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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끝에 서도 오기가 있어야 산다"
조글로미디어(ZOGLO) 2013년12월3일 10시30분    조회:8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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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이름 : 전치국
 칭다오신삼진공예품유한회사 전치국 사장

  프로필

  전치국 (38)

  연변 안도현 출신

  칭다오신삼진공예품유한회사 사장

  중국 칭다오카스디아공무유한회사 사장

  안도현 고향협회 회장

  1996년 연변사범학교 졸업

  1996년 7월-1997년 7월 안도현 송강6중 교원

  1997년 7월부터 3년간 교주 모 한국공예품회사에 근무

  (흑룡강신문=하얼빈) 이수봉 박영만 기자 = 현재 칭다오지역의 액세서리 수출량이 전세계의 약 30%를 차지한다. 한국기업들이 도금기술을 도입한 덕분으로 칭다오지역은 도금수준이 높아 수출량도 많다는 것이다. 칭다오에 액세서리 기업이 1500개 되는데 그중에서 수출하는 기업은 20개이다. 조선족과 한국기업이 각각 반씩 차지한다.


전치국 사장이 자기 사무실에 진열된 특산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고향인 연변 안도현의
특산물을 가져다 칭다오에 판매하고 , 역으로 칭다오의 특산물을 동북에 가져다 판매해
양쪽의 경제 활성화에 모두 기여한다는 구상을 실천하고 있다,/본사기자

  칭다오신삼진공예품유한회사는 현재 월 100만달러씩 수출하는데 칭다오 청양세관의 기록에 따르면 청양지역 액세사리 수출 1위를 차지했다. 전치국 사장은 2007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완전 바닥을 쳤다가 다시 회생해 정상에 오른 평범한 사람들 중에 뛰어난 한 사람이다.

  전 사장의 사무실에 들어서니 전 사장이 앉은 맞은 켠 벽에 특산물들이 진열되어 있는것이 퍽 인상적이었다. 회사 뜨락도 남달리 깨끗해 보였다. 관리가 잘 되는구나 하는 인상을 강하게 심어주었다.

  전 사장을 취재하면서 겉으로는 조용한 선비같아 보이지만 내심에는 강한 오기가 있음을 느꼈다.

  뜻이 있는 자는 반드시 성공한다

  1996년 연변사범학교를 졸업한 전치국 씨는 사업에 대한 욕망과 열정을 가지고 안도현정부를 찾아갔다. 전씨는 사범학교의 문학사를 창건했고, 반에서 학습위원으로 활약했었다. 그만큼 자신감이 있었다. 그러나 현실은 냉정했다. 전씨는 농촌학교로 발령을 받았다. 개학이 되어 학교에 출근해 보니 달랑 한반에 7명 학생이 있었다.

  그는 1년후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교원만 바라보는 어린이들이 마음에 많이 걸렸지만 장차 내가 성공해서 뜻이 있는 사람들에게 더욱 큰 기회를 창조해주겠다는 '꿈'을 품고 고향을 떠나 칭다오로 진출했다.

  전 사장은 교주에 있는 모 한국 공예품회사에 입사했다. 그의 근면성과 성실함 , 그리고 총명함이 빛을 보아 짧은 시간안에 과장으로 승진해 전반 회사관리를 담당했다.

  어느날 한국 사장이 그를 사무실로 불렀다. 당시 그의 봉급이 1500위안 이었는데 두달치 봉급과 기계 3대를 무료로 '선물'하며 회사를 떠나 독자적으로 경영해 보라고 건의했다.

  2000년 전 사장은 감사한 마음으로 기계를 가지고 50제곱미터 되는 창고를 빌리고 5명 노동자로 액세서리 생산을 시작했다. 그것도 창업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뿌뜻했다. 그의 신분도 과장으로부터 사장으로 변신했다.

