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나의 삶과 음악은 바이올린과 함께 했다’
조글로미디어(ZOGLO) 2022년7월21일 19시44분    조회:3398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작은 체구에 늘 부드럽고 상냥한 미소를 띠고 있는 그녀지만 바이올린을 잡는 순간 카리스마가 넘친다. 때로는 차갑게, 때로는 뜨겁게 청중의 마음을 휘여잡으며 바이올린 선률에 젖어들게 한다. 바이올린만 손에 잡으면 그런 폭발적인 에너지가 어디서 뿜어져 나올가? 5살에 처음 바이올린을 잡기 시작했으니 사실상 칠십 평생을 음악가로서의 외길을 걸어온 셈이다. 이제 바이올린과 그녀는 한몸이 아닐가 싶기도 하다.

19일, 바이올리니스트 최정희의 자택에서 만난 그녀는 활기가 넘쳤다. 늦게까지 바이올린 수업을 하느라 잠도 못잤다면서도 피곤한 기색이 없었다.

연변가무단 바이올린 연주자로 정년퇴임을 한 최정희는 어린 시절 바이올리니스트였던 아버지 최호운 선생의 영향으로 자연스레 바이올린을 접하게 됐다. 당시 그녀의 아버지는 할빈에 있는 쏘련의 한 음악학원에서 바이올린을 전공한 뒤 료녕성가극원에 있다가 연변가무단으로 자리를 옮겼다. 최정희는 “당시 들었던 아버지가 켜는 바이올린 음악의 선률에 나도 이런 곡들을 연주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며 음악인의 길로 가게 된 계기를 설명했다. 그는 “공연에 가서 본 바이올린 연주자의 모습을 잊을 수 없었다.”면서 “이후 바이올린 독주곡과 협주곡을 따로 찾아 들을 정도로 바이올린에 매료됐다.”고 밝혔다.

최호운 선생은 4남매 중 맏이였던 그녀에게 특별했다. 자신의 바이올린 기교를 남김없이 그녀에게 전수했다. 돈이 없어 배를 굶었던 시절, 값 비싸고 귀했던 바이올린을 얻을 길 없었던 최호운 선생은 재료를 얻어 직접 바이올린을 제작해서라도 그녀에게 바이올린을 배워줄 만큼 바이올린에 대한 사랑이 남달랐다. 어린 그녀 또한 욕심이 많았다. 졸려서 눈이 감길 때까지 연습하군 했단다. 아버지가 남겨준 진도를 따라잡으려는 욕심에서였다.

아버지의 끼를 물려받아서였을가? 한 방송음악회에서 베토벤 작곡인 <메누에또>를 제법 연주했던 6살의 최정희는 단번에 사람들의 주목을 받으면서 ‘신동 바이올린 연주자’로 불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1962년 주은래 총리가 연변을 찾았던 그해, 겨우 10살이였던 꼬마 최정희는 주은래 총리를 비롯한 수많은 관중들이 모인 무대에서 당당하게 바이올린 독주를 이어갔다. 당시에는 귀하디 귀했던 악기였던 바이올린을 곧잘 연주하는 꼬마 최정희의 모습은 곧 소문을 타기 시작했고 그녀를 알아보는 사람들도 점점 많아져갔다.

“바이올린이라는 악기가 나에게 딱 맞는 것 같았다. 음색도 매력적이고 내 체구나 성격에도 맞았다. 그리고 곡을 배워 나가고 한 곡을 완성했을 때 그 희열은 말로 표현 못할 정도였다. 때론 힘들 때도 있었지만 재미가 있어서 그렇게 열심히 할 수 있었다.”

이후 1970년에 그녀는 화룡현 문공단에서 바이올린 연주자로 있다가 10년 뒤 연변가무단으로 둥지를 옮겨 한국, 조선, 로씨야로 공연을 다녔고 국내 크고작은 공연무대에서도 연주자로 분주한 나날을 보냈다.

올해 고희를 맞은 최정희는 퇴직후에도 여전히 아이들에게 바이올린을 가르치면서 음악가로서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음악이라는 분야는 평생 연주하고 가르칠 수 있는 분야이기 때문에 나이로만 퇴임이지 음악가로서의 활동은 계속 이어갈 수 있다. 어릴 때 훌륭한 선생님들이 70, 80 대가 되여도 여전히 열정적으로 가르치는 모습을 많이 봤는 데 나도 그런 모습을 늘 잃지 않으면서 더욱 열심히 일할 계획이다.”

그녀의 바이올린 인생은 이제 마침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인 셈이였다.

이어 그는 “바이올린은 기초교육이 무척 중요하다. 바이올린 활을 편안하게 써야 하고 많은 것을 보고 느끼면서 상상력도 키워야 한다. 그래야 악보를 봤을 때 작곡자의 생각과 음악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이 생길 수 있다. 공부를 많이 해야 하는 리유가 거기에 있다. 나는 이러한 나만의 공부법을 가르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한다.

인터뷰 중에 조심스레 그녀에게 바이올린 연주를 부탁했다. 물론 그녀는 흔쾌히 수락했다.

고희, 결코 적지 않은 나이임에도 그의 연주는 변함이 없다. 오히려 사랑과 슬픔, 고뇌와 환희, 열정과 적막 같은 인생의 희로애락이 고스란히 그녀의 바이올린 현을 타고 흘러나왔다. 인자하고 포근한 그녀의 친숙함과 힘있는 연주에서 나오는 여유로움이 어우러져 한결 분위기는 편해졌다. 그녀의 눈동자는 반짝였고 음악을 이야기하는 그의 목소리는 뜨거웠다.

“어떻게 하다 보니 지금까지 오게 됐다.”며 롱담처럼 말하면서도 “늘 처음이자 마지막이란 생각으로 연주한다.”고 말했다.

