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조선족 영화감독:한중영화제 FIRST 청년영화제 수상자로...
조글로미디어(ZOGLO) 2020년8월25일 08시54분    조회:1950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인물이름 : 박성진
우리 민족 문화 예술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어

감독이라는 직업에 종사하는 조선족은 몇명이나 될가? 또 어떤 명작 영화가 있을가?  그 답을 찾던중 북경에서 영화 창작에 몰두하고 있는 한 조선족 감독을 만나게 되였다. 

여러 영화제의 상을 거머쥐고 또 중국 유명 영화제작사의 협력 요청도 받고 있다는 이 감독은?
 

이름: 박성진(본명/박성남)

출생: 1975년 11월23일

고향: 연변조선족자치주 룡정시

학력: 연변대학 예술학원 연극학부

직업: 감독

작품: “国界”  “追拳” “离别之旅”

철없는 개구쟁이 배우꿈 가지다

룡정시의 한 성실한 로동자가정에서 태여난 박성진은 자신의 어린 시절을 돌이켜 보면 부모님과 선생님들의 속을 수 없이 썩였던 철없는 개구쟁이였다며 공부는 뒷전으로 하고 항상 놀음에만 탐했던 “엉덩이에 뿔난 송아지”였다고 한다. 

비록 공부가 뒷전이긴 했지만 유독 한어 수업시간에는 “한어작문을 잘 쓴다”는 칭찬도 많이 받았고 또 학교의 여러가지 문예공연행사 때마다 항상 남보다 발벗고 나서서 활약하는 “끼많고 재능 많은 소년”이였다.

어린 나이에 예술이 뭔지는 딱히 몰랐지만 그런 분위기속에 묻혀 있을 때가 가장 행복했고 그러면서 장래 예술에 종사하겠다라는 꿈을 가지게 되였다. 

1994년 박성진은 고중을 졸업하고 소원대로 연변대학 예술학원에 입학하였다. 예술학원에 입학한 그는 동년배나 선후배들이 발산하고 있는 에너지에 매료되였고 마치 다른 세계에 진입한 듯한 황홀함에 빠지게 되였다. 

대학졸업후 2년간 연변무대에서 소품배우로 활약

제목을 아시는 분은 댓글에~

3년간의 학업을 마치고 졸업한 그는 연변에서 유명했던 김문혁, 송경철 등 배우들의 여러 소품에 출연하며 데뷔를 했고 자신의 젊은 모습을 여러 소품 속에 남겼다. 

더 큰 세상을 보자! 밖에서 하는 고생은 당연하다

1999년 3월, 박성진은 북경으로 향하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출장도 려행도 아닌 더 큰 세상을 보려는 조금은 당돌한 도전이였다. 지금과 달리 그 시대 아는 사람 하나도 없이 맨몸으로 무작정 북경이라는 도시로 달려가던 한 젊은이의 착잡한 심정은 지금와서 어떠한 문자로도 표현할 수 없다. 그러나 남들 눈에 무모할 정도로 용감했던 이 도전은 그의 인생궤적을 크게 바꿔 놓았다. 

아무도 모르는 북경에서 갈팡질팡하던 어느 하루 그는 우연히 초중때 친구를 만나게 되였다. 그 친구의 숙소에서 며칠간 합숙하며 일자리를 찾다가 한국의 이벤트회사에 취직하게 되였다. 

모 광고제작사에서 근무하던 시절

1999 북경 진출 

1999-2000년 북경 한국 모 행사기획사 근무 

2001- 2004년 북경 모 영상광고제작사 근무 

2005년 북경 모 한국영화미디어회사 근무 

2007년 한국 서울 모 영화미디어회사 근무

2009년- 2014년 자영업

(광고회사, 의류 비지니스 등)

이는 박성진의 프로필(简历)의 한 단락이다. 1999년 맨몸으로 연변과는 전혀 다른 북경에 와서 작은 이벤트회사로부터 CJ엔터테인먼트 등 대기업에서 직장생활을 하며 고생도 적지 않게 했다. 그는 “밖에서 고생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며 고향을 떠날 것을 결심했던 그 순간부터 갖은 역경들을 감안했고 또 이러한 어려움들을 겪었기에 더욱 많은 수확이 있었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국의 모 엔터테인먼트 회사에서 근무하던 시절

