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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한 우물만 판 조선족 사진작가 최주범선생
조글로미디어(ZOGLO) 2007년3월31일 15시01분    조회:8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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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촬영이 사치한 노동이라고 간주하면 틀린 생각이다. 한폭의 가치 있는 예술사진을 찍자면 무거운 기재를 짊어지고 험산준령을 넘나들며 정신상, 체력상의 고생을 감당해야 하는 건 물론 심산속에서 홀로 무시무시한 밤을 지새울 때도 한두번이 아니었다. 근 30년간의 예술촬영 생애에서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었다면 어디까지나 극한에 이르는 고생을 동반하면서 얻은 결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

최주범 선생, 시장경제 시대인 오늘날 진짜 이해하기 힘든 “괴짜”다.

일찍 1970년대 말, 중국 동북 사범대학 예술학부 미술전업을 마치고 길림성 훈춘시 문화관에 배치 받은 뒤 자기가 전공한 미술과는 달리 촬영예술에 집착하게 되면서 그의 운명은 이미 주어진 셈이었다.

그 때로부터 그는 자기가 태어난 고향인 훈춘과 연변의 수많은 거친 산야를 넘나들며 예술촬영이란 오직 한 우물만을 파왔으며 듣기만 해도 소름이 끼치는 위험한 순간과 무서운 고비도 수없이 넘기군 했다.

그 중 그가 백두산 풍경촬영을 하면서 겪은 몇가지 고생담을 들어 본다.

2005년 여름의 어느 날, 그가 백두산 정상에서 천지가의 멋진 풍경을 발견하고 천지수면쪽으로 내려가서 촬영을 다 하고 나니 자신이 내려왔던 길로 다시 올라 갈 수가 없었다. 너무도 가파로왔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유일한 방법이란 천지가의 길을 따라 폭포쪽으로 걸어오는 것뿐이었다. 헌데 당시 천지의 물높이가 2미터 가량 불어나 원래의 길이 물에 잠긴 구간이 수없이 많았다. 그래서 최주범 선생은 20킬로그람 정도가 되는 짐을 지고 바위를 톺으며 그 구간들을 넘기군 했다. 실로 “아차!” 하는 실수만 있어도 천지물에 떨어져 황천객이 될 번한 순간들이었다.

또 한번은 백두산 밀림에서 밤을 지새우게 되었는데 워낙 텐트안에서 자려고 하다가 당시 백두산 자연동물원의 호랑이 한 마리가 뛰쳐나왔다는 소문에 온밤 자동차안에서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기도 했으며 렌즈 하나라도 더 갖고 가기 위해선 음식은 아예 배낭속에 넣고 가지 않은 적도 허다했다고 한다.

특히 겨울철 백두산 등정이란 온도계가 얼어 터질 지경으로 기온이 하강, 카메라도 얼어 작동이 잘 되지 않기에 등정하면서 카메라만은 품속에 껴안고 걸어야 하는 상황, 도보로 7시간 가량 걸어서 정상에 오른 뒤면 진짜 탈진상태가 오면서 손가락 하나 까딱 움직일 힘도 없을 때도 많았었다. 하지만 좋은 풍경만 포착하면 초인간적 힘이 생기군 했다. 그래서 이를 두고 아마 “정신력”이란 말도 나왔는가 싶다.

그외 촬영 후 귀로에 올랐다가 오토바이 바퀴가 터져 20 여리 밖의 마을에 가서 고무풀을 얻어다가 손수 바퀴를 때며 밤을 지새우던 일, 산에서 길을 잃고 온종일 굶으며 헤매다가 새벽 2~3시경에야 집으로 돌아오던 일, 이러한 고생담은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하지만 “절승경개는 험한 봉에 있다”고 최주범 선생이 이렇듯 고생을 자청해서 한 결과 1981년 처음으로 중국의 사진전문 간행물인 「대중촬영」에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해서 지금까지 무려 500 여폭의 예술사진 작품이 연변 주급 이상의 앨범, 신문과 잡지 등에 발표, 그 중 “그리움(懷念)” 등 22점이 국가급 및 국제 사진전시회와 콩클에 입선 및 수상했고 “독립금추(獨立金秋)” 등 16점이 길림성 사진작품 전시회에 입선 및 수상, “생태와 생명” 등 8점이 연변 조선족 자치주 사진 전시회에서 금상, 은상, 동상을 수상함과 아울러 “얼음세계” 등 2점의 촬영작품이 연변 조선족자치주 최고 영예상인 “진달래 문예상”을 획득했다.

더불어 최주범 선생 본인도 중국 예술사진학회와 「중국촬영가」잡지로부터 “중국의 우수 촬영가” 칭호를 수여 받았으며 제1회 연변주 촬영가협회의 “연변 촬영가 10대 걸출인”으로 선정 받아  연변 주에서 유일한 예술사진 연구관원(정교수 직함에 해당)으로 발탁되기도 했다.

그 뿐이 아니었다. 최주범 선생은 다년간  “유엔관원 (훈춘)지구 고찰단”과 “중국 국가 해양국 두만강 출해 고찰”등 국가의 중대 활동에도 참여, 그 때 찍었던 역사 사진들을 중국 국가 국무원 및 성, 주, 시 해당 투자유치 사업과 소식공개회의 자료로 제공하여 중국의 개혁개방사업 및 경제건설에 크나큰 기여를 했다.

또한 2002년 봄부터 8월까지의 기간, 중국 장춘 영화촬영소와 연변 TV방송국에서 공동으로 영화 “태양을 따라”를 촬영할 때 촬영팀 성원으로 훈춘, 천진, 북경, 연안, 산서 등지에서 극조 촬영에도 참가하여 그 제작이 성공을 위해서도 많은 기여를 했기에 장춘 영화촬영소로부터 영화촬영사업 “기여상”을 타기도 했다.

한편 예술촬영에 종사하면서 가장 고통스러울 때가 풍운변화로 찍으려던 작품을 성공하지 못할 때였고 가장 즐거울 때가 현상된 사진효과가 상상을 초과해 잘 나왔을 때라고 밝히는 최주범 선생, 지금도 늘 그제날에 찍었던 사진들을 꺼내 보면서 자아위안과 더부러 인생쾌감을 만끽한다는 그었다.

“제가 이런 성과를 거둘 수 있은데는 촬영계의 노선배님들 및 동료들의 도움과 특히 집사람의 이해와 지지가 없었다면 전혀 불가능했을 것이다. 때문에 내가 거둔 성과의 절반 이상을 이런 분들한테 돌리고 싶다.”

현재 최주범 선생은 50대 후반기에 접어들어 오래잖으면 환갑나이를 맞이하게 됐지만 예술촬영에 대한 미련은 여전히 털어 버릴 수가 없어한다. 아직도 자주 백두산에 오르고 싶어하고 기회가 있으면 한국의 명산들도 렌즈속에 담고 싶다고 한다.

30여년의 사업년한에 남은 건 현대 장비와는 많이 뒤떨어진 촬영장비에 숱한 사진자료들 외 거의 평범한 서민층에 불과한 선생이었지만 털끝만한 후회도 없이 살아가는 최주범 선생의 삶의 자세가 어딘가 몰래 돋보이기만 했다.

종합신문/김철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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