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3개 나라서 공부한 연변의 김명교, 석사는 하버드에서
조글로미디어(ZOGLO) 2017년6월1일 11시30분    조회:5649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인물이름 : 김명교

초중은 연변 2중, 고중과 대학은 한국, 석사는 미국서

세계 최고의 명문대 하버드대학교 졸업식이 5월 25일, 매사츄세츠주에 있는 보스턴 케임브리지에서 자긍심에 찬 졸업생들과 축하 메시지를 전하는 친지들로 축제의 분위기속에서 성황리에 펼쳐졌다.

이 영광스러운 자리에 ‘동아시아 지역학’을 전공한 연변의 수재 김명교양이 자랑스럽게도 세계 각국에서 모여 온 여러가지 피부색을 띤 수재들과 어깨 나란히 석사과정 졸업의 기쁨을 만끽하였다.

하버드대 석사졸업식에서의 김명교

김명교는 1992년에 아버지 김홍일과 어머니 리미화의 딸로 연길에서 태여났다. 길림대학 물리학과를 함께 졸업한 부모들이 1997년에 한국으로 류학가는 바람에 김명교는 다섯살 때부터 11년간이나 부모님의 빈자리를 느끼며 유년시기를 보냈다.

하지만 성격이 활달하고 씩씩하며 진취심이 강한 김명교는 연변 2중 초중부를 훌륭하게 마치고 연변 2중 고중부 통지서를 받았다.

그 사이 김명교의 아버지는 어렵게 학비와 생활비를 장만하면서 서울대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삼성전기에 취직했다. 딸과 함께 생활할 수 있는 기반을 닦아놓고 2008년에 명교를 한국에 전학시켰다.

학제가 다르다 보니 김명교는 한양 외국어고등학교 고중 1학년 후학기부터 중국의 교육제도와는 커리큘럼(교육과정)이 완전히 다른 고중생활을 시작했다. 중국어학교를 다니면서 조선어문 기초는 닦아놓았지만 한국의 고중국어를 따라 가기에 버거웠고 특히 한국사는 완전히 공백이였다.

중국에서의 뛰여난 학습성적이 한국에서는 밑바닥을 헤매는 신세였고 같은 민족이면서도 서로 다른 문화배경속에서 자라온 교우들과의 관계가 원만하지 못해 자존심이 떨어지는 것이 무엇보다 힘들었다.

하지만 김명교는‘연변소녀’의 자존심을 내걸고 2년반 동안의 각고 끝에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힘들었던 고중시절을 우수한 성적으로 마쳤다. 2011년 김명교는 한국 명문대의 문을 자신있게 두드리고 하버드 석사공부까지 마치게 되였다.

김명교가 하나하나, 한단계한단계 계단을 톺아오른 과정을 들어보도록 하자.

필자: 연변에서 공부한 기반이 한국 연세대 진학에 도움이 되였는가?

김명교: 한국 연세대학 언더우드국제대학교는 2005년 연세대의 독립학부로 설립되였습니다. 다양한 문화배경을 가진 여러 나라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 대학입니다. 특히 미국 대학교의 커리큘럼을 도입한 한국 최초의 국제대학으로서 모든 전공과 교수가 영어로만 진행됩니다.

부모님께서 저에게 한국에서 외국어고등학교를 다닐 수 있는 특수한 교육환경을 마련해주셨기에 언더우드입학이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특별히 저의가 중국 연변에서 성장했다는 다문화적 배경이 언더우드입시에서 무엇보다도 매력적이였음을 뒤늦게야 알게 되였습니다.

새옹지마라고 그처럼 힘들었던 고중시절이 오히려 저의 인생에서 역전을 꿈꿀 수 있는 기회와 발판이 되여주었습니다.

필자: 대학시절에서 얻은 가장 소중한 점이라면?

김명교: 저의 개인적인 자질이나 호기심들이 언더우드와 적성이 맞아서 4년동안 즐겁게 학문에 열중할 수 있었고 학생회, yearbook(연감), 주말 브런치(오전 중간의 식사) 행사 등 다양한 동아리행사에 적극적이고도 활발하게 참여할 수 있은 것 같습니다.

