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오직 한 우물만 판 조선족 사진작가 최주범선생
조글로미디어(ZOGLO) 2007년3월31일 15시01분    조회:7997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예술촬영이 사치한 노동이라고 간주하면 틀린 생각이다. 한폭의 가치 있는 예술사진을 찍자면 무거운 기재를 짊어지고 험산준령을 넘나들며 정신상, 체력상의 고생을 감당해야 하는 건 물론 심산속에서 홀로 무시무시한 밤을 지새울 때도 한두번이 아니었다. 근 30년간의 예술촬영 생애에서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었다면 어디까지나 극한에 이르는 고생을 동반하면서 얻은 결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

최주범 선생, 시장경제 시대인 오늘날 진짜 이해하기 힘든 “괴짜”다.

일찍 1970년대 말, 중국 동북 사범대학 예술학부 미술전업을 마치고 길림성 훈춘시 문화관에 배치 받은 뒤 자기가 전공한 미술과는 달리 촬영예술에 집착하게 되면서 그의 운명은 이미 주어진 셈이었다.

그 때로부터 그는 자기가 태어난 고향인 훈춘과 연변의 수많은 거친 산야를 넘나들며 예술촬영이란 오직 한 우물만을 파왔으며 듣기만 해도 소름이 끼치는 위험한 순간과 무서운 고비도 수없이 넘기군 했다.

그 중 그가 백두산 풍경촬영을 하면서 겪은 몇가지 고생담을 들어 본다.

2005년 여름의 어느 날, 그가 백두산 정상에서 천지가의 멋진 풍경을 발견하고 천지수면쪽으로 내려가서 촬영을 다 하고 나니 자신이 내려왔던 길로 다시 올라 갈 수가 없었다. 너무도 가파로왔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유일한 방법이란 천지가의 길을 따라 폭포쪽으로 걸어오는 것뿐이었다. 헌데 당시 천지의 물높이가 2미터 가량 불어나 원래의 길이 물에 잠긴 구간이 수없이 많았다. 그래서 최주범 선생은 20킬로그람 정도가 되는 짐을 지고 바위를 톺으며 그 구간들을 넘기군 했다. 실로 “아차!” 하는 실수만 있어도 천지물에 떨어져 황천객이 될 번한 순간들이었다.

또 한번은 백두산 밀림에서 밤을 지새우게 되었는데 워낙 텐트안에서 자려고 하다가 당시 백두산 자연동물원의 호랑이 한 마리가 뛰쳐나왔다는 소문에 온밤 자동차안에서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기도 했으며 렌즈 하나라도 더 갖고 가기 위해선 음식은 아예 배낭속에 넣고 가지 않은 적도 허다했다고 한다.

특히 겨울철 백두산 등정이란 온도계가 얼어 터질 지경으로 기온이 하강, 카메라도 얼어 작동이 잘 되지 않기에 등정하면서 카메라만은 품속에 껴안고 걸어야 하는 상황, 도보로 7시간 가량 걸어서 정상에 오른 뒤면 진짜 탈진상태가 오면서 손가락 하나 까딱 움직일 힘도 없을 때도 많았었다. 하지만 좋은 풍경만 포착하면 초인간적 힘이 생기군 했다. 그래서 이를 두고 아마 “정신력”이란 말도 나왔는가 싶다.

그외 촬영 후 귀로에 올랐다가 오토바이 바퀴가 터져 20 여리 밖의 마을에 가서 고무풀을 얻어다가 손수 바퀴를 때며 밤을 지새우던 일, 산에서 길을 잃고 온종일 굶으며 헤매다가 새벽 2~3시경에야 집으로 돌아오던 일, 이러한 고생담은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하지만 “절승경개는 험한 봉에 있다”고 최주범 선생이 이렇듯 고생을 자청해서 한 결과 1981년 처음으로 중국의 사진전문 간행물인 「대중촬영」에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해서 지금까지 무려 500 여폭의 예술사진 작품이 연변 주급 이상의 앨범, 신문과 잡지 등에 발표, 그 중 “그리움(懷念)” 등 22점이 국가급 및 국제 사진전시회와 콩클에 입선 및 수상했고 “독립금추(獨立金秋)” 등 16점이 길림성 사진작품 전시회에 입선 및 수상, “생태와 생명” 등 8점이 연변 조선족 자치주 사진 전시회에서 금상, 은상, 동상을 수상함과 아울러 “얼음세계” 등 2점의 촬영작품이 연변 조선족자치주 최고 영예상인 “진달래 문예상”을 획득했다.

