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은행나무처럼 살고 촛불마냥 몸을 녹이며 불타
조글로미디어(ZOGLO) 2011년7월8일 10시36분    조회:10595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인물이름 : 한석윤

한석윤 퇴직후 사재 털어 '연변청소년문화진흥회' 설립


한석윤 시인 어린이들과 함께.

  (흑룡강신문=연길)약 40년간 조선족 청소년 사업에 몰두한 한 조선족 지성인이 있는데 그가 바로 중국조선족소년보사 전임 사장인 한석윤 씨(1943년 출생)이다.

  퇴직후에도 지속적으로 청소년사업을 이끌어나가기 위해 한석윤 씨는 평소에 아껴먹고 아껴 쓴 4만위안의 사재를 털어 '연변청소년문화진흥회'를 설립하고 오늘도 이 진흥회를 이끌고 노년의 정열을 퍼붓고 있다.

  연변대학 조선문학 학부를 졸업한 한석윤 씨는 연변조선족자치주정부에서 번역사업을 했다.

  "번역사업에 종사하는 기간 내내 청소년을 위해 글을 써야겠다는 마음이 꿈틀거렸다"라고 서두를 떼고 있는 한석윤 회장은 1972년도에 연변정부에서의 번역과 과장자리를 버리고 자원해 어린이 신문사(현 중국조선족소년보사)에 전근하기로 결심했다. 당시 조직에서는 그를 정부판공실 부주임으로 승급시키려고 했으나 사절했다. 어린이 신문사로 전근한 뒤에도 두 차례나 상급 요직부문으로 승직시키려 했으나 그는 완곡히 사절했다.

  "당시에 나의 좌우명은 민족의 후대를 길러가는 길에서 은행나무처럼 깨끗이 살고 촛불처럼 몸과 마음 다하여 가겠다"였는데 이 좌우명이 후에 중국조선족소년보사 사훈으로 되었다고 한석윤 씨는 말하고 있다.

  어린이 신문사업에 남긴 족적

  한석윤 씨는 수차 베이징으로 뛰어 다니면서 중앙 지도자들의 지지를 얻어 마침내 지방급 신문이었던 '연변소년보'를 국가급인 '중국조선족소년보'로 업그레이드했다. 조선족 4대 신문사의 하나로 자리매김해 전국 소수민족 소년아동신문잡지로는 유일한 국가급 신문으로 되었다.

  그는 사장을 담임하는 기간 '중국조선족소년보'를 전국의 300여개 소년아동신문잡지 중 영향력이 큰 간행물로 부상시킴으로써 이 어린이 신문은 중국 소년아동신문잡지간행물협회로부터 '금상신문(일류신문)', 국가신문출판총서로부터 '우수신문'으로 평의받았고 신문사는 연변조선족자치주 정부와 지린성 정부로부터 '모범집체'로, 공청단중앙으로부터 '선진집체상'을, 한석윤 씨 또한 연변조선족자치주 '모범간부상', 지린성 정부로부터 '지린성 청소년신문우수언론인상'을 수여받았으며 소수민족으로는 첫 사람으로 전국소년아동 신문간행물협회 부회장에 당선되었고 제1회 전국소년아동신문출판계 최고상인 '엽성도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게 되었다.

청소년 문화사업에서의 발자취

  1980년대에 조선족 청소년들을 21세기의 수요에 적응하는 창조형의 인재를 길러내는데 이바지하기 위하여 한석윤 씨는 '중국조선족소년보'를 조선족청소년들의 '여론중심, 문화행사 중심'으로 변신시키고 다양한 문화행사를 펼쳐나갔다.

  한석윤 씨는 우리말, 우리글을 세세대대에 빛내기 위해 1982년부터 '그림보고 글짓기' 행사를 벌려 이 행사를 11년간 이어 오면서 수많은 문학신동들을 양성해냈다.

  우리 어린이들에게 주입식 교육에서 벗어나 창조형 교육을 실시하기 위해 1987년부터 '소발명, 소논문 잔치'를 치렀다. 그래서 연변은 물론 동북3성의 각 소학교들에서 이 활동에 적극 참가해 많은 어린이들이 창조형인재로 자라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총12회에 걸친 이 활동에서 수많은 발명품들이 어린이 손에서 창작되었는데 이런 것들은 모두 어린이들이 장차 커서 독립적인 사유를 키우는 면에서 큰 도움이 되었다.

