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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강호 “2013년 기념할 만한 해였다”
조글로미디어(ZOGLO) 2013년12월16일 17시33분    조회:12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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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강호. 씨네21

2013년 <설국열차> <관상>을 거쳐 <변호인>까지 달려온 배우 송강호
 

<변호인>을 보는 동안 희한한 동시상영을 관람하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송강호가 연기한 송우석 변호사가 단무지를 가져오지 않은 중국집 배달 소년에게 “까묵었으면 까묵었다고 이야기해라” 하며 나무젓가락을 가를 때, 돈 주고 사람 써놓고도 누구보다 많은 이삿짐을 나를 때, 그리고 법정에서 “인정해라, 인정하란 말이다!” 하고 고문경관을 향해 품위고 나발이고 고성을 내지를 때 관객의 뇌리에는 ‘노무현’이라는 또 한편의 필름이 돌아간다. 분리하기 불가능한 두 ‘영화’의 중첩은 관객을 울리는 한편 <변호인>에 대한 영화적 판단을 망설이게 한다. 역사가 세워놓은 이중의 스크린. 그것은 1996년 데뷔 이래 한국영화의 등줄기를 고스란히 등반해온 송강호라는 배우에게도 전에 없던 여행이었을 것이다. 아프고 어두운 사건을 다루지만 <변호인>은 역설적으로 인간 노무현이 가장 반짝였던 시절의 재연이다. 뒷날 “내 이름은 더럽혀졌다. 이제 노무현은 정의나 진보와 같은 아름다운 이상과는 어울리지 않는 이름이 되어버렸다”라고 뼈아프게 스스로 적었던 정치인의 화양연화가 여기 있다. 부끄럽지 않게 사는 것이 절체절명의 명제였던 사람이 처음으로 부끄러움에 눈뜬 나날의 혼란과 고통, 기쁨은 송강호라는 두터운 연기자가 가진 모든 기교와 근육을 빌려 되살아난다. <박쥐>가 송강호라는 나라의 영토를 확장했다면 <변호인>은 이 나라가 보유한 자원을 최대치로 끌어내 활용하는 영화다. 고인과 닮은 광대를 부풀린 개구진 웃음부터 소시민의 소탈함, 마초적인 순정, 그리고 굳이 상아탑에 기원을 두지 않은 지성과 통찰력까지 <변호인>의 송우석은 40대 후반에 이른 송강호가 갖게 된 소박하고도 명석한 얼굴을 남김없이 드러낸다.

2013년은 미래의 영화학자들이 송강호에 관해 쓴다면 특별히 한장(章)을 할애할 만한 해이다. 올해 그는 <관상>으로 근대화 이전 배경의 사극을 처음 찍었고, <설국열차>로 다른 언어를 쓰는 배우들 가운데에 뛰어들어 연기했으며 <변호인>에서는 실존 인물을 최초로 표현했다. “세 영화의 시간적 배경도 과거, 미래, 현재로 전부 다르죠.” 송강호가 흡족한 표정으로 덧붙인다. 그의 구분대로 <변호인>은 30년이 흐른 사건이지만 넓은 의미로 현재 시제의 영화다. 송강호가 이 영화의 개봉을 전후해 딱히 배우의 소관이 아닌 문제를 둘러싼 웅성거림의 복판을 돌파해나가야 하는 연유이기도 하다. <관상>과 <변호인>에서 각각 거스를 수없는 운명과 개인의 결단으로 구축되는 운명을 연기한 송강호 자신은, 여전히 배우의 숙명을 노려보고 있다. 그것이 점지된 운명인지 스스로 쌓아올린 것인지를 가리는 일은 이제 와서 의미가 없어 보인다.

-<변호인>은 <박쥐>와 더불어 “송강호의 연기를 봤다”는 포만감이 가장 큰 작품이 아닌가 싶습니다. 어찌 보면 올해 개봉한 세 작품 중에서 본인의 만족도가 제일 높지 않을까 하는 짐작도 들어요.

