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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죽이고 자살.효자를 무너뜨린 치매! "남의 일 아니다"
조글로미디어(ZOGLO) 2014년1월8일 15시59분    조회:14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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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순 부모 홀로 간병 … 치매는 효자를 무너뜨렸다

[스토리텔링 리포트] '슈퍼주니어' 이특 아버지 사건으로 본 가족의 고통


겨울밤이었다. 칼날 같은 추위가 도시를 할퀴고 있었다. 박모(57)씨는 서울 신대방동에 있는 아파트 3층에 살았다. 방 3개짜리 아파트는 그의 보금자리이자 요양원 같은 곳이었다. 그는 여든넷 아버지와 일흔아홉 어머니를 홀로 모시고 있었다. 1998년 아내와 이혼한 뒤로 줄곧 그래왔다. 노부모를 모시며 지내온 지도 벌써 15년째다.

 지난 5일 밤 그의 아파트는 깊은 침묵에 휩싸였다. 덜컹-. 겨울 바람이 아파트 창문을 뒤흔들고 지나갔다. 박씨는 문득 1년여 전 입대한 아들 생각이 났다. 아들은 이름만 대면 알 만한 ‘한류 스타’였다. 아이돌 그룹 슈퍼주니어의 리더 이특. 아들 정수는 2005년 가수로 데뷔하면서 이름을 이특으로 바꾸었다.

 정수가 연습생 생활을 시작한 게 2000년이었으니 아들과 떨어져 지낸 지도 벌써 십수년 째다. 그래도 아들이 글로벌 스타 슈퍼주니어를 이끌고 있다고 생각하면 홀로 부모를 모시는 고된 삶도 충분히 견딜 만했다. 박씨는 아들이 입대했던 2012년 10월,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이런 편지를 남겼다.

“부모님 내가 모시고 간다” 극단적 선택

 ‘현역으로 입대한 걸 후회할지는 모르지만 아빠는 너의 판단을 아주 가상하게 여기고 있다. 부디 팬들의 성원에 보답할 수 있도록 더 성숙된 정수가 되길 바란다. 너를 키워주신 할아버지·할머니께선 너무 허전해 하시는구나’.

 집안 곳곳에는 아들의 프로필 사진이 상장처럼 붙어 있었다. 박씨는 아들 사진이 붙은 거실을 지나 안방 문을 조심스레 열었다. 방에는 손자를 무척 사랑하는 노부모님이 나란히 누워 있었다. 박씨는 부모님 쪽으로 천천히 몸을 옮겼다. 그의 손엔 압박붕대가 들려 있었다.

다음 날, 박씨의 아파트 앞은 앰뷸런스와 경찰차로 혼잡했다. 안방 문을 열어본 건 박씨의 외조카 이모씨였다. 6일 오전 9시20분쯤이었다. 안방에는 이특의 할아버지·할머니가 이불을 목까지 끌어올린 채 숨져 있었다. 그 옆에선 장롱 손잡이에 목을 맨 박씨가 발견됐다. 하루가 지나서야 이 끔찍한 현장에 대한 단서가 잡혔다. 7일 오전 박씨 사건을 조사 중인 서울 동작경찰서 관계자는 이렇게 설명했다. “박씨가 노부모를 목졸라 살해한 뒤 뒤따라 자살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세 분 모두 5일 밤 11시쯤 숨진 것으로 보입니다. 치매를 앓는 부모님 때문에 박씨가 많이 힘들어했다는 지인들의 진술이 있었습니다. 현장에선 ‘부모님 내가 모시고 간다’는 내용의 유서도 발견됐습니다.”

어머니까지 치매 … 매일 밥 떠먹여 드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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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모를 극진히 모셨던 박씨가 극단적 선택을 한 원인은 치매였다. 박씨는 부모님께 매일 직접 밥을 떠먹여 드릴 만큼 효심이 깊은 아들이었다. 그러나 4~5년 전부터 아버지와 어머니가 차례로 치매를 앓게 되면서 벼랑 끝으로 내몰렸다.

 수년 전 맨처음 아버지가 경증 치매에 걸렸을 때만 해도 견딜 만했다. 그러나 지난해 폐암 판정을 받은 어머니가 중증 치매까지 앓으면서 박씨는 극단적인 고통 속에서 살아가야 했다.

