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항일투사-김현대
조글로미디어(ZOGLO) 2005년10월14일 09시05분    조회:11796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항일투사 —김현대 일전, 기자는 연길에서 만년을 보내고있는 김현대로항일투사를 찾아뵙고 열혈청춘을 항일투쟁에 몸바쳐 싸워온 그의 항전이야기에 귀를 귀울였다. 올해 81세인 김현대로항일투사는 1924년 5월 16일, 조선 충청남도 서산군의 한지식인가정에서 둘째로 태여났다. 1931년, 김현대는 7세의 어린 나이에 고향땅을 떠나 부모형제와 함께 중국 상해로 이주하여왔으며 중국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다. 김현대가 중국으로 이주할 때는 이미 《9.18》사변이 폭발한 뒤라 중국인민의 항일투쟁이 거세차게 일고있는 때였다. 어려서부터 일제에 유린당하는 조선인민들의 비참한 정경을 목격하고 중국에서 중국인민의 하이일열조에 감화된 김현대의 머리속에는 조국과 민족 그리고 자유를 위해 투쟁하려는 진보적인 사상이 싹트기 시작하였다. 16세 나이에 김현대는 초중을 다니면서부터 중국공산당 상해지하조직에서 찍은 항일삐라 등 진보적인 선전물들과 많이 접촉하게 되였고 신사군의 항일업적들도 많이 알게 되였다. 전국 각지에서 신속이 전파되는 맑스—레닌주의, 신민주주의론도 그의 시선에 들어오기 시작하였고 신변의 동학들이 앞다투어 참군하는것을 보며 그도 항일투쟁대오에 가담하려는 충동을 느끼게 되였다. 하지만 그의 념원과는 다르게 아버지는 장사길을 택하기를 희망했다. 당시만 해도 나이 어렸던탓으로 김현대는 사상고민도 없지 않았다. 1945년초, 항일형세의 변화에 따라 일제는 상해통치지구에 대한 통제와 압제를 더욱 강화했다. 일제의 폭행에 더이상 침묵만 지키면서 유예할수 없었던 김현대는 마침내 항전에 나서려는 2명의 학교동기생과 함께 참군을 결심하고 결연히 동생한테 부모님들을 부탁하고 항일대오를 찾아 떠났다. 김현대의 이 거동은 당시 김현대가 다니던 상해대학의 수많은 동급생들을 고무격려하였으며 그들로 하여금 항일대오에로 몸을 던지게 격려해주었다. 1945년 3월, 김현대는 동년배들과 함께 화중일대에서 활약하던 신사군을 찾아 떠났다. 간난신고끝에 그들은 강소성 흥화부근에서 속유장군의 신사군 1사에 참가했으며 이후 신사군3사에 다시 편성되였다. 당시 김현대는 조선족전사들을 후방에 보내 학습시키라는 중앙의 지시에 따라 익림진에 있는 항일군정대학5분교에서 학습을 하고 그해 9월부터 12월까지 상해로 돌아가 일본침략자들의 완전한 항복을 쟁취하는 적후선전조직사업을 담당하였다. 항전승리후, 김현대는 조선의용군을 따라 안동(단동)지구로 이전하였다. 1949년 3월에는 중국인민해방군 제 166사에 편입되여 후방에서 신문출판 등 선전조직사업역군으로 활약했다. 부대에서 신문사업에 종사한 경력자였던만큼 공화국창건후에는 자연 신문출판업에 종사, 연변인민출판사의 부총편집, 주인대 상무위원으로 활약했다. 김현대는 이날 이때까지 연변의 건설에 정력을 몰두하여왔고 조국과 민족의 흥망에 시종 관심을 돌리군 하였다. 지금도 김현대로항일투사는 늘 처절했던 항일시절을 회억하면서 《혁명위해 목숨바쳐 싸워온 지난날을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진리를 위해서라면 목숨도 달갑게 바쳐야 한다!》고 말하군 한다. 김기호견습기자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조선족청년작곡가 박광춘 신미디음악회가 10월 28일 연변TV방송국 스튜디어에서 성황리에 열렸다. 이날 박광춘이 최근년간 창작한 새로운 가요와 음악작품들을 신미디음악이라는 새로운 형식에 담아 표현하였다. “세상은 우리것이야”“청춘스타트”“오아시스” 등 17수의 음악으로 구성되였고 열정 사랑 찬미 등 세 부분...
