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코리안 드림' 이뤄주는 재한 조선족 사업가
조글로미디어(ZOGLO) 2014년3월28일 07시38분    조회:7314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인물이름 : 김성우

김성우 한중창업경영협회장 "시행착오 없도록 지원하겠다"

(서울=연합뉴스) 강성철 기자 = "'코리안 드림'을 꾸며 한국에 온 조선족 젊은이들이 시행착오를 겪지 않고 창업에 성공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하겠습니다."

국내에 정착한 조선족들의 창업을 돕는 한중창업경영협회가 지난 23일 서울 강서구 염창동에 문을 열었다.

이 단체 회장을 맡은 이는 지난 1998년 산업연수생으로 모국을 찾았다가 창업해 연간 50억원이 넘는 매출을 올리는 성공한 사업가 김성우(42) 씨. 그는 28일 연합뉴스 기자와 만나 "조선족들의 '제2의 코리안 드림'을 지원하기 위해 협회를 만들었다"고 밝혔다.

김 회장은 이어 "인적·물적 네트워크를 충실히 구축한 협회로 키워 한·중 경제 교류에도 활력소를 불어넣겠다"는 포부를 전했다.

그의 포부에 걸맞게 협회 창립 6일 만에 가입 회원이 600명을 넘어서 주위를 놀라게 했다. 요식업·무역업·관광업 등 여러 분야에서 창업을 꿈꾸거나 이미 창업한 기업인들이다.

회원 자격에는 민족이나 국적 제한이 없다. 국내 거주 조선족뿐만 아니라 한국에 투자하려는 중국 기업인, 중국·일본 등 해외 거주 조선족 기업인, 내국인 기업인 등을 모두 아우르겠다는 야심에 찬 계획을 세웠다.

현재 국내 관광 외국인을 대상으로 인바운드 여행사 한국국제여행사를 운영하는 김 회장은 자신처럼 '제2의 코리안 드림'을 안고 고국을 찾는 조선족들을 살뜰히 챙기겠다고 강조했다.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고국을 찾은 50대 이상의 재한 조선족 1세대는 단순 노무직 같은 3D 업종에 종사했습니다. 이들의 코리안 드림은 돈을 벌어 고향에 돌아가는 것이었지요. 수교 22년이 흐른 지금은 30∼40대를 중심으로 기업체를 일구고 한국에 정착하는 '제2의 코리안 드림'으로 바뀌었습니다."

조선족 3∼4세인 이들은 한국 유학 경험도 있고 변호사나 교수 등 전문직 종사자도 많다. 단순히 육체적 노동력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국내 대기업, IT 업계, 은행 등에 근무한다.

"지금까지는 창업에 필요한 행정·세금·고용·투자 등에 대해 전문적으로 도움받을 곳이 없어 '맨땅에 헤딩'하며 실패를 경험한 조선족이 많았어요. 시행착오를 줄이고 비즈니스 효과를 높이려면 단체가 필요하다는 게 공통의 생각이었죠. 그래서 협회를 창립한 것입니다."

김 회장은 수석부회장을 맡은 김용선(38·남) 씨와 함께 지난해 조선족 대상 창업아카데미를 열었다. 창업에 필요한 기초지식을 알려주려고 시작한 2주 과정의 이 강좌에는 지원자가 몰렸고, 3기까지 200명이 넘게 수강했다.

초빙 강사들조차 놀랄 정도로 열기가 뜨거웠다. 이 과정에서 기반을 닦은 사업가와 창업 희망자가 서로 돕는 협회를 만들자는 목소리가 나와 협회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우선 4월부터 창업아카데미와 소상공인을 위한 경영아카데미를 열 겁니다. 전문 강사진과 선배 기업인을 초빙해 창업 실무와 노하우를 전수할 계획이지요. 한·중 경제 세미나도 개최하고, 연말에는 한·중 무역&비즈니스 박람회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망해도 도와주자'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현재 분위기는 최고죠."

협회는 변호사·회계사·노무사 등 전문 고문단을 구성해 언제든지 상담에 응하고 실무를 도울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김 회장은 염색공장에서 일하다 허리를 다쳐 강제 출국을 당할 뻔했다. 주변의 도움으로 재취업해 출국 위기를 넘긴 후 벤처기업 직원, 대리운전, 야식 오토바이 배달, 여행가이드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하며 창업의 꿈을 키웠다. 지금은 인바운드 여행사 가운데 10위의 업체를 일궜다.