=솔직히 그런 면이 있습니다. 영화의 주제와 내용을 떠나 <변호인>만큼 배우의 기능적 능력을 십분 발휘하면서도 굉장히 다변화된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복합적인 캐릭터를 만날 기회는 평생 연기하면서 한두번 오거나 아예 못 만날 가능성도 높아요. 비슷한 예로 <밀양>에 들어가기 전에 전도연씨를 이창동 감독님과 함께 처음 만났을 때 제가 도연씨에게 “80, 90살까지 연기를 해도 이런 시나리오를 다시 만나는 것이 쉬운 경우의 수는 아닌 것 같다”라고 말한 기억이 나요. 물론 감독님이 안 계실 때 했죠. (웃음) 전도연에게 <밀양>이 있었다면 송강호에게 <변호인>도 그 정도 가치를 둘 수 있는 작품이 아닐까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변호사’와 ‘변호인’. 두 단어의 차이를 어떻게 느끼십니까?

=‘변호사’는 직업을 가리키는 말인 반면, ‘변호인’은 이 영화의 지향점을 포함하는 단어 같습니다. 일이나 사건에 중심이 있기보다, 사람이 사람을 대하는 입장과 태도가 담겨 있어 마음에 들었던 제목이죠.

 -<변호인>의 송우석 변호사는 표면상 실존 인물이 아니지만 내용적으로는 실존 인물이라는 점에서 특이한 위치의 캐릭터입니다. 영화를 보기 전엔 송강호 배우라면 전혀 모델이 없는 캐릭터처럼 연기할 수도 있다고 예상했는데 막상 영화를 보니 우리가 기억하는 고 노무현 대통령의 말투, 습관, 성정을 연상시키는 대목이 군데군데 있더군요. “얼마나 무엇을 닮게 할 것인가”에 대해 감독과 상의했나요?

 =전혀 안 했어요. 양우석 감독님은 기본적으로 배우에 대한 신뢰가 커서 “이렇게 가야 합니다”와 비슷한 이야기도 한 적이 없어요. 제가 이따금 의견을 구했을 뿐이죠.

 -그렇다면 노무현이라는 인물의 세부를 얼마나 어떻게 살릴지는 순전히 송강호 배우의 결정이었다는 뜻이군요.

=가장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그분의 어떤 동작, 말투를 닮게 하고 연상을 불러일으키도록 하자는 계산은 전혀 없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통으로 ‘배우 송강호가 연기하는 노무현’이었는데 어떤 부분은 송강호가 오롯이 보이고 어느 부분은 돌아가신 분의 생전 모습이 오버랩된 것 같습니다. 그 모두가 자연스런 발현입니다.

 -예전 인터뷰에서 노숙자를 연기하려면 외양을 흉내낼 게 아니라 옷을 깨끗이 입고 있어도 그를 노숙자이게 하는 요소를 포착해야 한다고 표현했습니다. 연기는 세부를 옮기는 작업이 아니라, 인물의 본질만 붙잡고 있으면 나머지는 어떻게 표현하든 답을 벗어나지 않는다는 의미로 이해했습니다. 그렇다면 캐릭터의 모델로서 노무현이라는 사람의 핵심은 뭐라고 파악하셨습니까?

=원칙주의, 그리고 아주 합리적이고 상식적으로 살아가고자 했던 인간의 느낌입니다. 영화 초반 등기업무를 침범했다고 항의하러 온 사법서사들에게 법적으로 문제가 있으면 고소하라고 외치는 장면까지 포함해 기본적으로 상식과 원칙, 법을 준수하는 강직한 사람의 느낌이 최초로 떠오른 이미지였어요. 인간적으로 개구쟁이 같은 면모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듣긴 했지만 저는 회고록도 읽지 않았고 실제로 딱 두번을 뵈었습니다. <밀양>이 칸에서 수상한 다음 선배 동료 영화인들과 간단히 점심식사를 하는 자리가 있었고 10년 전인가 모범납세자 표창을 받고 50, 60여명이 모인 다과회에서 멀찌감치 모습을 보았죠. 그러나 그 짧은 경험이 특별히 인물 탐구의 차원으로 연기에 실제 도움을 주지는 않았습니다.

-송우석 변호사를 모델 없는 캐릭터처럼 연기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 이유는 송강호씨가 작품마다 맡은 역할에 따라 본인 특유의 몸짓, 외모, 발성을 확 바꾸는 유형의 배우가 아니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컨대 말을 시작하기 전에 목을 가다듬는다거나 입맛을 다신다거나 하는 습관을 굳이 지우려고 하지 않죠?