 그는 연예인인 아들과 딸(배우 박인영)에게 염려를 끼치고 싶지 않았다. 혼자서만 끙끙 앓아왔다. 지난해부터는 자신의 전자부품 무역 사업까지 안 좋아지자 병원비를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생활고를 겪었다고 경찰은 전했다. 통상 치매 환자의 치료비(간병비 포함)는 연간 1900여만원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박씨는 아파트를 담보로 수억원의 빚을 진 상태였다.

 박씨와 같은 아파트에 사는 주민 조모씨는 지난주 초 지하주차장 인근에서 박씨와 마주쳤다. “할머니 건강은 좀 어떠세요.” 박씨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답했다. “어떻긴요. 힘들어 죽겠어요.”

이웃에 "힘들어 죽겠어요” 우울증 앓아

 박씨는 치매 부모를 모시면서 겪는 고통을 온라인 공간 곳곳에 활자로 남겼다. 아버지의 치매가 발병한 뒤인 2012년 11월, 자신의 블로그에는 ‘늙은 아버지와 아들’이란 글을 옮겨 적었다. 82세 아버지가 52세 아들에게 까마귀를 보고 “저게 뭐냐”고 연거푸 묻자 짜증을 내던 아들이 뒤늦게 아버지의 사랑을 깨닫게 되는 이야기다. 그는 또 지난해 7월 자신의 트위터에 이런 글을 남겼다. ‘어머니 방에 빠진 머리카락들이 많이 보인다. 독한 항암제 때문이겠지? 참 서글퍼진다’.

 치매 부모를 수발하면서 박씨는 심한 우울증까지 겪었다. 예컨대 이런 글에는 우울증을 이기려는 그의 의지도 엿보인다.

 ‘우울증 걸렸다 하니 인영이(딸)가 『우울증을 없애는 행복의 기술 50가지』란 책을 사다주어 하루에 다 읽어버렸다.’ (2012년 4월 15일, 박씨의 트위터)

 박씨의 어머니는 지난 4일 입원해 있던 대학병원에서 퇴원했다. 그날 박씨는 어머니를 집으로 모신 뒤 직접 밥을 떠먹여 드렸다. 6일부터는 인근 B요양병원에 모시기로 예약을 한 상태였다. 하지만 요양병원으로 모시기 하루 전날, 그는 삶의 끈을 놓아버리기로 결심했다. 박씨는 치매로 고통받는 부모를 먼저 죽음으로 건너가게 한 뒤, 그 자신도 묵묵히 그 뒤를 따랐다.

 치매의 극한 고통 앞에선 제 아무리 깊은 효심도 버티기가 힘들 수 있다. 우리 사회에는 박씨처럼 치매 가족을 홀로 돌보느라 심신이 피폐해진 사람들이 늘고 있다.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치매환자 역시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인 치매 60만 … “사회가 함께 간병을”

 치매 가족을 돌보느라 지친 탓에 박씨처럼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도 많다. 지난해 5월 경북 청송군에선 80대 부부가 저수지에 차를 몰고 들어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발생했다. 아내의 치매를 간병하던 남편이 남긴 유서에는 “내가 먼저 죽고 나면 (아내가) 요양원에 가야 하니 운전할 수 있을 때 같이 가기로 했다”고 적혀 있었다. 치매에 걸린 부인을 7년째 돌보는 박모(79)씨는 “가족이니 내칠 수도 없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것도 심정적으로 이해가 간다”고 말했다.

 정부는 2008년부터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치매 간병을 가족이 전부 떠맡는 것이 가혹하다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이 제도는 아직 예산 문제 때문에 미흡한 수준이다. 수급자 대부분이 치매환자임에도 중풍 등 다른 질병과 함께 묶여 있어서 특화된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한다. 복지부는 올 7월부터 가벼운 치매환자에 대해서도 서비스를 제공하는 특별등급제를 실시할 계획이다.

 국내 65세 이상 치매인구는 2010년 47만여 명에서 3년 만에 60만 명을 넘어선 것으로 추산된다. 65세 이상 전체 인구(약 600만 명)의 약 10% 수준이다. 노인 열 명 가운데 한 명은 치매 환자라는 얘기다. “치매는 언제 내 일이 될지 모릅니다. 치매 문제를 가족에게만 떠맡길 게 아니라 우리 사회가 함께 이들을 배려할 수 있는 정책 개발에 힘써야 합니다.”

 김기웅 국립중앙치매센터장은 이 사건을 단순히 한 가족의 비극으로 봐선 안 된다고 말했다.

정강현·장주영·이상화 기자

(※이 기사는 경찰 관계자와 주변 지인 등을 취재한 내용을 토대로 스토리텔링 형식으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사진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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