앞으로 레스토랑과 호텔업에도 진출하겠다는 그는 조선족이 한국에서 성공하려면 '동반 성장'의 자세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한·중 FTA가 체결되면 비즈니스 규모는 더욱 커질 것입니다. 양국을 잘 아는 조선족이 단순히 통역이나 가이드 같은 보조가 아니라 경제 교류를 주도해 나갈 수 있도록 많은 분야에서 성공한 기업가가 나와야 합니다. 협회가 그 중심이 되도록 열성을 다해 이끌어가겠습니다."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기술원과 함께 제품품질을 검사하고 있는 박권률 씨(왼쪽).   민족음식문화를 선도해가는 조선족청년기업가 – 박권률 씨‏ (흑룡강신문=연길) 윤완주 특약기자= 중국조선족민속문화도시로 소문난 룡정시에서 서북쪽으로 약 25킬로미터 떨어져있는 로투구진 렴명촌에 가게 되면 부지면적이 1만 7000평방미터, 공...
  • 2013-05-14
  • 대형계렬기획보도-《중국조선족 백년백인》(16) 중국공산당의 우수한 당원이며 우수한 민족사업 지도자 문정일은 1914년 음력 3월 20일에 조선 함경도 회령군에서 태여났다. 문정일의 원명은 리운룡이다. 문정일은 일찍 1940년 1월에 중국공산당에 가입했으며 선후로 조선의용군 제2지대 분대장, 중공연길현위 부서기, 현장...
  • 2013-05-14
  •     “의학원을 졸업하고 연길시병원정보과에 취직하였던 남편은 자투리시간을 모아 컴퓨터를 자습했는데 우연한 기회에 120의료응급쎈터에서 사용하는 프로그램을 만들게 되였습니다. 당시 남편이 개발한 프로그램은 의료분야에서 상당한 호응을 얻었는데 이를 계기로 2003년에 병원을 사직하고 컴퓨터프로...
  • 2013-05-14
  • - 장춘시제2조선족중학교 리미선교장의 이야기 장춘시제2조선족중학교 리미선교장 《학생들과 함께 있고 학생들이 기뻐할 때가 가장 행복합니다》라고 말하는 장춘시제2조선족중학교 리미선교장, 1986년부터 교육사업에 종사한 이래 선후로 조선어문교원, 학급담임, 교무주임, 부교장,교장직을 맡아오면서 27년간 시종 강...
  • 2013-05-13
  • 주덕해(1911-1972), 그의 원명은 오기섭(吴基涉),그는 1911년 음력 3월 5일, 로씨야 원동 연해주 우쑤리스크부근의 산간마을에 한 가난한 조선족농민의 아들로 태여났다. 1920년 3월부터 길림성 화룡현 수동촌에서 소년기를 보내고 청년기부터 선후로 흑룡강성의 동녕, 동경성, 림구, 밀산 등 북만일대에서 항일에 투신하면...
  • 2013-05-13
  • 잭 마 ‘알리바바’ 회장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업체 ‘알리바바’의 CEO 자리에서 물러나기 일주일 전, 잭 마 회장(48)은 캘리포니아주 산타모니카 야외 테이블에서 아침식사를 들고 있었다. 자산이 42억달러로 추정되는 마 회장의 재산은 알리바바가 상장되고나면 더 불어날지도 모른다. 마 회장은 1...
  • 2013-05-13
  • 하루 8시간 연습하지만 내게 음악적 영감을 준 건 셰익스피어 문학이었다 [사람 속으로] 중국 천재 피아니스트 랑랑(朗朗) 더 편리해진 뉴스공유, JoinsMSN 뉴스클립을 사용해 친구들과 공유하세요 중국에서 태어나 세계적 피아니스트로 발돋움한 랑랑이 2010년 발매된 ‘랑랑 라이브 인 비엔나’ 앨범 수록곡을...
  • 2013-05-11
  • ㅡ료녕성과학협회 김태원부주석 인터뷰 김태원프로필 1954년 환인현 환인진출생, 1979년 중앙민족대학 중문학부 졸업후 성민위 배치, 이듬해 성위정책연구실로 전근해 선후로 경제처, 농촌처 처장, 1994년 보람점시 시위부서기, 1997년 성위정책연구실 부주임 력임, 2005년 성과학협회 부주석 담임, 성사회과학원 특약연구...
  • 2013-05-10
  • 칭다오 우리어린이병원 오픈한 이계화 원장  김명숙 기자= 칭다오 청양구에 조선족이 운영하는 우리어린이병원이 정식 오픈했다.  원 칭다오시 제8병원 소아과 주임이었던 이계화(조선족, 57세, 길림성 교하시) 원장은 일찍 1977년 대학입시가 회복되는 첫해에 우수한 성적으로 지린(吉林)의학원 의료학과에 입학했다. 졸...
  • 2013-05-10
  • 중국의 영화황제 김염     김염 프로필 원명 김덕린, 1910년 4월 한국 서울에서 태여남, 1912년 독립운동을 하는 아버지 김필순을 따라 두만강을 거너와 중국 통화에 정착을 했다가 후에 치치할로 이주, 1927년 상해로 간다. 이듬해 《카먼》등 극에서 조연을 맡으면서 연극인으로 기량을 선보인다. 1929년 손유...
  • 2013-05-10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