더불어 최주범 선생 본인도 중국 예술사진학회와 「중국촬영가」잡지로부터 “중국의 우수 촬영가” 칭호를 수여 받았으며 제1회 연변주 촬영가협회의 “연변 촬영가 10대 걸출인”으로 선정 받아  연변 주에서 유일한 예술사진 연구관원(정교수 직함에 해당)으로 발탁되기도 했다.

그 뿐이 아니었다. 최주범 선생은 다년간  “유엔관원 (훈춘)지구 고찰단”과 “중국 국가 해양국 두만강 출해 고찰”등 국가의 중대 활동에도 참여, 그 때 찍었던 역사 사진들을 중국 국가 국무원 및 성, 주, 시 해당 투자유치 사업과 소식공개회의 자료로 제공하여 중국의 개혁개방사업 및 경제건설에 크나큰 기여를 했다.

또한 2002년 봄부터 8월까지의 기간, 중국 장춘 영화촬영소와 연변 TV방송국에서 공동으로 영화 “태양을 따라”를 촬영할 때 촬영팀 성원으로 훈춘, 천진, 북경, 연안, 산서 등지에서 극조 촬영에도 참가하여 그 제작이 성공을 위해서도 많은 기여를 했기에 장춘 영화촬영소로부터 영화촬영사업 “기여상”을 타기도 했다.

한편 예술촬영에 종사하면서 가장 고통스러울 때가 풍운변화로 찍으려던 작품을 성공하지 못할 때였고 가장 즐거울 때가 현상된 사진효과가 상상을 초과해 잘 나왔을 때라고 밝히는 최주범 선생, 지금도 늘 그제날에 찍었던 사진들을 꺼내 보면서 자아위안과 더부러 인생쾌감을 만끽한다는 그었다.

“제가 이런 성과를 거둘 수 있은데는 촬영계의 노선배님들 및 동료들의 도움과 특히 집사람의 이해와 지지가 없었다면 전혀 불가능했을 것이다. 때문에 내가 거둔 성과의 절반 이상을 이런 분들한테 돌리고 싶다.”

현재 최주범 선생은 50대 후반기에 접어들어 오래잖으면 환갑나이를 맞이하게 됐지만 예술촬영에 대한 미련은 여전히 털어 버릴 수가 없어한다. 아직도 자주 백두산에 오르고 싶어하고 기회가 있으면 한국의 명산들도 렌즈속에 담고 싶다고 한다.

30여년의 사업년한에 남은 건 현대 장비와는 많이 뒤떨어진 촬영장비에 숱한 사진자료들 외 거의 평범한 서민층에 불과한 선생이었지만 털끝만한 후회도 없이 살아가는 최주범 선생의 삶의 자세가 어딘가 몰래 돋보이기만 했다.