  다가오는 국제화 시대를 대비해 한석윤 씨는 중국조선족소년보사를 이끌고 1994년부터 한국과 교류하여 국제수학대회에 11차나 조선족어린이 수학신동들을 출전시켰고 한민족청소년들 사이의 정분을 다져주기 위해 1992년부터 중한, 중조 청소년교류 행사를 수차 벌였다. 그중 중한 간 행사는 28회, 중조 간 행사는 17회, 참가인수는 무려 4000여명에 달했다.

  그리고 어린이들의 가슴속에 사랑의 씨앗을 심어주기 위해 1998년부터 '사랑의 일기 공모전'을 8회 진행, 또 청소년들에게 시대적인 전형을 수립해 주기 위해 1993년부터 10회 걸쳐 '조선족 최우수 10명 소년 선발표창대회'를 조직했으며 1999년부터 조선족 중점학교 30개소에 100만 위안의 도서를 모여 보내줬고 1998년부터 불우 청소년을 지원하는 중국조선족청소년장학상을 제정하여 지금까지 8회를 거쳤다.

  "건실한 어린이로 자라는데는 훌륭한 교사들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명기하고 있는 한석윤 씨는 민족교사들의 사기를 돋구어 주기 위해 1995년부터 총10회에 걸쳐 '고마운 스승님상'을 수여했으며 1998년부터는 학생들의 문화행사를 잘 이끌어주는 보도원 교사들을 격려해 주기 위해 '고마운 보도원상'을 설치하고 지금까지 8회째 이어오고 있다.

  퇴직 후도 청소년사업에 애착

  한석윤 씨는 정년퇴직후에도 청소년사업에 대한 애착을 놓지 않고 2006년에 4만위안 사재를 털어 사단법인 연변청소년문화진흥회를 발족했다.

  그는 이 진흥회를 발족한 당해에 어려움 속에서 씩씩하게 자라는 청소년들을 격려해 주고자 '초로장학상'을 설립, 조선족청소년들의 가슴속에 민족전통예술의 씨앗과 민족의 얼을 심어주기 위하여 한국의 전통예술인들을 초청하여 '우리민족 전통예술초청공연'을 마련, 2007년에는 아동문인들이 훌륭한 아동문학작품을 쓰도록 격려하기 위하여 '윤정석 아동문학상'을 설립, 2008년에는 청소년들의 독서열기를 불러 일으키기 위해 연변조선문독서사와 함께 '엄마랑 함께 하는 독후감쓰기 대회', '독서왕, 독서모범가정, 독서모범학교, 독서지도모범교원 표창대회'를, 그리고 사랑의 동시가 아이들 가슴속에 가 닿도록 하기 위하여 '엄마랑 함께 하는 동시낭송대회'를 조직했으며 조선족 유명동시인들을 기리고 민족문화를 고양하기 위해 동시동네를 마련하고 동시비를 세웠다.

  2009년부터 중한문화교류를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연길, 투먼, 안투에서 '시민들과 함께 하는 중한시화전'을, 2010년부터 민족교육 진흥을 위해 '민족교육포럼'을 조직했다.

  "우리진흥회가 이렇게 해마다 다양한 행사를 치를 수 있게 된 것은 임원진들의 한결같은 노력이 있었고 더욱이는 한국 등 국내외 지성인들의 지지가 있었기에 가능하다"고 한석윤 회장은 겸손을 잃지 않고 있다.

  한석윤 씨는 그간 수많은 저작들도 펼쳐냈다. 대표적인 저작들은 동시집 '별과 꽃과 아이와' 등 11권, '20세기 조선족아동문학선집', '당대 중국소년아동 신문잡지100권 정품문고' 등 30여권을 편집 출판했으며 조선 측과 손잡고 '연변 동시선집', 한국 측과 협력해 '한중아동문학선집' 등 5권을 편집,출판했다.

  한석윤 회장의 이런 혁혁한 족적이 인정되어 채영춘 연변주 당위 선전부 부부장은 "한석윤시인은 중국조선족 어린이들을 가슴에 듬뿍 담은 제일 부자"라고 격찬했다.

