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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명학 부주장과 같이 일하던 하루
2018년 01월 02일 22시 05분  조회:7677  추천:0  작성자: 주청룡

[아름다운 추억 64]남명학 부주장과 같이 일하던 하루

편집/기자: [ 김정함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7-12-25 14:54:24 ] 클릭: [ ]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64)

◇주청룡(룡정)

1973년, 내가 생산대대의 과학실험소조에서 일할 때였다. 그 때 우리 대대에도 주에서 공작대들이 내려와있었는데 당시 주당위 선전부 리휘 부장이 우리 공사에 온 공작대의 총 책임자로 우리 대대에 와 주둔해있었다.

그 해 여름의 어느 날 리휘 부장은 대대의 공작대원들을 거느리고 우리 실험전에 와서 콩기음을 맸다. 그 날 오전 우리가 한창 기음을 매고 있는데 찌프차 한대가 밭머리에 와서 발동을 끄는 것이였다. 지금은 찌프차라면 보잘 것 없는 차지만 그 때 세월에는 찌프차라면 현급 이상의 간부들이 타고 다니는 차였기에 찌프차 한대 지나가도 모두 그 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바라보던 시절이였다. 그런데 우리 밭머리에 와 서다니.

우리는 모두 일손을 멈추었다. 차에서 한 늙은이가 내리자 리휘 부장이 마중나가 그와 반가이 악수를 하는 것이였다. 나는 틀림없이 주의 간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윽고 리휘 부장이 이 분이 주정부 남명학 부주장(그 시기의 직명은 주혁명위원회 부주임이였지만 습관상 그냥 부주장이라고 불렀다)이라고 우리에게 소개를 하였다.

나는 남명학이라고 하는 분이 주정부 부주장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한번도 뵌 적은 없었는지라 정말 기쁘기 그지 없었다. 하지만 그의 옷차림새나 모든 행동거지를 보면 주의 간부다운 데는 한곳도 없이 보통 백성과 같아보였다.

그 때 우리 실험소조에는 로농 한분에 계셨는데 남명학 부주장께서는 인사가 끝나자 자기가 왔기에 일에 지장을 준다며 그 로농의 호미를 앗아쥐고 자기부터 엎드려 기음을 매였다. 그의 기음솜씨도 이만저만이 아니였다.

쉼시간에 우리는 남주장 주위에 둘러앉았는데 그이는 노래 한수씩 부르며 즐겁게 쉬자고 하셨다. 그 때는 지정된 몇수의 혁명가요만 부르는 시절이라 모두 혁명가요 한수씩 불렀다. 그 자리에서 누가 이번에는 남주장님의 노래를 들어보자고 하였다. 남주장께서는 기다렸다는듯이 인차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셨는데 “여보시오, 농부님네 이 내 한말 들어보소-” 하며 첫마디를 떼시였는데 〈농부가〉였다. 모두 의아한 눈길로 그를 쳐다보자 “왜 이 노래가 나쁜가? 농부의 소박하고 랑만적인 마음을 담은 노래인데 왜 못 부르겠는가?” 하며 끝까지 불러내려갔다. 그러자 모두 “야, 듣기 좋은 노래다.” 하며 박수갈채를 보냈다.

그 때 내가 지금 이런 노래를 불러 되는가고 묻자 “이 노래가 우리 조선민족의 민요인데 왜 자기 민족의 민요도 못 부르겠는가?”고 하시는 것이였다. 그리고 나서 “농사철에 대해서는 로농들이 더 잘 알고 있으니 상급의 지시라고 하여 맹목적으로 따르지 말고 로농들의 말을 들어야 하오.” “조 홰지(파종)는 곡우를 끼고 해야 하고 콩갈이(파종)는 립하를 끼고 하면 되오.”라고 하시며 곁에 앉은 로농에게 “로인님 제 말이 어떤가요?” 라고 물으신다. 이에 그 로농은 “글쎄 말씀입니다. 우리는 정말 그렇게 하였으면 좋겠는데 상급에서 어찌나 일찍 파종하라고 하는지. 우리는 리해가 되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남주장께서는 “지금은 군대 대표요, 반란파 대표요 하는 사람들이 올라앉아 맹목적으로 지휘한다니까.”라고 하면서 우리에게 앞으로 로농들을 존중하고 로농들의 말을 잘 들으라고 분부하셨다. 그리고는 인차 “자, 또 한쉼 매여봅시다.” 하며 호미를 들고 일어나 선줄로 나가시는 것이였다.