=요즘은 그리 많이 이야기되는 부분이 아니지만 제가 경상도 언어를 쓰잖아요? 후배들에게 이런 제 생각을 말한 적이 있어요. 우리가 연기를 위해 언어를 쓰는 것이지 언어를 위해 연기를 하는 게 아니라고요. 이 개념이 정확히 실천된다면 배우의 개인적 세부 특성은 그리 중요하게 다가오지 않습니다. 다만 해당 연기의 주목적이 깊이 있게 달성이 되지 않는다면, 그때부터 배우 개인의 지엽적인 개성이 부각될 수밖에 없어요. 연극할 때부터의 깨달음이지만 이 인물이 어떠할 것이라는 그림은 제게 무의미해요. 정지된 사진에 찍힌 피사체와는 다르니까요. 연기는 살아 있는 존재가 움직이는 행위이기 때문에 거기에 송강호라는 인간이 동반되지 않는다면 죽은 연기, 흉내가 돼버려요. 서울역에 있는 노숙자를 모방하면 안 되고 노숙자의 본질을 내가 깨달은 다음 내 몸을 통해 나와야 송강호가 연기하는 노숙자가 되는 거죠. 그러므로 송강호이기에 나오는 억양과 습관이 그렇게 중요한 방해 요소로 여겨지지 않습니다. 물론 이는 제 기준일 뿐, 배우마다 연기론과 방식은 다르겠죠.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몸싸움이나 장난치는 신이 있으면 언제 송강호 씨의 발이 올라오나 기다리게 됩니다. 발이 나오게 만드는 감정은 뭔가요? (웃음)

 =손으로 때리면 더 폭력적으로 느껴집니다. 더 심각하고 모욕적이죠. 발은 반면 장난스럽고 상황에 따라 애정이 담겨서 받아들이는 사람이 오히려 부담이 없어요. 누가 지나가다 엉덩이를 툭 한대 차는 거랑 손으로 머리를 툭 때리는 건 다르거든요. 때로는 그것이 캐릭터 묘사에 보탬이 될 때도 있고요.

 -<변호인>을 보면 송우석이 사법고시를 준비하며 고생하는 시기에는 몸이 좀 부했다가 성공하면서 점점 날씬해지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는데 기분 탓인가요. 실제 촬영순서는 어떠했나요?

=로케이션이 많다보니 뒤죽박죽이었죠. 영화를 보면 어떤 장면에선 얼굴이 젊고 갸름하니 되게 좋은데, 어떨 때는 노력했는데도 부어서 나오고… 쩝. (좌중 폭소) 영화 속 송우석 변호사에 해당하는 노무현 대통령의 연령과 저는 물리적으로 열두살에서 열다섯살가량 차이가 나요. 아무래도 40대 후반으로 가면서 30대 인물을 연기하려니 부담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시간의 흐름에 따른 몸의 변화를 신경쓰기 이전에, 처음부터 끝까지 젊게 나와야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송강호. 씨네21

 -송우석은 한국 드라마나 영화에서 많이 보지 못한, 지적이면서 ‘촌스러운’ 인물입니다. 대개 이런 직업에 종사하고 논리가 발달한 인물은 일상생활에서도 샤프하고 세련된 모습으로 그려지기 마련인데요.

 =유복한 환경에서 좋은 대학 나와 법조인이 된 인물이 아니잖아요. 접근하기 힘든 정치가의 모습이라기보다 시골에서도 마주칠 법한 수더분한 아저씨 같죠. 그래서 화이트칼라의 인상을 일부러 불어넣으려고 하지 않는 대신 정신이 세련된 사람의 느낌을 주려고 했습니다.

-한때 송강호 하면 떠올렸던 <넘버.3>의 조필, <반칙왕>의 대호로부터 세월이 흐르면서 연기하는 캐릭터의 스펙트럼이 분석적이고 지성적인 인물 쪽으로 넓어지고 있는 듯합니다. 사회적 소재를 다룬 작품만 봐도 <효자동 이발사>의 성한모, <괴물>의 강두가 체제의 모순에 휘말린 민중의 한 사람이라면 올해 연기한 <설국열차>의 남궁민수나 <변호인>의 송우석은 모순을 언어로 표현하고 왜 싸워야 하는지 논리까지 제시하는 인물이에요.