탄탄대로를 달리다

  전 사장은 25살의 어린나이에 사장이 됐다. 남들과 비교하면 탄탄대로를 달리는 것이었다. 주변 사람들이 그를 부러워했다. 그러나 전 사장은 아직 갈 길이 멀다며 항상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는 고향을 떠나오면서 책을 6포대나 가지고 왔다. 그의 커다란 책장에는 '손자병법' 등 책이 정성들여 진열돼 있었다. 17년전에 고향에서 메고온 다 낡은 책들도 정히 꽂혀져 있다.

  전 사장은 "긍정적인 사고 방식"이 성공의 조건이라며 '되겠는가 하는 부정적인 사고 방식"은 실패를 자초한다고 말했다. 인간은 성실하고 남한테 피해주지 말고 배려하며 근면해야 한다는것이 그의 주장이다.


전치국 사장이 회사내의 액세서리 전시장에서 유럽풍격의 디자인 제품을 살펴보고 있다./본사기자

  전 사장은 2000년부터 2003년까지는 홀로서기의 기반을 닦는 단계었다고 회고했다. 경영에서 발생하는 이익을 지속적으로 재생산에 투자했다. 제품은 모두 200여개 칭다오 한국업체에 납품했는데 당시에는 판매에 별로 문제가 없었다. 제1. 2 공장이 생겨났고 노동자는 초창기때의 5명으로부터 800명으로 160배 증가했다. 모든 일들이 순풍에 돛단 격이었다.

  벼랑끝에 서도 오기가 있어야 산다

  2007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한파가 불어왔다. 정말로 칼로 뼈를 긁어내는 한파이다. 칭다오의 4000여개 되던 한국 액세서리 기업들이 2000개로 반토막났다. 현재도 액세서리 업체들이 부도나거나 동남아로 이주하고 있다. 금융위기때는 상황이 더욱 각박했었다. 한국업체에 납품하던 조선족업체들도 고스란히 그 피해를 물려받았다.

  전사장의 업체도 예외는 아니었다. 거래하던 한국업체가 부도나면서 미수금이 380만위안에 달했다. 거기에 자재비까지 합치면 700만위안 적자가 생겼다. 회사는 부도 직전까지 이르렀다.

  전 사장은 800명 노동자들을 모아 놓고 회사가 부도날 위험이 있으니 떠날 사람은 떠나라고 통보했다. 당시 500명이 떠나고 300명이 남았다.

  당시 전 사장은 액세서리를 수출하는 친구가 다급히 찾아와 86만위안 어치의 제품이 반품됐다며 도움을 요청했다. 전 사장은 어려웠지만 친구를 믿고 담보를 서주었다. 3일후에 채권자가 전사장을 법에 기소했다. 결국 담보를 선 전사장이 고스란히 86만위안을 날렸다.

전 사장은 "무엇을 바라면서 도움을 주지말고 믿고 도와주라"며 담보 섰던 86만위안을 지금도 받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도리여 그 친구가 먹고 살라고 달달이 5만~10만달러씩 오더를 준다고 한다. '남이 모르게 착한 일을 하면 세상이 다 알게 복을 받는다'는 속담이 떠올랐다.

  당시 설상가상으로 가정도 경제난으로 위기를 맞았다. 전사장은 속으로 피눈물을 흘리며 줄것은 주고 떠날 사람은 모두 떠나보냈다.

  당시 전 사장은 아침에 회사에 출근해서 컴퓨터를 커면 첫 보이는것이 부채문서였다. 총 부채가 1000만위안에 육박했다. 정말로 전사장한테 2007년 7월 한달사이에 각종 악재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뒤덮쳤다. 나무는 고요하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않았다.

  이럭저럭 설이 다가왔다. 설대목에 노동자들한테 봉급도 내주지 못했다. 전사장은 노동자들을 불러놓고 돈이 필요하면 찾아오라고 말했다. 그래도 찾아온 사람이 한사람도 없었다. 참말로 고맙다고 전사장은 말했다. 기계는 계속 돌아가는데 돈은 보이지 않았다. 전사장은 지갑에 달랑 600위안만 남았다.

  전 사장은 고민끝에 구정 술 두병을 달랑 사 들고 380만위안 동 자재비를 빚지고 있는 중국인이 경영하는 회사를 찾아갔다. 전 사장은 당사의 경영상황을 설명하면서 "감옥에 넣든지 아니면 기회를 달라"고 오기를 부렸다.