  /윤운걸 길림성 특파원.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허상림선생의 연변사랑 연변자랑 연변대학 공학원 제1임원장 허상림선생을 만나 지난 5월 1일, 기자는 연변대학공학원 제 1임원장을 지냈던 허상림선생을(78세)을 인터뷰하였다. 허상림선생은 말초신경염으로 몸을 움직이지 못하다보니 바깥세상과 담을 쌓고 집에서 컴퓨터와 마주하고 사이버공간에서 세계를 주유한단다. ...
  • 2012-05-13
  • 연변체육관 관장 연변체육복권관리센터 박성웅주임 인터뷰 연변체육복권관리센터 박성웅주임. 사람들은 체육복권에 대해 익숙하지만 연변의 체육복권 관리사업을 책임진 박성웅씨에 대해서는 그다지 잘 알지 못하고있을것이다. 연변에 첫 체육복권이 나타나고 이어 체육복권관리센터가 세워져 지금에 이르기까지 10여년간 ...
  • 2012-05-11
  •     연변제2인민병원 베테랑 간호장 한길숙씨 이야기 해맑은 미소, 상냥한 문안, 열정적인 봉사…사랑이 듬뿍 담긴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은 환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21년간 그녀는 고상한 의덕과 숙련된 업무, 앞선 사유로 매 한명의 환자들의 생명과 건강을 지켜왔다. 그녀의 간호를 받은 환자들치...
  • 2012-05-10
  • 야외 극한 도전자 “대지의 타향인”- 리근호   -   “중국오토바이려행 1인자” 를 적다     아리랑주간  취재사진 박군걸   글 륙삼   출중한 사람은 늘 평범하게 보인다. 그들은 항상 평범한 사람들 사이에서 극도로 평범하게 살면서 출중하다는 성분...
  • 2012-05-09
  • 사 교육이 비교적 체계화되여 교육의 한부분으로 간주되는 한국이나 일본에 비해 우리 나라는 아직 사교육을 향한 시선이 그리 곱지만은 않 다. 이런 현황에서 학부모, 학생들과 희로애락을 함께 하며 주위의 삐딱한 시선을 돌려세운 한 경영인이 있다. 바로 연길시지능양성학 교 교장 최향란씨(36세)이다.   최향란 ...
  • 2012-05-08
  • 중앙민족대학 민족리론 및 민족정책 연구학자 지난 2월, 북경출장길에 우연히 대학시절의 스승이였던 김병호교수를 만나게 되여 옛 스승을 잠간 인터뷰할 기회가 생겼다.           흑룡강성 연수현태생인 김병호교수는 1974년 중앙민족대학을 졸업한 뒤 모교에 남아 오늘까지...
  • 2012-05-08
  •   최근 중국공산당탄생 90돐 맞이 기념선집《새시기 중국공산당인 우수격언선집》에 연변의 원로작곡가 동희철옹(85세)의 4수의 격언이 등재되였고 편집부로부터 우수격언증서와 메달이 전달되였다. 《명곡앞에서는 총을 든 적들도 무력해진다.》 《총탄은 사람의 육체는 해칠수 있어도 인간의 령혼은 정복할수 없다....
  • 2012-05-08
  •   조선족이 낳은 당대의 저명한 시인 김철선생이 문단에 발을 들여놓던 20세기 50년대 초반, 그가 조선전선에서 돌아와 신문기자로 일할 때였다.서정시 《앵두 네알》을 써서 문단과 독자들의 이목을 끌었고 단시 《지경돌》과 노래 《귀환병과 처녀》(동희철 작곡)가 신춘문예에 입선되여 한창 주목을 받고있을 때였...
  • 2012-05-08
  • 칭다오야베스상무회사 김대수 사장 이야기 신라원 아파트단지 정문에서 프로젝트를 소개하고 있는 김대수 사장.         (흑룡강신문=칭다오) 박영만기자= 칭다오시에서 6년동안 한국의 아파트문화보급을 위해 꾸준히 한 우물을 판 한국인이 화제가 되고 있다. 주인공인 칭다오야베스상...
  • 2012-05-07
  • 성공 가도 달리는 조선족 3세 이야기   (흑룡강신문=하얼빈) 리수봉기자 = "재한조선족들의 생활실태를 비교적 전면적이고도 현실적으로 기록해 중국과 한국에 알리려는 목적에서 대림동,가리봉,안산 등 중국인(주로 조선족)집거지역을 답사하게 되였습니다.코리안드림이 시작되여서부터 오늘까지의 전반 과정 역시 우리 ...
  • 2012-05-04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