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서영근씨, 컴퓨터용 폰트(字体)'중국조선족서예체' 개발
조글로미디어(ZOGLO) 2020년12월14일 14시27분    조회:2831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인물이름 : 서영근

아이들이 모여있는 공간이라면 웃음소리가 들끓고 자칫 티격태격하며 산만해지기 일쑤인데 수십명 아이들이 한 곳에 모인 이 곳에는 쥐죽은 듯이 고요하기 그지없었다. 반듯하게 내리누른 백지장우에 비뚤어질세라 곱게곱게 한자씩 써내려가는 애고사리같은 아이들은 손에 저마다 먹을 머금은 붓대를 치켜세워들었다. 그리고 그 속에는 그들의 서예 스승 서영근 선생이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또 다른 한켠에는 로인분들이 먹물에 붓을 지그시 담가가며 붓글씨를 배우기에 한창 석양을 불태우고 있었다.

서예가 서영근 선생

남다른 서예 사랑, 유별난 제자 사랑. 이 두가지를 동시에 실천해가는 서영근 선생의 일상에는 서예도 제자도 빠뜨릴 수 없는 부분으로 되였다. 40년간 한결같았던 서예사랑을 이제 제자들에게 베풀어가련다는 서예가 서영근 선생, 그의 사무실 벽지가 상당히 인상적이다. 세면을 가득 메운 벽면으로 시작해 천장까지 빼곡하게 제자들의 영예증서로 도배되였는데 이게 바로 그가 ‘밥을 안먹어도 배부른 리유’라고 했다.

도문시 월청진에서 출생한 서영근씨가 서예를 접할 수 있었던 것은 소설가인 아버지(서광억)와 서예가인 친형(서권)의 영향과 갈라놓을 수 없다. 소시적 어느날, 소설가인 아버지 앞으로 날아온 한 출판사 편집이 친필로 써보낸 편지를 읽고 나서 너무나 멋졌던 나머지 자신도 저런 멋진 글씨체를 익히고 싶어서 글씨를 잘 쓰던 친형의 도움을 받아 서예공부를 시작하게 되였다.

1989년 연변사범학원에 입학한 후로 당시 한개 과목으로 설치되여 있던 서예를 배울 수 있는 기회로 간주하고 남다른 집착으로 달라붙었다. 그는 사범학원 졸업을 앞두고 개인서예전을 개최하고 서예전에 입상하게 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활발한 서예활동을 시작하더니 서예가들 사이에서 유망주로 떠올랐다. 졸업 후에는 공예상표 디자이너로 근무하면서 각종 상표글씨를 써오다가 연길시중앙소학교 미술교원으로 전근하여 본격 아이들에게 서예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1994년에 연길에서 개최된 《아름다운 한글서예 중한련합전》에서 서영근씨는 여태 본적이 없던 한국의 전통서예작품을 보게 되였다. 그것은 연변의 서예작품과 확연이 다른 차이가 있음을 실감하게 되면서 또 다른 문화적인 차이를 크게 느꼈다. 하여 그는 전시회에 참가한 서예가들의 련락처를 수소문해 일일이 서신을 보내 가르침을 요청했다. 집요할 만치 가르침을 갈구하던 그에게 한국 서예가들은 그의 끈기있는 열정에 감동되여 서신 답장을 보내오면서 ‘장거리 가르침’을 주기로 약속했던 것이다. 스승들이 내여준 숙제를 서신으로 완성해 보내면 한국 서예가들은 하나하나씩 표기를 해가며 그의 작품을 지적하고 수정해가며 알뜰히 가르쳤다.

그렇게 2년이라는 시간동안 서신으로 공부한 노력으로 당시 중국에는 없던 전통 궁체와 판본체를 마침내 배워낼 수 있게 되였다.

