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예인 꿈 꾸는 얼후 연주자 윤룡철 씨
조글로미디어(ZOGLO) 2013년9월24일 16시53분    조회:11730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인물이름 : 윤룡철

(서울=연합뉴스) 강진욱 기자 = "어릴 때부터 악기가 좋았고 오랫동안 연주와 작곡, 지휘 활동을 한 덕분에 한국에 와서도 음악 관련 일을 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더욱 예인의 꿈을 버리지 못합니다."

2011년 한국에 온 조선족 3세 윤룡철(51) 씨는 24일 "악기로 성공은 못했지만 악기를 놓을 수 없는 인연이 이어지고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중국 지린성 옌볜조선족자치주 허룽 출신인 윤 씨는 중국 전통악기인 얼후와 후루스, 서양악기인 플루트 외에도 피리와 단소 등 여러 악기를 다루며, 국내 조선족 관련 행사가 있을 때마다 다양한 악기를 선보이는 프리랜서 연주자이다.

그는 이달 초 서울 은평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 제3회 조선족 문화예술축제에서 피리와 단소 및 중국전통악기 얼후를 연주해 1천여 청중들로부터 뜨거운 박수를 받기도 했다. 그는 "여러 가지 사정으로 예술학원(대학) 진학은 못했지만 스승을 찾아다니며 플루트와 피리, 단소 등 여러 악기 주법을 배웠다"며 "1980년대 까지만 해도 재능이 있으면 스승을 찾아가 배움을 청할 수 있는 분위기였다"고 말했다.

그렇게 배운 실력으로 1983년 지린성 창춘에서 열린 공연에서 플루트와 단소를 연주할 기회를 얻었고, 객석에 와 있던 지린시 조선족문화회관 관계자의 눈에 들어 1년여 이 회관 소속 악단에서 연주활동을 했다.

그리고 얼마 뒤 중국 굴지의 임업회사에 속한 이도백하문공단으로 자리를 옮겨 이곳에서 연주자와 작곡자, 지휘자로 활동하며 1999년까지 15년을 일했다.

당시에는 중국의 큰 회사들은 일꾼들의 문화생활을 지원하고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각각의 크고 작은 악단을 운영했다고 윤 씨는 밝혔다.

이 문공단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그는 회사의 지원으로 1988년부터 1990년까지 2년여 기간 지린성가무단에서 작곡 공부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중국에 개혁개방의 파고가 밀려들고 한 사람이 여러 소리를 낼 수 있는 전자악기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중국 각지 가무단 또는 문공단에서 활동하던 각종 악기 연주자들이 점차 설 자리를 잃었다.

문공단을 나온 뒤 한동안 창춘과 베이징 등지에서 전자음악 분야에서 일하던 그는 결국 2년여 전 예인의 꿈을 잠시 접고 한국행을 택했다. 부인은 이미 2006년부터 한국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는 "한국에 와서도 음악 관련 일을 찾으려 했는데 처음에는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며 "다행히 6개월여 만에 지금 일하는 회사에서 안정된 일자리를 얻었다'고 말했다.

그가 일하는 회사는 노트북 크기의 휴대용 반주기를 만드는 회사로, 그가 하는 일은 다양한 악기의 반주 소리를 듣고 전자 음악파일을 만드는 것으로 음악 전반에 대한 전문지식을 필요로 한다.

그는 "전직원들에게 9시 출근과 6시 퇴근을 보장하는 좋은 직장이어서 거의 매일 퇴근 후 조금씩이라도 악기 주법을 연습한다"고 밝혔다.

윤 씨는 "얼후를 나보다 훨씬 잘 연주하지만 제대로 연주자 대접을 못받는 조선족이 몇 있다"며 "지금은 다들 생업에 종사하느라 짬을 못내지만 언젠가는 조선족 연주자들이 모인 합주단이 생기면 좋겠다"고 말했다.