=그래서 배우로서 올해 연기하기가 참 재미났어요. 한국 남자배우들 누구나 가장 많이 연기하게 되는 인물이 조폭과 형사이다보니 그것을 벗어난 배역이 주어질 때 느끼는 즐거움이 어쩔 수 없이 있습니다. <설국열차> <관상> <변호인>을 찍은 올해는 장르와 배경, 캐릭터가 모두 달라 특히 저로선 기념할 만한 해입니다.

 -오래전 실현되지 못한 기획으로 <아리랑>이라는 프로젝트에서 독립운동가 김산 역으로 거론된 적이 있었던 기억도 새삼 납니다. 그때는 뜻밖의 캐스팅이라는 반응도 있었는데 지금이라면 아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것 같습니다.

=아니, 예전의 절 어떻게 생각하신 거예요? 만날 깡패 아니면 형사? (폭소) <아리랑>은 벌써 10년은 된 이야기인데 제작이 여의치 않았던 것 같습니다. 여전히 제가 가장 선호하는 종류의 영화죠. 제가 역사물을 무척 좋아해요. 임권택 감독님의 <태백산맥> 개봉할 때 극장으로 달려갔던 기억이 나고 드라마 <공주의 남자>도 눈물 흘리면서 재미있게 봤어요. 남자가 봐도 아름답고 애틋하더라고요. 제가 알아본 결과 (좌중 폭소) 경북에 있는 어느 바위 틈에 극중 두 주인공이 숨어 살았다는 전설이 있더군요. <관상>으로 본격적인 사극을 처음 해봤는데 옷 입고 분장하는 과정이 힘들다 해도 그걸 아무것도 아니게 만드는 묘미가 있어요. 흔히 예스런 말투를 써야 하니 제약이 많을 것 같지만 뜻밖에도 사극에는 관객이 익히 아는 현실의 테두리에 머물러야 하는 현대극에 없는 상상과 실험의 가능성이 있어요. 연기 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컨대 이정재씨의 수양대군은 늘 TV에서 보았던 무게 있고 나이든 수양대군에게서 볼 수 없었던 건달스러움, 섹시한 카리스마를 보여줬죠. 그것이 사실이 아닐지라도 영화에서 합리성을 획득하면 관객은 받아들인단 말이죠. 현대물이라면 “저건 거짓말이잖아”라는 반응이 앞설 텐데 말이죠.

-연기란 원래 정신적으로 벌거벗는 일이라 어떤 작품이든 ‘양날의 작두를 타는 일’이라고 어려움을 표현하신 적이 있어요. 그런데 <변호인>은 소재의 특성과 정치적 상황 때문에 영화 외적으로도 다칠 가능성을 우려할 만한 경우였는데요. 이 부분에 대해 어떻게 생각을 정리하셨나요?

=제작보고회에서 위더스필름 최재원 대표의 제안을 한 차례 거절한 적이 있다고 말씀드렸더니 오해들 하시는데 지금이 군사독재 철권시대도 아니므로 배우가 영화를 찍는 데 외압에 대한 두려움을 가질 수 없고, 가져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껏 어떤 작품을 선택할 때도 그런 이유로 주저한 적은 없습니다. 사양했던 이유는 오직 하나,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게다가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분을 누를 끼치지 않고 표현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어서였습니다. 제가 원래 충무로에서 답을 빨리 주기로 유명합니다. 2시간 안에 답을 달라고 하면 드릴 수 있어요. 아니, 2시간30분! 2시간 읽고 30분은 생각해야 하니까. (좌중 폭소) 처음 고사했다가 시나리오가 자꾸 눈에 밟혀 일주일인가 이후에 부산영화제에서 다시 면담을 갖고 출연을 결정했죠. 만약 애초에 영화 외적인 고려로 거절했다면 단 며칠 동안 시나리오가 유하게 수정되거나 정치적 국면이 전환된 것도 아닌데 어떻게 마음을 바꿨겠어요.

-가령 <변호인>의 시나리오가 멈춘 지점이 1987년이 아니라 5공 청문회 혹은 대통령선거였다고 해도 마찬가지였을까요?

=가능하죠. 그러나 제가 <변호인>이 마음에 들었던 첫 번째 지점은 바로, 이 인물을 가장 예술적으로 드라마틱하게 표현할 수 있는 시기가 그 시절이라고 판단한 관점이었어요.

 -<변호인>의 클라이맥스는 다섯 차례에 걸친 공판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이 장면들의 성패는 어디 있다고 보셨습니까?

