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 '남편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라는 말을 듣고… 벚꽃 아래서 알았네 , 죽음이 삶을 증언한다는 걸
조글로미디어(ZOGLO) 2015년12월5일 23시33분 조회:3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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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 아래서 알았네 , 죽음이 삶을 증언한다는 걸
[그 작품 그 도시] 영화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도쿄
남편과 함께 일본 후지산에 가보고 싶었다는 아내의 독백으로 시작하는 영화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은 죽음에 대한 이야기다. 아내는 의사로부터 "남편의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부부가 여행이라도 다녀오라"는 말을 듣는다. 아내는 남편에게 비밀을 말하지 못한 채, 막내아들의 직장이 있는 일본 도쿄에 다녀오자고 말한다. 하루에 사과 한 알 먹으면 의사가 필요 없다(An apple a day keeps doctors away)라고 믿는 남편은 마을 밖으로 도무지 나가려 들지 않는 규칙적인 사람이지만, 아내의 간곡한 부탁을 마다할 수 없어 일본 대신 남매가 사는 베를린행을 택한다.
하지만 자식들은 연락 없이 찾아온 부모님이 영 마땅치 않은 얼굴이다. 낌새를 눈치 챈 아내는 그간의 사정을 자식들에게 입도 뻥긋하지 못한 채 남편에게 말한다. "여보, 우리 발트해에 가는 건 어때요"라고. 그리고 그곳에서 뜻밖의 사건이 벌어진다. 죽음을 선고받았던 남편보다 아내가 세상을 먼저 뜬 것이다.
사실 이 영화의 초반부는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 '동경 이야기'의 독일판처럼 읽힌다. 생판 모르는 자식의 친구가 먼 곳에서 온 부부를 위해 자신의 시간을 가장 많이, 기꺼이 내 준 사람이란 설정도 그렇고, 피치 못하게 부모님을 떠안게 된 자식들이 서로의 갈등을 드러내는 방식 역시 그렇다. 하지만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아내가 갑자기 죽고 난 이후에 일어나는 남편의 내면 풍경이다.
일찍이 일본의 춤 '부토(그림자 춤)'에 관심이 많았던 아내는 언제나 도쿄에 가고 싶어 했었다. 하지만 남편은 그녀의 소망을 차일피일 미루었고, 결국 아내가 죽고 난 후에야 도쿄에 간다. 아내가 죽는 순간 마지막으로 입고 있던 스웨터와 치마를 자신의 트렁크 가장 깊은 곳에 넣은 채로 말이다.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의 소피아 코폴라 감독과 마찬가지로 이 영화를 만든 도리스 되리 감독에게서도 일본 문화에 대한 동경이 영화에 가득 엿보인다. 특히 벚꽃이 필 무렵 도쿄 공원이나 사원 풍경이 그렇고, 엄청나게 큰 돗자리에 사람들 수십명이 둘러앉아 벚꽃 밑에서 온종일 도시락을 먹거나 맥주를 마시는 풍경이 그렇다. 영화를 보고 난 후 감독 인터뷰를 읽다가 나는 이런 문장들을 발견했다.