그중 가장 소중한 성과라면 저의 사고력의 향상과 해방이라고 생각합니다. 언더우드는 중국에서부터 한국으로, 국가와 사회가 바뀐 환경에서 ‘정치외교’를 전공으로 선택한 저에게 새로운 지적인 사고의 세계를 펼쳐주었습니다. 지금까지 받아온 중국이나 한국 교육과는 달리 언더우드에서는 창의적이고 비판적인 사고능력을 최대한 키워주고 장려하는 리념하에 정확한 답이 없는 질문들을 던져줌으로 하여 저의 사고의 자유와 령역을 무한히 넓혀주었습니다.

필자: 사춘기에 한국에 전학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 고민해 본적이 있는가?

김명교: 처음 한국에 갔을 때 저는 사춘기 소녀의 예민성으로 한국사회에서 느껴지는 연변사람들에 대한 좋지 않은 시선때문에 적응하기 힘들었습니다. 혹시라도 뻐스에서 연변사람들의 억양만 들어도 자신이 부끄러워지면서 피하고 싶었고 제가 조선족이라는 것을 주위 사람들이 알가봐 두려워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과중한 학업 부담 때문에 그 이상 깊게 고민할 마음의 여유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대학교에 진학해서 비로서 그때 왜 부끄러워 했는지에 대하여 곰곰히 생각해 보게 되고 개인적으로 정말 의미있는 시간들을 가지게 되였으며 중국의 조선족이라는 정체성을 확고하게 정립할 수 있었습니다.

한편 중국에서 온 많은 조선족들이 한국에서 3D업종에 종사하면서 힘들게 살아가는 모습들에 관심을 가지게 되였고 국가란 무엇이며 민족이란 무엇인가에 물음표를 던지고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였습니다.

부모와 함께

필자: 명교양의 인생에 특별한 영향력을 준 사람은 ?

김명교: 언더우드에서 저의 인생의 멘토이신 Chad B. Denton 은사님을 만나게 되였습니다.

박학다식하시고 년륜과 권위가 있으신 챠드 은사님은 제가 지적으로 문화적으로 인간적으로 성숙되여 가는 과정을 지켜봐 주신 분입니다. 저로 하여금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과 믿음을 가지게 하고 제 자신이 아주 가치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일깨워 준 멘토입니다. 제가 인격적으로 존경하고 선망하는 멘토 은사님의 고무와 격려는 저의 꿈에 힘 있는 날개를 달아주었습니다.

은사님께서 아마 제가 하버드를 지망할 때도 강한 추천서를 써주셨기에 오늘의 이 자리가 있게 되였습니다( 웃음) .

필자: 하버드 석사과정 진학이 어떻게 이루어졌으며 학비와 생활비는 어떻게 해결하였는가?

김명교: 언더우드는 세계적인 안목을 가지고 하버드대학을 상상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해 주었습니다. 멘토교수님의 적극적인 격려와 같은 환경에서 공부한 선배들의 선례를 통하여 저는 희망을 보았고 분발할 수 있는 동력을 얻게 되였습니다.

4년동안의 노력은 저를 배반하지 않더라구요. 저는 2014년 하버드에 지원하면서 하버드 법인재단인 ‘Harberd Yenching Institute’에 장학금 신청을 하였습니다. 놀랍게도 학비와 생활비 전액을 면제받을 수 있는 행운을 얻게 되였습니다. 2015년 2월에 하버드에 입학하였습니다.

또한 부모님과 경제적으로 자립하고 공간적으로 독립한다고 선포하기도 했습니다 (웃음) .

필자: 하버드대의 가장 뚜렷한 장점은? 최고 명문대의 위상을 지켜갈 수 있는 비결은?

김명교: 하버드의 장점은 학생들의 현재보다는 미래의 가능성을 발견, 예측하고 그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과감하게 투자하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저처럼 한국에서 석사과정을 지원하는 학생을 믿어주고 억소리 나는 경제적 자금을 아낌없이 지원해 준다는 것은 미래지향적이며 교육본질에 대한 존중이 없이는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생각됩니다.

하버드는 꾸준히 동문들을 비롯하여 세계 각국에서 보내주는 기부금으로 막강한 경제력을 확보하고 세계 최고의 교수진들로 교육의 질을 향상시킴으로써 그 학문적 권위와 문화적 위상을 굳건히 지켜가고 있다고 봅니다.

필자: 수재들 사이의 경쟁이 치렬할텐데 이겨내는 비결이 있는가?

김명교: 대학원에 와서는 더 이상 주위 학생들과 횡적인 경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저의 연구분야에서 자신이 정해 놓은 높은 기대치와 도전을 하게 됩니다. 저는 대학교시절부터 흥취를 가지고 있던 ‘동아시아 지역학’을 전공으로 선택했고 자신의 가능성에 도전해 왔습니다.

