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스승》,《학자》그리고《교장》
조글로미디어(ZOGLO) 2013년7월4일 08시45분    조회:6458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인물이름 : 김병민

김병민교수.

지난 5월 14일, 신록을 재촉하는 잔잔한 이슬비가 아침부터 보슬거리고 있었다. 연변대학 낡은 캠퍼스에서 신축캠퍼스로 이어지는 길가에 함초롬히 젖은 연분홍 복사꽃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냥 지나치기가 아쉬워 다가갔더니 발치에 노란 개나리가 웃고 있었다. 큰 나무와 작은 나무, 어른과 아이, 스승과 학생… 막 뇌리로 스쳐가는 이미지를 터치하다 말고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교수님, 저 도착했습니다. 지금 올라가도 될가요?》

《아차, 벌써 약속시간이 됐구만. 허허, 어서 올라오시오.》

텁텁하고 웅글진 남성의 목소리가 훈훈하게 들려왔다.

연변대학 전임 교장이며 박사생지도교수인 김병민교수의 음성이였다.

10년만에 연구실로 돌아온 교장선생님

《늘 즐겁기만 합니다. 좀 편안해졌으니. 하하…》

연구실에서 이제 막 론문지도를 끝내고 반갑게 맞아주는 김병민교수의 얼굴에는 이름 모를 흥분이 어려있었다.

2005년 장덕강서기의 초청을 받고.

신채호문학연구, 북학파문학연구 등 분야에서 괄목할만한 성과들로 국내외 공인을 받고 있는 김병민교수, 한국이외의 아시아인 최초로 《용재학술상》을 수상한데 이어 지난해에는 제17회 KBS 《해외동포상》 인문사회부문 학술상을 수상하는 등 수많은 국내외 학술상을 수상한 김병민교수지만 그동안 스스로 《반쪽학자》라고 《폄하》했다.

연변대학의 행정사업을 맡으면서부터였다. 지난 시기 학술저서를 정리하고 즐겁게 독서하고 론문집필과 더불어 평론과 수필도 쓰면서 완전한 학자의 길을 걷고 싶었는데 대학교 교장사업을 비롯한 여러 행정사업을 맡고 보니 도무지 뜻대로 할수가 없었다. 그때 스스로 자신한테 내린 정의라고 했다. 그래서인가, 퇴임이후 《완전학자》에로의 《올인》이 그처럼 즐거울수가 없단다.

중국정부가 소수민족지역에 세운 최초의 종합대학인 연변대학(1949년 설립), 설립되여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장장 10만여명에 달하는 국가 고급전문인력을 배출한 연변대학은《211》프로젝트 중점건설대학, 서부지역개발 중점대학일 뿐만 아니라 길림성과 국가교육부가 공동으로 지원하는 중점건설대학이기도 하다. 이렇듯 자랑 많고 앞길 찬란한 민족대학의 교장으로 최근 10년간 묵묵히 봉직해온 김병민교수, 연변대학에 몸을 맡긴 세월만 어언 35년이 흘러갔다.

젊은시절의 김병민.

편지 한통으로 맺어진 연변대학과의 인연

김병민교수의 고향은 흑룡강성 녕안현(지금의 녕안시). 농촌에 있을 때부터 자그마한 꿈이 있었다. 바로 기자가 되는것이였다. 신문통신도 발표하고 신문강습도 받은 적이 있었다. 결국 그 꿈을 위해 군부대에서 문서로 있다가 다시 농촌으로 돌아온 그는 연변대학에 한통의 편지를 띄웠다. 1975년 이른봄이였다.

《편지를 보내서 얼마 안돼 연변대학에서 공부하는 것을 환영한다는 답장이 왔습니다. 지방정부의 추천을 받으라고 하더군요.》

입학통지서가 아닌 그냥 한통의 답장이였지만 그에게는 그 답장이 마치 《상방보검(尙方寶劍)》이나 같았다. 그 답장을 보낸 분이 당시 연변대학 교무처 처장으로 계시던 박문일 전임총장이라는 사실은 20여년이 지난 후에 알게 됐고 그래서 더 감회가 깊었다.

학생들과 따뜻하게 이야기를 나누고있는 김병민교수.

그때 지방에서는 김병민교수를 대련경공업학원에 추천했는데 평소 글쓰기 열성자였고 신문통신도 쓴 경력자이며 신문사편집기자 강습도 받은 경력때문이였는지 결국 그는 연변대학 조선언어문학학부에 입학했다.

1978년 학교를 졸업한 김병민교수의 앞에는 학교 공청단위원회 부서기로 가느냐 아니면 연변조선족자치주 당위 비서처로 가느냐 하는 갈림길이 나졌다.

결국 정계입문보다 학계를 선택했다. 졸업이후 반년뒤 중산대학에 가 중국문학을 연수하고 중국현대문학석사연구생과목을 청강했다.

그러던 중 국가 교육부의 해외류학정책 특혜를 받게 됐다. 당시 교육부는 전국적으로 300명을 선발해 국비로 외국류학을 보내게 됐는데 그중에 김병민교수가 포함된것이다.

