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실크로드에묻힌 조선족화가 한낙연8
조글로미디어(ZOGLO) 2005년11월22일 08시07분    조회:9697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프랑스 유학을 떠나다 1929년 여름 한낙연은 몇 년 만에 상하이에 도착한다. 하지만 상하이는 예전의 활력에 넘치는 도시가 아니었다. 상하이에서 그에게 주어진 임무는 이미 지하로 숨어들어 은밀하게 활동하던 당의 재정을 관리하는 자리였다. 그로서는 더 막중한 책임이 요구되는 자리였다. 그러던 어느 날 그와 만나기로 한 연락원이 상하이 도심에서 살해된 시체로 발견됐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그 연락원이 소련에서 귀국하면서 갖고 온, 당의 운영자금으로 쓰일 거액의 수표를 지니고 있다는 점이었다. 만약 그 수표를 찾아내지 못한다면 당장 당의 활동에 막대한 지장이 있으리란 것은 뻔한 일이었다. 한낙연은 그가 그 큰돈을 분명히 몸 어딘가에 지니고 있으리란 점을 확신하고 적의 감시에 노출될 위험을 무릅쓴 채 시체를 뒤진 끝에 은밀한 곳에서 수표를 찾아낼 수 있었다. 수표를 찾아낸 그는 동지의 시체를 길거리에 차마 내버려두고 올 수 없어 적당한 곳에 묻어준다. 언제 경찰이 들이닥칠지 모르는 위급 상황에서 한 이런 행동에서 그의 대담성을 엿볼 수 있다. 하지만 그의 우려대로 한낙연은 국민당 특무의 감시망에 노출되고 말았고, 그 바람에 그는 상하이에서 활동할 수 없었다. 또 어디론가 피해 몸을 숨겨야 하는 상황이 닥친 것이다. 모든 대외활동을 중지한 채 얼마 되지 않는 단출한 짐을 정리하던 한낙연은 문득 말라비틀어진 붓을 발견하고 자신이 한동안 붓을 놓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상하이에 돌아온 뒤로는 워낙 막중한 임무의 특성상 긴장을 늦출 수 없어 붓을 잡는 것조차 잊고 지냈던 것이다. 그 기간이 얼마가 되든 화가가 붓을 놓으면 다시 예전 수준을 회복하기까지 붓을 놓은 기간보다 몇 배 더 긴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아는 한낙연이었다. 어차피 국민당의 감시를 피해 한동안 제대로 된 활동을 하지 못할 바에야 차라리 그 시간을 이용해 자신의 녹슨 붓에 생기를 불어넣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하지만 대륙 곳곳에 국민당의 감시망이 둘러쳐진 가운데 속 편하게 붓을 잡을 수 있는 장소는 별로 없었다. 차라리 국민당의 감시가 없는 외국으로 가서 그림 공부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낙연은 이미 외국에서 그림 공부를 하고 돌아와 명성을 날리고 있는 몇몇 화가를 알고 있었다. 난징(南京)에서 활동하며 화가로서 높은 명성을 누리던 쉬베이훙(徐悲鴻)도 그중 한 명이었다. 훗날 중국공산당정권 수립 이후 마오쩌둥(毛澤東)과 저우언라이에게서 격찬을 받은 쉬베이훙은 1919년 프랑스로 건너가 파리국립미술학교에서 8년간 유학생활을 마친 후 귀국하여 난징을 근거지로 명성을 날리고 있었다. 그런 쉬베이훙도 처음 프랑스로 떠날 때는 그저 이름없는 화가에 불과했다. 나이도 한낙연과는 서너 살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지만 지금 그와 쉬베이훙의 차이는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였다. 한낙연은 더 늦기 전에 파리로 건너가 자신의 능력을 시험해보고 싶었다. 당시 프랑스 파리가 예술의 중심지라는 것은 분명했고, 그 영향은 상하이에 있던 프랑스 조계지에도 미쳤다. 이미 상하이의 프랑스 조계지 곳곳에는 파리의 아틀리에를 본뜬 개인화실이 생겨났으며, 몽마르트르 언덕을 본뜬 화랑거리까지 형성될 정도였다. (계속) [*신동아]통권554호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1988년과 91년 연변을 방문해 연변 역사가들을 두루 만났다.이때 중국공산당 문헌에 수록된 김일성에 대한 기술을 입수해그가 항일무장 투쟁의 중요한 사람임을 객관적 자료로 입증했다.백두산도 올랐는데 천지의 모습은 장엄했다. .article, .article a, .article a:visited, .article p{ font-size:14px; color:#222222;...