“쉬워진다는 생각 전혀 안들고 오히려 더 힘들어진다.”며 겸손한 자세를 보이던 그는“우리 지역에도 관객과 공감하는 클래식 음악회가 많았으면 좋겠다. 아직 여건상 부족으로 클래식이 설 수 있는 무대는 너무 제한적이다. 더구나 대중적인 음악쪽에 집중돼 클래식 분야는 상대적으로 신문이나 방송 등 대중 매체들에서 다루어지는 비중도 낮다. 이 분야에 많은 관심이 모아져서 관현악의 위상이 높아졌으면 더 바랄 것 없다.”라며 결코 가볍지 않은 바람도 조심스레 내비쳤다.

그런 그에게 “삶에서 바이올린이 필요한 리유”를 마지막으로 물었다.

“음악은 우리를 숨 쉬게 하는 공기”라며 그녀는 위대한 지성인이 남긴 현답으로 대신했다. 아인슈타인의 말이였다.

‘내게 음악이 없는 삶은 상상할 수 없다. 음악 속에서 꿈을 꾸고, 음악을 통해 내 인생을 바라본다.”

  글·사진 신연희 기자/연변일보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연변에도 ‘성형외과전문가감정기구’ 창설해야 —연길 연세보건의학미용병원 김은화 원장 제안   연길 연세보건의학미용병원(이하 연세성형병원)의 김은화 원장은 “연변에 성형외과전문가감정기구를 창설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그는 일전에 열린 연길시 제19기 인민대표대회 제...
  • 2024-01-13
  • 김철준 교수,초심을 잃지 않고 인재양성과 과학연구에 몰두할터   김철준. 중국공산당원, 박사, 연변대학 외국어학원 교수, 박사생지도교수. 연변대학 조선-한국학학원 당지부서기, 원장, 조한문학원 원장 력임. 9월 4일, 제39번째 교사절에 즈음하여 길림성교육청과 성당위 선전부가 공동으로 개최한 2022년과 2023년...
  • 2023-09-07
  • 길림대학 총학생회 학생회장 리혜정 경력을 차곡차곡 쌓아서 나중에 민족과 국가가 수요하는 사람으로 되고 싶다.   ■ 리혜정 최근, 조선족 리혜정 학생(20세)이 길림대학 제28회 학생회장으로 당선되였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장춘 조선족사회에서 뜨겁게 회자되고 있다. 길림대학 전위남(前卫南) 캠퍼스에서 만...
  • 2023-08-09
  • —북경시라지오텔레비죤방송국 교통방송 부국장 리철용 수도권 매체에서 두각을 내밀다 가족사진(좌로부터 리철용, 김홍화, 리응정) 단란한 가정 행복한 식구 20세기 90년대초의 어느날, 연변텔레비죤방송국 스튜디오에서 한창 12.9운동 기념 활동프로가 촬영중이다. 연변텔레비죤방송국 한어 아나운서 리철용(조선족...
  • 2023-02-06
  • 김은장, 복건성고급인민법원 원장으로 당선 2023년 01월 17일 10시 06분    글쓴이:시스템    조회:15    추천:0 북건성인민대표대회 공고 [14기] 제4호 복건성 제14기 인민대표대회 제1차 회의는 2023년 1월 15일 김은장(조선족)을 복건성고급인민법원 원장으로 선거하였다. 김은장 략력:...
  • 2023-01-18
  • 최근 2022년도 국가사회과학기금 중대항목립안명단이 정식으로 공포되였는데 연변대학 조한문학원 김철준교수 연구팀이 신청한 가 성공적으로 립안되였다. 이는 연변대학이 4년만에 재차 우리 나라 철학사회과학연구분야의 최고급 항목을 비준받은 것이다. 이 항목은 국내외 동아시아 한적연구의 최고력량을 집합시켜 최초...
  • 2022-12-13
  • 청도농업대학 화학과 약학원의 주영철(49) 교수는 농약 관련 연구로 두각을 나타내면서 그의 연구 성과는 민족기업의 발전에도 튼튼한 밑거름이 되고 있다. 주영철 교수 연변이 고향인 주영철 교수는 연변농학원(현재 연변대학농학원)에서 농학을 전공했다. 졸업후 1996년부터 2000년까지 연변대학농학원 과학기술처에서 근...
  • 2022-09-23
  • ‘조률은 무대 뒤 무대서 완성하는 작품’ 1000분의 1의 차이도 느껴내야만 최적의 연주 컨디션을 만들 수 있는 만큼 조률사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어스름한 무대 우, 매끄러운 피아노 한대가 놓여있다. 조명이 켜지고 피아니스트가 뚜벅뚜벅 걸어나오면 이내 묵직한 적료를 뚫고 울리는 피...
  • 2022-08-18
  • 현장의 가장 가까이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정보까지 사진 한장에 담아 전해야 하는 직업이 촬영기자이다. 오인철(70세)은 평생을 《연변일보》 촬영기자로 뛰면서 뉴스현장을 누볐고, 자치주의 변화를 고스란히 사진으로 기록하고 방대한 자료를 남겼다. 3일, 오인철은 자택에서 인터뷰를 받으면서 컴퓨터에 일목료연하게 ...
  • 2022-08-14
  • 중국 림업기계 연구 개발의 선두주자, 국무원 특수수당금 향수자 김태현 로옹 최근 동북림업대학 건교 70주년 경축행사차 산동성 청도에서 비행기편으로 할빈에 오신 김태현 로옹을 만났다. 85세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정력이 왕성하고 기억력이 좋았으며 박식한 분이였다. 이야기를 통해 김 옹은 중국 립업기계 연구 개발...
  • 2022-07-24
‹처음  이전 1 2 3 4 5 6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