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변축구 흥보대사 필요
축구원로 박만복의 일가견
중국조선족축구사에 전설적인 인물로 알려지고 있는 박만복옹(1935년 출생), 40년전 조선족선수들로 주축을 이룬 길림성축구팀을 일약 중국축구의 정상에 올려세우며 중국조선족축구의 자존심을 일떠세운 박만복옹의 뇌리에는 마냥 연변축구가 떠날줄을 모른다.
1935년 길림성 왕청현 하마탕향 영안촌에서 태여난 박만복옹은 1951년 왕청현 대흥구중학교를 다닐때부터 축구에 천부를 보이기 시작했다.
따라서 1953년 연변청년팀의 선수로 선발된 그는 연변팀이 상해에서 진행된 전국청년축구선수권대회에서 은메달을 탄후 그해로 중앙체육학원 출국전훈련반에 뽑혀갔으며 이듬해에 중국청년팀에 선발되여 제1대 중국축구류학생 신분으로 헝가리에 축구류학을 갔다. 당시 1.73미터의 중등키에 체중 65킬로그램이였던 그의 위치는 우익방어수였는데 공뺏는 기술이 출중하고 능숙하고도 정확한 장거리련락으로 불의의 공격을 조직하며 게다가 폭발력이 강해 헝가리 전무가로부터 '분사식비행기'로 불렸다. 1955년부터 국가팀 주력선수로 된 그는 제5차와르샤와 세계청년축전, 제16회올림픽운동회 예선경기, 전 소련 국가팀과 레닌그라드 제르빈트팀과의 대결 등 중국축구사에 기록을 남긴 여러차례의 국제시합에서 기능을 발휘하고 용맹을 날렸었다.
특히 다리부상으로 국가팀에서 퇴역한후 길림성축구팀 감독을 맡아 1965년 전국축구갑급련맹경기에서 우승을 따낸것은 중국조선족축구력사에 최대의 대사로 알려지고 있다. 이처럼 중국축구, 더우기는 연변축구와 다년간 호흡을 함께 해온 연유에서인지 그의 연변축구에 대한 사랑은 언제봐도 활활 타오르는 화토불처럼 이글거리고 있다.
현재 동북조선족축구친목회 고문을 담임하고 있는 그는 연변축구에 대해 사정없이 '사랑의 매'를 안긴다. '연변축구 이대로 나가다간 자멸의 길밖에 없습니다. 경제가 박약한데다 선수원천도 점점 고갈되고... 해당 축구협회와 구락부의 운영체제에도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그의 진언은 한마디로 적중하다.
중국프로축구가 탄생한 이래 연변축구, 나아가서는 중국조선족축구의 대표인물로 떠오른 고종훈과 같은 선수들이 퇴역했다고 해서 그냥 성 쌓고 남은 돌로 보지 말라는 얘기다. 현재 중학교, 대학교에 다니고 있는 중국의 나어린 축구팬들의 가슴속에 영원한 우상으로 자리잡고 있는 고종훈의 지명도가 앞으로 최저 30년을 지속할거라는 그의 견해다. 이럴진대 이러한 퇴역선수들을 잘 포장하여 연변축구의 홍보대사로 활용하면 앞으로 축구선수의 배양과 구락부의 발전에 큰 도움이 될거라고 한다.
중국조선족축구의 장수별 박만복옹, 연변팀에 대한 그의 불타는 사랑은 오늘도 가실줄을 모른다.
2005-10-10 10:46:28
(기자 신철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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