=송우석 변호사의 진심을 전달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기에 감독과 제작진이 저를 전적으로 믿어주었고 제가 1차부터 5차까지 공판의 리듬과 감정을 미리 계산하고 리허설을 했습니다. 촬영 5일 전에 미술팀이 작업 중인 세트장에 혼자 들어가 준비를 했는데 그 소식을 듣고 감독님과 촬영팀이 달려와 카메라의 동선을 설계하며 함께 만들어갔습니다.

-살다보니 송강호씨가 “치밀하게 계산하고 준비했다”는 말을 듣는 날이 오네요. (웃음)

=우하하. 저도 몰랐죠. 다섯 시간 전에도 촬영장에 안들어갔는데 5일 전에! 연습을 하려면 상대가 있어야 하는데 다른 스케줄이 있는 배우들 대신 감독님이 처음부터 끝까지 달라붙어 도와주셔서 정말 고마웠습니다. (오)달수가 연습 상대가 필요하면 언제든 불러달라고 했는데 웃길 것 같아서…. (좌중 폭소) 리허설을 하면서도 결정적인 연기는 스탭들 앞에서 보여주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그야 그건 딱 한번만 나오는 감정이니까요. 그래서 때로는 클로즈업이 필요보다 덜 들어오는 순간도 있어요. 제가 설명을 안 하고 현장에서 연기하는 바람에 약간의 오차가 생긴 거죠.

 -<설국열차>에서 통역기가 등장해 송강호씨가 특유의 한국어 연기를 한다거나 <관상>에서 직접 말을 몰기보다 안장 뒤에 앉아 있는 장면을 보면 감독들도 어쩌면 송강호를 변신시키기보다 친숙한 송강호로서 영화 안에서 보전하고 싶어 한다는 인상도 받는데요.

 =각이 진 인물보다는 좀 유연하고 편안한 인물의 느낌을 송강호라는 기존 캐릭터를 통해 구현하려는 생각을 감독님들이 하시는 것 같아요.

 -같은 맥락에서 <하울링>이나 <관상>을 보면 영화의 구조가 송강호라는 배우의 존재에 영향을 받는다는 인상을 받게 됩니다. 한 캐릭터를 연기하는 배우를 넘어서, 관객에게 친숙한 송강호다운 사랑스러움, 유머, 능란한 연기를 통해 이야기의 본론으로 관객을 데리고 들어오는 안내자 역으로 활용된달까요. 이런 시도들은 전체적 조화에 따라 성공하기도 하고 실패하기도 하는데요.

 =음… 영원히 그렇진 않을 거라 생각해요. 앞으로는 변화가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때가 오기까지는 영화 내적으로 어색하지 않은 선에서는 그런 역할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겠지요. 올해 <설국열차> <관상> <변호인>을 통해 저는 가진 모든 능력을 다 쏟았다고 확신해요. 여기서 아쉽고 못한 부분은 제 능력 밖인 것이죠. 그러니 <변호인> 이후에는 반드시 작품 전체를 아우르고 처음부터 끝까지 가는 역이 아니더라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지 않을까 짐작합니다.

 -<괴물>이 1천만 관객을 바라보던 시점에 “1천만 영화에 출연했다고 배우로서 내 삶이 표변하거나 궁극적 성공을 거둔 것도 아니고 실패했다고 그 반대도 아니란 걸 안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배우로서 최소한 경계해야 할 적신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흥행 가능성을 기준으로 영화를 택한 적도 없고 앞으로도 그러지 않을 겁니다. 가능하지도 않고요. 관객이 저에 대해 쌓아온 믿음이 있다면 거기에는 연기적 성취만이 아니라 작품을 선택하는 판단력에 관한 신뢰도 포함돼 있는 것 같아요. 모든 배우에게 해당되는 일이지만 저도 나이가 있으니 앞으로는 제안이 줄어들 수밖에 없겠죠. 한국 대중상업영화에서 주연 남자는 대개 20대 후반에서 30대 중반, 많아야 40대 중반인데 저는 40대 후반으로 달려가고 있으니까요. 지금까지 전체 범위의 작품이 들어왔다면 이제는 좁아질 겁니다. 어떤 일이건 오래 하다보면 방심하는 순간이 있는데 작은 역이건 큰 역이건 안일한 선택을 하는 일은 없도록 경계하려고 해요.

 

한겨레 글 : 김혜리 | 사진 : 손홍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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