점심때가 되자 공작대들원은 우리 집에서 식사를 하게 되였는데 불의에 닥친 일이라 아무런 준비도 없었다. 우리 지방은 한전고장이라 그 때 시절에는 입쌀 한줌도 없어 그저 조밥을 대접하였다. 그런데 남명학 부주장은 오후에도 계속 나가 기음을 매고 하루 밤 우리 집에서 묵을 타산이였다. 그런데 리로 놓고 말하면 저녁식사 대접이 문제였다. 어떻게 저녁에 또 조밥만 대접하겠는가? 도시와 50리 떨어져있는 농촌이라 어디에 가서 돼지고기도 사올 형편이 못되였다. 그렇다고 하여 돼지를 엎어놓는다는 것도 말이 안되였다 그래서 실험소조의 조장은 우리 어머니더러 저녁에 두부를 앗아 대접하자고 하였다.

쟁글쟁글 끓는 뙤약볕에서 남주장은 우리와 같이 온 하루 기음을 매시고 저녁에 해가 넘어서야 집으로 들어오셨다. 조장이 나를 시켜 술을 사오려는 것을 눈치챈 남주장께서는 친히 자기의 호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나를 주면서 이 돈으로 술을 사오라는 것이였다. 내가 한사코 안 받자 그이께서는 호미자루로 나의 엉덩이를 때리면서 “쇼주(小朱) 왜 내 말을 안 들어?” 하면서 기어이 그 돈으로 술을 사오라고 하시는 것이였다. 그렇게 되여 나는 남주장에게서 호미자루에 엉덩이를 한매 얻어맞았다. 어쩌면 그 한매가 나의 마음을 그렇게도 기쁘게 하였던지? 나는 그런 매라면 자꾸만 맞고 싶었다.

저녁식사 때 조장이 “남주장께서 모처럼 우리 실험전에 오셔서 온 하루 이렇게 수고를 하셨는데 우리 농촌에는 아무 것도 대접할 것이 없습니다. 저녁에 두부를 준비하였는데 서거픈 음식이지만 많이 잡수십시오.”라고 말하자 남주장께서는 “두부 만치 좋은 음식이 어디에 있소. 자 어서 가져오오. 그럼 오늘 농촌 아주머니가 손수 앗은 두부를 먹어봅세.”라고 말씀하시며 술잔을 들고 “자, 우리 같이 한잔 들어봅시다.” 하며 음식상의 기분을 돋구었다.

저녁식사가 끝나자 다른 사람들은 다 가고 남주장께서와 비서, 그리고 리휘 부장이 남아서 우리 집에서 주무시게 되였다. 사실 그 날 남주장께서는 사업토론을 하려고 리휘 부장을 찾아왔었는데 리휘 부장이 공작대를 거느리고 우리 실험전에 와서 기음을 매자 그이도 우리와 같이 온 하루 일하시고 저녁에 리휘 부장과 사업토론을 하시는 것이였다.

사업토론이 끝나자 나도 그 자리에 끼여서 이야기를 하였다. 나는 그이가 리휘 부장(한족)과 이야기를 할 때 한어를 아주 류창하게 하시여 완전히 한족 같은 느낌이였다. 그래서 어떻게 되여 한어를 그렇게 류창하게 하시는가고 물었더니 어릴 때에 연길현 동성용 동성촌의 한 한족지주의 머슴으로 들어가서 돼지를 먹이다가 후에 공산당을 만나 혁명에 참가하였으며 조선전쟁이 발발하자 연변의 열혈청년들을 인솔하여 항미원조전장에 났갔다는 것이였다. 나는 그 날 저녁에 그에게서 많은 혁명이야기를 들었다.

이튿날 아침식사가 끝나고 그들이 떠날 때에 비서가 식비를 계산하여 내놓는 것이였다.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는 “주장 어른께서 여기에 오셔서 일하신 것만 하여도 송구한 일인데 어떻게 식비를 받을 수 있습니가?” 하며 한사코 받지 않았다. 며칠 후 우리 어머니가 재봉기을 쓰려고 재봉기에 덮었던 보를 드니 그 밑에는 식비 명세표와 현금 그리고 량표  놓여있었다. 우리가 보지 않는 틈에 비서가 넣어놓은 것이였다. 그 때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는 너무도 감격되여 눈물까지 훔치였다.

지금 세월 같으면 남주장께서 우리 실험전에 오셔서 우리와 함께 기음을 매시고 쉼시간에 이야기를 나누시는 장면들을 핸드폰으로 사진 찍어 영원한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길 수 있겠지만 그 때 세월에는 손에 쥔 것이 호미자루 밖에 없었으니 그런 영상자료 하나 없이 그저 머리속의 추억으로 남을 수 밖에 없는 것이 유감으로 되고 있다.

길림신문 2017-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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