  전 사장의 오기가 마음에 들었고 또한 평상시 그의 인간 됨됨이를 잘 아는 지라 중국인 사장은 "믿는다. 한번 해보라"며 자재를 계속 공급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전 사장은 가슴에 막혔던 것이 쑥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또한 주변 사람들이 통장을 들고 와서 돈을 빌려주었다.

  전 사장은 늘 "내 마음이 깨끗해야 세상이 깨끗하게 보인다"고 말한다. "내 머리속에 불이 있으면 불(佛)로 보이고 내 머리속에 개가 있으면 개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자기가 바르다고 믿는다면 비록 상대가 천만 명이라 할지라도 그를 두려워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대용(大勇)은 마음을 항상 바르게 지니고 자기의 정직함과 정당함을 믿는것이다.

  한편 전사장과 함께 산전수전을 겪었던 관리자 5명도 큰 힘이 되었다. 이들 5명은 13년 동안 근무했는데 회사가 어려울 때 항상 곁에서 지켜주었다.

  전 사장은 "돈이 전부가 아니다. 서로 진심을 주어야 된다. 어떤 일은 독단적으로 결정하는데 관리자들이 '그건 아닌데' 하면서도 따른다. 나중에 오너의 결정이 옳다는 결론이 나면 리더십이 생기고 믿게 된다"며 "관리도 신용이다"고 덧붙였다. 전 사장은 이런 관리자들과 죽을 때까지 간다고 말한다.

  회사는 점차 원기를 회복했다. 우선 자동화를 실현하여 노동자를 1/3 줄이고, 2009년부터 한국업체에 납품하던 것을 몽땅 정리하고 미국, 유럽, 아프리카로 수출했다. 3년만에 빚도 몽땅 청산했다.

  도전은 오늘도 계속 된다

  전 사장은 "현재 액세서리 업체들이 어려움을 겪지만 관리가 잘 된 기업에는 큰 기회이다" 고 말했다. 월 50만달러씩 수출하는 기업은 체계가 완벽한 기업이라고 설명했다. 일부 기업들이 부도나면서 시장공간이 넓어졌다는 것이다.

전 사장은 이런 기회를 포착하면서도 남다른 위기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중국에서 수출만 할 경우 10년이면 수출시장이 고갈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수출을 하면서도 올해부터는 내수에 눈길을 돌렸다. 내수를 위해 카스디아회사도 설립했으며 내수시장 개척 5개년 계획을 세우고 홍보, 이미지광고에 주력하고 있다. 현재 제품은 디자인이 유럽풍격이기 때문에 중국인들이 선호하는 디자인으로 바꾸고 시장조사를 하고 있다.

  한편 전 사장은 '돈이 들어가는 협회가 아니라 돈이 나오는 협회를 만들자'는 취지를 내걸고 안도현 고향협회를 이끌어가고 있다. 안도협회는 지난해 설립되였는데 전사장이 초대회장을 맏고 이사 21명이 있다. 그중 12명이 자발적으로 1500만위안을 집자해 올해 국경절에 칭다오에 옥매장을 오픈했다. 향후 좋은 아이템이 있으면 함께 투자하기로 했다.

  또한 현지 은행행장, 정부관원 등으로 고문단을 조성해 도움을 받고 있다.보험도 공동가입하는 조건으로 남보다 더욱 좋은 서비스를 받고 있다.

  전 사장은 내년에는 역시 공동 투자로 건강원을 오픈시키고 고향인 안도특산물을 가져다 판매하는것으로 고향건설을 돕겠다며 동분서주하고 있다. 역으로 칭다오의 특산물을 동북에 가져다 판매하는것으로 제2고향인 칭다오의 경제활성화에 기여한다는 방침이다. 그리고 기업을 꾸리는 보스들을 상대로 정책분석, 전략분석, 기업방향 설정을 골자로 교육 프로그램도 개발하고 싶다고 말했다.

  hljcfb@163.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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