자신에 대한 기대가 높다보니 그에 따르는 결과에 대해 불만족을 느끼고 스트레스를 받고 초조하고 우울한 시간들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껏 자기만의 시간과 흥취를 누리고 장려하는 교육문화권에서 성장하지 못했던 탓에 저는 주위의 다른 학생들처럼 운동이나 게임같은 취미생활로 스트레스를 해소할 줄 모릅니다. 저는 스트레스를 최소화하는 방법으로 보다 현실에 가까운 기대치를 조률하면서 긍정적인 마음과 자세로 연구에 림했습니다.

필자: <연변조선족 이주>를 주제로 석사과정 졸업론문을 쓰게 된 계기는 ?

김명교: 론문은 저의 특수한 교육배경으로부터 관찰, 조사한 3개국‘문화려행기’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중국 변경지대에 살고 있는 우리 조선족이 겪는 주요 정치적, 사회적 변동 그리고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 조선족수가 70만명에 달한다는 점에 대한 사회의 몰리해, 미국인들이 중국조선족에 대해 알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하버드에 와서 새삼스럽게 느꼈습니다.

중국 소수민족의 하나로 우리 조선족의 이주와 조선족사회에 대한 이야기들을 하버드라는 무대를 통하여 미국 세상에 널리 알리고 싶은 야망으로 석사론문을 쓰게 되였습니다.

필자: 해외에 있는 조선족들을 상대로 인터넷설문조사를 진행할 때 필자도 적극 호응하고 싶었다. 애로사항은?

김명교: 저는 우선 작년 여름방학에 석사론문데이터를 수집하기 위하여 고향 연변을 답사하였습니다. 80년대 초의 개혁개방이 연변의 경제문화사회사업에 어떠한 변화를 주었는지에 초점을 두고 민족별, 직업분포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어떻게 변화하였는지를 관찰, 조사해보는 것이 저의 목표였습니다. 연변의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떠난 애로사항에 부딪치면서 저는 한달남짓한 사이에 연변에서 발로 뛰면서 해당 부문을 찿아가고 사람들을 만나면서 동분서주하였습니다.

금년 2월 연변의 경제, 사회상황이 연변 조선족이주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탐구, 연구하고저 디아스포라(흩어진 상황) 해외 조선족들을 대상으로 심도깊고 폭 넓은 인터넷설문조사와 인터뷰를 하였습니다. 60대이상은 컴퓨터사용에 익숙하지 못하여 응답하지 못하는 애로사항들도 있었습니다.

필자: 앞으로의 계획은?

김명교: 고향 연변과 우리 민족에 대한 애착과 사랑으로 나름대로 혼신의 정력을 몰부어 졸업론문을 완성하였습니다. 좋은 연구결실이 맺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저는 계속하여 중국 국내 소수민족, 즉 사회적 소수집단들의 인구류동에 대하여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는데 아직 이 면의 연구가 하버드에서는 미개척지로 남아있어 지도교수님이 없습니다.

석사를 졸업한 후 저는 우선 뉴욕 할렘에 있는‘데모크라시 프렙 차터 스쿨’공립학교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면서 앞으로의 연구방향과 커리어(자기능력)에 대해 좀 더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렵니다.

‘동아시아 지역학’이 저의 전공인 것만큼 미국학생들한테 우리 민족 언어를 가르친다는 것 또한 가슴 뛰는 새로운 도전이 될겁니다.

일단 기회가 있으면 두려움없이 도전하는 것이 저의 성미입니다. 과감하게 도전하는 과정에서 쌓아가는 경험들은 모두 의미가 있고 귀중한 것이니깐요.

그리고 6월부터 북경대학에서 미국대학생들에게 중국어를 가르치면서 9주 동안의 여름방학을 꽉 채우게 됩니다. 한국어 전직교사로 출마하기 전의 의미있는 교사체험이 될것 같아 기대됩니다.

