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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희-민족창법 통속창법의 조화를 위해
조글로미디어(ZOGLO) 2009년4월1일 11시50분    조회:100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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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창법과 통속창법의 조화를 위해
―연변가무단 김선희가수의 이야기

우리 민족의 전통민요며 판소리는 물론 통속가요도 잘 불러 중국조선족청년가수들가운데서 전도유망한 인기가수의 한사람으로 각광받고있는 연변가무단의 김선희가수가 소띠해의 행복한 엄마로 되였다. 지난 2월 12일 연변텔레비죤방송국의 2009년도 《3.8국제로동부녀절기념야회》촬영에 참가한후 4일후인 2월 16일에 제왕절개수술을 거쳐 달덩이같은 아들을 낳은 김선희가수 지난 3월 8일 저녁에 방송된 야회에서 시청자들에게 출산후의 부석부석한 모습을 보여준 김선희가수를 댁에서 만나본다.

한우물만 파며

1981년 룡정시의 한 로동자가정에서 태여난 김선희는 어려서부터 노래를 무던히 좋아했다. 그런데 악기며 노래에 두루 다 흥취가 있었으나 여러가지 여건때문에 어느 한가지 농사도 제대로 짓지 못한 아버지와 “욕심”많은 어머니는 딸애가 무엇이나 다 배우는것이 소원이였다. 그래서 선희는 겨우 다섯살밖에 안되는 유치원시절에 노래, 무용, 전자풍금, 미술 이렇게 네가지 써클에 참가하느라 매일마다 허둥댔다. 

어린 나이에 초부하로 뛰여다니는 선희가 안스러웠는지 유치원 원장선생님이 어느날 선희의 어머니를 찾아 써클이라는것은 특장에 따라 어느 한가지를 선택해야 성공할수 있다고 하면서 한꺼번에 네가지나 다 시키느라 정력을 분산시킬 대신 진짜 소질을 갖고있고 장차 성공할수 있는 항목을 선택하는것이 좋겠다고 제의를 했다.                          

이렇게 부모님들은 선희의 우세가 노래인것 같다는 원장선생님의 조언을 존중해서 딸애를 가수로 키우려고 결심, 8살때부터는 연변예술학교(지금의 연변대학 예술학원)  음악학부의 강신자선생님을 스승으로 모시고 우리 민요를 배우도록 했다.

그런데 로동자로 일하는 아버지나 시장에서 매대를 경영하는 어머니나 일주일에 한번(방학기간에는 일주일에 두번)씩 딸애를 연길로 데리고 다닐수 없는것이 문제였다. 생각던 끝에 아버지는 서너번만 데리고 다니면서 길을 익혀준후 돌아올 차비를 호주머니에 넣어주면서 혼자서 다니도록 했다. 

고맙게도 강신자선생님이 매번 강의가 끝난후면 점심을 먹여주고 또 자신의 딸애들을 시켜 선희를 뻐스정류소까지 보내여 룡정행뻐스에 앉혀주도록 했다. 덕분에 선희는 별로 고생하지 않고 노래실력을 키울수 있었고 4년후인 12살때에는 우수한 성적으로 연변예술학교 소학반에 입학, 강신자선생님의 문하에서 성악이라는 한우물만 팔수 있게 되였다.

최려나, 박연, 현성해 등과 어깨나란히 연변예술학교 소학반에 입학한 선희는 물을 만난 고기마냥 드넓은 성악의 세계에서 마음껏 자맥질하면서 우리 민요와 판소리를 열심히 배웠다. 그 보람으로 노래실력은 하루가 다르게 제고를 가져왔고 14살때에는  연변텔레비죤방송국 청소년부의 《청춘스타트》프로에 출연, 민요련창중 혼자서 《성주풀이》를 부르며 장끼를 자랑할수 있게 되였다. 

이를 계기로 노래실력을 인정받은 선희는 친구들과 더불어 《음력설야회》,《주말극장》, 《토요무대》 등 성인프로에 출연하기 시작했고 3인창, 독창 등으로 여러 급별의 콩클에 참가하여 묵직한 상을 타기도 하면서 우리 민족 가요계에서 반짝이는 새별중의 하나로 주목을 받게 되였다.