1982년 김일성종합대학 박사원에 연구생으로 간 김병민교수는 1985년에 문학준박사학위를 따낸뒤 다시 연변대학에서 박사공부에 들어갔다. 1990년 6월, 연변대학이 자체로 배양한 제1호 박사가 탄생했다. 바로 김병민교수였다.

《스승》, 《학자》 그리고 《교장》이란 이름으로

연변대학 조선언어문학학부 교수, 박사생 지도교수, 학부장, 교무처 처장, 사범학원 원장 겸 총장조리, 부총장, 총장 이는 지난해까지 적어온 김병민교수의 임직경력이다.

연변대학협동창신연구쎈터 부주임으로 사업하고 있는 최일부교수는 최근 《스승, 학자 그리고 교장》이란 글에서 《제자들의 눈에 비친 김병민교수는 근엄한 모습뒤에 자상함을 감춘 스승》이였고 《학자로서의 김병민교수는 학문에 대한 무한한 정열과 끈질긴 추구를 오롯이 보여온 학도》였으며 《교장으로서의 김병민교수는 (진리, 선행, 융합)을 새로운 교훈으로 제정하여 진리의 창조와 전파, 사랑과 봉사, 포용과 공존을 연변대학의 핵심적문화정신으로 육성시키기에 노력한 분》이라고 적고있다.

《스승》, 《학자》, 《교장》, 이는 김병민교수를 료해하는데 있어서 빠져서는 안될 키워드이기도 하다.

2008 북경올림픽 연길성화봉송에서 8번째 주자로 뛰는 김병민교수.

이 가운데서 특히 《스승》이란 호칭이 가장 마음에 든다는 김병민교수는 학문을 대함에 있어서 자신뿐만 아니라 제자들에 대해서도 엄격한 분이다.

연구생들한테 강의를 하면서 외부의 지장을 받지 않기 위해 전화선을 뽑아버리고 출입문밖에 《수업중, 외부인 출입금지》라는 큼지막한 글자를 써붙인 일화는 지금도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고 있다.

그만큼 제자사랑도 각별하다. 외국출장을 하게 되면 거의 매번 류학하고있는 제자들을 불러 맛있는 음식을 사주고 강의료로 받은 돈을 제자들의 손에 쥐여주는가 하면 타지에 있는 제자가 건강이 좋지 않다는 소식을 들으면 출장길에 손수 보건품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또한 《길림성특별초빙교수》에 당선되여 받은 특별수당금에서 10만원을 연변대학의 학생장학금으로 쾌척, 학생들에 대한 큰 사랑을 실천했다.

학자로서의 김병민교수는 그동안 행정일에 발이 묶여 학문을 제대로 하지 못하였다고 스스로를 《반쪽학자》라고 하지만 사실 현재까지 내놓은 20여권의 저서, 100여편의 론문과 평론중 다수가 행정직무를 맡아보면서 써낸것이다. 남보다 훨씬 더 많은 각고의 노력을 경주해 이룩한것이였다.

교장으로서의 김병민교수는 연변대학의 내실을 튼튼하게 다져가는 동시에 하드웨어건설에 박차를 가해 총 투자액 12억원, 건축면적 37.5만평방메터에 달하는 아름답고 쾌적한 신캠퍼스를 완성해 연변대학의 새로운 도약을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

그가 교장으로 재임한 시기 연변대학에서 획득한 과학연구경비는 전시기에 비해 5배 증가했고 SCI, CSSCI 등 국제, 국내 학술정보검색시스템에 수록된 론문의 량이 10배 증가했으며 6개의 1급학과 박사학위수여점과 50여개의 2급학과 박사학위수여점을 새롭게 쟁취했다.

연변대학의 대학종합평가순위도 길림성 6위에서 3위로 뛰여올라 길림대학, 동북사범대학에 버금가게 되였다.

2012년 제17회 한국 KBS 해외동포상을 수상하고.

인생을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가면 즐거워…

지난해 6월 교장직에서 퇴임하여 연구실에 돌아온 김병민교수, 인젠 《성쌓고 남은 돌》되였으니 조용하게 그간 못 읽은 책이나 읽고 취미가 가는대로 연구와 저술을 하겠다고 《선언》했지만 결국은 또 무산되고 말았다.

연변대학 새로운 지도부의 청구를 못이겨 국가교육부의 대형프로젝트를 따내기 위한 《연변대학 동아시아통문화연구협동창신쎈터》의 주임이란 중책을 맡게 된것이다.

《허허, 믿고서 맡기는데야 방법이 없지요.》

연변대학 총장으로 10년, 속담에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다.

그동안 행정사업을 안하려고 사표까지 낸적도 있었지만 지나온 10년을 돌아보면 힘들었지만 보람찬 시간들이였기에 원망이나 후회보담은 뿌듯함이 더 많다고 했다.

그러면서 또 싱글벙글 웃으셨다. 《새로 맡은 일 때문에 하고싶은 일을 할수 없을지도 모르는데 그게 기쁘시냐?》며 악의없이 물었다. 그러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인생을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가면 늘 즐겁답니다.》

그게 김병민교수의 삶의 신조였다.