"결국 사랑 역시 덧없는 것이다. 우리는 사랑이 가장 큰 고통과 힘 속에서 스스로를 드러낼 수 있도록 기회를 주어야 한다. 그 때문에 일본인들은 벚꽃 아래에 앉아 있는 것이다. 벚꽃이 피는 동안에는 너무나 아름답기 때문에. 하지만 동시에 꽃이 피어 있는 시간이 너무 짧다는 사실에서 오는 고통 또한 클 수밖에 없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사랑에 대해서도 사람들은 열성을 다해야 하고, 피어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하며, 피어났을 때는 그것을 음미할 수 있도록 그 자리를 지켜주어야 한다. 벚꽃처럼 사랑 역시 피어날 수 있는 기회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식물이건 동물이건 각각의 존재가 진정으로 꽃피고 자신을 드러내는 순간이 주어졌다는 것, 이것이 매우 중요한 것이다. 하지만 때로 우리는, 루디(남편)가 그랬던 것처럼 그런 순간들을 억누르고만 있다. 우리의 진정한 자아와 아름다움이 스스로 드러날 수 있도록 벚나무처럼 꽃을 피우도록 허락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결국 이 영화가 묻고자 하는 것은 죽음을 앞에 두고 현재를 만끽하는 것이 가능한가이다. 무엇이 우리를 꽃피게 하고 무엇이 우리를 시들게 하는지에 대한 것들 말이다. 남편은 벚꽃이 핀 도쿄의 공원에서 부토 춤을 추는 한 소녀를 발견하고, 그녀에게서 아내의 잃어버린 꿈을 발견한다. 꽃처럼 피어나고 있는 아름다운 소녀의 얼굴에서 피어나지 못한 채 죽어버린 아내의 어린 희망을 엿보게 되는 것이다.
남편은 아내의 스웨터와 치마를 입고 공원에 갔을 때에야 비로소 살아 있을 때 차마 하지 못했던 대화를 죽은 아내와 나누기 시작한다. 죽은 자와의 대화가 가능해지려면 전제되어야 할 조건이 있다. 그것이 진짜 사랑이어야 하고 그 사랑은 한 사람의 생애를 통해 입증되어야 하는 종류의 것이다. 그는 아내를 떠나보내고 난 후에야 자신이 했던 사랑이 무엇이었고 그것이 어떤 의미였는지를 깨닫는다. 그런 의미에서 세상의 모든 사랑은 사후적이다. 너무나 슬프게도 사랑이 끝나고 나서야, 그것이 시작된 지점을 비로소 들여다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일본 동화작가 사노 요코의 에세이집 '죽는 게 뭐라고'에서 가장 인상적인 건 죽음이 아니라 삶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였다.
"제가 의사한테 남은 날이 1년이라는 말을 들은 뒤로는 남편이 절대로 저한테 고함치지 않기로 약속했어요. 성질이 급한 사람이었거든요. 그런데 저한테 가장 기쁜 순간은 제가 아프다는 걸 잊어버린 채 남편이 또 고함을 칠 때예요. 그건 제 병을 남편도 까먹고 있다는 거잖아요? 그게 가장 기뻐요."
제아무리 죽음을 당연한 것이라 받아들여도 인간은 별수 없이 늘 삶 쪽을 향해 서 있게 된다. 살아남는 것이 우리 유전자의 본능인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사랑하는 친구나 애완견이 죽고 나서야 비로소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 죽음은 도처에 깔려 있지만 그 검은 그림자를 우리는 너무 쉽게 지나친다. 죽음이 삶의 교훈으로 스며들기에 우리의 문화는 죽음에 대해 얘기하는 것을 지나치게 터부시한다.
'침묵의 수도'로 유명한 트리피스 수도원에서 단 한 가지 허용되는 말은 "형제여, 죽음을 기억합시다"이다. 왜일까? 지금 문화에서 죽음은 늘 닥치거나 선고되거나 벌어지게 마련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말하듯 죽음을 선고받은 사람 앞에 서 있는 건 사실 죽음이 아니라 삶이다. 죽으면 모든 게 끝나지만 죽음의 과정은 삶 속에서 우리가 감당하고 겪어야 하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결국 죽음은 동전의 양면처럼 삶을 증언한다. 극렬한 통증이 살아 있음의 증거인 것처럼 죽을 준비, 혹은 가족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 역시 삶의 가장 강렬한 풍경이기 때문이다.
컴퓨터 자판에서 '사람'이라는 단어를 빠르게 쳐넣으려다 오타가 되면 종종 '삶'이 된다는 걸 아시는지. 21세기 가장 유명한 암환자였던 스티브 잡스가 죽음을 '삶의 최고의 발명품'이라 말한 아이러니는 이렇게 이해해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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