북경 모 광고회사의 프로듀서로 근무하던 시절

영화와 그의 새 도전...지금 생각하면 모든 게 다 미친 짓이였습니다

 고향을 떠나 10여년간 타지생활을 하며 광고기획사, 대기업 회사원, 영상제작사, 미디어회사 등 곳에서 다양한 직업에 종사하며 경력과 인맥을 쌓은 그는 점차 성공한 중산층으로 성장했지만 현상태에 만족할 수 없고 행복을 느낄 수 없었다고 한다. 

다들 인생은 별거 없다고 하지만 그 인생을 어떻게 사는냐는 모든 사람들의 선택에 달려 있지 않는가라는 생각에 그는 결국 자신의 꿈을 쫓아 영화감독으로 되여 또 새로운 도전을 하게 되였다. 

지금 생각하면 주변사람들이 모두 “너 미쳤냐”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말도 안되는 무모한 도전이였다. 예전에도 그랬고 또 지금도 그랬듯이 영화제작 경력도 없고 관련 인맥과 자원도 없는 상황에서 그는 또 새로운 “미친 도전”을 시작했다. 

그의 첫 영화 “国界” 촬영 현장

영화 “国界” 촬영시 안해와 함께

2015년 수개월의 노력을 거쳐 창작한 “모아산”이라는 영화 대본은 한국 영화진흥회 시나리오 경연 대상을 수상했고, 그해 8월 아무런 조건도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그는 안해와 함께 연변에서 영화 “国界(원래 대본 ‘모아산’ 후 ‘국계’로 변경)”를 촬영했다. 

영화 “国界” 주인공들과 함께

영화 “国界” 촬영현장

이 영화로 FIRST 청년영화제의 최우수 감독, 최우수 영화, 최우수 배우,예술공헌 등 네개의 파이널리스트(提名奖)를 받았고 업계에 박성진이라는 이름을 알리게 되였다. 

영화제 참가한 “国界”의 감독과 배우

영화제 홍보벽에 걸린 영화 “国界”의 포스터

2015년 영화 대본 창작 

2015년 한국 영화진흥회 시나리오 경연 대상 수상/제목 “모아산” 후 “국계” 변경 

2015년 8월 영화 “国界” 촬영 제작 

2016년 FIRST 西宁影展-获得四个提名 (最佳导演,最佳影片,最佳演员,艺术贡献) 

2017년 영화 “追拳” 시나리오 창작 및 촬영 

2019년 영화 “追拳” 한중영화제 특별상 수상 

2020년 단편영화 “离别之旅” 

2020년 단편영화 “离别之旅”  Nespresso Talents 영화제 대상 수상

나이가 들어 자신에게 “나는 어떤 삶을 살아 왔을가?”라고 돌이켰을 때 후회가 들지 않는게 성공한 인생이라는 말이 있듯이 그는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일을 하며 살아가는 지금이 너무 행복하다며 비록 물질적인 충족함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선택에 한번도 후회한 적 없고 또 영화감독이라는 직업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한다. 

 

영화 “追拳” 

 

단편영화 “离别之旅”

“영화감독”, 알고 시작했으면 아마 하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영화창작을 시작하기전 박성진은 안해에게 자신의 속심을 털어놓았다. 항상 남편의 일이라면 지지를 아끼지 않았던 안해는 이번도 남편의 결정에 묵묵히 따랐다. 

영화감독에 도전했던 그 몇해...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그런 어려움들을 겪기 시작했다. 대기업의 직원으로 있었고 또 그후 창업으로 넉넉한 생활을 했던 그의 가족은 그가 감독일을 시작하며 먼저 경제적인 어려움부터 겪기 시작했다. 창작을 시작해 수개월은 수입이 없거나 또 안정적이지 않았다.

