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환자들에게 희망의 옷을 입히는 백의천사
조글로미디어(ZOGLO) 2015년3월16일 09시27분    조회:7740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인물이름 : 원승희

한의학  명의  익수당진료소 원승희원장
 


흔히들 ‘의술(醫術)은 인술(仁術)’이라고 말한다. 사람의 병을 고치는 일이 단순히 의학적 기술만을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니라, 의사가 환자의 마음까지도 헤아리며 의술을 펼쳐야한다는 뜻이다. 의술과 인술은 단 한 글자 차이지만 인술을 펼치기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 의사도 사람이기에 예민한 환자들을 매순간 이해하며 진심으로 대하기란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여기 특이한 의사가 하나있다. 본인이 치료하는 환자들의 마음을 완벽하게 알고 병을 치료하는 익수당진료소  원승희 대표원장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역지사지(易地思之)에 입각하여 인술을 펼치는 원승희원장의 생생한 의료 이야기를 취재했다.
 
환자를 이해하는 마음에서 비롯된참된 봉사

원승희 원장은 고등학생 때부터 한의학에 대한 막연한 꿈을 꾸게 되면서 한의학을 접하게 되었다. 그는 한의학적인 치료란 사람의 몸을 중심으로 하는 치료이기 때문에 세계 어디로 가든 다른 나라에는 없는 고유 의학이며 현대에서 중요한 개념이라고 말한다.

하여 연변대학의학원시절부터 국내, 시골 할 것 없이 수많은 의료봉사를 실천해온 원승희원장에게는 그만의 ‘순수한’ 의료정신이 있었다. “‘내가 했다’라는 ‘마음도 없이’ 하는게 진정한 봉사라고 말하는 원승희원장, “저는 농가나 시골, 로인료양원에 가서 봉사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 분들은 제가 어디에서 나왔는지 관심이 없죠. 단지 한의사로서 우리 어머니이며 아버지인 분들을 만나는 것인데, 저는 이런 순수한 봉사가 좋아요. 의료는 돈이나 명예를 위한 ‘수단’이 아니라 ‘목적’ 자체가 되어야 합니다.” 한의학의 경쟁력은 ‘얼마나 순수한 마음으로 진정성 있는 의료를 하느냐’에 달려있을 것이고 결국, 시간이 증명해줄 것이라고 말하는 원승희 원장. 그는 참된의료인의 길이 무엇인지 마음으로, 몸소 행하는 실천으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원승희원장은 1960년 연변대학의학원을 졸업하고 길림성 백성자 조남병원에 배치되였다. 그는 낮에는 농민들과 함께 농사일에 돌아쳤고 밤에만 병을 보았다. 당시 그는 하루속히 고햗에 돌아가 의료사업에 혼신을 다하는것이 꿈이였다. 하여 그는 매번 백성자현 정신변원 최원장을 만나면 연변에 보내달라고 간곡히 부탁하였다. 그의 간곡함에 감동되였는지 최원장은 그의 소원을 들어 주었다.

1962년, 연변 돌아온 원승희원장은 연변정신병원에 배치되였다. 그러나 얼마 되지 않아 또 훈춘의료대로 파견되였다. 몇년간 고생하고 병원에 돌아오 보니 병원이 화재로 전소되여 병원 수건에 뛰여들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한만디 원망도 없이 의료기술을 부단히 익히는 한편 실무능력도 부단히 제고하였다. 그는 짬짬히 시간을 들여 한의학서적을 탐독하면서 1964년 풍습성 정신장애1급보호론문을 발표하면서 위생부문의 중시를 받았다.

1965년, 원승희원장은 높은 의술로 주치의사로 임명되였다. 그해 그는 공산당원에 입당하는 영예까지 지녔다. 그후로 그는  관절에 물이 차고 붇기고 통증이 심한 골과병, 싹뼈살아나는발뒤꿈치아픈병, 좌골신경통, 요추간판탈출, 통풍, 우울증, 어린이 다동증 등 의난병에 대해 꾸준히 연구했다. 어느 한번 연변 모병원에 입원한 환자가 병이 발작하여 의사들이 속수묵책이 되였다. 이때 한 의사가 원승희원장을 추천하였다. 소식을 접한 원승희원장은 두말없이 병원에 달려와 환자정황을 체크하고 병세에 맞게 치료하여 환자의 병은 호전되였다. 하여 당시 주변 사람들은 원승희원장을 “화타”라고 높이 칭찬했다.

투도진병원 의료대장으로 있는기간 한 심뇌혈관질병환자는 사지가 불편하고 혈압차이가 불온정하여 극심한 고통을 겪었다. 그는 원승희원장의 소문을 듣고 찾아왔는데 병이 완쾌되여 그의 가정에 또다시 웃음이 피여났다. 이러한 사례는 너무나 많다. 하여 원승희원장은 해마다 선진사업자로 당선되였고 그이 사적은 영예계시판에 기재되여 사람들로부터 높은 신망을 쌓았다. 원승희원장의 참된봉사는 리직후에도 이어졌다. 1990년, 원승희원장은 한국으로 건너가 병을 보았다. 원승희원장은 주변의 돈없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돈을 적게 받거나 무료로 병을 보아주었다. 그의 고명한 의술은 인차 입소문을 타면서 환자들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2000년, 로년합병증환자의 병을 치유해주면서 원승희원장의 의술을 점차 한국에서도 인정 받았다. 그는 언제나 참된봉사자의 본색을 잃지 않고 주변의 돈없고 어려운 사람들에게 사랑을 베풀었다.
 