그러다 점점 더 서예에 갈증을 느낀 서영근씨는 한국 류학 길에 올라 더 깊은 문학과 서예공부를 해보고 싶었다. 때는 1997년이였다. 한국 제주대학교에서 국어국문학과 본과과정과 석사과정을 마치고 국어학박사과정(경상대학교)을 수료한 후 서영근씨는 세계적으로 처음으로 서예학 박사과정을 설치한 원광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다니면서 궁체, 판본체 외 민체 등 여러가지 서체들을 두루 공부하게 되였으며 마침내 2008년에 제1호 서예박사학위를 취득했고 창신대학, 전주대학, 서정대학 등 대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서예 전수를 이어갔다.

또한 그는 한국에 있을 때 한민족서예학회, 재한동포서예협회 등 단체를 운영하면서 재한 조선족들에게 무상으로 서예를 가르치며  집 떠나 멀리 이국타향에 온 고향사람들과 서예로 끈끈한 고향정을 나누며 ‘재능기부’를 실천했다.

그러다 그는 언젠가부터 깊은 고민에 빠졌다. “우리가 매일 쓰다싶이 하고 있는 컴퓨터 글씨는 진정 ‘우리의 것’이 아니란걸 알았습니다. 그건 한국이나 조선의 것이지 중국 조선족의 것이 아니였습니다.”

컴퓨터 속에 진정한 우리의 글씨체가 없다는 안타까움에 그는 2015년부터 우리 글 서체 컴퓨터 폰트개발에 달라붙었다. 남성미 넘치는 조선의 청봉체와 녀성미가 다분한 한국의 궁체를 접목해 2014년 ‘아리랑체’를 새롭게 개발했으며 이것을 2015년에 컴퓨터용 폰트로 제작하고 서예교본도 출간하였다. 꼬박 몇년간의 심혈을 기울여 드디여 지난달인 11월19일 그가 개발한 컴퓨터용 ‘서영근 아리랑체’ 등 폰트 저작권이 국가저작권국 허가를 받아 세상의 빛을 보게 되였다. 이로써 정정당당히 이제는 컴퓨터로도 아름다운 중국조선족서예체를 타자할 수 있게 되였다.

새로 개발된 이 폰트를 다운하여 컴퓨터에 설치하면 서영근 아리랑체를 위주로 서영근 궁체, 서영근 궁체흘림, 서영근 판본체, 서영근 판본체흘림, 서영근 민체, 서영근 민체흘림, 서영근 청봉체를 포함한 8가지 컴퓨터 폰트는 상황과 필요에 따라 자유자재로 골라 쓸 수 있게끔 우리 글 상용자 2500개를 수록해 넣었다.

“영리성적인 목적으로 만든 폰트가 아니라 중국 조선민족 문화예술의 발전에 이바지하고 이것을 진정으로 수요하는 공공기관이나 꼭 필요한 분야에 무상으로 제공하고저 개발한 만큼 그 과정이 길고 힘들긴 했으나 큰 자부심을 느낌니다.”

그윽한 먹향을 머금은 따끈따끈한 ‘우리의 글씨체’를 이제 우리의 컴퓨터 속에서도 륙속 만나보게 될 수 있게끔 보급에도 앞장서겠다는 서영근 선생의 당찬 포부가 하루 빨리 이루어지길 소망해 본다.