행복한 고민

노래를 너무 좋아한 까닭일가 시간이 지나면서 선희는 민요와 판소리에 국한되지 말고 통속가요도 제법 잘 부르는 다면수로 되고싶은 욕심이 생겨났다. 그래서 짬만 있으면 통속창법을 익히는데 신경을 쓰고 어느 정도 자신이 생긴 2005년에 와서는 대담하게 무대에 나섰는데 예상외로 평판이 괜찮았다. 이때로부터 선희는 노래콩클에 참가해도 통속조에 참가해 도전했고 2006년 조선 《4월의 봄》예술축전에 참가해서는 대중가요를 불러 은상을 타고 《할빈의 여름》노래콩클에서는 통속조의 2등을 따냈다.

그즈음 북경의 이름난 음악제작인 추철부(  夫)선생이 선희의 창법을 인정해주면서 광동백락영상문화전매공사와의 합작으로 제작하게 되는 CD에 출연해줄것을 제의해왔다. 이리하여 선희는 2006년에 《라음(裸音 수식을 첨가하지 않은 순수한 음악) 제1인》이라는 호칭으로 2집 CD에 출연하게 되였다.

 CD제작을 위해 뛰여다니던 나날을 뒤돌아보며 선희는 그때 고생도 퍼그나 했지만 크게 단련을 받고 주위의 사람들한테서 많은것을 배울수 있어 너무 좋았다고 감개무량해했다. 

그번에 선택된 노래는 한국가요 《꽃》을 제외하고는 전부가 한어로 된 류행가요 또는 서정적인 음악이였는데 연변에서 조선말로 된 노래를 부르는데 습관된 선희는 처음에 한어말발음이 요구에 도달되지 못해 애를 먹었다. 게다가 최고급설비로 무장한 록음실의 음향효과가 연변과 완전히 다르다보니 실력발휘를 제대로 할수 없었다. 몇번이고 다시 불러도 조선족맛이 난다고 하는 제작인의 평가에 선희는 아예 귀에 레시바를 걸고 살면서 끊임없이 다른 사람의 노래를 듣고 노래의 원맛을 살리기에 왼심을 썼다.

그 보람으로  《검은오리그룹이 방창을 하고 반주를 몽땅 생음악으로 한 CD는 광주, 심수 등 남방의 대도시들과 향항 등지에서 잘 팔리고있으며 제작인 추철부선생은 한국가요와 연변가요를 한어로 번역하여 제3집을 내놓을 타산으로 기획추진에 한창이다.

우리 민족의 민요와 판소리로 노래인생을 시작한 선희의 욕심은 민족창법과 통속창법을 병행시키는 가수로 되는것이다. 최근에 와서 민요보다는 통속가요를 부를 기회가 더 많이 차례진다는 그는 민족창법에 치우치면 통속가요가 생각대로 되지 않고 통속창법에 치우치면 민요나 판소리를 제대로 부를수 없는것이 너무 안타깝다고 하면서 량자를 조화시킬수 있는 비법을 모색해볼 의향을 내비치였다.

신세대주부

소녀시절에 집을 떠나 기숙사생활을 한 선희가 한 남자의 안해로, 가정주부로 된 지금에 와서 아침밥상이나 제대로 챙길가 하고 의문을 가지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기실 그녀는 8살때부터 쌀을 앉히고 집안일을 거들었다고 한다.

당시 시장에서 매대를 경영하는 어머니는 물건구입을 자주 나갔는데 한번 가면 3~4일이 걸리기가 일쑤였다. 그때마다 선희는 부엌에 내려가 불을 때면서 밥을 짓는 아버지를 도와 쌀을 앉히고 잔심부름을 했다. 그리고 아버지가 제시간에 퇴근하지 못할 때면 이모가 사다놓은 남새로 반찬을 만들어 배가 고프다고 칭얼거리는 남동생을 달래기도 했다.

