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외화창출의 선두기업ㅡ장흥의상
조글로미디어(ZOGLO) 2006년4월3일 08시16분    조회:8804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전국로력모범 장흥의상제조유한회사 한경애리사장의 창업이야기

시대가 영웅을 낳고 영웅이 시대를 빛낸다고 지금 수많은 민영기업가들이 전민창업의 시대적환경에 힘입어 다년간의 창업과 분투로 자기들의 보잘것 없던 《새우》급기업을 업종, 업계의 룡두주자급기업으로 키워가고있다. 연길장흥의상제조유한회사가 바로 그중의 하나이다.

워낙 자그마한 수공업작업방에 불과하던 장흥털실옷공장은 리사장 한경애의 20여년간의 창업분투로 지금은 500여명의 종업원에 년생산액이 1000여만원, 년외화창출액이 130여만딸라에 달하는 연변은 물론 국내외에서도 막강한 경쟁력을 과시하는 룡두기업으로 부상하였다.

개천에서 룡이 날수 있은것은 바로 한경애녀성이 끈질긴 의력과 과감한 정신으로 자기의 앞날을 개척하였기때문이다.

1984년, 연길시제2백화점 편직조 책임자로 있던 한경애녀성은 과감히 단위를 떠나 자주창업의 첫걸음을 내디디였다. 그녀는 이미 퇴직한 아버지한테서 얻은 1800원을 달랑 가지고 남방에 가 털실옷을 구입하여 연길에 가져다팔았는데 판로가 좋았다. 매번 녀자 혼자몸으로 크고작은 짐보따리를 이고 지고 들고 시장의 인파에 이리저리 부대끼는것도 고달팠지만 돈을 한푼이라도 아끼느라 침대차표를 살 엄두도 못내고 딴딴한 걸상에 앉아 몇십시간씩 신고를 하거나 지어는 앉을 자리마저 없어 꼬박 일여덟시간씩 서있다보면 다리가 저리고 허리가 시큼거리고 머리가 혼미해질 때가 푸술했다. 정 견디기 어려우면 마대를 좌석밑에 펴고 자기도 하였다. 그러노라면 여기저기 널려있는 쓰레기와 구석구석에서 발산하는 잡내가 에워쌌지만 그녀는 5성급 호텔보다 더 훌륭하게 느껴졌다. 변변한 식사란 더 운운할것도 없었다. 흔히 물 둬모금에 만두 몇쪼각이면 전부였다. 이러기를 몇백날∼그러나 그녀는 추호의 동요도 없었다. 그것은 《나도 두손이 있는한 기어이 자기의 노력으로 앞날을 개척하겠다》는 굳은 신념이 그녀를 떠밀었기때문이였다. 곧바로 이런 정신력과 의지력이 한경애와 그의 기업이 개천의 작은 기포를 내뿜는 물고기에 그치지 않고 룡트림을 하는 업종의 룡두로 성장하게 한 리념과 바탕으로 되였다.

《룡될 고기는 모이철부터 안다》고 한경애는 간난신고를 무릅쓰고 보따리장사를 견지하는 한편 항상 새로운 발전계기를 찾기에 고심하였다. 마치 그의 고생에 대한 보상인듯 그녀는 고생스런 남방행에서 남방사람들의 털실옷가공업이 흥성발전하고있는데서 계발을 받고 자기도 자체로 털실옷을 생산가공해보기로 작심하였다. 남방에서 돌아오자 그녀는 장사에서 번돈과 일부 경공업제품을 갖고 조선에 가 수소문하여 일본산중고편직기 2대를 사다가 털실옷가공을 시작하였다. 허나 초시작부터 편직기술이며 설비기능을 장악하지 못하여 애로가 많았다. 하여 밤에 낮을 이어 침식을 잊어가며 책을 사보고 실제조작을 하는 한편 경험자를 찾아 묻기도 하면서 끝내 편직기술을 익혀냈으며 자체로 디자인설계한 양식이 새로운 털실옷들을 생산하여 사용호들의 환영을 받게 되였다. 생산의 발전과 더불어 2년후에는 20여대의 편직기에 종업원도 20여명으로 늘어났다.

그러나 한경애녀성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갈수록 치렬해지는 시장경쟁에서 튼튼한 기반을 마련하고저 500만원을 투자하여 공장건물을 확건하고 한국과 일본의 선진적설비를 인입하였으며 높은 로임으로 한국의 일류의 설계사를 초빙하고 내부기술일군들을 남방기업에 가 연수하게 하여 기업의 기술력을 일층 높이였다. 하여 1994년에 이르러 기업의 년생산능력은 10만건으로 증가되였으며 명실공한 규모화털실옷생산기업으로 성장하였다. 이것은 기회를 민감하게 포착하고 과감히 리용하는 한 기업가의 지략과 담략의 결실이다.

2003년 5월, 본기업과 한국 이랜드주식회사가 7:3의 비례로 출자하여 새롭게 연길장흥의상제조유한회사를 설립, 기업을 8000여평방메터의 공장건물에 800여명의 종업원을 둔 년생산능력이 60만건에 달하는 대형모방직기업으로 발전시켰다. 하여 당해에 1300만원의 생산액을 실현하고 130만딸라의 외화를 벌어들이였다.

한경애녀성의 기업발전의 발걸음은 이에 그치지 않았다. 2004년 4월, 기업의 브랜드화경영을 실시하고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장흥회사는 상해《항원상(뷩都卷)》집단에 가맹하여 동북3성 유일한 《항원상》련합체성원, 아동복가공기지로 되여 당해에 35만건의 예약지표를 완수하였다. 2005년에는 100만건의 예약지표를 완수하여 규모와 경제적효익의 차원을 승격시켰다. 《항원상》의 브랜드우세를 리용하여 짧디짧은 몇달사이에 북경, 심양, 할빈 등 6개의 성급 도매상과 20여개의 구역도매상을 두어 립체적인 체인식판매망을 건립하여 국내시장에서의 영향력을 한층 더 높였다.