특히 2015년 “국계”라는 첫 영화 촬영을 시작했을 때 그는 난생처음 영화감독이라는 직업의 진정한 어려움을 실감하게 되였다고 한다. 아무런 경험 없는 신인 감독이다보니 투자부터 촬영, 후기제작 모든 단계에서 갖은 곤혹을 치렀으며 또 영화 촬영장에만 도착하면 심한 편도선염으로 말조차 하기 어려울 정도였다고 한다. 20여일간의 촬영일정은 마치 20년처럼 길고 힘들었다. 

“지금 다시 하라고 하면 하지 못할 같습니다...” 그는 아무런 경험 없이 몸을 날려 도전을 했기에 할 수 있었지 이런 고생들을 미리 알고 있었다면 아마 감독으로 될 수 없었을 같다고 당시의 심정을 실토했다. 

영화감독이란?

영화감독이라면 재능, 능력 등 요소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긴 시간의 창작, 외로움 등 과정들을 극복하고 또 수많은 관계자들의 수백가지 각이한 의견들을 서로 소통하고 추진해가는 일이라고 한다. 마치 거대한 건물을 짓거나 스포츠인이 자신의 청춘을 모두 바쳐 한가지 일을 완성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힘들고 고달픈 일이라고 한다. 

현재 중국에서 수많은 신인감독들이 배출되고 있지만 사실 첫 작품을 촬영하고 두번째 작품을 출품하지 못하고 대중들의 시야에서 사라지는 일이 너무 많다고 한다. 

특히 박성진이 “국계”라는 첫 작품을 발표하고 2016년 FIRST 청년영화제에서 서로 만났던 신인감독 중 두번째 작품을 발표하지 못하고 감독의 일을 그만둔 사람들이 아주 많다고 한다. 이 영화제에 매년 1000여편의 작품이 발표되고 있지만 그중 1% 정도의 신인 감독만이 두번째 작품을 촬영하며 살아남을 정도라고 한다. 이럴듯 영화감독이라는 일은 시작은 쉬워도 생존이 아주 치렬한 업종이라고 할 수 있다. 

2019년 그의 영화 “追拳” 한국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참가

영화 “追拳” 촬영현장

영화 “追拳” 촬영현장

영화 “追拳” 촬영현장

한국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조선족 영화감독이 아주 적습니다

중국이라는 이 거대한 영화시장을 볼 때 매년마다 대량의 신인 영화감독들이 배출되고 있지만 다른 민족과 비할 때 조선족 영화감독은 적은 편이라고 한다. 

비록 장률과 같은 국제적으로 유명한 조선족 감독도 있고 또 영화제작 관련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우리의 문화를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는 영화인의 수가 아직도 부족한 편이라고 한다. 

그는 자신을 아무런 준비없이 무모하게 영화촬영에 도전한 초보 감독이라고 평가하지만 그의 두 눈에서 자신이 선택한 길에 대한 확신과 그 길을 끝까지 걸어나가려는 강인함이 엿보인다. 조선족의 일원으로서 중국, 나아가 국제적으로 많은 관객들에게 알려지고 또 거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작품을 창작해 우리의 문화와 예술 매력도 널리 알리고 싶은 게 꿈이라고 말한다. 
 

[현재 중국 모 유명 영화제작사와 새로운 영화작품 촬영제작 협의중, 빠르면 래년에 영화관에서 박성진 감독의 작품 만날 수 있을 듯!!]