예술학교에 붙은후에도 선희는 집에 가면 자각적으로 부모님들의 일손을 거들었고 어머니가 한국으로 떠나고 남동생이 백산학교에 다니면서 연길로 이사오게 되자 여러가지 김치까지 담그면서 아버지의 부담을 최대한 덜어주었다. 

노래로 돈을 벌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된후 그는 또 외국에서 육체로동을 하면서 고생하는 어머니를 돕는 차원에서 남동생의 소비를 자기가 부담, 남동생이 장춘에 가서 대학공부를 하는 몇년간은 학비를 제외한 모든 비용을 전담하였다. 그것도 한꺼번에 많이 주면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할가봐 일주일에 400원씩 한달에 4차씩 부쳐주었다니 얼마나 명심해야 했을가?!

결혼을 한 지금에 와서 시댁도, 친정도 도움을 받을만한 사람이 한사람도 없는 선희는 출근을 하면서 세간살이를 하느라 별로 한가할 사이가 없지만 어릴 때부터 익숙해진 일들이여서 별로 힘든줄을 모르고있다. 

해산을 앞두고 선희는 50대 한족아줌마를 청해다 산후조리를 부탁했다. 그동안 친정어머니생각을 많이 했다는 선희는 이제 출근도 해야 하고 애도 키워야 하고 자기보다 2살 년상인 시동생을 위해 형수노릇도 해야 하고… 어깨가 무거워지는것을 실감하게 된다고 고백했다.

아기자기한 결혼생활

9살 년상의 남자와 백년가약을 맺은 선희는 결혼생활에 대해 퍼그나 만족해하는 눈치였다.

신랑 김원혁은 13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3형제가 홀어머니슬하에서 힘들게 자라다가 일본에 가서 7년간 숱한 고생을 했고 암병에 걸린 어머니때문에 귀국한후에는 병구완에 정성을 다했다고 한다.

어머니가 세상뜬후 총각 셋이 힘들게 살아와서일가 결혼후 김원혁은 가정을 중히 여기고 안해를 끔찍하게 사랑하는 모범남편으로 되였다. 총각시절에도 해마다 청명과 추석이 돌아오면 제손으로 음식을 만들어 부모님들의 산소에 다녀오군 했다는 신랑은 색시가 힘들세라 크고작은 일들을 다 배려해주고 주방일도 곧잘 거들어준다. 성격 또한 시원시원하고 유모아적이여서 색시가 어쩌다 불유쾌한 일이 있어 바가지를 긁거나 투정을 부려도 우스개로 마음을 풀어주기에 지금까지 얼굴을 붉혀본적이 단 한번도 없다고 한다.

개체업에 종사하는 신랑은 색시의 사업도 많이 지지해주고있다. 새로운 노래를 부르게 되면 먼저 록음해오게 해서는 자기가 반복적으로 들어보고 의견을 제기해주고 텔레비죤에서 색시가 출연하는 프로를 방송할 때면 재방송까지 빼놓지 않고 다 시청하고나서 종합적인 평가를 해주고 또 복장이 다른 배우들보다 짝지는것 같으면 당금 새로 한벌 장만하라는 부탁도 잊지 않는다.

전번에 《3.8》절 야회에 출연할 때 선희는 만삭의 몸으로 무대에 나서기가 쑥스러워 주저심이 들었다. 그때에도 신랑은 할수만 있다면 왜 사양하느냐고 하면서 힘을 안겨주었고 야회를 통해 자기까지 “인물자랑”을 하게 되자 가수색시덕분에 “명배우”로 되였다고 우스개를 했다.

예술을 무척 좋아하는 신랑은 아들을 꼭 예술가로 키우고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단 하나는 너무 적으니 적어도 둘을 낳아야 한다고 지금부터 은근히 색시한테 “부담”을 준다.

맺는말

3월 8일 텔레비죤에서의 모습보다 원기를 많이 회복한 김선희가수는 산후휴가가 끝나는대로 출근하여 무대에 오를 타산, 그전에도 기회가 있다면 놓치지 않고 또 앞으로 가수, 엄마, 안해의 직책을 잘 감당하기 위해 부지런히 뛰겠다며 밝은 미소를 지었다.                                                      

연변라지오TV신문 채선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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