한경애녀성의 높이 서서 멀리 내다보는 전략적안목과 과학적사로가 오늘의 장흥회사를 《전국취업선진기업》, 길림성, 연변의 《창업선봉기업》으로 이끌었으며 그녀 자신을 《전국로력모범》, 성, 주 《우수민영기업가》, 《성3.8붉은기수》, 《성부녀창업선줄군기준병》으로 이끌었다.

장흥의상제조유한회사는 한경애녀성의 창업리념과 창의적사로로《내실을 굳히면서》새로운 도약을 꿈꾸고있다.

리련복기자llf@ybrb.cn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2006년 12월18일 , 민영기업 금두그룹이 대형국유기업 길림성교통건설그룹을 재조합한 장거는 각 매체를 통하여 삽시간에 전 성을 들끓게 하였고 이는 길림성내 민영기업이 대형국유기업을 재조합하는 선례를 개척하였다. 이 대담한 혁신의 주인공이 바로 길림성금두그룹의 김명남리사장이다. 등록자본이 2만원인 규모가 작...
  • 2007-02-15
  • 김광범, 남, 조선족, 1947년 5월 출생, 단과대학 학력, 현재 흑룡강성 목단강시민족종교사무국 국장. 1994년부터 지금까지 여러차례 공을 세워 목단강시정부의 표창을 받았으며 시직속기관 당위로부터 여러차례 당작풍 렴정건설 선진개인으로 당선되였다. 그가 국장으로 부임한 이후 목단강시민족종교사무국은 국무원으...
  • 2007-02-12
  • 《장4B》 총설계사, 총지휘로서의 리상영, 7년 여에 10차례에 걸쳐 10종의 인공위성 16매를    전부 예정궤도에 정확히 발사, 《10발 10중》의 기적을 창조하다 《하량하리기금상》 수상자 《며칠전 또 한방이라,그러니까 이번이 10발10중 맞지요?》 2006년 11월 15일 북경 인민 대회당에서 거행된 《...
  • 2007-02-11
  • CCTV중국올림픽키잡이 선발에 나서 동부지역 80강까지 올랐으며 전국 '녀자투표인기왕'으로 이름을 날렸던 산동지역대표선수 조충(赵翀)이 조선족이였음이 뒤늦게 밝혀졌다. 비록 32강진출에서 아쉽게도 탈락되였지만 그녀가 받았던 폭발적인 인기는 조선족들의 이미지향상에 큰 힘을 하였다. 초기의 인터넷투표...
  • 2007-02-07
  • 비용까지 대주고 한국로무 보냈다오. 돈 떼울 일이 절대 없답니다. ㅡㅡ 치렬한 경쟁과 유혹적인 리윤으로 많이 변질이 된 해외로무송출시장에서 이런 평을 듣기란 쉽지 않다. 해외로무지원자들의 일 전한푼이 어렵게 모은 돈이라는것을 잘 알고있어요. 때문에 우리는 매개 고객에 대하여 절대적으로 책임지는 각도에서&nbs...
  • 2007-02-01
  • 조선족학자 임범송교수를 만나다 작년 12월 26일, 연변인민출판사에서는 43만자나 되는 조선문대형도서《심미비평론》을 출판하였다. 이 책의 출판으로 하여 저자 임범송교수는 흥분된 자신을 걷잡기 어려워했다. 그럴만도 하다. 70세 고령인 임범송교수는 자식들이 유럽려행을 다녀오시라는 권고도 마다하고 《인생의 마지...
  • 2007-01-31
  • 1원짜리 인민페에 등장하는 소수민족 여성의 실제 주인공이 28년여만에 나타났다.지난 20전짜리 모델인 조선족 처녀에 이어 이번에는 동족처녀였다.이 인민페에 등장했던 동족 소녀는 지금은 45살의 중년 여성이 됐지만 최근에야 자신이 지페 모델이었음을 알게 됐다.귀주(貴州)성 총장(從江)현의 한 동족 부락에 사는 스나...
  • 2007-01-28
  • 사실을 아는 사람이 별반 없을 것이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투항하자 김철남은 중경에서 해방을 맞는다. 당시 조선 국내의 정치상황이 불안했 탓으로 그는 중국에 머물러 사태를 관찰했다. 그래서 중국에 눌러 앉은 그는 1952년 페암으로 인하여 북경에서 세상을 떴다. 지금 북경에 건재하고 있는 이서군 녀사는 조선족...
  • 2007-01-28
  • 색 바래지 아니 할 '영원한 화신'       실로 빠른 것이 세월인 것 같다. 벌써 5년이란 세월이 지났다. 바로 5년전의 그 여름밤, CCTV 제5채널의 2002한·일월드컵의 생방송을 보다가 까닭없이 히딩크가 이끄는 한국팀을 비하하는 해설원의 언사에 참지 못해 전화통을 들고 그 해설원 유건홍과 설전을...
  • 2007-01-28
  • 27일 청주 라마다호텔에서 사단법인 한국청년회의소(JCI) 손인석 회장(36·청주 광진건설 대표)이 취임식을 가졌다.손회장은 각 지방 JC와 중국 조선족 소학교간 자매 결연을 추진, 한민족 얼을 잊지 않도록 도와 주고 소외된 우즈베키스탄의 고려인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심장병을 수술해 주는 사랑의 메신저 운동도 ...
  • 2007-01-28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