  • 2005-10-31
  • 광복 60주년을 맞아 올해, 덕수궁미술관에서는 8월말부터 특별한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보통사람에게는 낯선 이름이지만 일제 강점기 중국 땅에서 화가이자, 고고학자, 나아가 혁명가로 활동하다 끝내 해방된 조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그 곳에 뼈를 묻어버린 한낙연(韓樂然)을 기념하는 ‘광복 60주년 기념 한낙연 특별전...
  • 2005-10-31
  • [원제:할빈시고려회관 안중근의거96주년기념좌담모임 소집] 2005년 10월 27일 10월26일 안중근의사 의거 96주년에 즈음해 할빈시고려회관은 안중근의사 기념좌담모임을 소집했습니다. 회의는 리민 전 흑룡강성정협위원회 부주석이 기증한 ,이란 글발의 휘호족자 두폭을 전달했습니다. 이날 모임에서는 안중근의사의 생애와 ...
  • 2005-10-28
  • 《퉁소마을》인 훈춘시 밀강향에서 태여나 자라 꾸준한 탁마로 중국 문화예술부상인 문화(文華)예술학원상 제2회민족악기연주콩클에서 1등상을 수상한 사람이 있다. 그가 바로 연변대학 예술학원의 최민(25살)이다. 1993년, 훈춘시문화관에서 《퉁소마을》조성을 위해 밀강향에 퉁소 100대를 지원했다. 어려서부터 마을 로인...
  • 2005-10-28
  • 효자효녀라 하면 사람들은 흔히 부모에게 효도하는 성인을 지칭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 15세밖에 안되는 초중생이 학교로부터 '효자상'을 받았다. 그가 바로 상지시조선족중학교 초중 2학년 4반의 류춘길학생이다. 춘길학생은 학습성적도 우수하거니와 학우간에 우애단결하고 학교 각항 제도도 모범적으로 ...
  • 2005-10-27
  • 연형묵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은 조선 국방공업을 이끌어온 시세다. 함경북도 경원군에서 태여난 연부위원장은 만경대혁명학원 출신으로 체코의 프라하공대를 류학한후 로동당, 정무원(현 내각), 국방위를 오가면서 조선 국방공업과 경제건설의 주역으로 활약했다. 항일빨찌산 유자녀로 김일성 주석의 각별한 신임을 받았던 ...
  • 2005-10-26
  • 1983년. 중국작가협회 길림성 분회 부주석, 상무위원회 위원이던 그는 베이징으로 전근한다. 이어 중국 작가협회에서 발간하는 '민족문학'주필이 된다. 그때만 해도 조선족은 북경에서 거의 볼 수 없었다. 5년 만에 베이징 호적(시민)이 된다. '베이징 시민'은 특혜였다. 조선족으로는 처음 베이징 명예시민이 된 것이다. 등...
  • 2005-10-26
  • [원제:《천리를 말 한필로 달리다》호평속에 다카쿠라켄 장예모같은 아들이 있었으면...] 제18차동경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오른 영화 《천리를 말 한필로 달리다》는 장예모감독과 다카쿠라켄의 합작으로 이루어진 작품이다. 개막식에서 이 작품은 세계영화인들과 일본관중들의 열렬한 박수갈채를 받았다. 한편의 중국영화...
  • 2005-10-25
  • [원제: 중국조선족항일사 연구하는 만족당사학자-조문기] - 다련래 조선족항일사에 관한 저서, 론문 대량 발표 다년간 신빈현 당사지방사연구판공실 주임직을 담임했던 조문기(만족 57세)씨는중국조선족항일사연구에 조예가 깊어 중국조선족사회는 물론 한국에도 꽤 알려졌다. 조문기씨가 중국조선족항일사에 관심을 가지기...
  • 2005-10-25
  • 중국의 대표적인 음악가인 정률성선생(1914~1976)의 출생지와 관련, 현재 한국에서 논란이 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논란은 한국 광주남구의회 유 순남 의원이 지난 17일 정률성선생의 호적과 화순 능주소학교 제적부, 정률성아버지 정해업씨의 토지소유대장자료 등을 토대로 정률성선생의 출생지가 화순이라고 주장하면...
  • 2005-10-25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