  • 2007-01-26
  • ‘29일 타계 1주기’ 맞아 부인 구보타 시게코 여사 단독 인터뷰 “남들은 그이가 위대한 예술가라고 말하지만 내겐 그저 커다란 아기(big baby)였죠.”지난해 74세를 일기로 타계한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白南準)씨의 반려 구보타 시게코(久保田成子·70) 여사가 오는 29일로 다가온 남편의 1...
  • 2007-01-23
  • 美 사상 최초 여성 대통령 탄생 여부 주목 힐러리 클린턴 미국 상원의원(뉴욕.59)이 20일 2008년 미국 대통령 선거 출마를 공식 선언, 이 나라 사상 최초의 여성 대통령 도전에 나섰다.   흑인인 배럭 오바마 상원의원(일리노이)과 존 에드워즈 전(前) 상원의원 등에 이어 힐러리 의원이 이날 대선 출마를 발...
  • 2007-01-21
  • [중앙일보 장연화 기자] 미국의 4년제 대학에 최초로 한인 총장이 나왔다. 캘리포니아주립대(UC) 이사회는 UC샌타크루즈 공대 학장인 강성모(스티브 강.61.사진) 교수를 UC머시드 새 총장으로 뽑았다고 17일 발표했다. 캘리포니아 주립대 중 하나인 UC머시드는 2005년 가을에 문을 연 신생 캠퍼스다. 이번 총장 선출에는 미...
  • 2007-01-20
  • 중국공산당의 우수한 당원이고 위대한 공산주의전사이며 걸출한 무산계급혁명가이고 중공의 경제사업 탁월한 지도자이며 중국공산당 제7기, 8기, 11기 중앙위원이고 제8기 중앙정치국 후보위원이며 원 국무원 부총리이고 원 중공중앙고문위원회 상무부주임인 박일파옹이 병으로 치료에 효과를 보지 못하고 2007년 1월 ...
  • 2007-01-18
  • 석사연구생, 민족사회사 사회학과 제자를 가르치고있는 렴송신박사(왼쪽) 약속대로 렴송신박사의 자택을 찾아간 날은 한해가 막 저물어가는 지난 12월 29일이였다.열정적이고 스스럼없는 첫 인상이 사학자,법학박사의  딱딱할것만 같았던 모습과는 퍼그나 달랐다. 자택 탁상머리에는 책들이 두둑이 쌓여져있어 서향냄새...
  • 2007-01-14
  • [—불우학생돕기로 여생 빛내는 문태경로인 ]《남의 자식한테 무슨 정성 그리 쏟아붓소?》이는 지난해 불우학생들의 뒤바라지로 열심히 살아온 연길시 조양가두 문태경로인(70세)을 두고 의아쩍은 눈길을 던지는 사람들의 말이다.  정년퇴직하고 여러가지 활동으로 만년을 보내던 문태경로인이 불우학생...
  • 2007-01-13
  • "요놈들이 나를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안아달라고 조를 때마다 내 마음은 형언할 수 없는 애수에 젖어 듭니다.이 피덩어리들을 버리고 어떻게 가겠습니까"라고 측은한 눈길로 천진란만한 어린이들을 보면서 기자에게 설명하고 있는 한 중년사나이, 그가 바로 "사랑의 집(원장)"을 운영하고 있는 김학원(...
  • 2007-01-09
  • [리옥금씨의 '단풍잎에 붙이는 추억'에 붙여]50대 가정주부가 작품집을 펴내 화제로 되고있다. 길림시에 거주하는 리옥금(1952년생)씨가 '단풍잎에 붙이는 추억'(연변인민출판사)이라는 삶의 악세사리를 세상에 선사하면서 각광을 받고있다.   '황혼녘의 색바랜 사진', '보지도 못한 두 오빠', '하나밖에 없는 언니', ...
  • 2007-01-08
  • [중국문단의 대표적 신세대녀류소설가 김인순을 만나다]일시: 2006년 12월 28일 장소: 길림신문사 사장실     중국문단 《70후》 대표주자기자:  중국문단에서 70후 작가 중 3대작가중의 한사람 5대작가중의 한사람 이라고 할 정도로 당신은 70후 작가의 대표자의 한사람이다. 70후작가 를 어떻게 리해해야...
  • 2007-01-05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