길림신문 김룡기자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길스태권도 주최 제 12회 주지사컵 태권도대회에서 대회를 개최한 길용섭 관장(좌), FBI 디렉터 폴 조지, 길상섭 관장 미시간 미국사회 한복판에서 한국정신을 심고 있는 길스태권도가 지난 6일 올드 하트랜드 고등학교 체육괸에서 약 500여명의 수하생들이 참가한 가운데 제 12회 주지사컵 태권도대회를 개최했다.체육관을...
  • 2006-05-15
  • 제12차 전국 청년가수 텔레비전콩클 단체결승전에 오른 연변적 조선족 가수 박홍철씨가 오늘 저녁 7시 30분 cctv 제3채널에 첫사람으로 나서게 된다. 료해한데 따르면 이번 청년가수 텔레비전콩클은 이왕과 달리 콩클현장외에 두번재 현장이라 할수 있는 인터넷투표와 핸드폰메시지 그리고 지정된 전화번호에 열선전화하기...
  • 2006-05-12
  • [원제:황우석박사 논문조작 지휘…28억 사기ㆍ횡령] 검찰 수사 발표 "줄기세포 섞어심기는 김선종 단독 범행" 강성근ㆍ이병천ㆍ윤현수 교수도 `연구비 사기' 황우석 박사팀의 줄기세포 관련 연구는 김선종 연구원이 단독으로 저지른 `줄기세포 섞어심기'와 황 박사가 진두지휘한 `논문 조작'이 결합한 사기극이었던 것으로 ...
  • 2006-05-12
  • 줄기세포 논문조작 의혹과 관련해 황우석 전 서울대 수의대 교수와 김선종 전 미즈메디 연구원 등 6명이 불구속 기소됐다. 2005년 논문에 게재된 환자맞춤형 줄기세포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은 것으로 결론났으나 2004년 논문의 줄기세포의 성격에 대해서는 판단이 유보됐다.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은 12일 이같은 내용을...
  • 2006-05-12
  • "탁구채를 바로 잡으시오. 그리고 무겁게 드시오. 손에 쥐고 있는 탁구채는 가볍지만 거기에는 조국의 영예가 실려 있다는 것을 명심하시오." 12일 북한 웹사이트 내나라에 게재된 북한의 대외 홍보잡지 금수강산 5월호가 북한탁구협회 주정철(43) 서기장의 '탁구 인생'을 소개했다. 이 잡지에 따르면 주 서기장은 80년대 초...
  • 2006-05-12
  • 중국의 "매트왕"으로 불리고 있는 광동성의 연변적 조선족기업가 리성일(50)씨가 연변주정부 경제고문에 위임됐다. 10일 연변주당정경제무역대표단 일행을 대동하여 광동성 광저우시에서 길림성-광동성 대상추천소개회 및 합작대상체결의식행사에 참석한 연변주 김진길주장은 광주모드모아매트유한회사의 리성일리사장을 연...
  • 2006-05-12
  • ——— 한국서 귀국후 작은 돈벌이도 놓치지 않은 송지혜씨 “티끌모아 태산이라고 이제는 일이 몸에 배여 집에서 놀고 있으면 속에서 불이 나는것 같아요.” 올해 4월 한국으로 다시 나가는 송지혜(38세)씨의 얼굴에는 찬란한 웃음꽃이 활짝 피였다. 그도 그럴것이 중국에 돌아와있는 1년간 쉬지 않고 부지...
  • 2006-05-12
  • ——— 내몽골자치구 건설환경보호청 전임 청장 렴호 사철 푸른 소나무와 같이 근 반세기를 내몽골 초원에 뿌리 내리고 초원에 정들고 초원에 미쳐서 초원을 사랑하고 아름답게 장식하면서 자신의 청춘과 힘과 지혜를 깡그리 바친 이가 있다. 그가 바로 내몽골 자치구 원 건설환경보호청 렴호 청장이다. 미래...
  • 2006-05-12
  • 9일자 '료녕조선문보'에 따르면 2006년 료녕성로력모범에 현지의 조선족 3명이 당선된것으로 밝혀졌다. 이들로는 심양시 동릉구 혼하참서가두판사처 만융촌(조선족집거촌) 촌민위원회 박승택 주임, 무순시 순성구 장군가 순달사구 신정옥 주임, 환인만족자치현국가세무국 김석해 국장 등 3명. 이들은 지난 4월 28일 료녕성총...
  • 2006-05-11
  • 캐나다 토론토대에서 행동생태학을 전공하는 김선남(24.여)씨가 11만5천달러의 장학금을 받고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박사과정에 입학해 화제가 되고 있다. 11일 캐나다 한국일보에 따르면 오는 10월 3년 코스의 케임브리지대 대학원 실험심리학 박사과정에 들어가는 김씨는 케임브리지대에서 5만5천달러, 캐네디언 케임브리...
  • 2006-05-11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