길림신문 김영화 기자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연변에도 ‘성형외과전문가감정기구’ 창설해야 —연길 연세보건의학미용병원 김은화 원장 제안   연길 연세보건의학미용병원(이하 연세성형병원)의 김은화 원장은 “연변에 성형외과전문가감정기구를 창설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그는 일전에 열린 연길시 제19기 인민대표대회 제...
  • 2024-01-13
  • 김철준 교수,초심을 잃지 않고 인재양성과 과학연구에 몰두할터   김철준. 중국공산당원, 박사, 연변대학 외국어학원 교수, 박사생지도교수. 연변대학 조선-한국학학원 당지부서기, 원장, 조한문학원 원장 력임. 9월 4일, 제39번째 교사절에 즈음하여 길림성교육청과 성당위 선전부가 공동으로 개최한 2022년과 2023년...
  • 2023-09-07
  • 길림대학 총학생회 학생회장 리혜정 경력을 차곡차곡 쌓아서 나중에 민족과 국가가 수요하는 사람으로 되고 싶다.   ■ 리혜정 최근, 조선족 리혜정 학생(20세)이 길림대학 제28회 학생회장으로 당선되였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장춘 조선족사회에서 뜨겁게 회자되고 있다. 길림대학 전위남(前卫南) 캠퍼스에서 만...
  • 2023-08-09
  • —북경시라지오텔레비죤방송국 교통방송 부국장 리철용 수도권 매체에서 두각을 내밀다 가족사진(좌로부터 리철용, 김홍화, 리응정) 단란한 가정 행복한 식구 20세기 90년대초의 어느날, 연변텔레비죤방송국 스튜디오에서 한창 12.9운동 기념 활동프로가 촬영중이다. 연변텔레비죤방송국 한어 아나운서 리철용(조선족...
  • 2023-02-06
  • 김은장, 복건성고급인민법원 원장으로 당선 2023년 01월 17일 10시 06분    글쓴이:시스템    조회:15    추천:0 북건성인민대표대회 공고 [14기] 제4호 복건성 제14기 인민대표대회 제1차 회의는 2023년 1월 15일 김은장(조선족)을 복건성고급인민법원 원장으로 선거하였다. 김은장 략력:...
  • 2023-01-18
  • 최근 2022년도 국가사회과학기금 중대항목립안명단이 정식으로 공포되였는데 연변대학 조한문학원 김철준교수 연구팀이 신청한 가 성공적으로 립안되였다. 이는 연변대학이 4년만에 재차 우리 나라 철학사회과학연구분야의 최고급 항목을 비준받은 것이다. 이 항목은 국내외 동아시아 한적연구의 최고력량을 집합시켜 최초...
  • 2022-12-13
  • 청도농업대학 화학과 약학원의 주영철(49) 교수는 농약 관련 연구로 두각을 나타내면서 그의 연구 성과는 민족기업의 발전에도 튼튼한 밑거름이 되고 있다. 주영철 교수 연변이 고향인 주영철 교수는 연변농학원(현재 연변대학농학원)에서 농학을 전공했다. 졸업후 1996년부터 2000년까지 연변대학농학원 과학기술처에서 근...
  • 2022-09-23
  • ‘조률은 무대 뒤 무대서 완성하는 작품’ 1000분의 1의 차이도 느껴내야만 최적의 연주 컨디션을 만들 수 있는 만큼 조률사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어스름한 무대 우, 매끄러운 피아노 한대가 놓여있다. 조명이 켜지고 피아니스트가 뚜벅뚜벅 걸어나오면 이내 묵직한 적료를 뚫고 울리는 피...
  • 2022-08-18
  • 현장의 가장 가까이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정보까지 사진 한장에 담아 전해야 하는 직업이 촬영기자이다. 오인철(70세)은 평생을 《연변일보》 촬영기자로 뛰면서 뉴스현장을 누볐고, 자치주의 변화를 고스란히 사진으로 기록하고 방대한 자료를 남겼다. 3일, 오인철은 자택에서 인터뷰를 받으면서 컴퓨터에 일목료연하게 ...
  • 2022-08-14
  • 중국 림업기계 연구 개발의 선두주자, 국무원 특수수당금 향수자 김태현 로옹 최근 동북림업대학 건교 70주년 경축행사차 산동성 청도에서 비행기편으로 할빈에 오신 김태현 로옹을 만났다. 85세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정력이 왕성하고 기억력이 좋았으며 박식한 분이였다. 이야기를 통해 김 옹은 중국 립업기계 연구 개발...
  • 2022-07-24
‹처음  이전 1 2 3 4 5 6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