한의학의 가치와 미래

원승희원장은 앞으로도 어려운 환자들에게 복음을 가져다줄 계획이라고 말한다.원승희원장은 독학으로 한의학을 배웠다. 하여 고래희 나이지만 여전히 바쁜 시간을 쪼개 여러 한의학학습반에 다니면서 리론과 경험을 루적한다. 민간요법이나 잘못된 치료 등 검증되지 않는 방법으로 치료하려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은 것을 보고,한의학적인 옳바른 치료방법을 알려주기 위해 가끔 TV출연이나 강연 등의 활동에 있어서도 적극적이다. 현재 유독 한의학을 전공한 딸에게 한의학경험을 전수하는데 이미 10년이 넘었다.

아직도 한의학을 바라보는 시각은 단순한 보약이나 보신의학, 대체의학으로 바라보는 인식이 많다. 원승희원장은 한의학이란 치료의학으로서 의미가 있으며, 각각의 의학이 우수한 분야가 있지만, 한방이 양방하고 경쟁했을 때에도 비교우위를 선점할 수 있는 분야도 무궁무진하다고 말한다.
그는 앞으로 좀 더 전통적인 한의학적 관점에서 사람들의 체질에 맞는 약을 개발하는데는 노력을 경주할것이라고 한다.

조글로미디어
리성호
 

파일 [ 2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연변화하상황균업유한회사 라동도대표의 창업성공기 아무리 봐도 그는 영낙없는 인테리모습이다. 훤칠한 키에 영준한 외모, 거기에 조용조용 이야기하는 차분한 음성이며, 안경너머로 상대를 응시할줄 아는 지적인 눈길과 타인의 말을 경청할줄 아는 침묵마저도 분명히 무게있는 지성인의 모습이다. 그러나 그는 자기는 학...
  • 2013-11-28
  • 한국 한중문화교육교류원 남궁해연 원장   (흑룡강신문=서울) 나춘봉 특파원,김승희 = 한-중간의 무역, 교육, 컨설팅 등 여러 분야를 주름잡으며 한국에서 성공한 사업가로서 진가를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는 중국동포 남궁해연(45.여) 원장을 만났다.   고향이 중국 헤이룽장성 동녕현인 남궁원장이 주변 사람들에게 보...
  • 2013-11-27
  •      2009년, 연변공업학교 자동차전업을 졸업한후 리학철씨(25세)는 고향에 돌아와 전문농장을 경영하면서 자신의 인생가치를 실현하고있다. “외국에 일하러 가든 외지로 일하러 가든 모두 돈을 벌기 위한것입니다. 사실 외지에 나가서도 돈을 벌수 있겠지만 돈을 버는 길은 꼭 한갈래 길만 있는것이...
  • 2013-11-26
  • 성새농촌건설 5성급시법촌--밀산시 련주산진 해방촌 유수연당지부서기 이야기   (흑룡강신문=하얼빈)최성림 기자 피금련= 아름다운 흥개호반, 밀산시내에서 약 20여리 떨어진 곳에 수채화마냥 아름다운 농촌마을이 있다. 민족특색이 다분한 마을입구의 철대문, 시원히 뻗어나간 포장도로와 량켠의 영구성 배수로, 길게 늘...
  • 2013-11-26
  • (흑룡강신문=하얼빈) 2013년 1월, 하얼빈 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2년 전 2011년 여름, 한국사람들에게는 '안중근' 의사와 '빙등제'로 유명한 겨울의 도시잠시 하얼빈에 방문한 적이 있다.   대학교 4학년 하계방학 '해외 대학생 봉사단'에 참여해 헤이룽장성 계동현 조선족중학에 2주 간 ...
  • 2013-11-26
  • ㅡ영구시민위 원 부주임 안정애와 영구시인대민교외위 주임 김영일 새학기 영구시조선족고급중학교의 학생수가 부쩍 늘었다는 뉴스는 조선족농촌 황페화, 조선족중소학생 감소 등 여러가지 원인으로 침체속에 빠진 조선족사회에 안겨주는 더없이 반가운 소식이다. 조선족유치원이 민영에서 공립으로 허가받으면서 여기에 탄...
  • 2013-11-26
  • 단동예지나무역회사 윤동일사장 넥타이는 맬줄 몰라도 한복고름 하나는 아주 멋지고 예쁘게 맨다며 우스개소리를 던지는 단동예지나무역회사 윤동일사장(69년 생), 하루종일 돌아가는 재봉틀소리에 행복을 느낀다고 한다. 부부가 함께 한복사업에 600여평의 한복공장에 들어서니 윙윙 재봉틀 돌아가는 소리가 귀를 자극하고...
  • 2013-11-26
  • 《털 없는 개》, 《사위감 점고》, 《렬사증문제》… 그의 대표작은 지금도 사람들로 하여금 절로 웃음이 나오게 한다. 중국조선족연극의 계승과 발전, 인재양성에 마멸할수 없는 자취를 남긴 리영근배우, 은퇴후 장춘에서 생활하다 2010년 우리 곁을 떠났지만 사람들은 그를《웃음의 왕별》,《연극계의 거장》으로 ...
  • 2013-11-26
  • 광동촌 당지부 서기 겸 촌민위원회 주임 김순철씨 감동 스토리   김순철씨(왼쪽) 1.56메터의 작은 키꼴에 50킬로그람도 안되는 왜소한 체구,전국로력모범이고 성특등로력모범이며 동성진 광동촌 당지부 서기 겸 촌민위원회 주임인 김순철(55세)은 겉보기에는 너무나도 평범한 사람이지만  그가 엮어가는 전기적 ...
  • 2013-11-22
  •  “문여기인(文如其人)”이라는 말이 있다. 중국조선족의 대표적인 원로 서예가이며 화가인 지승원선생(84세)의 작품을 감상하면서 선생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문여기인”라는 사자성구가 선생에게 딱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1946년 《길동일보》(《연변일보》 전신) 창간시절부터 근 25년간...
  • 2013-11-22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