였다.
“당신의 연구성과는 대단합니다!”
1984년 8월 10일, 무더운 삼복더위에도 내몽골 훅호트시에서 ‘동북3성1구식물학학술보고대회(东北3省1区植物学学术报告大会)’가 열렸다. 이 대회는 중국 동북지구의 저명한 식물학자들이 운집한 대회였다.
이번 대회에는 흑룡강성에서 온 세명의 조선족대표들이 있었는데 우리 조선족들의 영광이 아닐 수 없었다. 나는 연변의학원의 류영진(柳永镇) 교수와 동행한 데서 마음이 든든했다.
그 때 나는 나이가 57세였고 길림성식물학회 리사였다.
나는 <룡정현에서 나는 유용 및 유해 진균의 초기 조사보고>라는 제목으로 보고를 하였다. 나는 보고에서 송이버섯의 생태에 관하여 삼합진의 반생식물(伴生植物)을 보다 상세히 소개하였고 나의 송이버섯그림을 비롯한 다섯종의 버섯그림도 회람(回览)케 하였다.
이 대회가 끝나자 대회의 집행자였던 주이량(周以良) 교수[원 동북림학원 (东北林学院)의 부원장, 동북 식물분류의 최고권위]가 나를 찾아와 “당신의 연구성과는 대단합니다.”라고 하며 나에게 과찬을 아끼지 않았다.
주이량 교수는 버섯연구에 상당히 조예가 깊은 분으로서 나의 버섯연구와 나의 버섯그림을 아주 높게 평가하였다.
주이량 교수는 버섯연구에 조예가 깊다보니 나의 발언에 귀를 기울이게 되였고 나의 버섯그림 역시 그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이였다.
“무엇이든 알려고 애를 써야 숨어있는 비밀을 보아낼 수 있고 소리 없는 곳에서도 남이 듣지 못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중학교시절에 어문을 가르쳤던 최영수(崔营洙)선생님이 늘 하시던 이 말씀이 천만번 지당함을 다시한번 감수했다.
“아주 목표 있구려…”
나는 동북사범대학 리여광(李茹光) 교수가 길림성을 놓고 말하면 버섯연구에서 가장 권위적인 인물이라고 인정한다. 그는 우리 연변농학원의 리원겸, 함홍석 등 로교수님들과 같이 학술분야에서 활약했으니깐.
나는 이도백하에서 둬번 리여광 교수님을 뵌 적이 있는지라 어느 한번 출장길에 동북사범대학 리여광 교수님의 연구실을 찾아갔다.
표본서랍에 눈이 간 나는 교수님에게 물었다.
“제가 교수님의 표본서랍을 열어봐도 괜찮을가요?”
“그 표본들은 거의다 ‘떡달’버섯종류이니 부서질 념려가 없소. 그러니 마음대로 꺼내보아도 되오. 근래에는 이런 표본들을 보겠다고 찾아오는 사람도 별로 없는데 오히려 내 쪽에서 고맙구려…”
리교수님은 한동네의 ‘아바이’처럼 허물없이 대해주었는데 나는 이렇게 좋은 분을 늦게 찾아뵌 것이 후회되였다.
나는 호기심이 가는 대로 버섯표본을 꺼내들고 보았다. 과거에 내가 표본감정을 했던 그 버섯과 똑같은 것이였다.
“하, 이 사람아! 자네가 서랍에서 꺼낸 버섯표본을 보니 아주 목표 있구려.”
“자네도 나처럼 버섯을 연구해보았는가?”
“연구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그저 흥취에 끌려서 야외로 다니면서 버섯도 채집하고 그림도 더러 그려보았습니다.”
리교수님의 물음에 이렇게 대답한 나는 좀더 일찍 그를 만나지 못한 것을 못내 아쉬워하였다. 좀더 일찍 만났더라면 더 많은 것을 배우고 또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으련만. 나는 이미 버섯연구에서 손을 떼고 만년을 보내고 있지만 그 때 리교수님을 늦게 찾아간 것을 지금까지도 후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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