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중앙민족대 서영섭교수 인터뷰
조글로미디어(ZOGLO) 2010년7월7일 11시39분    조회:8906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중앙민족대 서영섭교수를
  인터뷰 하다

 

 

5 29, 서영섭교수 남방 조선어 특강, 소흥 로신선생 옛집 답사

5 30, 항주 서호 유람, 항주고려사 답사, 로룡정 오찬

 

연변작가협회 절강지구창작위원회와 남방아리랑 주최, 절강월수외국어대 한국문화연구소 협조로 된 중앙민족대 서영섭교수 남방 조선어특강의 이틀간 스케줄, 항주 서호가 로룡정 오찬을 마치고 룡정 샘물 휴식터에서 휴식을 취해서야 잠깐이나마 취재를 가질 수 있었다. 인터뷰는 교수님의 어린 시절부터 쭈욱 이어지기 시작했다.

알고 보면 서영섭교수는 그젯날 연길현 태양구 광석촌 백석구 출생으로서 선후로 와룡동 룡산소학교와 광석소학교를 다니었고 소학교 4학년 시절에 해방을 맞이한 분이다. 그후 조양천중학교, 근민중학교를 다니다가 1952 9월부터 3년제 연변사범학교를 다닐 행운을 가지게 되고, 그 행운이 이어져 연변사범학교 추천으로 또 연변대학 조선어학과 공부를 할 수 있었다.

광인 선생이 연변대 조선어학과 25기 생일 때 나는 조문학부 5기생이었지요.”

서교수님은 소탈하게 웃으시며 1957 7월에 연변대를 졸업, 조선어학과에 남아 현대 조선어를 가르치다가 1960 2월에 그 시절 중앙민족학원 한어문학학과로 전근하여 수도 이 대학의 첫 조선족교원으로 현대 조선어를 가르치던 이야기를 털어 놓았다. 참고할 만한 자료도 없고 교과서도 없어 고생하던 이야기, 사회서 들어 온 한 한급 100명씩인 혼합반 2개 반이나 맡아 아글타글하던 이야기, 아내 김은자선생의 호적문제로 1963 10월에 연변대학에 돌아 갔다가 1976 10월에 다시 중앙민족대로 옮겨 앉은 이야기, 중앙민족대 조선어학과를 창설하고 이끌어 가던 이야기인터뷰는 스스럼없이 중앙민족대 조선어학과 산생과 발전에로 이어졌다. 이런 흐름속에서 중국인 하향청년들을 대상한 조선어자습독본”, 대학 교과서 겸 중학교 조선어문 참고 교과서 조선어문법”(공저), 이를 토대로 다시 나온 조선어실용문법등이 출판되니 그 뒤의 한조사전등과 더불어 서영섭교수의 주요 저서를 이룬다.

중앙민족대와 연변대 조선어(한국어)학과를 겪어 온 서영섭교수의 피타는 조선어(한국어)교육과 연구 노력은 대학과 사회의 인정을 받아 교수는 선후로 중국조선어학회 부이사장, 국가 민족사무위원회 소수민족 어문번역출판 고급직함 평의위원, 국가교육부 중학 조선어문 교과서 심사위원, 산동대학 객원 교수, 한국 성균관대학 초빙 연구원,  중국 사회과학원 아시아태평양연구소 고문 등을 맡아 나섰고, 현재는 또 북경대학 한국학 연구센터 특약연구원 겸 한국학총서 부주필, 중앙인민방송국 고문 등 사회 직도 맡아 보고 있다.

연변대 졸업 50여년래 서영섭교수는 조선어(한국어)교수와 연구, 조선어규범화 사업에서 출중한 기여를 하면서 겨레의 저명한 언어학자로 떠올랐다. 이런 출중한 기여로 하여 교수는 중국조선어학회 우수저작상, 북경시 대학교 철학사회과학 연구성과 우수상, 북경시 고등교육 교수우수상, 한국 동숭학술상 등 상을 수두룩히 받았고 국무원 정부특별수당금 향수자로, 한글 진흥과 발전의 공로로 한국문화훈장과 대통령 상을 수여받는 영예를 지니기도 하였다.

교수님은 우리 말 우리  글 교육과 연구에서 실로 크나큰 기여를 하셨습니다.”

뭘요, 그저 우리 말 우리 글 외통길을 고집해 왔을 뿐이지요.”

기자의 치하에 교수님은 겸손히 대답하며 1997년에 은퇴한 후에도 관련 강의를 쉬임없이 이어 왔다면서 우리 말, 우리 글 발전에 계속 힘을 보태고 싶다고 하였다. 그래서 이번  남방 조선어특강을 받아 들이었고, 남방아리랑과 절강월수외국어대 한국문화연구소 그리고 연변대, 중앙민족대 졸업생들의 소행이 감사하다고 거듭 되뇌이었다.

