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10여년간 일본을 나들며 “재일 조선족류학생 1세”를 취재하고 나서 “나는 조선족인이다”, “나는 동북아시아인이다”, “우리가 조선족이였기 때문에…”란 인터뷰채록을 다시 펼칠 때마다 감명이 깊어 진다.
일본의 조선족사회의 형성은 지난 80년대 “일본의 류학생 10만명 수용”정책에 띠라 중국 조선족류학생 도일(到日)을 시작으로30여 년의 력사를 갖고 있다.(일본은 외국 국적별통계만 있고 민족별통계가 없기에 재일 조선족수를 최대로 10만명으로 추정할뿐 정확한 수자는 파악하기 힘들다.)
“나는 조선족인(人)이다”의 대표적인 인물로 일본 BLUEDT주식회사 리동철회장이다.
동철씨는 중국인민대학 국민경제계획전업을 졸업하자바람으로 국가 로동부에 배치되여 2개월을 출근하다가 “먼저 희망을 품은 인간이 되는 길에 나서겠다”묘 1991년에 남들이 부러워하는 일터를 떠나 일본 류학길에 올랐다.
동철씨는 “우리가 개인적으로 조선족이라고 말하는 것은 틀렸다. 스스로를 조선족인(人)으로 칭해야 한다.”고 했다.
그에 따르면 人이 모여서 族을 이루기에 族이 人을 대체하지 못한다. 어느 전형인물이 그가 속한 민족을 대표하지만 어느 민족이 전형인물을 대표하지 못한다.
人을 알려면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야 하는가?”는 뿌리를 찾고 절대로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조선족인”의 뿌리를 잘 알고 개발하면 엄청난 힘을 갖게 된다.
모든 경쟁은 어느 사람이 하는 것이지 어느 민족이 하는 것이 아니다. 오바마는 “나는 흑인이라는 존재를 인식하고 그 속에서 희망을 찾고 자기를 개발한데서 대통령이 되였다.”고 한다.
인이 성공해야 그가 속한 민족이 부흥한다. 지금까지 구전(口傳)되는 “모주석이 없으면 새중국이 없다.’ “주덕해가 있었기에 연변조선족자치주가 있다.“가 이를 설명한다.
“나는 동아시아인이다”의 대표적인물로 재일 “조선족연구학회” 회장을 지낸 일본 후꾸리뀨(北陸)대학 리강철교수이다.
강철씨는 중앙민족학원 철학전업을 졸업하고 북경시위 당교 제1기 연구생, 중화전국총공회(中國工運学院)교수로 지내다가 “자유로운 학자의 길을 선택”하고저1991년에 일본류학을 선택하고 일본서 중국, 조선 한국, 로씨야, 몽골, 미국, 유럽을 드나들며 여러가지 국제무대에서 활약하였다.
그가 환일본해종합연구원 사무국장직을 맡고 “동북아시아개발은행 설립 및 일본대외정책”이란 연구테마로 세계 여러나라의 개발은행을 고찰하고 일본정부에 “동북아개발은행”설립관련보고서를 제출하여일본 내각부 산하 정책연구소에서 그를 사상 첫 외국인주임연구원으로 중용, 일본 전임수상 (후꾸다야스오(福田康夫)의 접견까지 받았다.
“지금은 글로벌시대인만큼 초민족적, 초국가적 가치관이 수요된다. 나는 10전부터 나는 ‘동북아시아인다’며 일본을 발판으로 동북아 발전과 평화를 실현하는 것을 나의 인생가치와 목표로 했다.”, “나는 련합국위크숍(硏討會)에서 정식발언 먼저 “저는 동북아시안인입니다.”며 자아소개를 하여 한결 같은 인정을 받았다, 그는 동북아 6개국의 학술무대에서 “나는 동북아인”이라며 하는 일에 자신이 만만하다고 했다.
이밖에 필자가 만난 재일조선족 1세들은 거의 모두가 성공의 주원인을 “나는 조선족이였기 때문에…”라고 입을 모았다.
일본 건축업계의 거두인 일본 ㈜ JPM허영수사장은 “조선족들이 중국, 조선, 한국문화를 알고 일본문화를 배웠기에 일본이 아무리 선진국이라고 해도 세 가지 언어의 우세로 일본인들의 선배로 될수 있고, 창업, 취직률이 다른 민족보다 높다” 고 한다.
일본 “제1사진가”에 도전한 ㈜카와 변소화사장은 “나는 조선족이였기에 ‘중국가격+한국기술 +일본써비스 = 성공’이란 우리만의 경영공식을 모색하였다”고 하였고 일본 시즈오까대학 리련화 부교수는 “나는 조선족이였기에 중, 한, 일 3국을 대상한 동아시아사회보장연구에 선뜻이 나서서 거의 한눈으로도 아시아를 거시적으로 볼수있는 시야를 넓혔다”고 장담을 했다.
일본 조선족연구전문가인 와세다대학 권향숙박사(한국계일본인)는 “조선족들이 단시기내에 기업을 운영한다는 자체가 상당히 놀라운 능력이다. 조선족들이 일본의 주류사회와 상류사회에 진출하여 활동하는 인물들이 많은데 이런 현상은 동아시아에서 흔지 않다.”며 “형은 상해에서 비즈니스를, 부모님은 한국에서 막로동을, 나는 일본에서 류학생활을”이라는 조선족류학생들을 통해 이는 조선족들의 가족리산이면서도 가족련결이 잘 진행되는 것으로 이런 다국적인 가족이 어느 민족에게 또 있을가는 생각이 든다”고 감명이 깊게 말하였다..
필자는 전 지구촌에 뿌리를 튼튼히 내리려는 모든 조선족들은 나는 “조선족인이다”, “동아시아인이다” “우리는 조선족이기 때문에…”를 반추하며 민족의 사명감과 자신감으로 지구촌의 평화 및 건설을 위한 튼튼한 생력군으로 되였으면 한다. 오기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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