중국조선아방송넷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72
  • 한동안 조선족사회를 흥분의 도가니속에 빠져들게 했던 연변가무단의 무극 “아리랑 꽃”을 위해 함께 투표하던 나날을 돌이켜보면 아직도 마음이 설레인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루에 한번밖에 클릭할수 없는 상황에서 투표를 마감하는 9시까지 148만4400여표를 기록하며 조선족의 거대한 응집력을 보여주었...
  • 2017-01-18
  • 7월 5일, “꿈을 키워가고 있는 조선족 젊은이들에게 바칩니다”라는 글귀와 함께 20여명 출연진이 등장해 함께 꿈을 노래하는 뮤직비디오가 위챗 모멘트에 올랐다. 한동안 조선족 청년들의 자작곡을 접하지 못했던 탓일가, 같은 청춘으로서 한순간 뜨거운 공감이 일었던 탓일가, “작사작곡 박미란”...
  • 2016-11-17
  • 연변가무단 대형무극 “아리랑꽃” 종막 "천년 향기"에서 큰 원을 에돌아 자반뛰기를 하면서 장고를 치고 빠른 장고절주에 맞추어 률동적으로 몸을 움직이는 한 꼬마배우가 있다. 공연때마다 그의 뛰여난 실력에 탄복한 관중들은 우뢰와 같은 박수갈채를 보내며 어디서 왔는지 궁금해 한다. 31일 북경공연후 취재...
  • 2016-09-13
  • 13년 만에 이룬 '한국 가수'의 꿈…밑천은 의지·성실함 암투병 2년 공백 딛고 컴백 "간절한 꿈 있다면 도전하라" (서울=연합뉴스) 신유리 기자 = 중국 연변에서 태어난 9살 소년은 단 하나의 꿈이 있었다. 한국에 가서 가수가 되는 것. 노래를 부를 때 가장 행복했기에 연변의 야간 업소를 돌며 밤무...
  • 2016-07-11
  • 농민화가 김왈림 선생, 사라져가는 세시풍속을 벽화로 남기다   글/서정옥   료녕성 무순시 북역 서남쪽 “한제원조선족특색거리”를 거니는 발걸음은 자연히 느릿느릿해진다. 아니, 몇번이고 벽화속에 퐁당 뛰여들어가고 싶어진다. 그네 뛰고 널뛰고 씨름하는 오락장면, 김치 담그고 찰떡 치는 생활장...
  • 2016-04-14
  • [청춘은 예쁘다]박혜자 “중국농민가요대회” 내 꿈에 대해 확신 열어준 곳, 탄탄한 가수가 될거에요!” 오디션에 참가했던 기억을 이야기하고 있는 혜자양 설명절 연휴기간이였던 정월 초닷새날, 길림성 연길시공안국신고쎈터 골목에 위치한 한 카페에서 혜자양을 만났다. 설명절 기간에도 혜자양은 변함없...
  • 2016-02-19
  •  [이미옥 탐방]李剛, 20년 붓을 따라 간남자의 이야기   ▲ 리강 화백의 작품(위), 혜화동 자신의 화실에서유마불이도(維摩不二圖) 작품을 보여주는 이강 화백(아래). [서울=동북아신문]3월의 혜화동 골목은 이미 계절의 싱그러움으로 가득 차 있다. 곳곳에는 젊은이들의 물결이 넘실거리고 성균관 거리는 연신 그...
  • 2016-02-05
  • 가야금, 거문고, 해금, 장구, 아쟁, 퉁소…… 숱한 조선족 전통악기들이 장인(匠人)의 손을 거쳐 만들어진다. 장인은 올해 79세로 60여년간 악기제조에 전념해왔다. 단순한 목재가 절묘한 소리를 낼수 있는 악기로 변신하는데는 마음속에 가락이 있고 손에 음색이 잡히며 공구마다 정을 불어넣는것이 비법이라...
  • 2016-02-03
  • 연변팀 응원가 《열광의 세계》를 열창한 연변군중예술관 전통민요가수 전예정씨 가수 전예정씨 지난 9월12일, 연길시인민경기에서 연변팀 경기가 펼쳐지던 날 경기휴식시간에 힘찬 응원가가 울려퍼졌다. 바로 연변팀 응원가 《열광의 세계》였다. 연변군중예술관 전예정가수의 열창으로 이날 경기장은 삽시에 뜨거운...
  • 2015-12-07
  •   (흑룡강신문=하얼빈) 개혁개방이후의 20년을 중국 군사영화 드라마의 전성기라고 할수 있다.이 전성기에 수많은 인기전쟁영화와 군사주제의 드라마들이 용솟음쳐 나왔다. 이미 많이 알려진 '량검(亮剑)', '사병돌격(士兵突击)', '력사의 하늘(历史的天空)', '전장의 승냥이(战狼)'등 ...
  • 2015-08-19
‹처음  이전 1 2 3 4 5 6 7 8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