종합신문/김철균 기자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img count='1' width='400' img] 200 5카이로 세계유도선수권대회 57킬로그람급에서 금메달을 딴 조선선수 계순희가 17일 오후 평양에서 열린 환영행사에서 시민들에게 손을 들어 인사하고있다.
  • 2005-09-21
  • 고훈(연변세기팀 감독): 오늘 경기는 아주 어렵게 이겼다. 대방팀이 방어를 견고하게 하고 수시로 역습을 노렸기에 우리를 어렵게 만들었다. 선수들은 난공불락에서 아주 내심했고 끝내 한번의 기회를 잡았다. 지금 한번 승리를 거둔다는것은 정말로 쉬운일이 아니다. 경기에서 위협적인 진공을 많이 했으나 안타까운것은 소...
  • 2005-09-19
  • 주 건설국에서 사업하고 있는 오기준씨가 4만여원을 내 고향마을인 조양천진 다촌에 다리를 놓아주어 촌민들의 찬사를 받고 있습니다. 조양천진 다촌은 16호세대에 50여명의 인구를 갖고 있는 마을인데 교통이 불편했습니다. 촌민들이 외출하려면 마을앞 개울물을 지나야 했는데 다리가 없어 고생이 적지 않았습니다. 특히 ...
  • 2005-09-19
  • 한국축구대표팀을 이끌고 2006년 독일월드컵을 지휘할 딕 아드보카트 감독(58)은 전형적인 네덜란드 스타일의 지도자다. 무엇보다도 경기를 지배하는것을 중시하고 '전원 공격 전원 수비'의 토털사커의 교과서를 철저히 적용하고있다. 네덜란드 토털사커의 창시자이자 1988년 유럽축구선수권에서 네덜란드를 사상 처음으로...
  • 2005-09-19
  • 개혁개방이 심화되면서 중국에 와 투자한 외국기업이 날로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중국사회, 중국인들과 어울리면서 조화로운 사회건설에 기여하고 있고 서로 융합되고 있습니다. 베이징 석경산구역 영락서구에 자리잡고 있는 베이징신기 세라젬 의료계기유한회사가 바로 그중의 하나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는 베이징 석...
  • 2005-09-18
  • [원제:효심 애심 량심이 낳은 휘황-전국우수인민경찰 임장하식 공안국장 김동화를 보다] 안도현공안국, 1995년부터 1999년사이 집체3등공과집체2등공을 세우면서 전국우수공안국과 길림성로동모범집단이라는 휘황을 안아온 전투집단이다. 허나 2001년부터 이 공안국은 점점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고 주적으로나 성적으로 뒤...
  • 2005-09-18
  • 한락연은 1898년 12월 8일에 룡정에서 태여났다. 한락연이 최초로 참가한 항일활동은 1919년 룡정에서 있은 《3 13》운동이다. 이 시기 그는 초기 고려공산당활동에 참가, 《3 13》 시위자들이 들었던 태극기 대부분이 한락연이 만든것이다. 1923년 상해에서 중국공산당에 가입한 한락연은 이때로부터 반제국주의, 반봉건주...
  • 2005-09-18
  • 조선족 작가 장혜영의 저서 가 한국의 인문학계렬의 대학교재로 선정되였다. 흑룡강성 출신인 장혜영씨는 5-6년간 한국에서 장편소설 , 을 출판하였고 2002년에 인문도서 를 펼쳐내였다. 장기간 한국에 체류하면서 경험한 많은것들을 짬짬이 글에 담아온 소설가는 엄연한 로 변신되여 민족문화학과 사회문화학의 시각에서 한...
  • 2005-09-15
  • 조선족민속학자 천수산씨의 일가견- 1952년 9월3일에 연변조선족자치주(설립시는 구)가설립되였다는 의미는 조선족이 진정 이 땅의 주인이 되여 조선족의 전통문화를 계승,발양하고 조선족의 민족전통을 대대로 이어나가자는 것이 근본적인 취지이다. 그리하여 많은 유지인들은 연변조선족자치주를 단순히 길림성에만 국한되...
  • 2005-09-15
  • 조선족 최군 흑룡강성 '10대걸출한 쳥년'후선인에 당선 흑룡강성 고급인민법원 민사제2재판정 재판장 최군(41세)이 흑룡강성 '10대 걸출한 청년'후선인에 당선되였다. 최군은 사업에 참가한 18년래 부지런히 사업하고 고심히 연찬하며 청렴하고 공정하게 일을 처리해 전성 법원의 심판수준제고와 량호한 경제법제환경을 조성...
  • 2005-09-14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