(윤룡철 씨가 중국 전통악기 후르스를 부는 모습)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백청강의 모교를 찾아서   림금산 안해연   우리가 백청강의 모교를 찾아 떠난것은 청강이가 서울에서 열린 MBC 스타오디션'위대한탄생-그랜드파이널'에서드디어1등을따내조선족사회에크나큰센세이숀을일으킨바로나흘후즉5월31일이른아침이였다. “청강이는 조선족의 자존심을 연출했다, 청강이는 ...
  • 2011-07-08
  • 한석윤 퇴직후 사재 털어 '연변청소년문화진흥회' 설립 한석윤 시인 어린이들과 함께.   (흑룡강신문=연길)약 40년간 조선족 청소년 사업에 몰두한 한 조선족 지성인이 있는데 그가 바로 중국조선족소년보사 전임 사장인 한석윤 씨(1943년 출생)이다.   퇴직후에도 지속적으로 청소년사업을 이끌어나가기 위해...
  • 2011-07-08
  •   (흑룡강신문=하얼빈) 연변조선족자치주 수부도시 연길에서 “코스모(考世茂)”는 조선족전통음식업계의 대표적 브랜드의 하나로 널리 알려져있다. “코스모”는 대우주라는 뜻의 영음간칭이나 코스모스라는 쑥꽃의 준칭으로 아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조선족민속음식업의 한길을 헤쳐온 &ldq...
  • 2011-07-08
  •   중국농촌개인사이트 CEO 조동철  (흑룡강신문=하얼빈 2011-07-07) 료녕성 심양시의 조동철(34세)은 중국에서 가장 일찍 농민이 구축하고 운영하는 '중국농촌중개인 사이트'를 개설하고 몇년 사이에 일약 농민 CEO로 자리매김했다.   현재 그는 전국적으로 1400여명의 중개인 협력자를 모집했으며 2만...
  • 2011-07-08
  • 성공적인 삶의 길잡이 되여 (사)이주·동포정책연구소 문민 연구위원을 만나 근무중에 있는 문민위원 [길림신문 2011-07-04 전춘봉 특파기자] 재한 조선족 삶의 현장에 관심이 많다보니 자주 관련 사이트를 열어보게 되었는데 문민이란 이름이 자주 눈에 띈다. 어느 한 사이트에서는 《문민의 함께 하는 세상》이라는...
  • 2011-07-07
  • 연변대학교 전임 교장 박문일 [길림신문 2011-07-04 ]나는 위대한 당의 은덕으로 연변대학교의 제1기생으로, 62년의 연변대학교 동반자의 한사람으로 80고개를 눈앞에 두고있는 리직교수이다. 당 창건 90돐을 맞아 학교와 그속에서 걸어온 60년을 돌이켜보면 《공산당이 없으면 새 중국이 없다》는 우리 중화민족의 애창 대...
  • 2011-07-05
  •   (흑룡강신문=하얼빈 2011-06-30) 박룡수 = 중국의 첫 집체농장으로 알려진 성화집체농장의 개척자 고 리재근(1920- 2006년)은 1949년 입당으로부터 2006년 서거까지 57년 당령. 1951년 첫 집단농장때로부터 1983년까지 장장 33년을 촌지부서기로 사업하면서 많은 영예를 떠안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어디까지나 땅과 더...
  • 2011-07-01
  • 영웅적 민족 빛나는 발자취 우리 민족 선배들이 북만땅에 남긴 영광스러운 발자취   (흑룡강신문=하얼빈2011-06-30) 김철진, 김해란 기자 = 당창건 90돐에 즈음하여 북만지역(오늘의 흑룡강성)의 우리 민족 선배들이 당이 령도하는 혁명투쟁에서 남긴 영광스러운 발자취를 더듬어보기 위해 기자는 흑룡강성당사연구소 전...
  • 2011-06-30
  • <!--advertisement code begin--><!--advertisement code end-->   (흑룡강신문=하얼빈2011-06-28) 정봉길기자 = 40여년간 조선어 교육과 연구에 집념해 눈부신 성과를 따낸 이가 있다. 주인공은 전 중앙민족대학 조문학부의 서영섭교수(77세)이다.   서교수는 1957년에 연변대학을 졸업하고 이 대학의 교사...
  • 2011-06-28
  • “글로벌시대 무역정보 빨리 장악하라” [흑룡강신문 2011-06-24 윤운걸 길림성 특파원]김봉운 연변왕달무역유한공사 총경리의 환동해무역노하우김봉운총경리 프로필 교육배경:  1953년 1월 21일생  1987년 연변조선족자치주 당학교 졸업  1989년 중앙당학교 경제관리학 졸업  2008년 연변과학기술대학...
  • 2011-06-24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