기자의 인터뷰는 서영섭교수의 부인 김은자교수님도 자리를 같이 하였다. 김은자교수님도 연변대 조선어과 졸업생으로서 남편을 받들면서 대학 조선어(한국어)교육과 연구에 혼신을 다해 오셨다. 중앙민족대 79학번 졸업생인 절강월수외국어대 첫 재직박사방룡남씨의 말을 빈다면 어머니와 같이 다정다감한 분, 기자는 두분 교수님의 만년 장수와 행복을 기원하면서 취재 수첩을 접었다.

 

    2010 619

 

 

 

 

 

 

 

 

 

 

파일 [ 5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12월 11일 오전, 2012년 연변TV 양력설특집 촬영차로 연변을 찾은 한국 엔터테인먼트 정원수씨를 만났다. 엔티테인먼트 소속 명휘씨(가수)도 동행했다.   정원수 그는 누구인가   정원수씨는 노래 “북경아가씨”, “로무현 추모곡”’등 많은 노래를 작사, 작곡했다.   1960년, 한...
  • 2011-12-12
  • [료녕조선문보 2011-12-09 김룡호기자  ]특별기획-중국조선족기업인(25) -대련선성물류 엄광철리사장을 만나다 엄광철(厳光鉄)프로필   1975년 5월 길림성 훈춘시 출생 1995년 7월 연변대학 졸업 1995년 8월-2003년 12월 한국우진글로벌로지스틱스(주)대련사무소 대표 2000년 9월-2002년 12월 청화대학 EMB...
  • 2011-12-09
  • 연변가무단 가수 겸 타악기연주원 김상운의 이야기       둥근 달님이 떠오르면 어머님 얼굴 보고싶소       밝은 별빛이 반짝이면 어머님 말씀 듣고싶소       세월이 흘러흘러서 이 몸은 자랐어도       어머님 무...
  • 2011-12-09
  • 연변대학 예술학원 리훈박사의 이야기       현재 연변대학 예술학원 음악표현학부 주임으로 사업하고있는 리훈은 연박한 지식과 과학적인 방법론, 끈질기게 진리를 탐구하는 정신 그리고 강인한 의력과 분투정신을 가진 학자이다. 그가 박사학위론문으로 내놓은 학술저서 《중국조선족공연단체에...
  • 2011-12-07
  • 새농촌건설에서의 통화현 조선족농촌 현황(2) 지난 세기 50년대 량질입쌀생산으로 주은래총리로부터 상장 수여받아 서선촌 리경수서기. [길림신문 2011-12-06 장춘영 홍옥 기자 ]서선촌은 통화현 강전진의 소속으로서 통화현의 남단에 위치해 있으며 통화현 소재지인 쾌대무진과 31킬로메터 떨어져 있다. 통...
  • 2011-12-07
  • 료녕성조선족사범학교 박자윤교장   료녕성내에서 유일한 조선족사범전문학교인 료녕성조선족사범학교가 건교 60주년을 눈앞에 두고 교원학력을 대학본과 100%, 석사과정 30%, 박사 및 박사과정 3명, 교수직함 4명을 실현하는 쾌거를 이룩했다. 날로 어려워지고있는 환경조건에서 학교의 발전 전망과 수요에 근거하여...
  • 2011-12-06
  • [인터넷료녕신문 2011-12-06 김룡 호기자]  지난 4월 최무삼(조선족)씨가 심양시군중예술관 신임관장으로 취임하여 예술관은 전례없는 변화와 주렁진 성과를 이룩한것으로 알려졌다.   1956년에 설립된 심양시군중예술관은 정부의 공공문화사업의 직능기관으로, 심양시 800여만 군중을 대상으로 문화사업의 번영을...
  • 2011-12-06
  • 흑룡강성교육학원 김동규씨 흑룡강성 조선어전업 연구원으로  조선어분야서 두터운 실력으로 주렁진 성과   (흑룡강신문=하얼빈2011-12-05) 흑룡강성교육학원의 김동규선생이 조선어전업 연구원(정교수)으로 진급하였다. 이는 흑룡강성 조선어문분야에서 정만석, 류남현에 이어 세번째로 정교수가 출현한것이다.  ...
  • 2011-12-06
  •   중한 수교 20주년 기획-《고마운 한국인들》(1) 40명 중국 선천성심장병어린이들에게 재생의 은혜 베푼 이기영사장 [편집자의 말] 래년은 중한 수교 20주년이 되는 해다. 그동안 중국과 한국은 제 분야에서 그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현재 중국상주 한국인 60여만명, 중국에 다녀오는 한국인은 해마다 300만명을 초과하...
  • 2011-12-05
  • [길신 2011-12-02 종합]최승희는 서구식 현대적 기법의 춤을 창작, 공연한 최초의 인물로 8.15해방이전의 한국무용계를 주도했다. 1911년 서울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소학교에서 뛰어난 성적으로 두번이나 월반하여 1925년 숙명여자중학교에 입학했다. 숙명여고에 다닐 때 졸업후 동경[東京] 음악학교에 진학할 생각이...
  • 2011-12-02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