길림신문 / 리화옥 미국특파원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할빈시 흠창건석재회사 한군철 경리   (흑룡강신문=하얼빈)리흔 기자=최근 몇년 중국 부동산 시장의 활성화로 인테리어 시장도 호황세를 타면서 대리석의 수요가 부쩍 늘었다. 과거에 기념물이나 조각 등에 많이 쓰이던 대리석이 요즘은 마감재로 특히 홈 인테리어에서 각광을 받는데 할빈시 흠창건(鑫创建)석재회사 한군...
  • 2017-08-04
  • 산둥성 라붕의류유한회사 이상철 사장   (흑룡강신문=하얼빈)이흔 기자= 어느 순간부터인지 청바지가 젊음, 활력, 패션 등 단어와 어울리면서 젊은이들 속에서 대세가 됐다. 따라서 생산자들은 소비자의 선호에 맞추느라 온갖 재주를 다부리는데 청바지를 빛바랜 복고 스타일로 만드는 등 그것도 모자라 구멍까지 내면서...
  • 2017-08-01
  •    (흑룡강신문=하얼빈)렴청화 연변특파원=2003년에 서비스를 시작한 토보(淘宝), 중국의 최대 전자상거래 플랫폼으로 성장한데 이어 지난해에는 브랜드 가치 1위로 부상했다. 경제 활성화의 일등공신인 토보는 수많은 신흥부자들을 배출해냈다.   가눌무역유한회사(迦呐贸易有限公司)의 렴혜정(34세, 광...
  • 2017-07-31
  • 흑룡강송이문화미디어유한회사 김학봉사장   (흑룡강신문=하얼빈) 채복숙 기자=지난달 14일, 초만원을 이룬 할빈시조선민족예술관 극장, 화려한 무대복장을 차려입은 어린이들이 혹은 깜찍하게 혹은 발랄하게 또 혹은 어른스레 노래를 부른다. 무대 아래에서는 학부모들과 관중들이 어깨춤이 절로 나고, 아이 자랑에 웃음...
  • 2017-07-28
  • 연변주법원 전임 부원장 염영강이 말하는 고 윤수범선생 연변주법원에서 근무시 윤수범선생 고 윤수범선생을 회고하는 연변주법원 전임 부원장 염영강 고 윤수범 원장은 1985년도에 연변주법원 원장으로 전근되여 1993년까지 연변주법원에서 근무했다. 윤수범 원장이 갓 조동되여 왔을 때 나는 연변주법원 연구실 주임이였...
  • 2017-07-26
  •                 김영숙, 녀, 조선족, 1932년 3월 출생, 중국공산당원, 길림성 매하구시 광명가도 전도사회구역 주민.     완사업에서 김영숙은 모범이고 적극분자였으며 생활에서 그녀는 같은 표준으로 자신을 요구하고 양아들, 양딸을 자신의 자식처럼 여겼고 사회구역의...
  • 2017-07-26
  • 재한 조선족 서예가 일목 신현산씨의 서예 인생   (흑룡강신문=하얼빈)채복숙기자=웅건하고 박력감 넘치는 한자 행서, 오밀조밀하고 정교로운 한글 판본체... 그의 글씨는 항상 개성이 넘친다는 평판을 듣는다. 최근년간 한국서 왕성한 활동을 펼치는 조선족 서예가 일목 신현산(62)씨, 그는 스스로도 묵향에 취해 40년을...
  • 2017-07-25
  •     하얼빈의과대학 제4부속병원 흉부외과 주임의사 최건 박사   (흑룡강신문=하얼빈)이흔 기자= 30년 넘게 의사 생활을 하면서 만 차례 넘는 수술을 집도하고 현재까지 성내 유일한 폐 이식 수술을 성공적으로 완성해 업계 내에서 '가장 먼저 꽃게를 먹는 사람'으로 불리는 의사가 있어 화제가 ...
  • 2017-07-24
  •     (흑룡강신문=하얼빈) 류설화 연변특파원 = 명지바람이 불던 저번주 어느오후, 연변오덕된장술공장은 더욱 그윽한 술향기가 뿜어져나왔다. 구수한 된장문화의 혼과 넋이 이슬같은 술로 빚어져 된장술은 황금삼각주인 연변을 벗어나 이제 ‘통일주’로 부상되며 건축면적이 2만평방메터에 달하는 공...
  • 2017-07-20
  • 南熙哲 光辉灿烂的艺术人生 —访南熙哲先生   郭笑宇       南熙哲,朝鲜族, ,朝鲜民主主义人民共和国准博士学位,1958年8月21日出生在美丽的吉林省磐石市明城镇石山村。他历经了文革的浪潮和改革的春风的洗礼,在那个风云变幻的年代,作为一名地地道道的农民的孩子,他毅然选择用艺术改变...
  • 2017-07-16
‹처음  이전 45 46 47 48 49 50 51 52 53 54 55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